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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계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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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다(전 7:29).
그러나 사단은 거짓말을 이용하여 인류를 기만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인류는 속임을 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되었고 불순종하여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었다(벧후 2:19).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이처럼 인류는 장래에 대한 속절없음과 희망이 없는 상태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복음을 선언 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만물을 창조하신 그리스도(요 1:3)는 인류를 위한 죽음을 제공하실 것이라는 선언 이셨다.
그리스도는 죄의 삯을 지불하시기로 하셨으며 인류에게는 다시 한번 선택의 자유와 구원의 기회가 허락될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분은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셨다(계 13:8). 베드로전서 1:18-20참조.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었다(창 3:1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사단과 죄인들이 살고 있는 이 땅에 오셔야 하였고 인류에게는 구원의 기회를 그리고 사단에게는 그 의기만을 폭로하므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기 위하여 여인의 후손으로 오셔야 하였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 5).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 2:17).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며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4).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위하여 그는 육신이 되셨으며(요 1:14), 율법 아래 나셨으며(갈 4:4),
“저주를 받은 바” 되셨으며(갈 3:13), 모든 사람의 죄악이 그에게 담당되었으며(사 53:6),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고(고후 5:21),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므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만드시게 되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그는 우리들의 죄 값인 사망의 형벌을 지불하셨다.
이로써 믿음으로 그의 보혈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용서와 영생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로마서 3:23; 베드로전서 2:24; 로마서 3:24, 25참조)
인간은 구원을 필요로 함
각 인간 영혼들에게는 구원의 필요가 절실하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롬 3:23).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태어난다.
모든 인류는 죄 가운데 출생한다 (시편 51:5; 58:3; 이사야 48:8).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는 상태 (에베소서 4:18).
마음이 심히 부패함 (예레미야 17:9).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태어남 (에베소서 2:1).
인간 스스로는 자신의 상태를 바꾸는 일이 불가능하며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 범죄 하면서 살다가 소망 없이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므로 우리 인류가 불신으로 잃어 버렸던 영생을 믿음으로 구원을 다시 얻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 의롭게 살아가는 능력과 힘을 주께로부터 얻는다.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자니” (요일 5:1)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요일 5:4)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요일 5:18)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6)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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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에 필요한 회개와 고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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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의롭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영혼들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는 경험이 반드시 요구된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진정한 경험이 없는 믿음은 공언하는 믿음이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죄에 대하여 핑계를 대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죄의 용서는 회개와 자복이 있는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5).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하단).
믿노라고 하나 마음에 숨겨둔 죄악과 회개하지 않고 자복하지 않는 죄를 가진 자들은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며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회개와 자복도 죄의 형벌이 두려워서 가 아닌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진정한 것이어야 한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시면서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당부를 하셨다. 그러므로 용서받은 죄인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이 요구된다. 이런 마음의 결심을 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힘과 능력으로 도우시고 함께 하실 것이다.
“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요 5:1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 8:11)
그러나 기억할 것은 우리의 결심과 노력과 의지만으로 세상을 이기지 못하며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결심과 노력이 필요하나 그리스도의 도움과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분으로부터
힘과 능력을 받음으로 만이 세상을 이기는 생애가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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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거듭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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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요 3:3-4)
우리는 선행이나 의로운 생애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거듭남으로 구원을 얻는다. 선행과 의로운 생애가 있어야 하나 그것은 구원의 공로가 아니요
거듭난 영혼에게 나타날 결과일 뿐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이며 진정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그 마음에 새 마음을 창조 받게 됨으로써이다.
“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진심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개와 자복으로 죄를 용서받는 자들에게는 새 마음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실 것이다.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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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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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거듭난 영혼들이 거룩한 생애를 살아가는 삶을 성화라고 한다. 이것은 칭의와 별개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의를 나누어 받으면서 살아가는 생애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그분의 의를 나누어 주시고자 하신다.
그리스도인 생활을 시작할 때에만 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생활 전 과정을 통해서 의를 얻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며 이것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다.
구원은 궁극적으로 죄의 권세로부터 구출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성화이며, 성화는 일생에 걸쳐 악과의 투쟁에서 거룩함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생애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않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1-4).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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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기원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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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의 정부의 토대는 율법에 기초되어 있음을 말씀 하셨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시 89:14).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율법을 토대로 하여 존재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보좌도 공의와 자비의 율법이 보좌의 기초이다.
하나님이 의롭고 선하신 것처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그리고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것처럼 그분의 율법도 영원하고 거룩하다.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시 111:7, 8).
하나님의 율법은 그 자체의 거룩한 본질 때문에 영속할 것이다.
다윗은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움을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이다”(시 119: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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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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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세 가지 유형의 율법이 언급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국법 - 이스라엘의 통치와 관련된 수많은 일들을 규정한 율법들이다.
건강, 위생, 질병, 범죄, 법적 절차 등등과 관련있다. 이것들은 오늘날 시민적 의무로서 구속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의문의 율법 -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의식과 메시야에 대하여 예시하는 성소문제와 관련된 의식의 율법들이다.
이것은 모세가 책에 서서 보관하였다.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신 31:24).
도덕률인 십계명 - 출애굽기 20:1-17에 기록된 십계명이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선언하시고 친히 돌비에 쓰신 모든 인류를 위한 도덕적 원칙이 되는 율법이다.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신 4:13).
두 가지 율법의 대비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성경 속에 있는 두 종류의 율법에 대하여 혼동하곤 한다.
이것은 도덕률(십계명)과 의문률(의식법)이다.
도덕률(십계명)
도덕률(십계명)은 선과 악을 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 2:8-12).
그러므로 이 율법은 그 속성상 영원하며 불변한 율법이다. 그리고 도덕률은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는 사본이기에 변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그분에게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 그분의 본성과 그분의 율법은 사랑이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러하였고 미래에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며,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시는 분은 변치 않으신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합 3:6; 사 57:15; 약 1:17).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삼상 15:29). 하나님의 품성이 바뀔 수 있다면 우리는 그분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도덕률인 십계명을 그 속성상 변하지 않으며 변해서도 안 된다.
십계명의 율법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시 119:89)나이다 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내가 “율법… 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고 말씀하시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7, 18)고 가능한 한 크게 강조하여 주장하셨다.
여기서 그분은 과거에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어떠했으며 그 당시에 어떠했는지를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이 요구는 천지가 존속하는 한 보존되리라는 것을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보좌와 같이 변하지 아니한다. 그것은 각 시대를 통하여 인류에게 율법의 요구를 주장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율법에 순종하심으로써 변경할 수 없는 율법의 성격을 증거 하시고, 아담의 모든 자손이
당신의 은혜를 통하여 율법을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축복의 산 위에서 그분은 모든 것, 즉 인류와 관계되는 모든 것, 구원의 계획과 관련되는 모든 것이 성취되기 전에는 율법의 가장 작은 일획도 폐하지 않으리라고 언명하셨다.
그분께서는 율법이 결코 폐지될 수 없다고 가르치시며, 또 우리의 시계(視界)를 최대로 넓혀 그 끝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끝에 이르기 전에는 율법이 그 권위를 계속 보존하게 될 것이라고 확인하심으로써 아무도 율법을 폐지하는 것을 예수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신다.
천지가 존속하는 한, 하나님의 율법의 거룩한 원칙도 남아 있을 것이다.
“산들과 같”(시편 36편 6절)은 그분의 의는 계속 축복의 근원으로서 대지에 생기를 주는 시냇물을 흘려보낼 것이다.
의문의 율법
의문의 율법, 또는 의문률은 복음을 예시하시기 위하여 제정하신 제사 예법이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제사에 대하여 규정하는 의문들은 결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사 제도는 인간에게 구원의 소망되시는 그리스도를 예시하신 법이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폐하여졌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이 율법책들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신 31:26).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9, 10).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5).
의문의 율법(ceremonial law) 에 대한 성경절을 도덕적 율법(moral law)이 폐지되었다는 증거로 사용함으로 이 두 율법을 혼돈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 두 제도 사이의 차이는 너무나 뚜렷하고도 명백하다.
이 의식의 제도는 그리스도, 즉 그분의 희생과 그분의 제사장 직분을 가리키는 상징들로 구성되었다.
이 의문의 율법은 그 희생 제도와 규례(規例-ordinance)와 함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형이 실물을 만날 때까지 히브리 사람들에 의하여 이행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면 모든 희생 제물들을 바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골 2:14)신 율법이다.
성소의 엄숙한 봉사는 각 세대를 통하여 나타나야 할 장엄한 진리를 예표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와 함께 올라가는 향연은 죄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가납하실 수 있게 해주는 그분의 의를 나타낸다.
제단 위에 드린 피가 흐르는 희생 제물은 오실 구세주를 증거 하였으며 지성소의 세퀴나의 영광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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