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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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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최초의 전쟁의 역사가 하늘에서 시작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계시록 12장 7절의 말씀이다.
곧 미가엘(예수님)과 그의 사자들이 용(사단)과 또한 그의 사자들과의 싸움이었다.
이 성경에 기록된 전쟁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점을 버릴 수 없다.
싸움이란 쌍방의 힘이 비슷할 때에 가능하며 만약 어느 한 쪽의 힘이 일방적이라면 그것은 싸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실례를 들어보자, 20대의 건장한 청년과 5,6세의 어린아이들과의 싸움이 성립되겠는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에 대하여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는 창조주요 사단(용)은 피조물이다.
창조주는 전능하신분이시며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다.
그러므로 전능하시고 창조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말씀으로 사단의 존재를 존속시킬 수도 있고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없이할 수도 있으시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가엘(예수님)과 용(사단)과의 싸움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늘에서 있었던 전쟁은 물리적인 힘의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힘의 전쟁이었다면 예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사단의 존재를 없이하셨을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서 일어났던 전쟁은 어떤 전쟁인가?
이사야 14장 12절에서 14절까지를 읽어보면 사단이 먼저 전쟁을 일으킨 사실과 그의 동기와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사단이 전쟁을 일으킨 동기는 피조물인 사단이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 되기 위해서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도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조물인 사단이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등 되기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사단은 그로부터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기에 이미 신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사단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단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등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단 자신이 더욱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사단이 하나님과 동등 되고자 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등 될 수 있으며 그의 시도는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점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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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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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며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것을(율법) 변경해야 된다고 증명하려 하였다 ”
부조와 선지자 상권 73
화잇 선지자는 사단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반역했음을 말씀하셨다.
왜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트집을 잡았는가?
사단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논란을 벌인 이유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사단이 하나님과 동등 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에 트집을 잡음으로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에 결함이 있어서 변경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단이 주장한대로 하나님의 율법에 결함이 발견되어 변경하고 고쳐진다면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 동등됨이 불가능하지만 그의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격자 (피조물)들로부터 하나님과 동등한 존경과 영광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의 말씀이 이와 같은 내용을 지지해 주고 있다.
“법왕권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킴으로써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와 같이 변경된 율법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준수하는 자는 그 율법을 변경시킨 자에게 최상의 영광을 돌리는 셈이다. ”(쟁투, 446)
법왕권은 일개의 인간이 하나님과 동등권을 행사하고 하나님의 권위보다 자신의 권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곧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키므로 가능했다는 말이다.
이 방법은 일찌기 하늘에서 사단이 시도하였던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의 전쟁은 무력과 힘의 대결이 아닌 “율법 전쟁”이었음을 알게 된다.
물리적인 힘의 전쟁이었다면 사단은 그리스도와 적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율법에 결함이 있다는 사단의 주장은 무력과 힘으로 진압시킬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시며 그럴 수도 없으시다.
“이것은 힘으로는 할 수 없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과는 배치된다.
하나님은 사랑의 봉사만을 원하시는데 사랑은 명령으로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힘이나 권위로 얻을 수 없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진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성이 사단의 품성과 대조되어 드러나야 한다.”(소망,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에 결함이 있다는 사단의 기만이 폭로되고 거짓으로 증명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며 그 때까지 사단은 생존하여야 한다.
사단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율법에 결함이 있다는 증거가 필요했으며 그와 같은 증거를 얻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와 같이 하늘의 전쟁은 율법에 결함이 있는지 아니면 완전한 율법인지 하는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토대로 하여 승자를 가리는 법적싸움, 곧 율법 전쟁이었다.
법적 싸움에는 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하여 싸울 수도 있고 또한 천하장사와도 싸워서 이길 수 있다.
하늘에 있었던 전쟁은 바로 이와 같은 법적인 전쟁이었다. 만약 하나님의 율법이 사단의 주장대로 결함이 있다면
사단은 승리하였을 것이요 그는 하나님과 대등한 영광을 누리는 존재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에는 결함이 없었고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이 결함이 있다는 증거를 찾는 일에 사단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천사들의 삼분지 일의 지지와 동의를 얻는데 사단은 성공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계 12:7-9)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계 12:4)
그러나 다수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하늘에서의 율법 전쟁은 사단의 패배로 끝난 것이다.
하늘에서의 싸움에서 패배한 사단은 이 땅으로 쫓겨 내려왔다.
사단은 하늘에서 모든 천사들을 속이는 일에는 실패하였었으나 이 땅에 갓 태어난 인류의 조상을 속이는데 그는 성공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시작된 율법 전쟁은 이제 이 땅에서 새로운 국면 가운데 연속되게 되었다.
역시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싸움이요 '진리'와 '오류'와의 싸움이요
선과 악의 싸움이 바로 하늘전쟁의 연속이요 율법전쟁인 것이다. 다음의 말씀을 읽어보자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을 경멸하기 위하여 성경의 교리를 왜곡시켰다.
그리하여 성경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에 오류를 혼합시켰다.
진리와 오류와의 마지막 큰 싸움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마지막 싸움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이 싸움, 곧 사람의 율법과 여호와의 계명간의 싸움, 성경에 기초를 둔 종교와 우화와 유전에 기초를 둔 종교와의 싸움에 참가하고 있다.”(쟁투, 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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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사단의 기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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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하늘에서 율법에 관하여 반역을 일으키고 율법을 전복하여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게 영광과 존귀를 누리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하늘에서 성공 할 수 없었고 패배로 끝났으나 계속하여
그는 이 땅에서 자신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율법에 트집을 잡고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단이 끈질기게 주장한 다음의 말씀에 유의하여 보자.
○율법 무용론
“그는 하늘의 존재자들을 다스리는 율법에 관하여 의심을 심어 주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세계들의 거민들에게는 율법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천사들은 더 높은 존재자들이므로 그와 같은 속박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의 지혜가 충분한 안내자가 되기 때문이다' 라고 암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는 존재자들이 아니며, 그들의 모든 생각이 거룩하며,
하나님 자신이 죄를 범하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부조, 37)
“루스벨은 하나님 면전에 있는 자기 위치를 떠나 천사들 사이에 불평의 정신을 퍼뜨리고자 나갔다.
그는 얼마동안 자기의 참 목적을 감추고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은밀한 방법으로 활동했다.
그는 하늘 거민들을 통제하는 법칙이 필요 없는 구속을 과하는 것이라고 암시함으로써 거기에 대한 불만을 자극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천사들의 본성은 성결하므로 그들은 자기 자신의 의지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쟁투, 495)
◎사단의 기만
하나님의 율법은 하늘나라의 정부의 기초가 된다.
그런데 율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 정부 자체를 전복하려는 것은 사단의 계획이었다.
“사랑의 율법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이므로 모든 지성적 존재들의 행복은 그들이 이 의의 대원칙과 완전히 일치함에 달려 있다.”(부조, 34)
○하나님의 율법에 결함이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완전히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정부의 안정을 위해 하늘의 질서와 율법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부조, 38)
“그가 하나님의 정부의 율법과 질서를 변개코자 했을 때, 그는 하늘에서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나타냈다.”(쟁투, 498)
◎사단의 기만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이요 마음이시다. 그러므로 율법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은 하나님의 품성에 결함이 있다는 말이 된다. 이 얼마나 무서운 사단의 기만인가?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 자신만큼 신성하다. 이것은 그분의 뜻의 계시요, 그분의 품성의 사본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표현이다.
생물이나 무생물을 막론하고 모든 것 곧 천지 만물의 조화는 창조주의 율법에 완전히 순응하는 데 달려있다”(부조, 52)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자신처럼 거룩하므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만이 범법을 속죄할 수 있었다. ”(부조, 63)
“율법은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이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이면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된다.”(소망, 308)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표현인 것과 또한 그들이 율법의 원칙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의 심령에 새겨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였다. ”(소망, 69)
○하나님의 율법은 지킬 수 없다
“대쟁투의 초기에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으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는 죄인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모든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만일 하나님이 죄의 형벌을 면제해 준다면 그분은 진리와 공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사단은 주장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분의 뜻을 대항할 때 사단은 기뻐 날뛴다. ”(소망, 761)
“사단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형상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완전한 순종을 통해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될 때 하나님의 모든 법도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실물, 314)
◎사단의 기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단의 주장은 하나님의 품성을 완전히 그릇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지킬 수 없는 율법을 만드신후 지키라고 하셨다면 어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단의 말이 진실이라면 하나님은 무자비한 분이시오 폭군일 뿐이다.
왜냐하면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드시고 지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거짓말에 속았는가를 생각해 보라.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은 온전히 지키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는 많은 교회들 까지도 그렇게 가르치고 주장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는다.
이 얼마나 무서운 사단의 기만인가 ?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 의해 순종될 수 없는 계명은 하나도 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율법은 불합리하거나 이기적인 제한을 인정하지 않는다.”(소망, 204)
“ 예수께서 순종하신 것과 같이 율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롬 7:12).
반면에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모든 사람들은 율법이 의롭지 못하며 순종할 수가 없다는 사단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 그들은 큰 원수 마귀의 기만을 후원하고 하나님께 욕을 돌린다.
그들은 최초에 하나님의 율법을 반역한 악한 마귀의 자녀들이다. ”(소망, 309)
“의와 공평이 보좌의 기초라”(시 97:1; 시 89:14).
“하나님의 율법은 바로 그 본질상으로 불변이다. 그것은 율법의 창시자이신 하나님의 뜻과 품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므로 그분의 율법도 사랑이다. 율법의 두 가지 큰 원칙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에게 대한 사랑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롬 13:10)다. 하나님의 품성은 의며 진리이다. 그의 율법의 본질도 마찬가지이다.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시 119:142, 172)니이다고 말한다.
또한 사도 바울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의 표현이므로 그 창시자와 같이 영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쟁투, 4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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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사단의 증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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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인 싸움에는 증거가 필요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변경되지 않는 한 지킬 수 없는 율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사단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어야하며
만약 사단은 자신의 주장을 증거 해줄 증거를 갖지 않는다면 그의 주장은 법적인 효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음의 말씀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암시하여 주고 있다.
“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며,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하여 그것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써왔다.
율법을 공격함으로 그는 그 율법의 제정자의 권위를 뒤집어엎으려고 하였다. 그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율례에 결함이 있어
변경해야 되는지 혹은 완전하여 변할 수 없는 것인지가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 ”(부조, 69)
사단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증거가 필요했다. 하늘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한 사단이 이 땅으로 쫓겨났을 때
이 땅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은 행복한 부부 아담과 하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의 행복스러운 모습에서 사단은 영원히 잃어버린 자신의 행복을 생각하며 시기와 질투,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찼다.
사단은 이 행복한 부부를 자신의 계획에 동참시키고자 계획하였다.
슬프게도 아담은 너무나 쉽게 사단에게 굴복하였고 온 하늘에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반면에 사단은 아담의 범죄를 인하여 기뻐 날뛰었다.
“하와에 대한 그의 사랑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그는 심한 절망 가운데서 하와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과일을 받아서 재빨리 먹었다. 사단은 이 광경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하늘에서 반역했고 그 일에 그를 따르고 사랑하는 동조자들을 얻었다. ”(초기, 148)
사단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에 동조자를 얻었으니 곧 아담이었다.
사단은 동조자를 얻은 즉시 하늘로 올라가 아담의 범죄를 들어서 하나님의 율법은 결함이 있고 지켜질 수 없는 율법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음의 말씀을 읽어보라.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불공평하고 순종할 수 없다는 증거로써 아담의 범죄를 가리켜 왔었다.”(소망, 117)
슬프게도 아담은 범죄 하므로 사단의 증인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아담이 범죄한 것이다.
아담의 범죄는 하늘을 매우 난처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인 율법의 속성은 '자비'와 '공의'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단은 주장하기를 '자비'와 '공의'가 공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쟁투의 초기에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으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는 죄인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소망, 761)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공의와 자비가 공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율법이 요구하는 '공의'는 무엇인가? 곧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이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율법은 아담이 죽음으로써만 충족될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이 죽음으로 율법의 공의는 충족되지만 범죄한 영혼이 죽음으로써 끝난다면
자비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비는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공의를 무너뜨리지 않고 아담을 구원해야 할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피조물들의 지혜로서는 불가능한 사실이며 사단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율법은 이제 변경될 수밖에 없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하고 기뻐하였다.
공의를 세우면 자비가 무너지고 자비를 세우면 공의가 무너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품성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제하지 않고 ‥‥ 보응하리라.'(출 34:6,7). 하나님의 품성은 곧 공의와 자비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율법은 시험을 당하였다.
하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율법을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버지와 아들과의 의논이 있었다.
율법의 속성인 '자비와 공의' 그 어느 한 쪽도 무너뜨리지 않고 모두 세워야 한다.
아담의 죄는 분명 형벌을 받아야 하며 동시에아담은 구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이를 위한 의논을 성경에는 '평화의 의논'이라고 말한다(슥 6:13참조).
“타락한 인류를 위한 신비스런 의논-'평화의 의논'(슥 6:13)은 오래 계속되었다.”(부조, 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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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의논 - 복음 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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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었던 “평화의 의논” 결과,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었던 비밀”이 바야흐로 발표되었다(골 1:26).
“네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오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는 선언이다(창 3:15).
이 선언을 “복음 선언”이라고 말한다. 범죄한 인류를 대신하여 “여자의 후손”, 곧 창조주이시요 율법의 제정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된다는 선언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경륜을 천사들 앞에서 공개하셨을 때에 천사들은 기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구원은 그들의 사랑하는 사령관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애를 필연적으로 요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슬픔과 놀라움으로 천사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당신께서 어떻게 하늘의 순결과 평화, 그 기쁨과 영광 및 불사의 생명을 떠나 내려오셔서
지상의 타락과 접촉하시고 세상의 슬픔과 수치와 죽음을 견디셔야만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그분은 죄인과 죄의 형벌 사이에 서실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일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그분은 하늘의 왕의 높은 지위를 버리시고 자신을 낮추어 사람으로 지상에 나타나셔서 사람이 견뎌야 할 각종 슬픔과 유혹을 친히 경험하실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분께서 시험 받게 될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게 되기 위하여 필요하였다(히 2:18).
교사로서의 그분의 사명이 마치게 될 때에 그분은 악인들의 손에 넘겨지고 사단이 그들을 충동하여 끼치는 모든 모욕과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그분은 가장 잔인한 죽음을 당하시고 하늘과 땅 사이에 범죄한 죄인으로 들림을 받아야 하였다.
그분은 천사들이 차마 볼 수 없어서 얼굴을 가릴 정도로 무서운 고통의 긴 시간을 견뎌내셔야 하였다.
그분은 자기가 져야 할 온 세계의 죄의 짐 곧 율법을 범한 죄책을 지심과 동시에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인한 영혼의 고뇌도 견디셔야 하였다. ”(부조, 64)
하나님의 아들이 범죄한 아담(인류)을 대신하여 죽으신다는 선고가 발표되었을 때 사단은 놀랐다.
창조주이시요 천하만국을 통치하시는 조물주께서 일개 작은 유성의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죽으신다는 사실을 사단은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는 “창세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셨다(계 13:8 구역). 인류가 범죄 하자마자 이 비밀은 공개되고 나타난바 된 것이었다.
이 비밀은 모든 피조물과 사단도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이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충족된 곳이며 자비와 공의가 만난 곳이다.
천사도 감당할 수 없고 그 어떤 무죄한 우주의 거민들도 감당할 수 없는 오직 창조주께서만이 감당할 수 있는 비밀한 것이 공개 되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불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셨다.
아담은 바로 이와 같은 불변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선고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신 분만이 아담의 죽음을 대신 죽을 수 있으며 또한 그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갈보리산위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공의(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가 충족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자비는 아담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짓의 아비요 참소자인 사단도 하나님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구속의 경륜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조금도 하자가 없는 완전한 구원의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오! 구속의 오묘함이여! 그분을 사랑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여!
'지식에 넘치는' 그 사랑의 깊이를 누가 알 수 있으리요!
영원한 세월을 통하여 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오묘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불후의 지성들은 경탄하고 숭경해 마지않을 것이다. ”(부조, 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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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동역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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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선악과를 먹는 결과가 무엇인지 알았다.
“먹는 날에는 정녕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선고를 생각할 때 그는 하와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생각하고 그 과실을 급히 먹어 치웠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고 죽음으로서 자신의 죄 값을 담당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범죄 이후에 별다른 죄책감이나 하나님께 대한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아담과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자신의 생명이 죽으므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죄 짓는 일에 담대하며 또한 죄의식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죽음 자체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상들은 모두가 사단으로부터 기만당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담은 철저하게 사단으로부터 기만당하였고 아담의 생각은 사단의 사상과 일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이 범죄 한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시어 아담을 부르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14)
아담이 대답하기를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서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더러 먹지 말라고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먹었느냐?”
아담이 대답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여자가 실과를 줌으로 먹었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하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그런 일을 하였느냐?”
하와가 대답하기를 “뱀이 나를 꾀므로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와 같은 아담과 하와의 말들을 관찰하여 보면 그들은 완전히 사단의 동역자가 되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사단은 자신의 번역을 하나님의 율법의 결함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아담과 하와도 똑같은 사단의 정신으로 연합되었음을 보게 된다.
아담은 자신의 죄를 하와에게 하와는 자신의 죄를 뱀에게 전가시켰다. 그러면 뱀은 누가 만드셨는가?
뱀은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그러므로 죄는 곧 뱀을 만드신 하나님이 책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범죄의 원인과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 있었다는 말이다.
율법의 결함이 있다는 사단의 주장과 너무도 동일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사단이 아담을 자신의 증인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아담은 그의 죄를 부인하거나 변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참회의 태도를 나타내는 대신에 그는 그의 아내에게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 자신에게 죄를 씌우려고 노력하였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에 대한 사랑에서 고의로 하나님의 승인과 낙원에 있는 자기의 집과 영원한 기쁨의 생활을 포기하기로 선택했었던 그는 범죄한 지금에는
그의 아내와 심지어 창조주 자신에게까지 범죄의 책임을 씌우려고 하였다. 죄악의 세력은 그처럼 무서운 것이다. ”(부조,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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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의 경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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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는 아담을 꾸짖지 않으시고
선악의 대쟁투와 구속의 경륜을 보여주었다. 죄로 인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있었던 아담은 죽음으로 자기의 죄를 자신이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처럼 죄로 인해 돌처럼 굳어진 마음을 가진 아담에게 주님께서는 구속의 경륜을 말씀하시며 아담을 대신하여 당신이 죽을 것을 제의 하셨다.
“하늘의 천사들은 우리의 첫 부모에게 저들의 구원을 위하여 고안된 경륜을 더 완전하게 밝히었다.
아담과 그의 반려자는 그들의 죄가 비록 크지만 사단의 지배를 받도록 버림을 받지 않으리라는 보증을 받았다.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의 생명으로 그들의 죄악을 속죄하시겠다고 제의하셨다.”(부조, 66)
아담의 죄는 아담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죄로 인해 아담자신은 죽으면 그만일는지 모르나
사단은 아담의 범죄를 이용하여 영원토록 하나님의 율법의 결함을 주장할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아담은 알지 못했던 아담은 드디어 자신의 범죄는 자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만이 해결된다는 사실로 인하여 아담은 두려움에 압도당했다.
자신의 범죄 행위는 곧 창조주의 죽음을 초래한 것이었기에 그 죄는 온 우주보다
더 큰 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비로소 용서받을 수 없는 흉악한 죄인임을 알게 된다.
아담은 말했다. 자신의 죄는 자신이 죽음으로 충분하지 왜 그리스도가 죽으셔야 하는가? 라고 부르짖었다.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요구된 희생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한 특성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저들은 전에 결코 본 일이 없는 죄과와 그것의 비참한 결과를 보았다.
그들은 후회와 괴로움 가운데서 그 형벌이, 그분의 사랑이 그들의 모든 즐거움의 근원이 되었었던 분에게
내리지 말고 차라리 그들과 그들의 자손에게 내리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부조, 66)
아담은 자신의 기쁨이 되셨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죄로 인해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울면서 말했다.
‘당신이 죽지 않고 나와 나의 자손이 죽으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철회시킬 수 없겠는가’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이미 범죄는 이루어졌고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죄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아담은 알게 되었다.
“구속의 경륜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광범위하고 깊은 목적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만을 위하여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오신 것은 단순히 이 작은 세계의 거민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마땅히 생각해야 할대로 생각하게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시기 위해서였다. …
사단의 반역을 처리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 정당하심을 온 우주 앞에 옹호할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영원 불변성을 확립할 것이며 죄의 본질과 결과들을 나타낼 것이었다. ”(부조, 68)
하나님과 사단과의 율법 전쟁은 온 우주의 관심사 이며 아담의 범죄는 사단의 주장을 옹호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정부를 잠시 난처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의 경륜은 사람을 구속하는 이상의 더 넓고 깊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은 완전하며 결코 결함이 없다는 증거가 온 우주에 나타나고 증명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의 온전함을 증거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한 인간의 구원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범죄로 말미암아
오해받게 된 하나님의 율법, 곧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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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혀 주신 의(의) 가죽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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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아담을 절망 가운데 버려둘 수 없으셨다.
아담이 받아야 할 고통과 사망(공의)을 그리스도께서 받으심으로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시고자 하셨다. 이제 아담은 더 이상 자신의 죄에 대하여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할 뿐이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장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계시로 보여주셨다.
그의 후손들의 타락과 노아 홍수, 그리고 이 땅에 육체를 가지시고 태어나시는 초림의 그리스도, 급기야 자신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높이 달려 돌아가시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아담은 보았다.
“그리하여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선고를 내리신 때로부터 홍수 때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초림까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중대한 사건들이 아담에게 계시되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전 세계를 구원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회개와 순종의 생애를 택하지 않고
죄의 생애를 택할 것이 아담에게 보여진바 되었다.”(부조, 67)
“아담에게 있어서 첫 희생 제사는 가장 고통스러운 의식이었다. 그의 손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생명을 취하기 위해 들려져야만 하였다.
그는 이 때 죽음을 처음으로 목도하였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하였었더라면 사람이나 짐승이 죽는 일이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무죄한 동물을 희생 제물로 죽이면서 그는 자기의 죄가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떨었다.
이 장면을 보고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밖에는 속죄할 수 없는 그의 죄의 중함을 더욱 깊고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범죄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이처럼 놀라운 속전(贖錢)을 지불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선하심에 경탄하였다. ”(부조, 68)
아담은 한 마리의 어린양을 끌어와야 했고 그는 그 사랑스런 양의 목을 칼로 찔러야 하였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어린양을 보면서 자신의 죄에 대하여 말할 수없는 후회와 통회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 의하여 죽음을 당한 어린양의 가죽을 벗겨 아담에게 옷을 지어 입혀 주었다.
가시덩굴과 추위에 견딜 수 있는 가죽옷을 지어 주신 것이다.
이것이 곧‘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아담에게 무슨 공로가 있었는가? 그에게는 아무 공로가 없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용서받을 수없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독생자가 죽으실 것을 믿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죄 없는 어린양을 죽였던 것이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는 복음 선언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인생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은 인생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오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아담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을 받을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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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선악의 대쟁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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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있었던 그리스도와 사단과의 율법 전쟁은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났다.
사단은 하늘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하였으며 이 땅으로 쫓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는 아담을 굴복시킴으로 있을 곳을 얻게 되었고 그는 이제 인간 대리자들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며 이 땅을 영원히 자신의 왕국을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내사’ 아담이 잃어버렸던 이 땅의 통치권을 돌려받기 위하여 보내실 것이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훼손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야 했고 또한 죄 중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분은 오셔야만 했다.
이제 그분은 신성의 능력과 특권을 버리시고 인성을 취하셔서 이 땅에 오실 것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다는 사실로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죄 없는 인성을 가졌던 아담을 너무도. 쉽게 굴복시켰던 그의 경험으로 보아 만약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인성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다면 그는 쉽게 그리스도를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단은 예수께서 그의 능력과 영광을 버리고 하늘을 떠났을 때 기뻐 날뛰었다.
그 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에덴에서 두 부부를 너무도 쉽게 유혹했던 경험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아들도 그의 악랄한 수법으로 넘어뜨려서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의 왕국을 차지하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초기, 157)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불공평하고 순종할 수 없다는 증거로써 아담의 범죄를 가리켜 왔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성으로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실 것이었다. ”(소망, 117)
왜 예수께서는 신성을 버리시고 육신이 되셔야만 하는가?
사단은 아담의 범죄를 이유삼아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는 증거라고 하였다.
이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수 있는 율법이라는 사실을 증거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분은 신성으로 오셔서 율법을 지키신다면 그것을 결코 완전한 증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분은 반드시 인생들과 같이 되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할 때만 완전한 증거가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때가 차매 ‥‥ 여자에게 태어나시'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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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육신에 속하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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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며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히 2 : 14)
“유혹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 아담은 아무런 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아담은 완전한 장년으로 몸과 마음에 충만한 활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에덴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었고 날마다 하늘의 천사들과 교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단과 상대하시기 위하여 광야에 가셨을 때에는 그렇지 못했다.
4천 년간 인류는 체력과 정신적 능력, 그리고 도덕적 가치가 퇴보되어 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퇴보된 인류의 연약함을 취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만 그는 인류를 쇠퇴의 깊은 구렁에서 구출하실 수 있으셨다.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시험에 정복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처지에 서지 못하셨을 것이며, 아담이 얻지 못한 승리를 얻을 수 없으셨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점으로든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보다 더 혹심한 투쟁을 당한다면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는 온갖 연약성을 지닌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을 가진 인성을 취하셨다.
우리는 그가 당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도 질 것이 없다.”(소망, 117)
우리 주님께서는 아담보다 훨씬 불리한 입장을 취하시어 이 땅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아담이 실패했던 그 점을 만회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며 또한 죄로 말미암아 연약해진 인류의 육체를 가지시고 마귀로부터
모든 시험과 시련에서 승리하시므로 우리 인류들도 죄로부터 승리의 생애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실 것이었다.
그분은 우리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죄에서 구원하시겠다는 말은 곧 우리들의 죄 없는 생애를 살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말이며
죄가 우리의 생애에서 끝날 때 그 목적은 성취되는 것이다. 죄는 곧 불법이다. 죄를 이기고 죄 없는 생애를 산다는 것은 율법을 온전히 순종한다는 말이다.
사단은 인류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사단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시기 위해 먼저 그분 자신이 육체를 가진 인간이 되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해야 할 것이며 그 다음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여 죄 없는 생애를 살 수 있다는 증거가 나올 때,
사단의 기만은 온 천하에 폭로될 것이며 그때에야 비로소 이 우주 안에 죄를 소멸하고 사단을 영원한 불에 심판받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참으로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인생이 되셨음을 믿어야 할 것이며 그분이 순종하여 죄 없는
생애를 사시고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승리의 생애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는 것은 거의 무한한 굴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인류가 4천 년간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진 때에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아담의 모든 자녀들과 같이 유전 법칙이 끼쳐온 결과를 받으셨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예수의 육신의 조상들의 역사 가운데 드러나 있다.
그는 이러한 유전을 지니고 우리의 슬픔과 시험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죄 없는 생애의 모본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소망, 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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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처럼 우리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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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 11:1). 우리가 무엇을 원하며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이 되게 한다고 말씀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바랄 것인가?
그리스도의 죄 없는 생애, 마귀를 이긴 승리의 생애가 곧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믿음은 이와 같은 소원을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죄 없는 생애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며 구속의 경륜을 전혀 알지 못하는 증거이며 사단의 기만에 속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속한 것이요” (요일 4:2)
이 말씀을 볼 때에 우리가 죄 없는 생애로 살 수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셔서 죄 없는 생애를 사셨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죄 없는 생애가 가능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5:30).
그분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분이셨다. 그렇다면 그분은 우리와 같은 위치에 있었음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는 우리 인간이 그 율법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
그는 우리 시조(始祖)의 타락과 거기에 따른 모든 재난의 책임을 조물주에게 지우고 사람들로 하나님을 죄와 고통과 사망의 창시자로 여기도록 만든다.
예수께서는 이런 기만을 폭로시키실 것이었다. 그는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어 순종의 모본을 주실 것이었다.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그는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의 경험을 몸소 체험하셨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
만일 우리가 예수께서 겪지 않으신 어떤 일을 겪어야 한다면 사단은 이 점에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에게 충분하지 못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히 4:15)으셨다.
그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을 겪으셨다. 그는 자유롭게 쓰도록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능력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조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으로서 시험을 대하시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으로써 승리하셨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라고
말씀하신다. … 그의 생애는 우리도 또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수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소망,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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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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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셔서 죄를 이기고 사단의 시험에 승리하셨다.
드디어 지상에서의 그의 생애에 마지막이 가까웠을 때 그분은 이 세상 모든 인류들의 죄를 짊어지셨다.
죄는 너무나 흉악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시라도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실 수밖에 없으셨다.
영감의 말씀은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구주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계셨다.
유월절의 크고 둥근 달은 구름 한 점없는 하늘에서 비치고 있었다. 순례자들의 천막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고요하기만 했다. …
이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붙드시는 임재의 빛을 차단당한 것처럼 보였다. 이제 그분은 범죄자들과 같이 헤아림을 받으셨다.
타락한 인류의 죄짐을 당신이 지셔야만 하였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분이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지셔야만 하였다.
죄가 그분에게 매우 무섭게 보이는 그만큼 그분이 지셔야 할 죄악의 무게는 컸으며,
그분은 이것이 당신을 아버지의 사랑에서 영원히 쫓아내지는 않을까 염려하도록 유혹받았다.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으시고 예수께서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부르짖으셨다.”(소망, 685)
“그분은 죄로 말미암아 아버지에게서 분리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심연(深淵)은 매우 넓고 매우 검고 매우 깊었으므로 그분의 심령은 그 앞에 떨고 있었다.
이 고민을 피하기 위하여 그분은 그의 신성의 능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하였다.
인간으로서 그분은 인간의 죄악의 결과를 감당해야만 하였다. 인간으로서 그분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어야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분이 전에 항상 서시던 바와는 다른 태도로 서셨다. 그분의 고통은 다음과 같은 선지자의 말 가운데 가장 잘 묘사되어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슥 13:7).
죄 많은 인간들의 대속자 그리고 보증인으로서 그리스도는 거룩한 공의 아래서 고통을 받고 계셨다.
그분은 공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셨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의 중보자가 되셨으나 이제 그분은 자신을 위한 중보자를 가지고자 원하셨다.”(소망, 686)
“인간의 영혼을 위해 지불할 값을 깊이 생각하시는 예수님을 보라. 고통 중에 마치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더 멀리 떨어지지 않으시려는 것처럼 차디찬 땅바닥에 엎드리셨다.
찬 밤이슬이 예수님의 극도로 지친 몸 위에 내리나 그분은 그것을 개의치 않으셨다.
그분의 창백한 입술에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하실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고통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그분은 '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덧붙이셨다.”(소망, 687)
우리 모든 인류는 창조주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고통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분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체를 가진 어떤 인생도 경험하지 못한 무서운 시련을 당하셨다.
만약 그분이 우리와 같은 육신이 아닌 신성을 활용하셨다면 무엇 때문에 그 무서운 시련을 받으셨으며 땀방울이 피가 되어 떨어졌을까?
좀더 우리는 그분의 고통을 깊이 생각해 보자.
그분은 육신이셨기에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영감의 말씀을 읽어보자.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백성들에게 넘겨졌다. 그들은 승리의 함성을 울리며 고귀한 구주를 끌고 갔다. 그는 매와 채찍에 맞아 피를 많이 흘리셨다.
고통과 피곤함으로 기운이 진하여져서 실신하시기도 하셨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가 못 박혀야 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셔야 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무게에 눌리어 기절하셨다. 세 번이나 그는 십자가를 멘 채 넘어지셨다.”(초기, 175)
“준비는 완료되었다. 예수를 십자가 위에 눕힌 다음 망치와 못을 가져왔다.
제자들의 마음은 심히 떨렸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구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은 마리아를 그 장면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큰 못이 그의 부드러운 손과 발의 뼈와 근육을 뚫고 들어가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였다.
예수께서 불평은 하시지 아니하셨으나 고통 중에 신음하셨다. 그분의 얼굴은 창백하였고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고 기뻐 날뛰었다. ”(초기, 176)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뒤 그 십자가를 준비된 구덩이에 힘껏 내리꽂았다.
그 때 그의 연한 살은 찢어졌고 그로 인해 예수께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셨다.
예수님의 죽음을 할 수 있는 대로 욕되게 하기 위하여 두 강도를 그분의 양쪽에 각각 매달았다.
강도들은 심히 저항했으나 군인들이 그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팔을 뒤로 제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순순히 응하셨다. 아무도 강제로 그의 팔을 제칠 필요가 없었다.
강도들이 그들의 사형 집행자들을 욕하고 저주할 때 구주께서는 고통중에서도 그의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리스도께서 견디신 것은 육체적인 고통만은 아니었다. 그분 위에 온 세상의 죄가 놓여졌던 것이다.”(초기, 176)
“예수께서 고통 가운데서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신 포도주를 해융에 적시어 그분께 드렸다.
그는 그것을 맛보시고 거절하셨다. 천사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사령관의 고통을 지켜보다가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서 그들의 얼굴을 가리웠다. 태양도 이 무서운 광경을 비추기를 거절하였다.
예수께서는 큰소리로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셨으며 이 소리는 살인자들의 마음속에 공포감을 일으켰다.
그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다. 땅은 흔들리고 바위가 부서졌다. 칠흑 같은 암흑이 지면을 덮었다.
예수께서 운명하심으로 제자들의 마지막 소망은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고통과 죽음의 장면을
목격한 많은 추종자들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사단은 전처럼 기뻐하지 않았다.”(초기, 177-178)
“표면상으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으신 그리스도께서는 무서운 암흑 중에서 인간이 마셔야 할 고통의 잔을 남김없이 마셨다.
이 무서운 시간 동안 그분은 이제까지 그분에게 주셨던 아버지의 가납하심의 증거에 의지하였다.
그분은 아버지의 품성을 잘 알고 계셨으며 그분의 공의와 자비와 크신 사랑을 이해하고 계셨다.
그분은 자기가 즐겨 순종하던 그분을 믿음으로 의지하셨다. 그분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아버지의 은총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은 없어졌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자가 되셨다.”(소망, 756)
십자가의 고통 중에서 신음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그는 연약한 육신의 몸으로 사단을 이기셨다.
사단은 그분에게 어느 한 가지도 승리할 수 없었다. 그분은 육신으로 죄 없는 생애를 사셨으며 승리하셨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들에게 복음이 된다. 그분의 생애와 그분의 승리는 곧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죽으심은 그분의 승리이자 또한 나의 승리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단은 기뻐할 수없는 것은 그의 죽으심은 사단의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이 땅에 오면 그는 그리스도를 유혹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분은 생각으로도 범죄 하지 않으셨으며 나아가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도 죄 없는 생애를 가능하게 하셨던 것이다.
사단은 하늘에서의 패배에 이어서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사단이 그리스도를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끝나버린 것이다. 신성을 버린 예수님, 연약한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을 그는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완전한 증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이 성취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이루려 오신 사업을 완수할 때까지는 숨을 거두지 않으시다가 임종을 하시면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부르짖으셨다.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그분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 그로 승리하게 했다.
그분은 정복자로서 당신의 깃발을 영원한 고지 위에 꽂으셨다. 천사들이 기뻐하지 않았겠는가?
온 하늘은 구주의 승리에 개가를 불렀다. 사단은 패배했다. 그는 자기의 나라를 잃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소망, 758)
온 하늘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거민들은 그리스도와 사단과의 대쟁투를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다는 사단의 기만은 그리스도의 죄 없는 생애로 말미암아 여지없이 폭로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자비를 손상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죄는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율법은 의로우며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율법에 대한 사단의 비난은 반박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그분의 사랑의 명백한 증거를 주셨다.”(소망, 762)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우주의 죄 없는 거민들이나 천사들까지라도 사단의 기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까지는 사단의 성격이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었다.
대반역자는 매우 교묘한 속임수로 자기 자신을 가리웠기 때문에 거룩한 존재들도 그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의 반역의 성격을 분명히 알지 못했다.”(소망, 758)
“사단은 자기의 가면이 벗겨진 것을 알았다. 그의 행적은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과 하늘 온 우주 앞에 공개되었다.
그는 살인자임이 판명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흘림으로써 그는 하늘 존재들의 동정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때부터 그의 사업은 제한을 받았다.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던지 간에 그는 더 이상 하늘 궁정에서 내려오는 천사들을 기다렸다가 그들 앞에 죄로 인해 검고 불결해진 옷을 입고 있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고소할 수 없었다. 사단과 하늘 세계 사이에 연결되어 있던 마지막 동정의 고리가 끊어졌다.”(소망, 761)
사단은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싸웠으나, 결국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그는 완전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를 직접 대항해서 싸울 기회는 영원히 끝나 버린 것이다.
하늘에서의 패배와 또한 이 땅에서의 패배로 인해 아담으로부터 탈취한 이 지구의 통치권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반역한 후 이 땅으로 추방당하였으나 사단은 아담의 범죄로
이 지구성의 대표의 자격을 탈취하여 하늘을 왕래하며 형제들을 밤낮 참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이제 사단은 하늘에 올라가는 자격도 박탈당하고 말았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 1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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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새로운 기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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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단의 변장을 벗겨졌다.
모든 우주 거민과 천사들은 사단의 모든 기만과 본질을 알았으나, 아직도 인류들은 사단의 기만과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영광의 왕이시며 메시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단은 또 다른 기만으로 인류를 속이려고 하였다.
또 다른 기만도 역시 율법에 관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은 결함이 있어 순종할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이제는 하나님의 율법의 속성인 자비가 공의를 파괴시켰다는 기만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의무에서 해방되었고 결함이 있는 율법은 어떤 세속은 제거되고 변경되었다는 것이 사단의 또 다른 기만이다.
십자가는 공의를 파괴시킨 것이 아니라 더욱 완전하게 하셨으나 공의를 굳게 확립하신 바로 그 십자가를 사단은 반대로 이용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자비를 손상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죄는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율법은 의로우며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율법에 대한 사단의 비난은 반박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그분의 사랑의 명백한 증거를 주셨다.
그러자 사단은 또 다른 속임수를 내놓을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공의를 파괴시켰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시켰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만일 율법을 변경시키거나 폐기시킬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 ”(소망, 762)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확립하신 바로 그 방법을 사단은 율법을 파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놓고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의 육성으로 말씀하신 율법에 결함이 있어서 어떤 특정 부분이 제거되었다고
사단은 이제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그가 세상에 가져올 마지막 대 기만이 될 것이다. ”(소망, 763)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사단의 적의는 집요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을 한 세목만이라도 제거하거나 변경시킨다면 그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 중 한 계율만 지키지 못하도록 인류를 속일 수 있다면 모든 인류는 자신의 권세 아래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하여 사단은 새로운 기만을 계획한 것이다. 곧 '때와 법을 변개코자'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사단의 새로운 기만은 온 세상에 편만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이 원하였던 바이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기만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사단은 이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기만하는 일에 실패하자 이제는 강제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고 자신이 만든 법을 지키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
사단은 자신의 모든 지혜와 초인간적인 능력을 행사하여 모든 인류를 속일 것이지만
이 기만에 빠지지 않고 사단의 세력을 대항하여 싸우며 사단의 기만을 폭로하여야 할 백성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사단의 기만을 폭로하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그분의 두 번의 승리는 완전한 승리이기에 또 다른 증거가 그분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당신이 시작하신 구속 사업을 마치시기 위하여 이 땅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후 승천 하셨다.
그분의 사업은 이제 이 땅에 있는 당신의 대리자 곧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과 하나님의 율법의 온전함을 증거하게하실 것이었다.
그 일을 위하여 그분은 친히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셨고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로 열두 기초석이 되게 하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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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선악의 대쟁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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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이제 마지막 교회의 남은 무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영광스럽게 마치실 것이며
이들을 통하여 당신의 율법은 순종할 수 있으며 그분의 율법은 불변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실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심판하여 영원한 불 못에 던지실 것이다.
“대쟁투가 끝나게 될 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구속의 경륜이 완성되며 하나님의 성품은 창조함을 받은 모든 지적 존재자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은 완전하고 영원 불변하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 그 때에 죄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고 사단은 그의 성격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죄가 근절됨으로 인하여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저희 마음속에 당신의 율법이 있는
우주의 거민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옹호되고 그분의 영광이 확립될 것이다.”(소망, 764)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었던 사단의 무서운 분노는 이제 교회를 향하여대적해 올 것이다.
하늘에서와 이 땅에서 그리스도에게 패배하므로 더 이상 사단은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회를 대적하여 싸우기 위해 사단은 준비하고 있다.
교회와 사단과의 싸움은 선악의 대쟁투의 마지막이 될 것이며 이 싸움에서의 승리자가 곧 영원한 승리자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회가 패배한다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가 패배하는 것이요,
사단이 이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그것은 곧 자멸을 초래하여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질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영광스럽게 승리할 것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교회는 조만간 고난의 때를 보게 될 것이다. 교회는 베옷을 입고 예언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교회가 이단과 핍박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비록 불신자들과 배교자들을 대항하여
싸우지 않을 수 없을지라도, 교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있다.
주께서는 강철같이 진실하고 화강암같이 단단한 믿음을 가진 한 백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그분의 준비의 날에 특별하고 영광스런 사업을 이루기 위한 그분의 기구가 되어야 한다.”(4증언, 594-595)
“교회는 그리스도의 의의 갑옷을 입고 최후의 투쟁에 들어가야 한다.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아 6:10) 교회는 온 세상에 나아가 정복하고 정복해야 한다.
교회가 최후의 구원을 얻기 직전이 악의 세력과 교회에 투쟁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시간이 될 것이다.”(선지, 725)
“이 땅의 교회는 극기와 희생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리하면 사업은 추진되고, 가장 영광스런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9증언 59
“지금 교회는 전투 중에 있다. 우리는 지금 거의 우상숭배에 빠져서 밤중과 같은 흑암 속에 있는 세상과 마주 대하고 있다.
그러나 싸움이 끝나고 승리를 거둘 날이 오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 때에는 민족들이 하늘의 법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감사와 찬송의 두루마기, 곧 그리스도 의의 옷을 입고, 행복하고 연합된 하나님의 가족이 될 것이다.”-8증언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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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날은 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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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대 쟁투는 마지막 라오디게아시대의 남은 무리들에 의하여 끝날 것이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남은 무리들을 통하여 영광스런 승리를 거둘 것이며 그 일을 위하여 당신의 남은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아 6:10)와 같은 교회를 소유하실 것이며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7)
“마침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최종적이요 완전하게 나타나서 세상을 그 영광으로 환하게 빛나게 할 것이다. ”(2보감, 356)
“교회가 세상에 대한 충성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는다면 교회 앞에는 빛나고 영광스러운 날이 동틀 것이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굳게 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영원한 미덕, 많은 세대의 기쁨으로 삼으실 것이다. …
영원을 내다보신 그분은 당신의 굴욕을 통하여 용서와 영생을 얻을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보셨다. 그분은 구속받은 자들의 환호성을 들으셨다.
그분은 구속받은 자들이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으셨다.
우리는 장래 즉 복된 하늘에 대한 계시를 받을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손수 그리신 광경인 미래의 영광의 계시들이 나타나 있는데 이 계시들은 당신의 교회에게 귀중하다.
믿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성읍의 문어귀에 서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협력하고 그분을 위하여
고통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 자들에게 주어질 정중한 환영사를 들을 수 있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오라고 하는 말이 들릴 때에 그들은 구속주의 발 앞에 그들의 면류관을 내려놓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부르짖는다(마 25:34; 계 5:12, 13).
거기서 구속받은 자들은 그들을 구주께 인도한 자들에게 인사하고 모두 연합하여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의 길이와 같은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싸움은 끝난다. 환난과 투쟁은 종식된다. 구속받은 자들이, 죽임을 당하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어린양이 승리의 정복자가 되시기에 합당하시도다.
라는 즐거운 노래를 부를 때 승리의 노래가 온 하늘을 진동시킨다.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7:14-17, 21:4).” (행적, 6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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