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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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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에게 가장 복된 소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고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일 것이다.
태초에 아담은 범죄 하는 그날 정녕 죽어야 하였으나 죄 없는 한 마리의 양이 아담을 대신하여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아담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고 구원을 받는다.
이 복음은 말세에 이르러 더욱 완전하게, 더욱 밝은 빛으로 죄인들에게 비치고 있다.
1844년 세 천사의 기별을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진리는 영원한 복음으로 세상에 제시된바 되었으며
1888년에는 더욱 구체화 되고 더욱 아름다운 진리로, 능력과 힘을 가진 복음으로 당신의 교회에 나타난바 되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계 18:1)
가려뽑은 기별 1권, 372. -“여러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기별이 셋째 천사의 기별이냐고 편지로 나에게 물어 왔으며 나는
‘그것은 참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라고 했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0년 4월 1일).”
가려뽑은 기별 1권, 362. -“시련의 시기가 우리에게 임박하였는데 이는 죄를 사유하시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심으로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 땅을 영광으로 환하게 할 천사의 빛의 시작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과 1888년에 제시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동일하다는 심증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심으로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이 이미 시작되었다.’란 말씀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믿음으로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의(품성)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스도의 의가 무엇인가?
곧 죄 있는 육신을 가지시고 생각으로라도 범죄하지 않으시고 완전하신 품성을 계발하신 그분의 품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셋째 천사가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가질 수 있으며 죄 짓지 않는 생애를 살 수 있다는 기별이다.
이것은 ‘큰 외침’으로 전파되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을 것이다. 믿음으로 완전한 생애를 살 수 있다는 증거와 기별이
선포됨이 없이 어찌 완전하신 하나님의 율법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는가? 이 목적을 위해, 계시록 18장 천사는 내려와
‘온 땅을 그의 영광으로 환하게’하기 위하여 1888년부터 그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91.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이 기별은 들리움을 받으신 구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희생 제물에 관한 소식을 세상을 향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보증물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초청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야에서 잃어버렸다.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인격, 공로, 인간 가족들에게 행하신 변함없는 사랑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모든 권세가 그분께 주어졌으므로 그분은 인간들에게 풍성한 은사를 나누어 주시며,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분 자신의 의를 속절없는 인간 대리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파하도록 명하신 기별이다. 이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며, 이 기별은 큰소리로 전파되고, 크나큰 성령의 부어지심이 수반될 것이다.”
1888년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마지막 교회에 보내셨다.
이 말씀 가운데 제시된 중요한 약속과 허락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온 세상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
2.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함
3.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초청함
4. 이 기별은 세상에 전파 하도록 명하신 기별임
5. 이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과 동일하며
6. 크나큰 성령이 부어주심이 수반될 것임
두 사자들을 통하여 허락된 말씀은, 온 세상을 위하여 희생제물이 대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칭의를 얻게 되고 칭의를 얻은 영혼들은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그리스도의 의, 즉 완전하신 품성을 얻으라는 초청의 기별이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기별이며 이 기별이 진실로 셋째 천사의 기별이요, 늦은비 성령이 수반될 기별이었다.
이처럼 소중한 기별을 1888년 마지막 교회에 보내주셨다.
그러나 이 기별은 새로운 기별이 아니라.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야에서 잃어버린 기별이었는데,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었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9. 8. 13.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교리를 그들의 시야에서 잃어 버렸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9. 9. 3. -“우리의 현세와 영원한 복락을 위하여 그렇게도 요긴한
이 주제(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진리를 스스로 이해하는 사람은 백 명 중에 한 사람도 없다.”
오늘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매우 혼란스럽다.
거듭남의 경험이 없는 소위 신학자들과 목사와 지도자들에 의하여 진리는 이론화 되고 형식화 되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복음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의 곧,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품성으로 영혼들을 초청하지 않는 복음은 모두 거짓 복음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이 지금 이와 같은 복음을 시야에서 잃어버리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자들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는 자들은 백 명 중에 한 명도 없다고 하셨다.
가려뽑은 기별 3권, 184. -“왜 우리의 입술은 그리스도의 의의 주제와 세상을 위한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그렇게 침묵하는가?”
리뷰 앤드 헤랄드, 1890년 8월 19일. -“행복은 거룩함과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 결과이다.
하늘에서 성도가 될 사람들은 먼저 지상에서 성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 지구를 떠날 때 우리의 품성을 가지고 갈 것이며
이는 단지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누어진 하늘의 요소들 중 어떤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3기별, 191).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233.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지체하지 말고
등불과 함께 기름을 확보하도록 영혼들에게 간청해야 할 때이다. 그 기름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것은 품성을 대표하며, 품성은 전가될 수 없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품성을 획득할 수 없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의(품성)에 대한 주제에 대하여 이상하리만큼 침묵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지체하지 말고 기름(품성)을 확보하도록 영혼들에게 간청해야 할 시기가 아니겠는가?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품성으로 영혼들을 초청하지 않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가르침은
심판의 날 영혼들로 하여금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나게 할 것이다.
선지자와 왕, 188. -“모든 영혼들에게 시험이 닥쳐 올 시간은 멀지 않았다.…
참 경건은 겉치레만의 경건과 분명히 구별될 것이다. 그 찬란함 때문에 우리들이 감탄해 왔던 많은 별들이 그때에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성소의 장식품으로 꾸몄으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지 않은 사람들은 그 때에 자신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낼 것이다.”
매 영혼들마다 최후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그 때에는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은 확연히 구별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의를 다만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던 영혼들은 그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참된 증인의 권면은 그리스도의 의를 장식이 아닌 우리들의 품성으로 옷 입으라는 초청을 하고 있다.
편지 24, 1892.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보내는 기별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 왔다. 이 기별을 모두 다 취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가 길을 열어주는 곳에는 어느 곳에서나 백성들에게 그 기별을 전하여야 한다.
믿음으로 받은 칭의와 그리스도의 의가 멸망해 가는 세상에 전해져야 할 기별의 주제이다.”(화잇주석, 계 3:15-21).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품성으로 영혼들을 초청하지 않으면서도 의롭다고 주장하며 가르치는 자들은 죄악의 편에서 일하고 있으며 사단을 기쁘게 하고 있다.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236. -“그리스도의 원수는 많이 있는데, 그들은 의롭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지 못했다. 그들은 빛의 천사로 가장하지만 죄의 봉사자들이다.”
복음 사역자, 161.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것은 우리의 공로로 인함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값없는 선물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귀한 생각인가!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 마귀는 사람들이 이 진리를 충분히 받아들이면 자기의 힘이 무력하여질 것을 알므로 이 진리가 명백히 소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품성으로 영혼들을 초청하지 아니하면 율법을 높이는 일은 불가능하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원고 5, 1893.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지 않으면 여호와의 율법을 높이는 일이 불가능하다.”
(화잇주석, 롬 3:31).
시대의 소망, 283. -“유대인들에게 위탁된 제도 중에 안식일만큼 그들과 주변국들을 철저하게 구별시킨 제도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준수로 그들이 당신의 경배자로 일컬어지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은 우상숭배로부터의 그들의 분리와 참 하나님과 연결된 표징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거룩하게 되어야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이 이스라엘에게
내려졌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라고 말씀하셨다(출 20:8, 22:31).
이렇게 되어야만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경배자로 구별(區別)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품성으로 영혼들을 초청하지 아니하면 죄의 도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 나아가려는 자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들의 신임장으로 가져야만 한다.
각 시대의 대쟁투, 483. -“그러나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죄 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들의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74. -“율법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아야 하며 그 의를 우리들의 의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의를 받아들임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행할 수 있는 자격과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
만약 우리들이 하늘 아버지께 나아갈 통로를 찾으려면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들의 신임장으로 가져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 위하여는 매일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아 변화함을 입고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가 될 필요가 있다.
선지자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타락한 바벨론 교회들에게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세상은 구원에 이르는 확실한 복음을 듣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으며 생명력 있는 진리를 찾기 어려운 세대가 되어 버렸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와 같은 마지막 때를 보시고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하셨다.
여러 가지 견해들
말틴 루터를 위시한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이 깨닫고 가르쳤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셋째 천사의 기별이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다른가,
아니면 같은 기별인가? 만약 전혀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셋째 천사의 기별은 16세기부터 전하여 졌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혼란해 한다. 물론 기별이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차이점이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업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오늘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업과 조화를 이루는 일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성소는 뜰과 성소(첫째 칸), 지성소(둘째 칸)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봉사하시는 장소와 위치에 따라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더욱 완전하게
교회에 계시되었다. 중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특히 하늘 성소에 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다.
16세기 말틴 루터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중심교리는 성소 뜰에서 비쳐오는 진리이다.
죄인들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진리가 그 당시에 그들이 깨달은 빛이었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러 J. 웨슬리와 같은 개혁자들이 주장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중심교리는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이 깨달은 칭의 교리의 바탕 위에
성소의 첫째 칸이 간직하고 있는 성화의 진리가 첨가되어‘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의 빛은 더욱 밝아졌다.
드디어 19세기에 이르러 셋째 천사의 기별과 함께 하늘 지성소의 완전함의 진리가 과거의 모든 개혁자들에 의하여
밝혀진 진리와 연합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교회에 완전하게 공개되어 나타났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하늘 성소진리와 합병되어져야 하며 셋째 천사가 가리키는 하늘 지성소와 조화되게 가르쳐져야 한다.
오늘날 백성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의 견해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다.
1) 일반적인 견해
▷ 칭의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과거의 죄에 대하여 완전한 용서를 받게 되며 그 공로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믿는다.
회개와 자복으로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 거듭난다고 믿으며 이것을‘칭의’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순간적인 경험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의 자격이라 믿는다.
▷ 성화 -의롭다함을 받은 영혼은 거룩한 생애, 곧 율법에 대한 순종의 의무를 갖게 되며 천국에서 살기 위한 적합성을 키우기 위한 준비라고 믿는다.
율법에 대한 순종의 동기는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자발적인 순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온전함 -성화는 일평생의 경험이며 율법을 순종하는 생애 가운데 실수할 수 있으며 이러한 죄들은
회개와 자복으로 용서 받을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한 후에 부족한 부분은 그리스도가 채워주심으로 완전함에 이른다.
이와 같은 견해는 대부분의 재림신자들이 믿고 있는 전통적인 견해이며 이론적으로 건전하며 현실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화의 생애 속에 실수할 수 있는 생애가 일평생 지속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부족이 나타나고 그리스도께서 채워주셔서 완전함에 이른다는 생각은
하늘 성소진리와는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셋째 천사는 하늘 성소 중 지성소를 가리키고 있으며 그 곳에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중보하고 계신다.
이제 백성들은 모든 것이 완전한 지성소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2) 새로운 신신학적인 견해
▷ 칭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그 공로에 의하여 믿는 죄인들은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에 이른다고 말한다.
칭의는 과거에 지은 모든 죄의 용서는 물론 미래에 지을 모든 죄들까지 포함하며 완전한 용서와 함께
완전히 의롭다는 선고이며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완전한 자격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하여 믿는 자에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합법적인
선고이므로 구원은 성화와 완전함과 같은 신자들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성화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생애를 살고 율법을 순종해야 하지만, 그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이고 저절로 나타나는 행위이며 생애일 뿐,
이미 얻은 구원과 무관하다는 가르침이다.
▷ 온전함 -성화의 생애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며 구원받은 사람들의 생애에서 나타나는 결과요 열매이다.
거듭난 영혼들도 여전히 죄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으며, 그 이유로는 율법은 우리의 행위뿐만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까지도 정죄하며 비록 죄를 짓지 않았지만, 어떤 환경에 이르러 죄를 지을 가능성까지도 정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칭의로 이루어지며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완전한 구원을 얻었으므로
공연히 구원과 무관한 성화와 완전함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새로운 신신학적 견해는 일반적으로 재림교회에서 가르치는 전통적인 견해에서 비롯된 율법주의적 개념에서 해방시켜주었고 영혼들로 하여금
재림교회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구원의 기쁨과 희열을 누리게 하였다.
그러나 영혼들에게 자유방종의 길을 열어주었고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으로 생각하는 타락한 일반 개신교회들에서 가르쳐지는 신신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재림교회가 16세기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경험을 잃어버리고 다만 복음이 이론과 형식화되어
율법주의적인 성향으로 기울어져, 교회는 라오디게아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다.
새로운 신학은 이와 같이 라오디게아 상태에 빠진 재림교회의 결함을 보충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또 다른 사단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하늘 성소진리를 외면함으로 말미암아 16세기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복음과 ‘진실로 셋째 천사의 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복음과의 차이를 식별하는데 실패하였다.
2,300주야에 정결하게 되는 하늘 성소의 진리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죄의 생애가 끝나고 완전하게 되어야 성취된다는 진리를 간과해 버렸다.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하늘 성소의 진리가 합병되지 못한 결과이다. 그 결과 재림교회의 독특한 진리들을 외면하고 무관심에 빠져
율법의 표준은 낮아지며 성도들의 경건성은 현저하게 떨어져 또 다른 라오디게아교회의 상태로 전락해 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선고가 내릴 때 거룩한 자로 주 앞에 서지 못하고 구원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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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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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와그너와 존스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별이 제시되었을 때에
화잇 선지자는 이것은 참으로 ‘셋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말씀하셨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0년 4월 1일. -“여러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기별이 셋째 천사의 기별이냐고
편지로 나에게 물어 왔으며 나는 ‘그것은 참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라고 했다.”(1기별, 372)
그렇다면 16세기의 말틴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에 의하여 가르쳐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셋째 천사의 기별 속에 함축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는 분명 차이가 있어야 한다. 차이가 없다면,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이미 16세기부터 전해지기 시작하였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진실은 1844년 10월 22일 이후부터 셋째 천사의 기별이 전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 차이점이란, 하늘 성소진리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이 합병 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불법의 사람에 의하여 짓밟힌 복음은 16세기의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에 의하여 회복되기 시작하였는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기별이었다.
이 기별은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의 진리이며 칭의의 기별이었다.
그 이후 많은 종교 개혁자들이 일어나 가르친 기별은 의롭다함을 받고 칭의를 얻은 자들은 성결한 생애를 살아야 한다는 성화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복음과 하나님의 율법이 어떻게 조화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성결의 생애는 칭의를 얻은 자들에게 나타나야 하는 열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웨슬리는 율법과 복음의 완전한 조화를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 예컨대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성결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쟁투, 263)는 사실을 개혁자들은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칭의와 성화의 기별이 합병되었고 의의 기별은 더욱 밝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 성화의 진리는 바로 성소의 첫째 칸에서 비쳐오는 빛이었고 진리였다.
하늘 성소에서 비쳐오는 기별들은 구분은 될지라도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연합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칭의와 성화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가르치는 전통주의적 재림교회의 가르침과 성화를 구원의 조건에서 완전히 배제해버리는 새로운 신신학은 위험한 것이다.
1888년의 기별자들과 화잇 선지자는 칭의와 성화는 구별되는 것일지라도 분리하여 가르치지 않았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원고 21, 1891. -“칭의와 성화 간의 미세한 구별점들을 엄밀히 정의해 보려는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두 용어의 정의에다 자신들의 생각과 사색의 소산을 덧붙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영감의 말씀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하여 정의한 것보다 왜 더 자세히 정의하려 하는가?
마치 영혼의 구원이 이 문제에 대한 그대의 이해 여부에 좌우되기라도 하는 것같이 무엇 때문에 모든 세부사항을 다 풀어내려 하는가?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선상에서 볼 수는 없는 법이다.”(화잇주석, 롬 3:24-28).
1888년 기별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소중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별을 전하셨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91. -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
그것은 보증물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하였다.”
1888년의 기별자인 와그너는 칭의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것은 성화의 개념을 구원의 조건에서 배제시킨 신신학자들의 가르침과는 다르며 칭의와 성화를 엄격하게 구별하여 가르치는
재림교회의 전통주의와도 차이가 있다. 칭의를 율법과 관련을 지었고 순종을 배재시키지 않았다.
영문시조, 1893. 5. 1. - “칭의는 율법과 관련이 있다. 칭의는 의롭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이제 우리는 로마서 2장 13절에서 어떤 자들이 의로운 자들인지를 읽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의로운 사람은 율법을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은 의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것은 단순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행하는 자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칭의보다 더 높은 상태는 없다는 것이 발견될 것이다. …
의를 보전하기 위해서 곧 항상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끊임없이 활용하고 그분께 복종해야 한다. …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이 말씀의 뜻은 우리의 생애로서 율법을 깨트리고 폐하는 대신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율법을 마음에 굳게 세운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사실인데 왜냐하면 믿음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오며 하나님의 율법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1888년 기별자인 와그너의 기별에 화잇 선지자는 동일한 기별로 지지를 보냈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91.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
그것은 보증물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초청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 …
이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며, 이 기별은 큰소리로 전파되고, 크나큰 성령의 부어지심이 수반될 것이다.”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9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에게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제시하는 증언을 주셨는데, 이것은 분명하고도 명백한 면에 있어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특히, 알고 있는 죄를 간과하면서 칭의를 주장하거나 완전한 마음의 복종과 굴복이 없는 믿음과
순종의 생애가 배제된 칭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언하셨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66. -“하나님께서 아무리 공의로우시며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죄인을 의롭게 하실 수 있다 할지라도
어떤 인간이든지 자신이 알고 있는 죄를 여전히 행하며 알고 있는 의무들을 등한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로 자신의 영혼을 가리울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얻기 이전에 그 심령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신다.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보유(保有)하기 위하여서는 계속적인 순종을 하여야 하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활동적이며 살아 있는 믿음을 통하여 그 영혼을 순결케 하여야 한다. …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하여는
그의 믿음이 마음의 모든 애정과 충동들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믿음 자체가 완전함에 이르게 되는 것은 오직 순종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분명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이 가르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별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새로운 기별이 아니요, 빛이 증대되고 서로 합병되어 더욱 완전한 빛으로 나타난 것이다.
16세기의 개혁자들이 가르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18세기의 개혁자들이 제창한 성화의 기별이 합병되어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별로 제시되었다.
이처럼 1888년 기별자들의 가르침에는 칭의, 곧 ‘의롭다하심’에 엄청난 비중을 두었으며 과거에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칭의의 개념보다는 한층 더 발전된 것이었는데, 그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인 지성소에서 비쳐오는 온전함의 진리가 칭의의 진리와 결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참으로 셋째 천사의 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라고 하신 것이다.
선지자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8년 7월 24일. -“그대가 구속의 대가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대는 예수를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대가 예수께서 그대를 위하여 갈바리의 거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느낄 때, 그분의 죽으심은 그대를 위하여 죄를 그치게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보혈의 대가로 그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대의 품성을 온전하게 할 수 있음을 믿는 지적인 사고를 가질 때,
그대는 예수를 믿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란 지적인 것만이 아니요 경험들을 포함한다.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경륜에 대하여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과 경험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고통을 받으신 것은 바로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그때에 진정한 회개와 죄를 자복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으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는 마음의 결심과 율법에 즐겨 순종하는 생애를 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능력은 자신의 생애에서 죄를 그치게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 죗된 품성이 변하여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는 지적인 사고와 믿음을 가지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1888년 와그너와 존스, 두 종을 통하여 당신에 교회에 전하신
칭의의 기별은 셋째 천사의 기별과 하늘 지성소에서 비쳐오는 빛이 합병되어 전해진 것이다.
히 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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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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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성화를 칭의와는 완전히 분리되는 것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는 별도의 것으로 생각한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이후, 이제는 스스로 최선의 노력과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생애를 살아야 하는데,
이것을 성화라고 믿는 영혼들이 있다.
참된 거듭남의 경험이 없이 이론과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신학자들과 목사들에 의하여
성화의 진리는 잘못 증거되고 있다.
칭의와 성화는 구별될 수는 있으나 분리되어서는 안 되며,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경험하면, 이미 성화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믿음과 행함은 구분되는 것이지만,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것과 동일하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 슬그머니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으로 채널이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순종과 행위는 영혼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구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 2:17-18).
성화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사업이요 능력이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그렇다면 우리들의 노력과 행위, 열성은 어디에 필요한가? 라고 의구심을 가질는지도 모른다.
성화는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사업이요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지만, 믿는 자들에게도 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칭의는 우리들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믿음으로 거듭난 영혼들은 이제 인격적인 자유인으로서 하나님께 의지를 바쳐야 하며
성화케 하시는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억지로 영혼들을 성화시키지 않으실 것인데,
그것은 인간들에게 자유의 의지를 주셨기에 믿는 영혼들에게 동의와 협력을 요구하신다. 성화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우리들이 동의하고 협력해야 된다.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서 순종하는 생애이다.
칭의는 물론 성화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칭의는 우리들 편에 어떤 행위나 노력도 요구되지 않는다.
오로지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만이 유효할 뿐이다. 그러나 성화는
우리들의 협력과 신뢰를 요구하시는데, 이것이 칭의와 성화의 차이이다. 이와 같은 협력관계가
일평생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에 의해서만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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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노력과 순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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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업에 자유의 의지와 선택력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요 특권이며,
끊임없는 노력과 율법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사업에 동역하는 것이다.
정로의 계단, 47. -“그대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곧 의지의 참 힘이다. 이것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력이요,
결정력이요, 선택력이다. 만사는 의지를 옳게 쓰는 여부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셨으니 그대들은 이것을 사용할 것이다.”
사도행적, 482. -“구원을 얻는 일은 일종의 협력이요, 연합 활동이다.
하나님과 회개한 죄인 사이에 협력이 있어야 한다. 이 일은 품성에 바른 원칙을 형성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인간은 그로 하여금 완전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을 이기기 위하여 열렬히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성공을 얻기 위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인간의 노력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능력의 도움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인간이 일해야 한다.
유혹에 대한 저항은 인간이 해야 하며 그는 그의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야 한다.
하나님의 편에는 무한한 지혜와 동정과 능력이 있으나 인간의 편에는 허약과 죄 많음과 절대적 무력함이 있을 뿐이다.”
이 세상은 성화의 생애를 살기에 매우 어렵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백절불굴의 믿음과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가려뽑은 기별 1권, 381.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끈질긴 근면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우리들은 노력해야 하며 씨름해야 하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우리들은 교활한 원수에게 정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투쟁을 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며 그동안 우리들은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영혼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주님을 신뢰하여야 한다. 인간의 편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거나 전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성공적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할 것을 가르치라.”
믿음과 순종, 노력 등은 아무런 공로가 없다. 그것은 그 자체에 어떤 생명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동의이며 협력이다.
생명과 능력은 하나님께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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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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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목표가 없는 생애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는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표준과 목표로 주셨다. 우리들은 죗된 육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같은 온전함에 도달할 수 있는가? 모두는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영혼들이 영원토록 추구할 목표이며, 죗된 육신을 가진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의 영역 안에서 온전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교회증언 8권, 64.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역에서 완전하심과 같이 사람도 그의 영역에서 완전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 품성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것이다. 끊임없는 향상의 길이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우리에게는 얻어야 할 목적, 도달해야 할 표준이 있는데, 그것은 선하고 순결하고 고상하고 고결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품성의 완성을 향해 계속적인 노력과 끊임없는 전진과 향상이 있어야 한다.”
영광의 왕국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완전하게 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과 믿음이 요구된다
(엡 4:11-13; 벧후 3:14; 고전 1:8). 마지막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조사심판이 끝나기 전,
은혜의 문이 닫히기 전에 반드시 이러한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증언의 말씀은 우리들의 노력을 독려하고 있음을 유의하라.
각 시대의 대쟁투, 623.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고 계시는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여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비록 생각으로라도 유혹의 힘에 굴복당하지 않으셨다. …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사단이 이용할 수 있는 죄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환난의 때에 서게 될 사람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상태이다.”
예수님은 생각으로도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시고 범죄하지 않으셨다. 그분에게서는 사단이 이용할 수 있는 죄가 전혀 없었는데,
이것은 ‘환난의 때에 서게 될 사람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상태이다.’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가 우리들의 영역에서 도달할 수 있는 완전의 영역이 될 것이다.
온 세상에 이 기별이 전파됨이 없이는 세상에 끝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인간도 온전하게 될 수 있다는 기별이 전파됨이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온전한 율법으로 세상을 심판할 수 있겠는가?
교회증언 6권, 18-19.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파수꾼들을 보내어 경고하시기 전에는
불순종과 범죄에 대한 당신의 심판을 세상에 내리지 않으실 것이다. …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기별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울려 퍼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며, 그 영광으로 셋째 천사의 사업이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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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정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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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성이 완전해져야 한다는 진리에 대하여 결코 오해가 있을 수 없으며 사단의 기만에 속을 이유가 없다.
이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과 2,300주야의 예언을 통하여 이미 예언되어진 것이다. 다니엘서 8장 13-14절의 “2,300주야 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는 말씀은 이 진리를 믿는 영혼들의 심령에 죄가 끝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성소진리를 통하여 배웠기 때문이다.
성소가 더럽혀지는 것은 백성들의 죄로 인해서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 성소가 더럽혀진다는 말이다.
레 20:2-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민 19:20. -“사람이 부정하고도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총회 중에서 끊쳐질 것이니라”
성소정결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요, 성도들이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증거하며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생애에서 죄가 끝나지 않으면
하늘 성소는 정결하게 될 수 없다. 성소의 정결은 성도들의 정결을 말하는 것이며 성소가 정결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경배하는 성도들이 정결하여야 한다.
말 3: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리뷰 앤드 헤랄드, 1890. 2. 11. -“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의 죄로부터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고 계신다.
우리도 또한 지상에서 영혼의 성전을 그 도덕적인 더러움으로부터 정결케 함으로 그분과 조화되게 일하여야 한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0. 2. 21. - “우리는 대속죄일에 살고 있다.
우리는 당신의 백성들의 죄로부터 성소를 정결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일과 조화 되게 일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예수님과 조화되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조화되게 복음을 가르치고 조화롭게 행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생애에서 죄를 끝내고 완전하게 하시고자 하시는데 어떻게 그렇게 완전하게 될 수 있는가? 라고 불신한다면,
어떻게 하늘 성소가 정결하게 되겠는가?
사도행적, 531. -“아무도 자신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완성에 도달하기에 실패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신자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의 표준에 도달하라고 초청하시고 우리 앞에 그리스도의 품성의 모본을 두신다.
끊임없이 죄악을 저항하는 생애로 온전하여진 인성을 쓰신 구주께서는 신성과의 협력을 통하여
인간이 이 세상에서라도 품성의 완전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주셨다.
이것은 우리도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보증이다.”
교육, 125. -“성경 전체 가운데 논의된 중심 주제는 구속의 경륜이며,
이 구속의 경륜은 사람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일이다.”
원고, 147. -“철저한 순종이 요구된다. 완전한 생애를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불공정하시고 불신실하시다는 모욕을 그분께 쏟아놓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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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도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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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진리를 연구하면, 죄의 도말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죄를 용서받는 것과 죄가 도말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용서란 죄의 형벌을 면제받는 것이요, 도말은 죄의 형벌은 물론 기록(전과)조차 없애버리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도말은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인 개념의 도말 - 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됨.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시 51:1, 사 43:25)
일반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죄의 도말이란 회개한 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를 보장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그것은 완전한 회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구속사적인 개념으로 말하는 죄의 도말이 있다.
하늘 성소의 실체를 믿고 있는 재림성도들만이 깨닫고 있는 진리이다.
1844년부터 실제적인 대속죄일이라는 사실과 조사심판을 거쳐 최후로 하늘 기록책에서 죄의 기록을 지우고
성소를 정결케 하는 구속의 경륜을 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죄의 용서와 죄의 도말의 차이와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므로
죄의 도말에 대한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있다.
구속사적인 죄의 도말은:
- 대속죄일에 이루어진다.
- 성소정결과 직결되는 사업으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핵심적인 사업이다.
- 구속의 경륜 가운데 최후의 사업이며 죄를 처리하시는 최종적인 사업이다.
- 한 백성이 정결함에 이르고 온전함에 이르는 경험이 필요하다.
- 개인적인 생애에서의 죄의 도말(완전한 회개)이 선행되어야 함.
- 원형적인 대속죄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운명과 직결되는 사업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정결사업과 죄의 도말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사업이므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 진리는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소진리를 통해서만 죄의 용서와 도말, 성소정결 사업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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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사장의 일년일차의 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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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죄일은 성소의 정결과 죄의 도말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이 날은 매일의 봉사에서는 들어갈 수 없는 지성소에 대제사장은 들어간다.
대속죄일에는 성소 정결을 위하여 두 마리의 염소가 선택된다.
레 16:7-8.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여호와를 위한 한 마리의 염소와
-아사셀을 위한 한 마리의 염소가 선택됨.
-여호와를 위한 염소가 먼저 백성들을 위하여 죽임을 당한다.
-염소의 피를 속죄소와 휘장과 단에 뿌림.
레 16:15.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대속죄일에 죽임을 당한 염소의 희생과 피는 어떤 개인의 죄를 용서하기 위함이 아니고
이미 성소에 옮겨진 용서받은 이스라엘백성의 모든 죄를 속(도말)하기 위하여 뿌려진다.
중요한 사실은 매일의 봉사에서 죽은 제물의 피(죄를 성소 안으로 옮겨옴)는 성소를 더럽혔으나,
대속죄일에 죽은 염소의 피는 성소에 옮겨진 죄를 속(도말)함으로 성소를 정결하게 한다.
염소의 피를 속죄소와 휘장에 뿌림으로 백성들의 죄는 도말되고 성소는 정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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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정결, 죄의도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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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들은 성소정결과 죄의 도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며
나와 어떤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
성소의 개념
-지상 성소 - 하늘 성소의 모형으로 모세가 세움.
-하늘 성소 - 지상 성소의 실체이며 하늘에 있음.
-교회(성소) - 하늘 성소와 연결됨.
-마음(성소) -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거듭난 영혼들(성령의 전).
교회증언 6권, 366.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이다.
이 땅의 신자들과 한 번도 타락하지 아니한 하늘 존재들이 한 교회를 이룬다.
하늘의 지적 존재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모이는 성도들의 회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땅 곧 바깥뜰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거 하는 소리를 하늘 안뜰에서 그들이 듣는다.”
죄를 최종적으로 도말하고 하늘 성소를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서는 신자들의 마음(성소)에 있는 죄가 먼저 도말되고 정결하여지는 사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영혼(개인)들의 생애에서 죄가 끝(도말)나고 영원한 의가 나타나야 하고 품성이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험이 없다면, 성소 정결과 죄의 도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죄가 끝나지 않고 반복하여 나타난다면,
다시 죄는 성소를 더럽히고 심령은 죄로 오염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소 정결과 죄의 도말에 관련하여 우리들의 생애가 온전하여지고 죄가 끝나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들을 생각해 보라.
-백성들의 불의와 죄는 성소를 더럽히는 것임(레 20:2-3; 민 19:20).
지상 성소의 모형에서 대속죄일에 이스라엘백성 중 한명이라도 정결하게 되지 않으면 대제사장은 피를 뿌릴 수 없었다.
성소가 정결하게 되지 않았기 때문임.
그렇다면 1844년, 2,300주야의 끝에 성소가 정결하여지리라는 예언이 우리들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이다.
백성들의 생애에서 죄가 끝나지 않고 온전함에 이르지 못한다면, 죄의 도말은 의미가 없다.
도말은 기록을 지우는 것인데, 죄가 생애에서 끝나지 않았다면 죄의 기록을 지우는 것(도말)은 소용이 없다.
다시 또 범죄하면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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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도말과 준비(품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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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의 대쟁투, 483.
-“그러나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죄 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들의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죄가 도말됨.
실물교훈, 321, 322.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치는 때에 우리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의 뜻 안에 합병되고,
우리의 정신은 그의 정신과 하나가 되고, 우리 생각은 그에게 사로잡히게 되어 드디어 우리는 그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곧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이다.”(화잇주석, 마 22:11, 12)
실물교훈, 61.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요 14:23)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더욱 강하고 완전한 정신이 우리를 주관하게 될 것인데 이는 우리가 길이 참는 능력의 근원이신 자와 산 연합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룩한 생애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보통 사람과 같은 이기적인생활을 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것이며 그의 품성이 우리의 성품 가운데 재현(再現)될 것이다.”
우리의 생애에서 죄가 도말되는 것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품성이 완전히 재현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생애의 원칙이 되어
이기적인 생애를 살지 않을 때 죄의 도말은 이루어질 것이다.
성소정결과 죄의 도말은 품성완전의 필연성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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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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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천사의 기별과 관련된 독특한 교리들은 모두 품성의 완전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 안식일, 하늘 성소진리, 조사심판, 144,000인의 인치는 진리,
죄의 도말, 하늘 지성소, 건강기별 등 모두는 품성의 완전을 가르친다.
1888년 기별은 바로 이와 같은 진리들이 가르치는 품성의 완성을 위하여 능력과 힘을 가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별과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는 기별을 가지고 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때에 적절한 기별이었고 지극히 소중한 기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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