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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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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을 주는 안식일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 중 하나이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준수야말로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라는데 동의한다.
안식일 제도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안식일은 창조시에 여호와하나님에 의하여 제정되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1-3)
주일 제도는 안식일과 같이 창조 때에 시작되었으며 성경 역사를 통하여 계속 보존되어 내려와 우리에게 이르렀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주일의 한 표본으로 친히 최초의 주일을 구분하셨다.
최초의 주일은 다른 모든 주일과 같이 24시간을 하루로 하는 7일로 구성되었다. 창조 사업에 6일이 걸렸다.
하나님께서는 제7일에 쉬시고, 이날을 축복하셔서 사람의 안식의 날로 구별하셨다.
성경상 하루는 밤12시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해질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이다.
그러므로 제칠일 안식일은 해 질 때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준수되어야 한다.
분명하게 모든 날을 해 질때로부터 해 질때까지 계산하였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안식일은 피조물을 위하여 제정되었다. 그러나 안식일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도덕적 율법의 중심 계명으로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제칠일을 축복하심으로 당신의 창조 사업의 기념물을
세우셨다. 안식일은 전 인간 가족의 아버지요 대표자인 아담에게 위탁되었다.
안식일의 준수는 세상에 거할 모든 자들 편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창조주이시며 그들의 정당한 주권자시라는 것과 그들은 그분의 손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며
그분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하는 행위가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낙원에서라도 사람에게 안식일이 불가결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는 하나님의 작품들을 더욱 충분히 숙고하고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명상할 수 있도록
칠일 중 하루 동안은 자신의 이익과 일을 제쳐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는 그에게 하나님을 더 명확하게 상기시켜 주고 그가 누리고 소유한 모든 것이 창조주의
자선심 많은 손에서 나온 것임을 그에게 상기시킴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안식일을 필요로 하였다.
이와 같이 안식일 제도는 전적으로 기념적인 것이었으며, 온 인류에게 주어졌다. 이것은 그림자이거나 어떤 백성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이것은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되는 유일한 계명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실 때, 그는 그 가치를 아셨으며, 또한 많은 사람에 의하여 안식일이 무시당할 것도 아셨다.
하나님은 마귀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들로
안식일을 잊게 할 것을 아셨다.
그는 조만간 인간들이 이 계명이 요구하는 의무를 무시할 것을 아셨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이 계명에
특별히 유의하여 “기억하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둘째 계명을 범하게 하여 거룩한 존재이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저하시키려고 하였다.
넷째 계명을 제거함으로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완전히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려고 했다. 이교의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당신을 경배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그분께서 창조주이시며, 다른 모든 존재들이 생존을 그분께 빚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성경에는 그 사실이 이와 같이 제시되어 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 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렘 10:10-12, 14-16)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의 기념일인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의 조성자임을 지적한다.
그런고로 안식일은 그분의 존재에 대한 계속적인 증거이며 그분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지혜와 그분의 사랑을 상기시켜 주는 방편이다.
안식일이 항상 신성하게 준수되어 왔었더라면, 무신론자나 우상숭배자가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안식일 준수 계명은 어떤 이유로 지키는가?
이유는 하나님의 모본에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출 20:9-11).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주일과 그것의 기초가 된 사실들을 시인하셨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시고, 엿새 동안에 행해져야 할 일과 일곱째 날에 해서는 안 될 일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후에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의 모본을 가리키시면서, 이와 같이 주일 제도를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하신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7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우리가 창조 주간의 날들이 글자대로 24 시간 하루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 이 이유는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보인다.
매 주일의 첫 6일은 일하는 시간으로 인간에게 주어졌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업을 하실 때 첫 주일 가운데 같은 기간을 쓰셨기 때문이다.
제7일에 사람은 창조주의 쉬심을 기념하여 일을 중지해야 한다.
안식일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엿새를 주시고 그들 각자의 일을 이 엿새 동안에 하기를 요구하신다.
자비를 베푸는 행위와 꼭 필요한 일들은 안식일에도 허락됐으므로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는 언제나 돌보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일은 엄격히 피해야 한다.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사 58:13)말라. 여기서 그 금령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지자는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업 문제를 의논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을 실제로 사업에 종사한 것으로 간주하신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세속적 성격의 일들을 생각하는 것 조차도 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명은 우리집 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집안에 동거하는 사람들까지 거룩한 시간 동안에는 그들의 세속적 사무를 제쳐놓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자원하는 봉사를 통해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연합해야 한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사 58:1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출 16:23).
예수님의 모본과 당부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 4:16).
A.D. 70년에 있을 예루살렘 포위 때를 내다보시며 그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20).
에덴에서 기원된 안식일 제도는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창조 이후에 모든 부조들이 그날을 준수하였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동안에 그들의 감독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범하도록 강요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날의 신성성에 대한 지식을 대부분 잊어버렸다. 시내산에서 율법이 선포되었을 때에 넷째 계명의 맨처음 말은
안식일이 그 때에 제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기원이 창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하신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지워버리기 위하여 이 큰 기념물을 파괴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그들의 창조주를 잊어버리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은 악의 세력을 저항하고자 전혀 노력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확실하게 사단의 기만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제자들의 모본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눅 23:56).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 28:1).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행 13:14, 42; 16:1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 18:3, 4).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주의 날”이라는 표현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모두 제칠일 안식일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말씀하신다(출 20:10). 이사야 58:13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내 성일”이라고 부르신다.
주의 날은 그리스도가 주인인 날로서, 그는 자기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12:8; 마가복음 2:28; 출애굽기 20:11을 참조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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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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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시는 참된 증인의 권고 가운데는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라는 말씀이 있다.
왜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는 권고를 하셨는지, 그것은 라오디게아 백성들의 마음의 눈이 어둡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타락한 양심과 순결하지 못한 양심을 가진채 재림을 기다리는
많은 재림성도들에게 더욱 양심을 순결 하게 하여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안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심각성이 더 큰 문제이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계 3:17. 라는 태도는 참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양심을 순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의 거울을 가지고 자신의 양심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 19:7-8.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순결하신 말씀과 율법의 거울을 통하여 각자의 양심들을 비추어 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양심이 깨끗하게 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문제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당대의 선조들은 얼마나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비록 아담 하와의 범죄로 인간의 마음이 타락하였지만 그들의 양심은 오늘날에 비하여 현저하게 깨끗하였음을 느낄 수 있다.
“시드는 꽃과 떨어지는 잎 가운데서 최초의 쇠퇴의 징조를 목격하고 아담과 그의 반려자는
오늘날 사람들이 죽은 자를 인하여 슬퍼하는 것보다 더 깊이 슬퍼하였다.”(부조, 61-62)
“홍수 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땅 위에 떨어진 나무 잎사귀들을 볼 때 깊은 슬픔에 잠기었다.
오늘날 우리가 친구가 죽었을 때 슬퍼하듯 그들은 그 낙엽들을 보고 애도하였다.”(4영적 155).
그들은 죄의 결과로 꽃이 시들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에서도 죄의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순결한 양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거듭남의 경험을 한 사도바울의 양심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순결한 양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말씀들을 볼 때에 살인무기를 드는 일과 전쟁과 군사훈련에 참여하는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이 얼마나 더러워졌는지를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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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로 혼돈되고 있는 일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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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은 안식일과 주일 중 첫 날, 이 둘을 다 언급한다.
그러나 토요일이라든가, 일요일과 같은 요일은 언급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이 기록된 그 당시에 이러한 이름들은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식일이 언급될 때마다 그것은 제칠일, 또는 토요일을 가리킨다. 첫 날은 오늘날로 말하면 일요일을 가리킨다.
신약 성경에 첫째 날(일요일),주일 중 첫 날은 8회 언급되었으며, 한번도 이 날이 안식일로 칭해지지 않았다.
마 28:1; 막 16:1, 2; 16:9; 눅 24:1; 요 20:1; 20:19; 행 20:7; 고전 16:2
주일 중 첫 날에 열린 유일한 종교적 집회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구절은 보면 다음과 같다.
1) “안식 후 첫 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등불을 많이 켰는데”란 언급을 보아서 이 집회는 저녁에 열렸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한 밤중까지 뿐 아니라 “날이 새기까지” 계속해서 설교하였다. 성경에서 날은 일몰부터 일몰까지로 계산하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안식 후 첫 날 저녁에 모였다는 것은 토요일 밤에 모인 것이 된다.
* 이 구절은 제자들이 첫 날(일요일)에 떡을 뗀 것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
* 이 집회는 바울이 여행을 떠나고자 하였기 때문에 열린 특별 집회이다.
* 이 집회는 청년 하나가 떨어져 죽은 것을 되살린 것을 문맥으로 하고 있다.
* 집회는 토요일 밤에 열렸다(The New English Bible, 사도행전 20:7 “토요일 밤에”)
2)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 주일 첫 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1, 2).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신 정도에 따라 각 사람이 저축하여 두라고 성도들에게 바울이 말한 것은 조직적인 연보를 격려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은 가난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이방인 교회들이 모은 특별한 의연금에 관한 것이다.
매 주 첫날 일주일의 수익을 계산할 때 얼마의 의연금을 모아두라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매주 수익을 첫날(일요일)에 계산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음 .이 구절은 일요일의 신성성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3)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 28:1).
마태는 두 날을 언급하고 있다. 한 날은 안식일이요, 다른 한 날은 주일의 첫째날이다.
안식일이 첫째날 이전에 온다안식일의 변경이 결코 암시조차 되어 있지 않다.
마태복음은 십자가 이후 30여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된 것으로 믿어지는데 그 때까지도 제칠일을 안식일이라고 부른다.
4)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 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예수께서 안식 후 첫 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 16:1, 2, 9)
첫째날(일요일)이 2절과 9절에 언급되어 있다. 9절은 그리스도가 첫 날 부활하여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셨다는 사실을 단지 확증할 따름이다.
2절은 여인들이 첫째날에 그리스도에게 향품을 바르고자 왔다는 것과 이 일을 하고자 왔을 때 안식일이 지나갔다는 것을 말한다.
마가는 안식일이 첫째날 바로 직전에 온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들은 첫째날(일요일)에 그리스도의 몸에 향을
더 바를 것이었다. 이 일을 그들은 이일을 결코 안식일에 시도하지 않았다.
5)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눅 24:1).
그리스도는 예비일, 곧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는 안식일이 가까이 오고 있을 때 죽으셨다.
바로 그 금요일에 여인들은 그에게 바르기 위하여 향유를 준비 하였다. 그 다음날, 곧 토요일에 그들은
“계명을 좇아” 쉬었다. 그러므로 세 날들이 언급되어 있다. 즉, 예비일, 안식일, 주일 중 첫째날(일요일)이다.
여인들은 예비일인 금요일과 주일 중 첫째날인 일요일에 일을 하였다. 그러나 안식일, 곧 토요일에는 쉬었다.
6). “안식 후 첫 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이 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절의 첫날(일요일)은 다음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한 것을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19절은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예수가 무덤에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부활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곳에 모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가 부활 하셨음을 믿지 않았다.
신약에서 주일 중 첫째날(일요일)을 언급하는 구절들을 지금까지 살펴보았다. 이중 한 구절도 첫째날(일요일)을
안식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 구절들은 제칠일 안식일의 신성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성서가 주일 중 첫째날을 언급할 때 통상적으로 안식일과 대조하면서 언급 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때때로 첫째날을 안식일로 지지하기 위하여 계시록 1:10의 말씀,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들으니”가 사용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첫째날이 주의 날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와는 아주 상반되게 주의 날은 제칠일 안식일이다(막 2:28을 읽으라).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고 있는 것만을 믿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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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어진 경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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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준수가 일요일 준수로 옮겨간 일은 A.D. 150년경 이전으로부터 거의 3세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자신들이 유대인이 아님을 분명히 하려는 시도가 어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었으며, 그 이후로 그들은 일요일을 높이고 안식일을 포기하였다.
그 당시에 가장 유명한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는 그의 시편 92편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안식일에 행하여야만 할 의무가 그 무엇이든지간에 그 모든 것은 주의 날(일요일)에 속하는 것이 더 적절하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주의 날로 옮겼다.
왜냐하면 주의 날은 우월성을 갖고 있으며, 제 1등급에 속하고, 유대인의 안식일 보다는 더 명예롭기 때문이다.”
일요일을 좋게 여기는 교회의 최초 의결은 4세기에 열린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있었다.
그러나 일요일 준수와 관계있는 그 법은 안식일 준수를 거부하는 이유로서 유대화시키는 것(유대인처럼 되는 것)을 열거하였다.
일요일 신성성이 발전하게 된 이유
첫째, 그것은 유대인과 달라지려는 노력이었으며, 그렇게 함으로 핍박을 피하고자 했다.
둘째, 로마가 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안식일 보다는 일요일 편을 들게 되었다.
셋째, 로마가 끼친 영향력의 결과로 일요일은 다른 수많은 비성서적 관습들과 함께 교회법상의 문제로 변해 버렸다.
성경은 장차 일어날 것이었던 그리스도교의 큰 위조품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
“적그리스도”(요일 4:3)
“불법의 사람”(살후 2:3)
“배도하는 일”(살후 2:3)
“멸망의 자식"(살후 2:3)
“불법의 비밀”(살후 2:7)
잘못된 견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으로써 하늘 아버지의 율법을 폐하셨다는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되거나 폐지될 수 있었다면 사람을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을 폐지하기는커녕 율법의 불변성을 증명해 준다. 하나님의 아들은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하(사 42:21 난외 주석)기 위하여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율법(을) …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 18)고 말씀하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하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고 언명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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