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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적인 답변에 감사(보리와 밀)
    esus
    작성일 : 06-12-20 14:04  조회 : 3,063회 
    성경적이 답변으로 “님의 열심을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또한번 고맙구요.

    “요제일에는 “보리”이고, 오순절에는 “밀”이란 성경적 근거”에 대한 내용을 신학교나, 교회에서나, 책에서나 어느 누구에게서도 배운 적이 없이 혼자 “성경책으로만 연구해서 얻어진 내용”이 위의 님의 글과 동일했지만
    타인으로부터 동일한 지식으로 인정된 적이 없기 확인차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동일한 성경지식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좋구요, 계속 질문 하려 합니다.

    단, 요제일이 정월 16일이란 것은 인정  안 되네요.

    예수님 처형 당시 요제일은 정월 18일 이었습니다.


    <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유월절인 정월 14일은 &lt;수요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요일 해 질 때(오후 3시) <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죽음</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과
    해지기 바로 지전에 “땅 속에” <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장사</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되시고,
    땅속에 들어간 때로부터 “삼일삼야”(마12:40) 후인 제칠 안식일(토요일)에 부활하셨다.</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

    는 것이 성경의 기록입니다.

    여기
    예전에 올렸던 “부활은 일요일이 아니다”는 글을 다시 올립니다.

    충분한 연구가치가 있는 글입니다.(어떤 책자에서 읽고 많은 부분을 보충 설명 한 내용입니다.)



     <font color=Blue><b>부활은 일요일이 아니다</font color=blue></b>

     하루에 대한 개념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만든 24시간을 기준하며 하루의 시작을 자정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기준으로 하면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성경 창세기 1장에서 하루의 기준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둘째 날---셋째 날이라”했으니 날의 시작은 “밤의 시작(해가 진 때)”부터요, “하루”의 기준은 “온 밤과 온 낮이 끝나야”된다.
     고로, 북극, 남극지방은 일년이 하루, 천왕성은 10시간45분이 하루, 달은 29일 반. 그러나 태양은 탄생 이후 아직까지 하루가 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조건 하에서 북극지방 사람과 적도지방 사람과 “내일 아침에 만나자”는 약속은 낭패가 되고, 남극지방 사람에겐 하루 일당 천불을 준다 해도 굶어 죽게 되며, 지구 사람이 천왕성 사람에게 하루 일당 $100을 약속했다면 반나절도 못 돼서 $100을 지불해야 한다.
     고로, 서로 통하려면 같은 기준 하에서 이야기가 풀려야 한다.
     
     성경 !!&nbsp;&nbsp;성경은 성경이 기준이 되어 성경으로 풀어야 하며 관련된 구절들이 서로 상반된 해석이 된다면 1+2=5이란 꼴이 된다.
     
     기독교의 “예수의 부활”사건은 인간구원과 직결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생명선이 된다. 이 부활에 관한 사건내용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부활시기에 대해서는 어느 날 누군가가 혼돈된 말(<font color=Blue>일요일 아침에 부활</font color=blue>)을 퍼드림으로써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더 더욱 혼미하게 만들었다.

     성경 자체는 “일요일 부활”을 말하고 있지도 않을 뿐, “일요일”일수도 없다.
     일요일 미명에 부활장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font color=Blue>이미 부활하신 예수님</font color=blue>이 맨 처음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일요일 새벽에 보이셨을 뿐(막16;9)이다.

     예수님은 표적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요나의 표적뿐이라면서 “---인자(人子,사람)가 <font color=Blue>밤낮사흘</font color=blue>(3 days and 3nights. 72시간 요11;9)을 <font color=Blue>땅속에</font color=blue> 있으리라”고 예언 하셨다.(마12;38-40)
     또한 인자(人子,사람)가 죽임을 당한 후 삼일 만에 살아 날 것을 계속 말씀하신 것을 성경에서 읽을 수가 있다.

     그 후 성경에 정해진 대로(예언대로) 유월절날인 정월14일 해질 때(양 잡는 시간) 죽으시고, 해지기 직전에 이미 <font color=Blue>땅속에 들어가셨다</font color=blue>(눅23:54 이 날은 예비일이요 <font color=Red>무교절 안식일</font color=red>이 거의 되었더라).

     여기까지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유월절이 금요일이고, 제7안식일과 무교절 안식일이 겹쳤다고 비판 없이 받아 드리는데 문제가 되면서 혼동이 꼬리를 물고 뒤틀어지기 시작한다.

     성경 어디에든지 “금요일”을 “제7안식일의 예비일”이란 구절은 없으나 <font color=Blue>유월절의 예비일</font color=blue>이란 구절은 있다.(무교절의 첫날 요19;14, 막14;12).
     그러므로 복음서의 “예비일”이란 유월절 날(정월14일)이며 “금요일”이란 생각이나 주장은 착각 오해된 것이다.(요 19;14, 31)
     또 유월절 다음 날인 곧 무교절의 둘째 날과 마지막 날(정월 15일과 21일)도 <font color=Blue>안식일</font color=blue>이 된다. (참고로 유대인이 다섯 절기에는 7개의 안식일이 포함되어있음)

     또 무교절 안식일과 제7안식일이 겹쳤기 때문에 “큰 날”이라고 근거도 없는 말들을 하지만 성경은 제7안식일도, 속죄일도(7월10일, 출31;15, 레16;29-31) <font color=Blue>큰 안식일</font color=blue>이라고 기록되어있다.
     하물며 무교절의 둘쨋 날(애굽에서 출발하던 날, 노예에서 해방되던 날)은 더 더욱 큰 <font color=Blue>안식일</font color=blue>이 아니랴!!

     고로, 예수의 죽음은 “유월절 예비 일의 사건”일뿐 &lt;제7안식일의 예비일 금요일>이란 근거는 신빙성이 전혀 없다. 이렇게 혼돈 된 내용들은 다음의 성구들에 의해서 풀리기 시작한다

     막16:1,2-- &lt;<font color=Red>안식일이 지나매</font color=red>> <font color=Blue>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lt;<font color=Red>안식 후</font color=red>>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font color=blue>

     눅23:54-56--&lt;<font color=Red>이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font color=red>> <font color=Blue>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font color=blue> &lt;<font color=Red>안식일에 쉬더라</font color=red>>

     이 두 구절을 종합 해 볼 때, 향품을 구입한 시기는 “안식일이 지나서” 구입했고 구입한 후 또 <font color=Red>“<font color=Blue>계명의</font color=blue> 안식일”</font color=red>이 있었음을 읽을 수 있다.(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매매행위를 하지 않음을 참고)

     또 <font color=Blue>삼일 삼야 땅속에</font color=blue> 있으리라는 예수님의 예언과도 상반되며 예수님이 거짓 말 했다는 결과를 만든다.

    ‘금요일 사망과 일요일 미명의 부활’은 ‘하루 반만 땅속에’가 되며, 또 예수님의 예언대로라면 부활 시기는 ‘금요일 해지기 직전으로부터 삼일삼야(72시간)후인 월요일 해 질 때’가 되니 성경기록 논리에 맞지 않는다.

     또 절기와 관련된 진리와도 연결점을 찾을 수가 없다.
     곧 <font color=Blue>유월절</font color=blue>(정월14일)에 <font color=Red>죽음</font color=red>과 <font color=Blue>무교절</font color=blue>(정월15일)의 <font color=Red>장사</font color=red>와&nbsp;&nbsp;<font color=Blue>첫 요제일</font color=blue> 전날 <font color=Red>부활</font color=red>과 <font color=Blue>오순절</font color=blue>(요제일로부터 50일 후, 레 23; 15-21)에 성령으로 <font color=Red>재림</font color=red>은 예수님의 <font color=Blue>십자가의 도</font color=blue>와 직결된다.
     금요일의 죽음과 일요일의 부활은 100% 비 성서적이다.
    &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font color=Blue><b>부활은 토요일이다</font color=blue></b>

     1+2=5 이란 모순에서&nbsp;&nbsp;‘5’란 수를 일단 관념에서 지워버리고 새로운 자세로 시작 해 본다.

     예수님이 금요일에 죽으시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했다고 가정한다면 부활 때로부터 삼일삼야 전에 <font color=Blue>땅속에 들어가셨으니</font color=blue> 그 때는 <font color=Blue>목요일 새볔</font color=blue>이 된다는 모순이 생긴다.
    &nbsp;&nbsp;“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날은 <font color=Blue>예비일</font color=blue>(금요일이란 뜻이 아니라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font color=Red>안식일</font color=red>(제7안식일이 아니라 무교절의 안식일. 정월15일)이 거의 되었더라”(눅23;53-54)

     그러나 위의 성경구절은 <font color=Blue>해 지기 직전에 땅속에 장사된 것</font color=blue>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장사는 목요일 새벽이 아니라 수요일 저녁이 되며 또 십자가의 죽음도 수요일 오후 3시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금요일 <font color=Red>죽음</font color=red>과 <font color=Red>장사</font color=red>와 일요일 <font color=Red>부활</font color=red>의 또 다른 모순점은 여인들의 향품 구입 시기다.

     금요일 여인들이 무덤을 떠나 향품 파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졌으니 안식일이 시작됐으므로 안식일에 매매를 하지 않는 유대인들로부터 향품구입은 불가능하다.
     만일 토요일 해 진 다음에 구입했다는 논리는 <font color=Red>“돌아가 <font color=Blue>향품과 향유를 예비한 후</font color=blue>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font color=red>란 성경과는 맞지 않는다.

     고로, 모든 성경 구절이 모순이 안 되고 이해되며 진리이기 위해서는 예수의 &lt;<font color=Red>죽음</font color=red>과 <font color=Red>장사</font color=red>와 <font color=Red>부활</font color=red>>사건을 일단 수요일로 보고 차례대로 풀면 된다.

     이렇게 되면 여인들의 향품 구입 시기와도 앞뒤가 맞아떨어지게 되고 언제 부활했는지도 풀린다.
     곧 여인들은
    &nbsp;&nbsp;<font color=Blue>수요일</font color=blue>-(유월절 예비일)-오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해지기 전 장사됨을 보고 돌아가서
    &nbsp;&nbsp;<font color=Blue>목요일-무교절 안식일</font color=blue>(토요일이 아님)이 지난 후
    &nbsp;&nbsp;<font color=Blue>금요일</font color=blue>-(평일)-향품을 구입한 다음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막16;1,2--<font color=Blue>무교절 <font color=Red>안식일</font color=red>이 지나매--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계명의</font color=blue> &lt;<font color=Red>안식 후</font color=red>>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 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눅23;54,-56&nbsp;&nbsp;--이 날은 <font color=Blue>예비일</font color=blue>이요 <font color=Red>안식일</font color=red><font color=Blue>이 거의 되었더라</font color=blue>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font color=Red>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font color=red> <font color=Blue>계명을 좇아 <font color=Red>안식일</font color=red>에 쉬더라</font color=blue>)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이 금요일은 어떠한 예비일도 아니며 그저 평법 한 금요일다)
    &nbsp;&nbsp;<font color=Blue>토요일</font color=blue>--“<font color=Red>계명</font color=red>을 좇아 <font color=Red>안식일</font color=red>(제7 안식일)<font color=Red>에 쉬</font color=red>었”다는 온전한 논리가 성립된다.&nbsp;&nbsp;

    그러므로 예수님의 예언대로 땅속에 있은 후로부터 밤낮 3일 후에 또는 제3일에<font color=Blue>(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 이니라. 창1;13. ---낮이 열두 시 (12Hours)가 아니냐--요11:9.-- 셋째 날과 하루가 24시간이란 성서적 개념</font color=blue>) 부활하셨다면 답은 너무나 정확하다.

     예수님은 땅속에 들어간 수요일 해지기 직전으로부터 72시간(3일 3야)후에 부활 하셨다는 논리가 성경에서 발견될 뿐이다.

     그리고 참고해야 할 것은 유대인의 절기들과 요일관계에서, 예를 들어 유월절은 월요일이나, 금요일이나, 일요일도 될 수 있듯이 무교절 안식일이 토요일과 겹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사건인 그때의 유월절은 금요일이 아니라 수요일이었다’고 유대인 달력에서 학자들에 의한 발견이 있을 뿐이다.
    <font color=Blue>(Original text by Herbert W. Armstrong (1892-1986) copyrighted 1952, 1971, 1972,&nbsp;&nbsp;Worldwide Church of God. All rights Reserved Printed in U. S. A.</font color=blue> Worldwide Church of God. Pasadena. California 91123&nbsp;&nbsp;U. S. A)

     곧 예수님의 <font color=Blue>부활은 토요일 해지기 전</font color=blue>으로 보는 것이 성경적이다.

     고로, 거의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일요일 부활 주장과 함께 <font color=Blue>일요일을 “주님의 날”이라고 가르치는 것</font color=blue>과 성수주일 또는 ‘<font color=Blue>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font color=blue>’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강요하는 것은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며 억지 주장이나 모순 된 이론을 진리라고 가르치는 거짓의 선생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너희가 <font color=Red>날</font color=red>(제7안식<font color=Blue>일</font color=blue>)과 <font color=Red>달</font color=red>(월삭)과 <font color=Red>절기</font color=red>(다섯 절기)와 <font color=Red>해</font color=red>(YEARS. 제7안식<font color=Blue>년</font color=blue>과 50년마다 오는 <font color=Blue>희년</font color=blue>)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10,11).

     이 구절은 한 번 더 생각 해 봐야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혹은 이날을 저 날 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font color=Red>각각 자기마음에 확정</font color=red>할지니라”(롬14;5)

     신약시대 이후(행 2;1 이후) 성경은 특정한 날을 지키라고 <font color=Blue>강요한 구절</font color=blue>을 찾지 못한다.

     구약 시대는 3차원을 넘지 못 한 초등학문 수준이지만 신약시대(.오순절 이후)에는 4차원 이상의 고차원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안식일과 특정한 금식일도 거룩한 날<font color=Blue>(시간)</font color=blue>이였고,
     모세가 호렙산에서 신을 벗었던 장소가, 광야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이 거룩한 장소<font color=Blue>(공간)</font color=blue>이며,
     그리고 거룩한 것들<font color=Blue>(물질)</font color=blue>에 관하여 가르쳐 왔던 구약시대의 목적은 <font color=Blue>3차원(시간, 공간, 물질)</font color=blue> 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곧 고차원의 세계를 알려 주기 위함으로 성경은 풀이 해 준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靈)의 나라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초월한 세계이니 혈과 육으로는 갈 수 없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서(물침례, 성령침례-영혼의 1st Contact) 거룩한 삶을 살고(주님의 말씀대로 "하라, 말라"를 지켜. 순종) <font color=Red>>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font color=red(히9;28) 혈과 육이 신령체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만남이(고전15;44,51) 예수와의 영원한 두 번째 Contact이 된다.

     그러나 첫Contact없이 <font color=Blue>두 번째 Contact</font color=blue>는 있을 수 없다.
     이 천년 전 육신으로 우리 인간이 볼 수 있게 오시어 <font color=Blue>우리와 함께 하셨던</font color=blue>(Emmanuel) 예수는 부활 후 오십일 째 되는 오순절날 인간이 볼 수 없게 성령으로 오시어 <font color=Blue>우리 <font color=Red>안에</font color=red> 성령으로 계시고</font color=blue> 후에 “그곳”에서 신령체로 영원히 <font color=Blue>다시 함께</font color=blue> 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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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막16:9의 오해

    막16:9 (예수께서 <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에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살아나신 후</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font size=3 face=필기 color=Green>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


    이 “<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살아나신 후</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라는 말이
    “<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수식하느냐, 아니면
    “<font size=3 face=필기 color=Green>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를 수식하느냐에 따라 그 뜻은 전혀 다르게 풀이가 된다.

    마치 “<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아버지</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 <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가</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 <font size=3 face=필기 color=Green>방으로 들어가신다.</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라는 말과 동일한 경우다.

    이 "가"자가 어느 쪽에 붙어지느냐에 따라
    “<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아버지</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가</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nbsp;&nbsp; <font size=3 face=필기 color=Green>방으로 들어가신다.</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가 되기도 하고
    “<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아버지</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nbsp;&nbsp; <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가</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font size=3 face=필기 color=Green>방으로 들어가신다</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가 되기도 한다.


    A) 막16:9 (예수께서 <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에 <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살아나신 후</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font size=3 face=필기 color=Green>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

    B) 막16:9 (예수께서 <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에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살아나신 후</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 <font size=3 face=필기 color=Green>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

    A)의 경우는 “<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에 <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살아나셨다</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가 되고,
    B)의 경우는 <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이미 부활하신</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b> 예수님이 “안식 <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후 첫날 이른 아침</font size=3 face=필기 color=Blue>에” “<font size=3 face=필기 color=Green>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font size=3 face=필기 color=red>”가 된다.


    어느 쪽이 성경적으로 “삼일삼야” 후에 부활로 설명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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