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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의 소유를 포기하라
    길벗
    작성일 : 05-09-13 18:41  조회 : 3,246회 
    자기의 소유를 포기하라

    “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요일 5:1)

    성경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에는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자들은 칭의를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네요.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칭의는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들이 알고 있는 죄를 마음에 품고 있는 상태에서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고 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잖아요. 어떻게 죄가 있는데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빛과 어두움이 공존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의 와 죄는 함께 공존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알고 있는 죄를 완전히 버리지 않는 이상 결코 거듭남이 있을 수 없으며 칭의 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 13:44)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소유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1-22)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부자법관에게 말씀하셨듯이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들을 버리고 따라가야 합니까?

    그런데 사실 우리들의 모든 소유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잖아요.

    우리의 집, 논과 밭, 짐승들, 심지어 우리들의 재능 시간, 자녀들, 생명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요 나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청지기이며 관리인일 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나의 소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우리들의 소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자라”(롬 1:29-31)그렇습니다. 우리의 소유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소유들을 버리지 아니하고도 칭의를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회개하지 않고 알고 있는 죄를 숨겨두고 있다면 결코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 이기심과 분노와 악의가 마음을 주관하고 있고 습관적인 죄를 용납하여 반복하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찌 알고 있는 죄들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거짓말 하시는 분이 신가요? 그럴 수 없는 것은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히 6:18)분이 시기 때문이랍니다.

    오늘날 인기 있는 복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는 의의 두루마기로 덮어주시고 칭의를 얻는다는 기별입니다.

    부족한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채워주셔서 구원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불순종 한다고 하여 버리지 않는 것처럼 한번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부모와의 관계만 깨트리지 않고 유지하면 부모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이 믿음의 관계만 깨트리지 않고 있으면 영생의 유업을 주신다고 가르치는 복음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칭의 의 경험일까요?

    과연 알고 있는 죄를 완전히 회개하는 일이 없이, 죄를 미워하여 진심으로 죄를 자복하고 고백하는 일이 없이, 다시는 가증한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심도 없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마음의 각오와 헌신도 없는 사람에게 의롭다는 선고를 하실까요?
      
    정로의 계단이란 책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발견한 후 회개, 자복, 헌신, 믿음과 받으심을 확신하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잖아요.

    이와 같은 경험이 없는 칭의 와 거듭남이란 있을 수 없어요.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녔다 하더라도 거듭난 것이 아니며 아직 칭의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금과 철저한 건강개혁을 한다 할지라도 아직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직분이 목사, 장노, 집사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니고데모처럼 결단코 하늘을 볼 수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칭의 에 이르는 정로의 계단을 경험도 없이 진리에 동의하는 것으로 교인이 되고 있으며 교회의 신조와 원칙을 동의하는 서약만으로 거듭나고 칭의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영혼들은 추측하는 믿음 가운데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으나 실상은 아직도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그 영혼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심령에 호소하시는 성령에 의하여 십자가 앞으로 로 이끌림을 받고 있을 뿐 칭의를 얻은 것은 아니랍니다.
     
    성령에 이끌려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치 외아들을 잃은 과부와 같이 장자를 잃은 아비가 통곡을 하듯 회개와 자복을 경험해야 합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십자가 앞에서 자신들의 마음이 악함과 부패함을 인하여 독자와 장자를 잃은 여인처럼 죄에 대하여 슬픔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죄로 영혼을 더럽히기보다는 차라리 궁핍과 비난과 친구들과의 분리와 어떤 종류의 고난이라도 택하라. 불명예나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5증언, 147)

    그때에 새로운 마음을 얻게 될 것이며 거듭남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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