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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개혁운동교회가 참 노선인가?
    박용진
    작성일 : 06-08-18 11:51  조회 : 3,172회 
    *************************************             박용진
    어느 개혁운동교회가 참 노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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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한국에서는 두 개혁운동이 존재하므로서
    신실한 안식일교회 성도님들께서 일곱째 교회안의
    바른 남은교회를 찾아 선택하려는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으므로,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저는 진실만을 말할 것을
    하나님앞에 기도하고 약속하오며 , 역사적 참된 노선의
    남은교회를 쉽게 분별하도록 이런 요약자료를
    만들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외적으로 보기에 좋지않고 혹은 숨긴다고 될것이 아니라 ,
    모든 선조들의 역사와 사건은 바르게 드러내야하고
    판단을 바르게 할수있도록 우리는 도와주어야 하며
    결정은 철저히 진리교회를 선택하려는 자의 몫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남은 교회를 분리시키려고 철저히 계략과 싸움을 걸고 있기때문인데
    고로 사단이 살아있는 이상 , 분리가 일어날수도 있는 것이며
    또 이것은 육적 출애굽 노선에서 비교해 보면 "고라의 반역"과 너무나
    닮았으므로 영적 표상의 성취로도 생각하는 바입니다

    1)기성안식일교회에서는 -가데스반역의 영적 표상 성취(1888년)
    2)1951년분리 개혁운동에서는 - 고라의 반역 영적 표상 성취 (1951년)

    *********
    약칭: ims: 저희 개혁운동선교회를 말함
    약칭 rm: 저희교단에서 1951년도에 분리된 개혁운동파(김천소속)를
    말함

    (1)1914년 독일에서 부터 역사적 예언대로 시작된 교회가 어디인가?
    ------------------------------------------------
    (설명)
    ims는 1914년 독일에서부터 분리된 노선이지만
    rm은 1951년에 ims에서 분리한 노선임을 그들도
    이것은 완전히 속이지 못할것입니다
    (ims는 지금도 독일에 대총회가 존재하지만
    rm은 1951년부터 미국에서 대총회가 시작했으니
    그들은 지금도 미국에 대총회가 있음)
    그들은 1948년에 ims 미국사무소를 개설하려할 때
    그들이 독 차지하고 그들의 rm 교단 기초 본부가 되었습니다

    1914년이후 1919년에 개혁운동 독일연합회(웰프 회장)가 조직되고
    유럽각곳에서도 교회들이 조직되자
    1922년에는 개혁운동 세계총회를 독일(베브라지역)에서 열고
    웰프형제가 다시 총회장으로 뽑혔습니다

    1925년에는 세계적인 사업을 위해 정식 대총회를 조직했는데
    이때도 역시 독일(고타지역)에서 개최하고 이때 독일연합회장인
    웰프형제가 대총회장으로 뽑혔습니다

    그후 1928년 대총회도 독일에서 웰프형제가 뽑혔습니다
    이때 독일정부에 등록한 명칭은 "개혁운동 세계선교회"
    였습니다

    그만큼 독일의 영향이 크므로 독일에서 대총회본부가
    계속되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대총회를 2차대전으로 인해 1934년이후부터 1947년까지
    총회는 못하고 전쟁후 비로소 1948년에라야 대총회를 열수 있었고
    이때 코젤형제가 대총회장올 뽑혔습니다

    1951년도 분리할 당시의 대총회는 네델란드에서 개최 되었습니다
    전쟁전까지는 계속 독일에서 대총회가 열린 것을 봐도
    독일이 개혁운동의 입지와 탄생 본산지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2) 계18장천사가 한 백성을 분리하고 남은 교회를 만든 것인데
    또 더 이상 그 뒤에도 교회정결을 위해 내려온다는 천사가 예언에
    없으니 고로 또 저희에게서 분리한 rm 교단은 예언에도 없고
    그들의 교단존재를 성경과 예언의 신에서는 정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로 rm교회는 내용이야 어쨌던 결국 인간적 분리의 교단임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3)1951년의 대총회에서 대표자 25명이 모인 장소에서 선언문을
    발표하고 그 자리를 떠나간 11명은 어느누가 봐도 지지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1951년 당시 대총회장  -코젤 (남아 있는 무리 대표자)
    총무부장: - 니콜리쉬-- 나간무리 대표 주동자임)


    (요한일서 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

    (4) 대총회에서 교회양식도 아닌, 사전에 모의하여 만든 어떤 선언문을 만들어
    발표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행동 이라는 것입니다

    (5)누가 총회자리에서 먼저 나갔는가? 를 판단하고 먼저 나간 그들이
    분파개혁운동교회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당연히(현재) RM측이 먼저 나간 무리입니다)
    잘모르면 다른 것 따질 필요없이 이것만 판단하면 될것입니다

    (1992년에 와서 rm 대총회임원이 만든 상호고백서 첨부내용참조
    에서 보면 잘 알수있음- 그들이 먼저 나갔다는 것을 말하고
    그때 후회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

    (6)코젤 대총회장이 행정을 마음에 좀 안 들게 한다고 니콜리시등
    나간 무리들이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의미에서 그렇게하려는 정신이였다면 나가자 마자, 4일만에
    또 하나의 교단을 만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그들은 나가더라도 당분간 교회를 위해 울며 기도하고
    바르게 경영하도록 요청과 항소를 계속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교회를 사랑하고 있었고
    성령있는 자들의 처세일 것입니다)


    참고로
    2000년도 한국교회의 사례에서도 저희들도 처음에는 당연히 그렇게
    처신을 했습니다. 결코 나가서 일부러 교회를 만들려 하지않았고
    오류를 가진 자들과 함께 하지 못하겠으니,,, 별도의 예배를
    하겠다고 대총회에 요청한 정도였지요
    행정과 모든 것은 계속 RM 대총회의 지시를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는 저희는 ims교단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고, 도무지 몰랐으며
    또 그곳에 합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을때입니다)

    그런데 비하여, 1951년도에 나간 무리들은 나간지 4일만에
    총무부장 니콜리쉬를 대총회장으로 세우고 교단을 또 만든다는
    것은, 동기가 어쨌던 이것은 주님과 평소에 교제하고 성령이
    마음에 머무는 자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단은 인간들이 함부로 막 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정에 의해 또 새로 세울수 있는 것이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두명의 죄를 빌미로 나가서, 누구나 또 교단을 만들수가 있다면
    오늘날도 교단이 계속 발생소지가 있을것입니다

    남은교회는 앞의 교회가 하늘에서온 기별을 거절했다는 충분한
    증거사건과, 성경예언으로도 일치할 때 또다른 분리가 가능하고
    인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분리적 남은교회의 특징은
    이런 것이며, 택한 교회가 하늘기별을 거절할 때만이
    또 천사가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무한히 분리가 될 수있는 것이 아니라
    계18장천사 까지입니다


    아무튼 그때
    대총회장이 행정능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자칭)똑똑한 자?들의 마음대로
    안된다 하더라도, 참으며 행정회의를 통하여 계속 건의하거나 기도로서
    하나님께 아뢰며 탄식해야하지,, 개인 죄에 대해 징계를 충실히 행하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마음맞는 사람끼리 입을 맞추고 사전 모의하여
    코젤 총회를 전복하려고 미리 선언문을 만들어 와서, 이것을 대총회때에
    발표하고 나가서 따로 잘 믿어보겠다는 것은
    인간적인 방법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찢어서 도리어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보감1권444)
    "교회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공통된 결점을
    가질 수 있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경솔하게 취급될 수 없는 권위를 그들에게 주었다."

    남은 교회는 우리가 완전하기 때문에 택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교회안에서 서로 연합하므로 모난 품성들이 깍기고 완전하게하려고
    택하셨다고 했는데도 이런 섭리를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나가서 잘해볼려고 인간적으로 또 교회를 만든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7)당시 그들이 문제삼아 나갔던 주제는 무엇이였는가?
    -------------------------------------------
    (설명)
    "퀴시너"라는 한 지도자 개인의 음행죄로 지적하고
    이를 빨리 징계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돌출시켰음

    ("퀴시너"라는 사람은 당시 총회임원으로서 2차대전시 전쟁으로
    인해 팔과 다리가 하나씩 절단되어 의족인 상태로서
    아내는 말없이 떠나버리므로 , 그후 혼자서 사는 것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열렬히 도와주던 한 여 자매와 서로 로맨스적 사건
    (일곱째 계명 범함)이 있었는데

    코젤 대총회장이 이것을 대총회 직전까지 알고 있었으면서
    바로 징계를 하지않는 무능한 대총회장이라고 하면서
    꼬집어 항의한, 총무부장인 니콜리쉬는 자기편의 동조자를 모으고
    선언문을 미리 만들고 발표하려다가 나가 버린 사건임)

    그러나 코젤 대총회장은 그의 그때입장의 자세한 것은 알수없으나
    <죄를 지었으나 회개한 죄인을 구하고자하는 자비와 부드러움>
    의 정신에서인지, 안, 즉시 즉각적인 징계를 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당시의 개혁운동 교회가 세계 2차대전을 막 끝내고 (1939년-1945년)
    전쟁후 1948년 첫총회와 그후 1951년도의 총회였는데
    그 당시는 아무래도 교단의 조직체계가 21세기 현대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행정조치를 일률적으로 할 수가 없었던
    분위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는 아직까지 유고, 체코등 공산주의안에 있는 대표자 형제들은
    참가할수가 없는 입장에서 총회를 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1951년도 총회기간 내에서 그 문제자인 퀴시너는
    음행을 시인하고 죄를 고백하였으며
    모든 직분을 스스로 결국 사표내었는데도 불구하고 니콜리쉬등 11명은
    이미 만든 선언문을 철회하지않고 결국 나가서 따로 교단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은 빌미라는 것이 드러난것인데 이것은 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판단할것이고 또 그것은 아무도 동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증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총무부장 니콜리쉬가 차기 대총회장으로
    추천해달라고 사전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잘 안될 것 같고
    또 미리 만들어온 선언문을 낭독을 하려다가 되지 않자, 동조자들이 함께
    총회장을 빠져나갔던 것입니다)

    어떤 선언문을 만들때는 사전에 모여서 미리 공모하고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작업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간지 4일만에 교단을 따로 만든 경우를 보아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8)또 당시 니콜리쉬는 공산주의나라에 있는 대표자들을
    위해 서신 대리투표를 하지않게 되어있는 당시 헌법을 위배하고
    자신의 입지와 동조자를 모으기 위해 오지 못하는 대리투표자들에게
    코젤경영의 불신을 그들에게 심어주고 결국 그들을 포함하여
    몇줄 첨가하는 방식으로 서류(대리투표내용)를 만들고 ,
    자기편의 숫자를 높이는 형식 전략을 취했음


    (9)그들이 먼저 나갔고 그때 그 행동이 잘못인 것을 시인한 것이
    드러 났던 그후의 회의록이 있는가?
    ---------------------------------------------------
    있습니다
    그 초기 주동자들이 다 죽고 난후 그2세 대총회 임원들과의
    연합을 위해 상호 고백서를 주고 받은 일이 1992년에 있었는데
    그때 rm 그들이 만든 고백서에 보면 아래와 같이 알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상호)고백서 일부 참조-아래와 같음)

    1)우리는 1951년도 대총회에서 11명의 형제들의 몇몇 행동이
    부당했음을 시인하고 그 행동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3)"우리는 1951년 5월20일 항의의 표시로 11명의 대표자들이
    방을 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시인한다"

    6)"우리는 대총회 기간 바로 그때 다같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다시 분리는 정당화
    될 수없음을 확증한다"

    (나머지 생략)
    - 92년 10월16일 달스버그에서 서명됨-
    서명자: 알폰스 발박. 다니엘 뚜미뚜루, 벤자민 뷰렉
    ----------------------------------------------
    (이상 일부 발췌끝- 위의 사람은 rm측 임원들임)

    참고: 위의 자료는 그들의 대총회에선 이제와서는 상황이 달라지니
    숨기고 한국 rm교회에도 결코 보여주지않고 있으니,  rm 한국교회는
    더욱 이런 모든 사실을 모르고 있고 그들의 입장으로 좋게 만든
    반증 책자만을 맹종하다보니 그들이 도리어 정통노선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또 ims측의 비방꺼리가 될 그런 개인 서신자료를 모아
    또는 역으로 사용하도록 책자 만들어 한국에
    보내었고, 번역했는데 그들이 만든 책자료를 보면 알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만든 자료 책을 보면 주로 비난과 개인 죄를 지적하는
    그런 것을 큰주제로 사용하여 첨부하여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는 1914년부터 시작된 참된 개혁운동의 역사자료나 소식은
    이곳 ims 에 와서  알았고 rm 에 있을때엔 거의 몰랐습니다
    1888년 기별에 대한 것만 배웠던 셈입니다

    그들안에 있을때 생각해 보면 역사적인 조직 탄생과 과정에 대해
    충분한자료가 없었고 rm 대총회에서도 그동안
    배운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두무리로 터지니 그제사 설명했고
    그들은 그동안 숨기거나 조작했어야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10)교회명칭이 개혁운동과 개혁운동 ims가 어떻게 사용된것인가?
    ---------------------------------------
    (설명)
    개혁운동의 초기 이름은
    1914년이후 당시에는 처음엔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국제(세계) 선교회"였습니다

    그러다가 독일의 정권에서 자신들만의 권위와 영역을
    과시하기 위해 서인지 ,,모든 단체들이
    "인터내셔날"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가 없다고
    통보받으므로서, 교회는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개혁운동>이라고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선교회라는 명칭은 빠짐) 그러나 그후에도
    번갈아 사용하기도 했고 그 런 증거자료를 저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니콜리쉬는 총무부장으로서 역시 저희 세계선교회 성도로서
    공문에도 자신의 친필 사인이 있는 자료가 있지요


    (11)RM 에서는 개혁운동이라는 이름의 교단이 참된
    정통노선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셈인가?
    -------------------------------------
    (설명)
    한국 rm측 그들은 지금에 와서 "개혁운동"만,명칭을 사용하는 곳이
    원조무리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한국교회는 잘 모르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가 가지고 있는 나라등 년도별 교회등록증이나 공문에
    보면 알수있고 또 그동안 전쟁 여건속에서 두가지명칭을
    사용할 수밖에 없은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부적 공문에는 두가지 명칭도 사용하였고요)

    명칭 하나 때문에
    그렇다고 독일에서만도 약2,500명이 죽음을 무릎쓰고 일어난
    분리사건의 원조 개혁운동교회와 대총회의 전신무리가
    1951년에 와서 그 전신이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닐것입니다

    세계선교회"라고 명칭을 사용하다가 1925년에는
     "개혁운동" 으로 바꾸어 등록 사용하였지만 그후에도 두 명칭다
    공히 사용한 것을 알수있으며 특히 그후 1948년에
    미국 사무소 등록시의 그 명칭(개혁운동)으로 등록 사용했는데
    그들이 분리하여 독차지하고 그렇게 명칭사용하므로서 할수없이
    저희는 그들과 구별하여야하므로 "개혁운동세계선교회"(약칭ims) 로 명칭 사용한 것입니다
    (사실 분리전에는 교회명칭문제로 이렇게 왈가불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니콜리쉬가 그전부터 ims 이름으로 사용할때부터
    ims 소속 교인이라는 것에 염두를 두어야 할것입니다
    그때부터 두개의 개혁운동이 있은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인이 있는 공문이 증거가 될것입니다

    (참고자료에 보면)
    1)1920년에 세계선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엄연히 니콜리쉬 총무부장의 사인이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2) 1928년 대총회도 개혁운동 세계선교회로 등록했습니다
    3)1939년 (안식일파수꾼)이라는 잡지에서는 <개혁운동 세계선교회>
    라고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4)1940년과 1945년에 발행한 임명장에도
    <개혁운동 세계선교회(ims)>의 일원이였던 니콜리쉬의
    사인이 기록된 공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5)1949년 11월11일자의 세계선교회(ims)-"오스트레일리아연합"의
    니콜리쉬의 이름이 나오는 공문을 복사한 것을 저가가지고
    있습니다

    6)1950년에도 ims 교회명칭으로도 사용하였고 공문에 역시
    니콜리쉬 이름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때도 역시 니콜리쉬는 ims 교단의 구성원이였다는 증거입니다)

    (각자료 복사 첨부참조)

    (12)1951년 당시 퀴시너 문제이후, 다른 분리가 될만한
    충분한 문제점이 있는가?
    -----------------------------------------
    (설명)
    1951년 이전에는 신앙원칙문제로 서로의 의견차이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퀴시너 개인문제이후 다른 분리의 충분한 이유가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좋은 의견과 믿음을 강조한다고해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되며 그런 조직은 무효일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배도이며 하나님께 반역의 행위일 것입니다

    어서 그 rm노선에 모두 나오시길 기도합니다

    앞교회가 하늘의 기별을 공식적으로 배도하고 음행한 확정적인
    경우에는 또 분리가 가능하지만, 어느 성도개인의 음행으로 가지고서
    교단분리는 있을 수가 없는 이치입니다

    (4증언 17)
    "교회와 맺은 관계를 경솔하게 끊어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길이 장애를 받거나
    그들의 주장이 생각만큼 지배적인 영향을 나타내지 못할 때 교회를
    떠나가겠다고 위협한다. 사실상 교회를 떠남으로 그들 스스로가 가장
    큰 손해를 입게 된다."


    (13)덴버그룹과 1952년도에 어떤일이 있었는가?
    ------------------------------------
    (설명)
    미국의 일부형제들이였던 그들은 1951년 이전에 대총회와 불화로 행정
    을 따라지 않아 과거 징계를 받았던 교회였는데
    (그때 니콜리쉬도 같이 있었으니 잘알고 있음)

    그런데 1951년 니콜리쉬 무리들이
    ims미국사무소의 개설시 자신들이 독차지하게 되므로
    할수없이 코젤 대총회는 미국쪽 선교를 위해,, 덴버그룹을
    타진하고 합류의사를 다시 표명하므로서 화해를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을 두고 rm 측은 이때 그들과 손잡고 새로 ims대총회를
    만든 것(년도)이라고 거짓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14) ims 미국사무소 개설비용과 재산의 법정 소송은 무엇인가?
    --------------------------------------------
    (설명)
    ims 미국사무소를 개설하기위해 니콜리시를 통하여 개설의 일임
    다 맡겼으나 니콜리쉬가 자기재산으로 장악하므로서 처음에는 법정소송으로 고발
    한 것이 사실이나, 그뒤 저희 ims 측에서는 그들에게 양보하자!는 사랑의 정신에 따라
    소송을 다 취하해 준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도리어 그리스도인이 소송한 것을 보라!는 식으로 역 비난하는
    것입니다

    (15)ims 교회가 도덕적 표준이 낮은 교회인가?
    ------------------------------------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rm 측 그들이 이렇게 하여 저희 교회를 그렇게 곡해시키려는
    것입니다, 한국 rm교인들을 그렇게해서 ims 교회로 가지못하도록
    자신들의 미국rm교회에서 사전에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어
    그렇게 하려는 것입니다

    (16)그들과 연합을 시도했다가 안되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
    몇차례 시도했으나 그들측에서 뒤에 가서는 다시 연합을 변심하여 반대자가
    있었습니다(발박)
    저희는 나간 그들이 먼저 잘못을 인정한후, rm 교단을 없애고 그후 다시
    서로 새로 임원을 뽑고 새로 시작하자고했으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않고
    동일한 지분과 평등원칙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직분을 잃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같습니다)
    이렇게 하지않는다고 그들은 저희가 사랑이 없다고 도리어 선전하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단체가 하는 그런 자세로 ,,,,적당히 (인간)사랑만 가지고
    연합하는 것이 아닐것입니다
    마치 개신교가 sda와 ,서로 사랑만 가지고 교회 연합할수가 없듯이 말입니다

    교회연합에는 역사적 진실위해 세워져야 하는 것이고 회개할것은 회개하면서
    참된노선과 신앙방법을 고수하여야 하는 것이 남은 무리들의 정신이며
    후손들을 위한 모든 참된 교회의 장인 정신?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는 연합요청인것입니다

    17)2000년도의 한국교회에서의 분리는 어떻게 된것인가?
    ----------------------------------------------
    (설명
    한국의 개혁운동 의 시작은
    1951년에 분파된 그 개혁무리가 미국과 한국이 지리적으로
    가까우므로 1978년경 전후 한국에 선교사가 들어와 전도된 것이
    시작이였습니다

    그들은 아쉽게도 정통 개혁운동ims교단의 무리가 아니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초기에 시기파들도 들어와 문란이 있었고
    또 높고자하는 무리의 감투 문제가 있었으므로 한국 재림농원에
    많은 이미지를 흐리게하였고 지금까지 모 교회 기성안식일교회에서는
    오해하고 그때 일부 rm사람들의 처세로 전체 개혁운동섭리마저
    곡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초기의 선입관때문에 한국에서는 저희 개혁운동ims가
    전도하는데도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튼 그후 rm개혁운동에서 저희들도 그들과 함께 신앙 했었는데
    한국 대회장등 사역자중 대부분이 늦은비를 1888년부터 왔고 지금도
    받고 있다고 하는 가르침에 대해 수년동안 논쟁이 되어 결국 분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분리는 어떤 감정문제로서 시작한 분리가 아니고
    순수하게 진리와 오류의 논쟁속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들은 한동안 교리문제로 많은 토론을 가졌으나
    그들은 결코 사상을 바꾸지 않으므로서 결국 수십명이 따로 예배를
    하게 된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들은 그뒤 희한한 일로서 독일 IMS 대총회장(촐리취)이
    중국에 전도하러 가던차에 갑자기 비행기(한국 경유행)에서
    한국에 내리고 싶어서 내렸다 했음- 한국에 와서 우연히 인터넷으로
    알고 있던 개혁운동 개인 성도주소를 가지고 만나고 싶어 찾고
    있다가 김천까지와서 저희와 우연히 연결되어 그제사 참된
    개혁운동의 역사적 노선을 다 알게되었고
    수개월동안 비교 연구 끝에 IMS가 바른 개혁운동노선임을 다시
    발견하고 우리들은 바른 개혁운동 교단에 합류한 것입니다)

    저희가 결코 ims 교단에 가고 싶어서 그렇게 연락하여 분리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경험이요, 예기치 못했던 기적같은 사건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오류를 거절하고 진리를 찾으려는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큰 선물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모든 진리는 언젠가 이렇게 다 밝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rm측과 ims 측 양쪽 배포 책자를 비교검토한 결과
    ------------------------------------
    1)ims측의 책자료에는 - 순수하게 역사자료를 그대로 첨부하면서
    비난하려는 내용이 없는 편인데 비하여

    2)rm측의 책자료는 --변명과 역사적 사실 왜곡과 개인험담의 내용을
    주로 모아서 죄성만을 다루려는 모습이 엿보임
    (특히 1992년 상호고백서는 rm 대총회에서
    한국rm교회에 감추고 전달하지 않는 것같음)

    (결론적으로)
    1) 1951년의 이 사건을 통하여 고대 출애굽 광야노선이
    오늘날 현대 이스라앨의 영적 전진노선에 반복한다고
    본다면 이 사건은 고라의 반역사건과 너무나 내용이
    닮았다고 봅니다
    즉 고라의 반역사건이 1951년에 남은 교회안에서 반복 성취하였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2)사단은 최고의 예언진리인 계18장천사의 체계까지
    알고 있는 이 백성들을 속이는 방법은 이제는 진리로서는
    안되는 것을 알고 ,이제는 개인의 죄를 빌미를 제공,
    주장하도록하며 또 교회를 임의로 만들어라도 잘믿어야한다!
    는 그런 충동과 의식을 갖도록하여,,, 결국 남은 교회를 분리시키고
    하나된 하나님의 교회관을 파괴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간파하고, 하루속히 이런 사실을 분별하고 역사와
    예언으로 줄곳 계속되어 온, ims 교단에 합류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3)아무튼 선조들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두 교회로 나누어진 것에는
    외모로 보기에 안좋고 제3자에게 전도하기에도 이미지가 좋지않을 것은
    사실이겠으나 그렇다고 낙심만 할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하나인 것은 사실이므로 우리는 이럴 때 일수록 더욱 비교 검토하고
    분별하여 그분의 몸된 교회를 찾아서
    그분의 뜻을 기다리려는 순종의 정신을 활용해야 할것입니다

    알고보면 이런 과정속에서도 우리가 나태해 지지않고 분별력을 더욱 강화시키려는
    하나님의 포괄적인 훈련섭리도 있다고 보는 바입니다

    어떻게 되었던 우리는 남은 교회로서의 그분의 몸된 교회를 찾아서
    합류해야 합니다

    시대마다 남은 교회는 하나였습니다
    둘다 남은 교회가 될 수가 없습니다

    또 어느 교회에 있든지 개인의 품성만 준비하면 된다고 할것이 아니라,
    교회관도 분별하여 하나님을 기쁘게하고 참된 뿌리의 교회에 서슴없이
    가담하는 순종이,  진정으로 진리와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의 자세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이런 분별력있게 순종하려는 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고전11:19)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
    우리는 rm교회뿐만아니라, 어느교파에 있든지,,, 그단체는 진리교회로
     인정할수는 없겠지만
    그안의 성도님들은 당연히 오늘도 사랑할것입니다

    읽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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