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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던 이유
    GRACE
    작성일 : 16-03-18 11:24  조회 : 1,352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우리가 얻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것은 인간이 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의 속에 창조해 주신 하나님께 속한 모습 곧 하나님의 성품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보여주신 생애는 사람이 범죄함으로 잃어버린 이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함을 깨닫게 함으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 분의 거룩한 품성을 다시금 갖도록 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죄로 인해 멸망에 처하게 된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며 당신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유이다. 만일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깨닫고 믿음으로 거듭남으로 마음과 정신이 변화되지 아니하면 즉 속 사람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이 세상의 그 어느 피조물보다도 아름답고 완전하게 창조함을 받았던 한 때는 하늘의 천사장이었던 천사가 창조주만이 받을 수 있는 영광을 탐낸 나머지 하나님의 품성과는 정 반대인 상태로 전락한  죄의 아비 사탄의 종노릇을 하다가 결국엔 소망없이 죽고 말 것이다.






    사탄이 자기의 욕망 때문에 그 자신도 하나님께 속한 성품을 잃어버렸고 또한 자기 자신 뿐 아니라 그의 악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하늘 천사 삼분의 일도 자기와 같이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는데 즉 하나님의 품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정신을 갖게 하는데 성공하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께서 새로이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아름답고 순결한 한 쌍의 커플도 유혹함으로 이 성품을 잃어버리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 가운데 두시기 위하여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지어주셔으나 만일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처음에 당신을 닮도록 창조하신 그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릴 경우 아무리 아름답고 완전한 에덴동산일지라도 소용이 없는 것이 이들은 그 동산 안에서 서로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한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사탄을 꼭 닮은 품성을 가짐으로 그 안에서 싸움박질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하신 것이다. 꽃에서 악취가 난다면 그 꽃은 겉보기에 아무리  아름다와 보일지라도 꽃으로써의 의미가 없듯이 사람이 만일 그들을 지으신 자의 어떠함 즉 하나님의 품성을 잃어버리면 그는 사실 존재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만일 내가 금한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자체는 하나님의 품성을 잃어버리는 일인 것이며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을 잃어버린 일 즉 죽음과도 같다. 그리고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어긴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어도 된다고 교묘한 거짓말로  새로 지음을 받은 아름다운 한 쌍의 부부를 유혹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함으로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품성을 잃어버리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함으로 사탄은 사람과 하나님의 사이를 완전히 갈라 놓았다. 사탄은 그 일을 성공하고는 아마도 큰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도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불순종하게 하게 함으로 그는 하나님을 향한 증오심을 증폭시키며 만족해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죄인가! 자기의 증오심과 거룩하지 못한 욕망 때문에 하나님과 사랑스런 피조물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피조물들로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원수지간이 되도록 그의 온 지혜와 지능을 아끼지 않는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마땅하듯이 피조물이 그들의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모든 영광을 돌리는 일은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탄은 이와같이 마땅하고 당연한 것을 어기도록 하는데 성공하였고 그 성공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 외의 것들 즉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나 다른 어떤 것에 창조주 만이 받으실 수 있는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데에 있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십계명 중 첫째 계명을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정하신 이유이다. 나머지 계명들은 이 하나가 삐뚤어지게 됨으로써 발생된 대표적인 죄들에 관한 계명들이다. 결국 모든 죄의 원인은 피조물이 자신을 창조주 만이 받으실 수 있는 영광을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거짓된 가르침은 사실 이러한 사탄의 영의 역사에 의해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높임으로 피조물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만 하는 영광을 그 자신 혹은 다른 피조물들에게 돌리도록 하는 일이다.



    인류의 첫 시조인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의 품성을 잃어버리도록 유혹한 방법은 바로 그들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믿게 하는 일이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일임에도 그와같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는 아주 혹하는 제안을 함으로 마침내 이 아름다운 두 피조물은 그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 즉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을 자기 자신 아래 두는 일을 행하게 되었다. 이것이 죄의 시작이었고 오늘날 사탄은 인류의 시조를 유혹했듯이 이와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이 세상의 모든 인류의 문화나 종교 혹은 갖가지 사상 속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오늘날 발달한 각종 기기들과 매체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한 영혼이라도 구원에 이르게 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령은 끊임없이 역사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 성령의 역사에 반응하는 영혼들은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얼마나 이 사탄의 유혹을 따라 살아왔는지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겨우 깨닫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이 유혹에 얼마나 자주 넘아갔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나는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예수님을 통하여 분명히 보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 역할로 택함을 받은 모세는 그가 하나님의 종으로써 충실하게 행했으나 딱 한 번 하나님의 품성을 그릇 나타낸 일이 있다. 모세가 일반 사람들에 비해 이 일에 대해 큰 책임을 물으셨던 것은 모세도 하나님 앞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동일한 죄인 중의 하나이며 동일한 한 사람이지만 그 가운데에서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삼으셨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드러내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아무리 하나님 앞에 아무리 잘못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그 자신이 나타내는 일에 실패를 하면 안 되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택함을 받은 자였던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품성이 어떠함을 잘못 나타낸다면 온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어떠하심이 잘못 알려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하는 모든 이들은 각자 사실은 모세와 같은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모세는 한 민족을 상대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나타내야 했지만 우리는 우리의 가족을 비롯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바르게 나타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책임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나타내는 일이 되며 이 일에 실패하는 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심을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속에서 그리스도가 거하도록 해야 한다. 복음 전파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속에 그리스도가 거하지도 않으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맛을 잃은 소금으로 음식을 하려는 것과도 같으며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거듭남으로 우리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어떠함이 전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떠하심이 밝히 드러났던 것처럼 말이다. 영원한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이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거하게 하지 않는 이상 인간이 결국 이르는 곳은 무덤일 뿐 결코 희망이 없다.



    여전히 사탄의 정신을 품은 자들이 다시금 에덴 동산 가운데 있을지라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아비와 같이 자기가 경배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끊임없는 다툼 가운데에서 에덴의 풍족함은 서로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수단과 도구가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이러한 상태에 있으면서 영원히 이 세상이 지속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루 속히 끝나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 세상의 역사가 육천년 이상을 지속되어 온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한 구원의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처한 상황을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시며 인간을 이러한 상황에서 건져내시고 다시금 회복하여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들이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영원히 살기를 바라신다. 죄의 그늘이 조금도 없는 곳에서 말이다. 나는 이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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