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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000인의 자금이후로 죽은자의 복이 특별부활의 복일까?
    별과별
    작성일 : 05-08-11 01:10  조회 : 3,247회 
      1.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계14:13)
     
     화잇 여사가 안식일을 받아들인 것은 1846년 8월이나 9월이고, 안식일에 관한
     계시는 1847년 4월에 보았습니다.
     "자금 이후로"를 일률적으로 1844년으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안식일에
     관한 빛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죽은 사람들도 "주 안에서
     죽은 자들"입니다(살전4:16).
     실제로 화잇 여사는 계시록 14장 13절에서 "자금 이후로"를 빼고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는 부분만 인용하여 그 무리들의 수에 든다고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함께 "그 날에 주실"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었다고
     하였습니다(딤후4:7-8).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수를 마지막 세대에게만 적용하여 144,000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은데, 그 숫자는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4장 13절 자체가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에서 받는 복은 특별부활을 의미하는 복이 아닙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는 말씀은 그들이 하던 일을 다른 사람들이 계속
     수행할 것이며, 그들은 (영생의 약속 가운데) "주 안에서" 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침상에서 편히 쉽니다(사57:1-2 참조).
     
     물론 저도 세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안식일을 지킨 사람들이
     특별부활에서 일어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과 맺은 "평화의 언약"을
     "듣기 위하여" 부활하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쟁투, 637)은
     마지막 세대만이 아니라 모든 구원받은 백성들과 맺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로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롬2:13, 16).
     
     저는 평화의 언약을 맺는 그 음성을 "듣는" "그들만"이 144,000인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144,000인이지만 다른 증거들을 보면
     구속함을 받은 모든 이들이 144,000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인과 새노래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다는 것은 죄인된 인간이 그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소유로 확정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주의 양자로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마에 있는 인은 "구속의
     표"이며, "갈바리 십자가의 표"라고 하였습니다(편지 126, 1898; 화잇주석,
     겔 9:2-4; 화잇주석, 계 7:2,3)
     
     "하나님의 율법에서" 하나님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인은 넷째 계명인 안식일이
     맞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구속을 받아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들의 열매로 나타나는
     표일 때에만 그렇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았다는 것은 그 품성이 하나님의 소유로 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점도 흠도 없는 상태의 품성이 될 때에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의 도말로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결국은 몸의 구속에 참여하게
     됩니다(롬8:23).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하도록 그들 위에 치는 장막은 성령을 통해 살게될 때
     입게 되는 불멸의 몸입니다(고후5:1-5).
     
     지금까지 살던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 외에는 심판의 표준을 통과할만큼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 사람이 있으면 제시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의 점도 흠도 없어야 인을 받는다고 했는데, 1844년 이래로 이런 표준에
     이른 사람들이 있으면 제시해 보십시오.
     화잇 여사나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런 표준에 도달해서 인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사심판의 결과로 죄의 도말이 이루어질 때에야 인침이 확정되는 것입니다.
     죽은 의인들은 죽은 상태에서, 살아있는 의인들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죄가
     도말되어 흠없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스스로 안식일을 지켰다고 공언하는 사람들도 심판의 표준만큼
     완전하게 지켰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결국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율법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켜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는 "율법주의" 신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나지 않으면(요1:12-13)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할 수도 없습니다.
     
     모세오경에 나타난 복과 저주의 조건에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결과로 이방의 포로생활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는 교훈으로 나름대로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그 사상에 충실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멸시하고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그들보다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바리새인 흉내에도 따라가지 못하면서 오히려 더 의롭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마5:20)인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예정되었기 때문에(엡1:3-5),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속의 표, 곧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 인을
     받을 것이며,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 살았든지 조사심판의
     때에 하나님의 소유로 인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의 노래는 자기들을 구원한 어린양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경험있는 사람만이 부르는 새노래는 구원의 노래이며(시98:1-9),
     증언에도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3.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
     
     계시록 7장 14절의 "큰 환난"은 야곱의 환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단을 떠나서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서 당하는 모든
     환난입니다.  증언에도 이런 환난을 당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섬길 자들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서 12장 2절의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은 야곱의
     환난이지만 마태복음 24장 21절의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는 환난인 "큰 환난"은 야곱의 환난이 아니라 중세
     1,260년간의 환난입니다.
     "큰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기 때문에(마24:29) 증언에도 중세의
     환난으로 적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7장 14절의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란 이미 나왔다는 과거형이
     아니라 요한 당시에도 계속 나오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현재 분사형을
     사용하였습니다.  "큰 환난에서 나오고 있는 자들"을 뜻합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증언에는 계시록 7장 9-17절은 마지막
     세대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하였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우리가 만날 수 밖에  없는 어려움들은 그리
       스도 안에 숨은 온유함으로 말미암아 많이 면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우
       리 주의 겸비를 가졌다면 날마다 겪는 냉담과 거절과 괴로움을 극복할 것
       이며 이런 것이 심령에 음울함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고결
       성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자제이다. 가혹하거나 잔인한 취급을  받을 때
       침착하고 신뢰하는 정신을 보존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완전
       한 품성을 자기 안에 드러내실 권리를 그분으로부터 빼앗는 것이다. 마음
       의 겸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승리를 주는 능력이다. 이것은 하
       늘 궁정과 연결된 증거이다.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  138:6)신다. 하나님께
       서는 그리스도의 온유하심과 겸손한 정신을 나타내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
       신다. 그들이 비록 세상의 멸시를 받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은 큰 가치가 있다. 지혜자와 위인과 자선하는 자들만이 하늘 궁정에
       들어갈 통행권을 얻는 것이  아니며, 열성과 쉼이 없는  활동으로 분주한
       일꾼만이 얻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거하시기를 갈망하는 마
       음이 가난한 자,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최고의 희망으로  삼는 마음이 겸
       손한 자, 이런 사람들이 넉넉히 들어갈 권리를 얻을 것이다. 그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만든 자들의 반열(number)에  들어갈 것이
       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계
       7:15)라.
       (소망, 301-302)
      
       They will be among that number who have washed  their robes and made
       them white in the blood of the Lamb. "Therefore  are they before the
       throne of God,  and serve Him  day and night  in His temple:  and He
       that sitteth on the throne shall dwell among them." Rev. 7:15.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만든 자들의 수(number)"에 포함되는
     자들이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도 포함되며,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 속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44,000인만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다고 할 때에, 마지막 세대만
     들어간다고 하면, 그것은 증언의 한 부분을 극단적으로 적용하여 다른 부분을
     버리는 것입니다.
     
     
     4. 환난 날에 쉬는 것이 환난을 겪는다는 뜻인가?
     
     해스팅즈 부인이 "환난의 때에 편히 쉬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 야곱의
     환난의 일부분을 경험할 것이라고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특별부활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은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시기를
     지내고, 야곱의 환난을 견디어"(쟁투, 648) 서는 사람들에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죄가 있을까 살피며,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도록 밤낮
     부르짖는" 야곱의 환난에,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불멸의 몸을 입고 죽을 수
     없도록 부활한 사람들이 어떻게 참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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