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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림교회의 현실
    부흥과 개혁
    작성일 : 08-06-01 10:27  조회 : 2,001회 

    미주재림교회 게시판에서 퍼옴


    1년 여간 “예언의 신”을 탐구하고 진리를 확신하여 남은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97년 장로교회에서 재림교회로 개혁할 때 나를 이끈 분은 엘렌 G. 화잇 이었습니다.
    그 후 전도단 활동을 통해 복음을 전하다가 신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이 도무지 “예언의 신”을 통해 알게 된 내용들과는 충돌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빛으로서 보완하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주장들인 새로운 신학(신 신학)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교수님들을 존중하여 그 사상들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그러나 내 양심은 끝없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예언의 신”이 말하는 대로 가르칠 것이냐? 학교에서 배운 것을 가르칠 것이냐?
      
      아래는 멀빈 맥스웰 목사님께서(앤드루스 세미나리 역사신학교수로 은퇴, 다니엘/계시록연구 저자) 북미지회에 보낸 호소 편지 중 일부를 재구성하였습니다.

      “재림 교인의 공개토론장(Association of Adventist Forums)”에서부터 흘러나와 데스몬드 포드의 신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펴내는 월간지 “스펙트럼(Spectrum)”이 있습니다. 거기서 주장하는 ①엘렌 화잇 비판론 ②성소교리 배척론 ③세 천사의 기별을 뒷전에 미룬 사회개혁운동 ④생명 창조 후 수백 만 년이 흘렀다는 장구한 연대 설에 흥분 뇌동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91년 5월호 “스펙트럼”은 “짐승과 함께 자람”이라는 기사와 “사회 개혁으로서의 재림성례”란 기사를 발표했습니다. 그 글들을 읽어보니 계시록의 짐승들을 사회적 병폐로, “남은 자손”을 사회 개혁의 투사로 재해석했습니다.
      1992년 3월호 “스펙트럼” 63, 64 페이지에는 대총회가 “국제 동족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SDA Kinship International-재림교인 동성연애 집단)”를 상대로 낸 상호 법 소송에 패소했다는 기사를 읽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3월호 9-12 페이지에 실린 데스몬드 포드에 대해서 데스몬드 포드자신이 쓴 기사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강력한 “스펙트럼”의 지지자들이 우리 대학의 학장 자리들을 차지하고 있는 한 우리 교인들이 교단 교육에 무었을 기대 할 수 있겠습니까? 아틀란틱 유니온 대학의 학장은 어떤 은퇴 교육자가 창조 후 여러 백 만년이 경과했다는 연대 설을 지지하고 나오자 그를 칭송한 사람이 아닙니까?

      화잇은 믿지만 그의 “하늘성소”교리는 잘못됐으며, 화잇은 믿지만 “일요일휴업령”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고, 화잇은 믿지만 그가 말한 “지구 6000년 설”은 잘못 됐고, 화잇은 믿지만 “건강기별”은 율법주의요 극단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일들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지요. 언제나 원인은 결과를 낳는 법이지요.

      얼마 전 KASDA 게시판에 어느 지식인께서 “이러한 신학들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오직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한 글을 보았습니다.
    맞습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완벽하며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싸구려 덤핑으로 처리하는 일들은 결국 영원히 잃어버린바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SDA가 탄생하기 전에는 “예수 믿고 구원 받는다”는 복음이 없어서, “안식일” 지키는 교회가 없어서 재림교회를 탄생시킨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재림신학은 ⑴ 1950년대에 일어난 “신신학”을 염려하고 ⑵ 예수는 아담처럼 깨끗하게 창조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와 같이 인간의 유전을 받고 태어났었음을 강조하며 ⑶ 재림 맞을 준비에 필요한 성품의 완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주장들은 교단내의 자유주의적 신신학파 뿐만 아니라 일부 보수적이라고 불리 우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성가신 소리가 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1950년대에 북미 지회에서 가르쳐졌던 재림 신학은 분명한 변화를 격어야 했는데, 그 변화는 “교리들에 관한 질문(Questions on Doctrine)”의 편집인 중에서 두 명의 저자와 앤드루스 대학에서 매혹적인 설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두 명의 세미나리 교수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그 변화는 오늘날까지 지속되었으며 그 후에 교육과 행정의 고위직에 오른 당시의 학생들에 의해서 왜곡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1950년대에 소수에 의해서 가끔씩 주장되었던 특정한 견해들이 우리들의 학교를 거쳐 간 수많은 재림 신도들에 의해서 재구성되고 새로운 강조점들이 추가되어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오늘날 재림 교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학적 분리 현상을 보고 있는데 이 분리 현상을 다음과 같은 두 그룹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합니다.
      첫째 그룹은 우리의 대학에서 비 재림 교회 출신인 신학자들의 글과 책들을 연구한 사람들이고, 둘째 그룹은 우리의 재림 교회의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그들의 연구를 대부분 성경과 예언의 신에 한정 시켜온 사람들 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타락 이전 아담의 인성과 같은 인성이 아니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신신학파의 아우성을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정직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성경과 예언의 신을 다시 살펴봅시다. 신신학파들의 표현대로 표절인 “시대의 소망”을 택하던지 신학자들의 이론을 택하던지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4천 년간 인류는 체력과 정신적 능력, 그리고 도덕적 가치가 퇴보되어 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퇴보된 인류의 연약함을 취하셨다”(DA 100).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8).

      솔직히 말합시다. 논쟁은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논쟁을 공개적으로 시작한 것은 1949년 판 “바이블 리딩스”, 1957년 판 “교리에 대한 질문”, 그리고 몇몇 신신학 교수들과 그들이 길러낸 후진들 입니다. 그 논쟁 가마는 그 후 보수파와 신신학적 자유주의파들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끓고 있지요. 그런데 자유주의자들이 현재 교단의 언론과 학원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주요 출판 기관과 대학들을 신신학파가 장악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충성된 교인들이 옛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을 때 받았고 또 생명을 바쳐서 받들기로 한 옛 가르침의 근거와 정당성을 옹호할 때 ‘17세의 어린 화잇에게 묶여있는 사람들’이라는 비난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또한 자유주의 물결이 흘러들어와 오늘날 개심치 않은 자들을 교회에 묶어두기 위해 벌리고 있는 이른바 축제식 예배 때문에 깊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재림교인들을 누가 위로합니까? 그 한심하고 저급한 복음주의파식 흥행판에 밀려 올데갈데없는 저들을 위해서 누가 대변을 할 것입니까?

    신 신학에 물든 교단의 지도자들은 바벨론에 가서 배운 방법들을 남은 교회에 적용시키기 위해 즐거이 앞장서고, 성경과 예언의 신 밖에 모르는 무지한 평신도들은 이것은 아니라며 가슴을 치는 교회형편은 하나님께서 탄식할 만합니다. 하나님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내고 언제쯤 우리가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는 남은 백성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어제 밤엔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배도하는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통탄스럽고 재림교회의 미래가 염려스러워 애통하는 마음이 가득 차 힘든 밤을 보냈습니다.
    재림교회 안에 상상할 수도 없는 이러한 이상한 현상을 보면서 주의 재림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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