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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3218번 박**씨의 댓글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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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기
작성일 : 16-11-29 22:16
조회 : 1,4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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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3218번 박**씨의 댓글에 대한 답변
@ 건강개혁은 개인 주관대로 하면 된다? 권유도 하지마라? (목사들과 백성들은 그 문제를 검토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깨닫도록 강조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에게 지워진 사업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건강개혁이라는 단어조차도 이해 못하시니 그러한 구차한 말로 자기 합리화를 하네요. 그럴듯한 변명이지만 어림없는 사단의 정신이고 멸망의 사고가 넘치는 추악한 지도자의 궤변적인 논리일 뿐입니다. 왜냐고요? 우리에게 절제와 인내의 말씀을 주시고 오늘도 우리를 영육간에 도우시는 분을 욕보이고 자신도 맛있게 먹고 마시는 일에 모본을 보이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이라 매도하지요.
"건강개혁은 세 천사의 기별의 일부이며, 마치 팔과 손이 인간의 육체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 기별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1T 486> 세 천사의 기별이 마지막 기별로 설교하고 있지요?
“천사가 금지한 것에는 “부정한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정하고 부정한 식품을 구별하는 것은 단순히 의식적(儀式的)인 것에 불과하거나 독단적인 규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위생의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유대 백성들을 특출하게 만들어 왔던 경이로운 생명력의 비결은 이러한 구별을 엄수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절제의 원칙들은 주정음료의 사용을 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이상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극성 식물과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을 사용하는 것은 흔히 주정음료와 똑같이 건강에 해롭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술 취함의 씨앗을 심는다. 참된 절제는 해로운 것은 모두 완전히 버리고 건강에 이로운 것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친다. 식사의 습관이 그들의 건강과 그들의 품성과 이 세상에서의 유용성과 그들의 영원한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깨달아야 할 만큼 깨닫는 자가 거의 없다. 식욕은 항상 도덕적·지적 능력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육체는 마음의 종이 되어야 하며 마음이 육체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PP 562>
어떤 사람들은 이 개혁 사업을 조소하고, 그것이 전혀 쓸데없는 것이며 현대 진리에서 마음을 분리시키는 하나의 자극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문제가 극단으로 치우쳤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경건을 공언하는 남녀들이 그들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병이 들어 있고, 타락한 식욕의 만족과 과도한 노동으로 그들의 육체적·정신적·도덕적 능력이 약화되어 있으면서 어떻게 그들이 진리의 증거를 헤아리며 하나님의 요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도덕적·지적 능력이 흐려 있다면, 그들은 속죄의 가치나 고상한 하나님의 사업의 특성을 분별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데서 기쁨을 얻을 수도 없다. 어떻게 신경성 소화 불량자가, 그에게 있는 소망의 까닭을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답할 준비를 언제나 갖추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얼마나 속히 정신이 혼란해지고 흥분되고, 자신의 병든 상상력에 의하여 전혀 그릇된 빛으로 문제들을 보게 되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특징지었던 온유와 안정이 결핍됨으로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다툼에서 그의 신앙 고백에 욕을 돌리게 될 것인가? 높은 신앙적 차원에서 문제들을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하여 철저한 개혁자들이 되어야 한다.
식사 습관이 사람의 건강과 품성, 이 세상의 유용성과 영원한 운명에 참으로 크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하여 충분히 각성하고 있는 자들은 여전히 별로 없다. 나는 하늘에서 온 빛을 받아들이고 빛 가운데서 걸어가는 유익을 깨달은 자들에게, 아직도 지식이 없어서 고통당하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나타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보았다. 구주께서 신속히 나타나시기를 바라고 있는 안식일 준수자들은 이 위대한 개혁 사업에 있어서 관심의 부족을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남녀들은 교훈을 받아야 하고, 목사들과 백성들은 그 문제를 검토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깨닫도록 강조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에게 지워진 사업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1T 488>
@ 화잇 선지자가 파와 마늘을 먹지 말라고 안했다?
애굽의 음식을 먹고자 했으며, 창조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음식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고, 만나가 그들의 필요에 가장 적합했다는 끊임없는 증거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고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파들 중에 한 사람도 약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라는 말씀은 애굽의 음식에 대한 긍정입니까? 부정적인 권고의 말씀인가요?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이와 같이 그들은 창조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음식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만나가 그들의 필요에 가장 적합했다는 끊임없는 증거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고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파들 중에 한 사람도 약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DA 379>
오늘날과 같이 조급한 시대에 있어서는 음식에 자극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 좋다. 양념은 본질적으로 해롭다. 겨자와 고추, 조미료, 피클, 기타 이러한 특질의 것들은 위장을 자극하고 혈액에 열을 주고 피를 불결하게 한다
샐러드는 기름과 식초로 조리되는 데 위장 안에서 발효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음식이 소화되지 않으며 오히려 부패한다. 다시 말하면 썩는다. 그 결과로 피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며 오히려 불결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간장과 신장에 고장이 생긴다
@ 화잇 선지자가 말하지 않아서 인정할 수 없다? (선지자도 알지 못해도 순종함)
화잇 선지자를 마지막 선지자로 고착화하고, 선지자보다는 다르게 생각하는 오류로 말미암아 오늘의 명제에서도 지도자의 글에서 발견되어, 타인들이 ‘교주’로 인식하는 결과로 유발하였습니다. 마지막 절대적 선지자가 아님을 계속 말씀으로 증명하였으나 지금도 옛 노래만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도 모든 것을 미주알고주알 완전하게 알지도 못했고 확실한 언질도 없었는데 그렇다면 화잇선지자의 글에 없으면 무조건 부정하면 정답이 되나요? 귀하는 선지자가 타 교단에서 말하는 교주로 인정합니까?
그것이 귀하가 말하는 극단입니다. 왜 말씀을 계속 연구해야 합니까? 왜 더 높은 표준으로, 더 밝은 빛을 받아야합니까? 화잇이 없는데 어떡하지요? 화잇에게 구원의 진리가 모두 주어졌나요? 더 이상 말씀과 성령의 사역은 필요 없나요? 보좌와 네 생물의 진리를 아신다면 영원한 전진뿐임을 아실텐데요...
“나는 약간의 소금을 사용함으로 언제나 소금을 가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빛에 의하면 그것은 해가 되는 대신에 피를 위하여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무엇 때문에 그런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대로 나는 그 지시를 그대에게 전할 따름이다”.<CD 345>
@ 귀하의 논리로 방종 하는 식습관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모두에게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식욕의 방종은 모든 죄의 근원<CH 110> 식욕의 방종은 곳 죄이다<CH 21> 식욕의 방종은 도덕적 능력을 약하게 함<고 1901.11.12> 두뇌와 위장의 교감으로 잘못 먹으면 잘못 생각함<CD 405>
식욕의 방종은 불화, 싸움, 부정직 등의 원인<CD 53> 식욕의 방종은 죄가 죄로 보이지 않게 함<CD 146> 거룩함을 이루려면 절제의 공과를 배워야 함<DA 101>
사단은 그들을 유혹하여 이런 제한을 불공평하고 잔인한 일처럼 생각하게 했다. 사단은 제한받지 않은 식욕의 방종이 호색을 낳게 하기 쉬운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금지된 것을 갈망하게 하였다. 이 방법을 통하여 백성들이 더 쉽게 그의 지배 하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질병과 불행의 창시자 사단은 최대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곳에서 사람들을 습격할 것이다.
하와를 유혹하여 금단의 열매를 먹게 한 때로부터 사단은 식욕에 호소하는 유혹을 통하여 광범위하게 사람들을 죄로 몰아넣었다. 그들을 정욕의 방종으로 이끄는 먹고 마시는 데의 부절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불평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도덕적 의무를 무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준다. 이런 사람은 유혹이 엄습해 올 때 그것을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PP 378>
남녀들이 건강 법칙에 순종하여 살지 않고, 이 위대한 원칙을 개인적인 의무로 삼지 않기 때문에, 그 도덕적 능력이 약화된다. 부모들은 자기의 후손에게 자신들의 타락한 습관과, 피를 더럽히고 지력을 약화시키는 몸서리나는 질병들을 물려준다. 대다수의 남녀들은 자기들의 신체 법칙을 모르고 있으며, 지력과 도덕력에 손실을 보면서 식욕과 정욕에 방종하며, 천연의 법칙을 범하는 결과에 대하여 일부러 알지 않으려 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들은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독약을 사용하면서 타락한 식욕에 방종 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피를 더럽히고 신경력을 서서히 먹어 들어가 마침내 병과 사망을 자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20 그들의 친구들은 이렇게 행동한 결과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그들이 천연의 법칙에 반역하였고, 천연의 법칙을 이같이 악용한 벌을 당했다. 고통과 사망이 지금에 와서는 곳곳마다, 특히 어린아이들 중에 보편화되어 있다. 이 세대와 최초 이천년 동안에 살았던 사람들 사이의 대조가 얼마나 현저한가!<CD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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