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일 교과

     
    11월 4일(안) 탕자
    선교부
    작성일 : 23-10-31 06:02  조회 : 114회 
    탕자
    일몰 : 5시 32분

    “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저에게 돌아올 재산의 몫을 주소서.’라고 하니, 그 아버지가 자기 살림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더라.” (눅 15:11, 12)

    “이 청년은 아버지에 대한 의무감도 갖고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에게 대한 감사를 나타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히려 아들로서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특권만을 주장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기 몫으로 받게 될 유산을 지금 받기를 원했다. 그는 현재의 낙을 누리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장래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 실물 199.

    1. 이 땅에 언제부터 잃어버린 아들들과 딸들이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두 가지의 죄가 이 땅에서 증가됨을 보셨습니까?

     

    전 7:29 보라, 이것이 내가 알아낸 유일한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들은 많은 계략들을 고안해 냈다는 것이라.

    사 1:2,3 오 하늘들이여, 들으라. 오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주께서 말씀하셨도다. 내가 자녀들을 양육하고 육성시켰으나 그들은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도 자기의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기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렘 2:13 이는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범하였음이니, 즉 그들이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렸음이요, 또 물통들을 만든 것인데 물을 저장하지 못할 깨진 물통이라.

     

    여기에 묘사된 죄인의 형편은 얼마나 비참한가! 비록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에 둘러싸여 살지만 방종과 죄악적 쾌락에 몰두하는 죄인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는 것만큼 바라는 것은 없다. 죄인은 감사하지 않은 탕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선물을 마치 자기가 응당 받아야 할 권리로 생각하고 주장한다. 그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아무런 감사도 돌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사랑의 봉사도 하지 않는다. 가인이 자기의 살 곳을 찾기 위하여 주님의 앞을 떠나간 것처럼, 또는 탕자가 “먼 나라”로 떠나간 것처럼 죄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롬 1:28).” - 실물 200.

     

    2. 동생은 무엇을 탕진했습니까? 그의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눅 15:11-13 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12 그 중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저에게 돌아올 재산의 몫을 주소서.’라고 하니, 그 아버지가 자기 살림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더라. 13 얼마 후에 작은아들이 모든 것을 모아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그곳에서 방탕하게 살면서 자기 재산을 낭비하더라.

     

    “집에서 떠나 “먼 나라” 로 갔다. 돈을 넉넉히 가지고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된 이 젊은이는 자기 마음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몹시 기뻐하였다. 그 곳에는 그렇게 하면 네게 해가 될 터이니 그 일을 하지 말라고 하거나 이것이 옳은 일이니 이 일을 하라고 말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악한 동무들은 그로 하여금 더욱 큰 죄에 빠지도록 부추겼다. 그리하여 그는 “방탕하게 살면서 자기 재산을 낭비”(눅 15:13)하였다” - 실물 199.

     

    3. 재산을 탕진한 결과로 탕자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늘 아버지를 떠난 자들에게 사단은 무엇을 합니까?

     

    눅 15:14-16 그가 모든 것을 탕진한 후에 그 나라에 큰 기근이 들어 궁핍하게 되기 시작하니 15 그가 나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더라. 그 주인이 그를 자기 농지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한지라. 16 그가 돼지가 먹는 곡식 껍질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으나, 그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벧후 2:18,19 그들은 헛된 말로 자랑하며, 잘못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온전히 피해 나온 자들을 육신의 정욕과 더 많은 방탕함으로 유혹하며, 19 그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나 자기들 자신은 타락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정복을 당하면 그는 정복한 자의 종이 되는 것이라.

    잠 1:10 내 아들아, 죄인들이 너를 유혹할지라도 동조하지 말라.

     

    “이 둘째 아들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제재에 몹시 싫증이 났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의 자유를 구속한다고 생각했다. 자기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돌보심을 오해하고 그는 자기의 기분을 좇아 살기로 결심하였다.” - 실물 198.

     

    “그가 자신을 돌아보고”

    4. 가진 것과 없는 것의 큰 차이를 보면서, 비유 속의 탕자의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눅 15:17-24 그때 그가 자신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내 아버지의 많은 품꾼들은 먹을 것이 풍족하고도 남는도다. 그런데 나는 굶어 죽어 가는도다! 18 이제 내가 일어나서 내 아버지께로 가리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리니, 아버지여, 내가 하늘을 거역하여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나이다. 19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만한 자격이 없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소서 하리라.’ 하고 20 그가 일어나서 자기 아버지에게로 갔는데 그가 아직도 멀리 있을 때,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게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맞추더라. 21그때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을 거역하여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나이다. 나는 더 이상 아들이라고 할 만한 자격이 없나이다.’라고 하더라. 22 그러나 그 아버지가 자기 종들에게 말하기를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그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이리로 끌어내어 잡아서 먹고 즐기자. 24 이는 이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또 잃어버렸다가 찾았음이라.’고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기 시작하더라.

    하나님의 사랑은 아직도 하나님을 떠나 살기로 선택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며 그는 아직도 그러한 사람을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감화를 끼치고 계시다. 가련한 형편에 빠진 탕자는 “그가 자신을 돌아보았고 사단이 그에게 행사한 기만적 세력은 깨어졌다. 그는 자기의 고생은 자기의 어리석음의 결과임을 깨닫고 “내 아버지의 많은 품꾼들은 먹을 것이 풍족하고도 남는도다. 그런데 나는 굶어 죽어 가”리라고 말한다. 탕자는 비록 가련한 처지에 있었으나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확신하고 소망을 갖게 된다. 그를 집으로 이끌리게 한 것은 곧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이와 같이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강권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보증이다.” - 실물 202.

     

    큰 아들의 생각

    5. 그의 동생이 돌아왔을 때 형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알고 이해해야만 합니까?

     

    눅 15:25-28 그때 큰아들은 들에 있었는데, 그가 집 가까이 왔을 때 노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종 하나를 불러서 이것이 무슨 일인지 묻더라. 27 종이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동생이 돌아와서 당신의 아버지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이는 아버지께서 무사하고 건강하게 돌아온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니이다.’라고 하니 8 그가 화가 나서 들어가기도 싫어하더라.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나가서 그에게 권하더라.

    갈 6:1,3 형제들아, 어떤 사람이 무슨 잘못을 범하였으면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런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지 아니하도록 하라.

    약 5:20 그 죄인을 자신의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그 사람은 한 사람의 혼을 사망에서 구원하게 될 것이며, 수많은 죄들을 덮게 되리라는 것을 그로 하여금 알게 하라.

     

    구주의 비유 가운데서 지금까지는 이 기쁜 장면의 화음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 없었으나 이제 주께서는 이와는 성질이 다른 이야기를 소개하신다.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큰아들은 들에 있었는데, 그가 집 가까이 왔을 때 노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종 하나를 불러서 이것이 무슨 일인지 묻더라. 27 종이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동생이 돌아와서 당신의 아버지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이는 아버지께서 무사하고 건강하게 돌아온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니이다.’라고 하니         그가 화가 나서 들어가기도 싫어하”였다. 이 형은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자기 부친의 염려를 나누지도 아니하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처럼 잃었던 동생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지도 않았다. 기뻐하는 노래 소리는 그의 마음에 아무런 즐거움을 주지도 못했다. 그는 한 종에게 그 잔치의 까닭을 물었고 종의 대답은 그로 몹시 질투하게 만들었다. 그는 잃었던 동생을 만나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탕자를 후대하는 것이 자기를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했다.”-실물,207.

     

    6. 동생이 돌아와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는 어떻게 아버지의 잘못을 드러냈습니까? 그는 어떻게 느끼고 그의 행실에 대해 무엇을 주장했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반대로 유대 전통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눅 15:29-31 그가 자기 아버지께 대답하여 말하기를 ‘보소서, 수년 동안 내가 아버지를 섬기고 어느 때에도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으나 내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나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시지 않았나이다. 30 그러나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더불어 탕진해 버린 아버지의 이 아들이 돌아오자마자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셨나이다.’라고 하자 31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고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이지만

    마 15:8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또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그의 부친이 나와서 그를 달랠 때에 그의 교만과 악의가 드러났다. 그는 자기 아버지 집에서의 자신의 생활을 보수 없이 일한 봉사의 쳇바퀴 생활로 논한 다음 그 사실을 방금 돌아온 동생에게 베풀어진 호의와 비교했다. 그는 이때까지의 그의 봉사는 아들로서가 아닌, 종으로서의 봉사였다는 것을 밝히 드러냈다. 자기 아버지 앞에서 일하는 것을 영구적인 기쁨으로 생각했어야 할 그가 자기 근로 생활(勤勞生活) 에서 생기는 소득(所得)만을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가 한 이 말은 단지 그의 근로에 대한 소득을 얻기 위하여 죄악적인 쾌락을 삼가왔다는 것을 나타낸다. 만일 이 동생이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 받게 된다면 자기는 맏아들로서 몹시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동생이 후대 받은 것을 시기하였다. 또 형은 만일 자기가 아버지였더라면 그 탕자를 맞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형은 그를 자기의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냉정하게 “이 아들”이라고 말했다.”-실물,207.

     

    구원을 위해 다리를 놓음

     

    7. 이 비유에서 두 형제로 대표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그분의 첫 제자들에게와, 또 마지막 시대의 충실한 재림신자들에게 동일하게 무엇을 분부하셨습니까?

     

    눅 15:32 너의 이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어버렸다가 찾았기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니라.’고 하더라.”고 하시니라.

    마 10:5-7 예수께서 이 열둘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6 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서 전할 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사 58:1, 12 아끼지 말고 크게 외치며,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이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들을 보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옛 황폐한 곳들을 세울 것이요, 네가 많은 세대들의 기초를 일으켜 세우리니 네가 ‘파괴된 곳의 보수자’라, 또 ‘거주지로 가는 길을 복구하는 자’라 불리리라.

     

    “여기에 나오는 맏아들은 세리와 죄인으로 간주되던 사람들을 업신여기던 그리스도 당시의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과 각 시대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저희 자신이 그다지 큰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방자들을 저희의 입장에서 논박하셨다. 그들은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과 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특권을 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의 아들들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사실은 품꾼의 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에 근거해서 일하지 아니하고 보수를 받을 생각으로 일했다. 저희가 보기에는 하나님은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주인과 같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리와 증인들에게 당신의 은혜의 선물 곧 랍비들이 수고와 고행(苦行)을 해서 얻으려던 선물을 아낌없이 받으라고 초청하시는 것을 보고 몹시 화가 났다. 부친의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케 한 탕자의 귀가가 그들에게는 오히려 질투심을 일으킬 뿐이었다.” - 실물 209.

     

    더 연구하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봉사는 이것이니 곧 “사악한 결박을 풀어 주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며 억압받는 자들을 놓아주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냐?네 골육으로부터 자신을 숨기지 아니하는 것”(사 58:6, 7)이다. 그대 자신이 오직 그대의 천부의 사랑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대는 죄 가운데서 고생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불행을 당한 자와 참회하는 자들을 질투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에서 이기심의 얼음이 녹아내리면 그대는 하나님과 같은 동정심을 가지게 되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게 될 것이다.” - 실물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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