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일 교과

     
    10월 28일(안) 선한 사마리아인
    선교부
    작성일 : 23-10-23 06:41  조회 : 124회 
    선한 사마리아인
    일몰 : 5시 39분

     “그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나이다.”라고 하니,” (눅 10:27)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마음에는 사랑의 결핍이 일어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접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주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인성과 신성이 결합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결되면 우리는 우리의 동료 인간들과도 사랑의 금고리로 연결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긍휼과 동정심이 우리의 생애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궁핍한 자들과 불행한 자들이 우리를 찾아오기까지 기다리지 말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동정해 달라는 간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시던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궁핍한 자와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실물 384.

    진정한 부

     

    1. 창조주는 인간의 마음에 어떠한 큰 사랑을 개발되도록 하셨습니까? 그분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시 73:25-27 하늘에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 위에도 주 외에는 내가 사모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26 내 육신과 내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힘이시요, 영원히 나의 분깃이시니이다. 27 보소서, 주로부터 멀리 있는 자들은 멸망하리니 주께서는 주를 떠나 음행하는 자들을 모두 멸망시키셨나이다.

    요 3:16,17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 17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하여 세상이 구원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일 4:8-10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 9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로 그를 통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여기에 사랑이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아들을 우리 죄들을 위하여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라.

     

    “자아가 그리스도께 몰입될 때에 사랑은 저절로 생겨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완성은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계속해서 일어날 때 곧 하늘의 햇빛이 마음에 충만하고 얼굴에 나타날 때에 이루어진다.” - 실물 384.

     

    2. 율법사가 예수님께 어떤 단순한 질문을 하였습니까? 그분께서 대답하신 후 그는 어떻게 반문을 하였습니까?

     

    눅 10:25-29 그런데, 보라, 한 율법사가 일어서서, 주를 시험하여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내가 영생을 상속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리이까?”라고 하니 26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너는 어떻게 읽느냐?”고 하시더라. 27 그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나이다.”라고 하니, 28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옳게 대답하였도다.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네가 살리라.”고 하시더라. 29그러나 그는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하고 싶어서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그런데 누가 나의 이웃이니이까?”라고 하니

     

    “유대인들 사이에 “누가 나의 이웃이니이까” 라는 질문은 끝없는 논쟁을 일으켰다. 그들은 이방 사람들과 사마리아인들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외인이요 원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희 나라 사람들을 어떻게 구별하며 여러 같지 않은 계급의 사람들을 어떻게 구별할 것이냐가 문제였다. 제사장들과 랍비들과 장로들은 누구들을 이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들은 저희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의식으로 한 평생을 보냈다. 그들은 무식하고 부주의한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면 더러워지게 되며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를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이 “깨끗지 아니한 자”들을 이웃으로 여겨야 했는가?” - 실물 376.


     

    3. 한 때 바리새인이였던 바울은 열계명 중 두 번째 돌비에 있는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의 의미를 어떻게 제시하고 있습니까?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납니까?

     

    롬 13:8-10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어떤 빚도 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이룬 것이니라. 9 이 이것, 즉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 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 너는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너는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이 말씀으로 모두 요약될 수 있음이니, 즉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 10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마 22:37-4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38 이것이 첫째며, 큰 계명이니라. 39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40 모든 율법과 선지서들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느니라.”고 하시더라.

    요일 4:20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라. 눈으로 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

     

    “법궤 안에는 금으로 된 만나 단지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책과 같이 접어진 두 돌비가 들어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 돌비를 펴셨고 나는 그 위에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십계명을 보았다. 한쪽 돌비에 있는 네 계명이, 다른 쪽 돌비에는 여섯 계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 초기 32.

     

    4. 다섯째 계명에 따르면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은 누구입니까? 그렇다면, 유대 지도자들은 이 계명을 어떻게 해석하였습니까? 이웃 간에 생겨나는 피해와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하였습니까?

     

    엡 6:2,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째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되고 또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니라.

    마 15:4-6 하나님께서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하셨느니라. 5 그러나 너희가 말하기를 ‘나로 인하여 유익을 받게 될 것은 무엇이나 예물이라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6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하니, 그렇게 해서 너희는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기시키고 있는 것이라.

    출 21:35 만일 어떤 사람의 소가 다른 사람의 소를 다치게 하여 죽으면 그들은 산 소를 팔아서 그 대금을 나눌 것이요, 죽은 소도 그들이 나눌 것이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문제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써 대답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이웃이 우리가 속한 교회의 교인이나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인종이나 피부색이나 계급적 차별과는 관계가 없다. 우리의 이웃은 그가 누구이든지간에 우리의 도움이 요구되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이웃은 역경으로 말미암아 매를 맞고 상함을 받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의 소유물인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 실물 376.

     

    감정의 대립

    5. 비유에서 이웃의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실패한 자들은 각각 어떤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이었습니까? 심각하게 상처를 입은 자의 필요에 누가 책임을 다해 임하였습니까?

     

    눅 10:30-33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입히고 반쯤 죽은 채로 버려 두고 갔느니라. 그때 어떤 제사장이 우연히 그 길을 가다가 그를 보았으나 다른 편으로 지나갔으며 또 마찬가지로 한 레위인도 그곳에 있다가 다가가서 그를 보고 다른 편으로 지나갔느니라. 그러나 여행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이 그에게 와서 그를 보고 가엾게 여겨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사람들은 유대 광야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길은 황무지를 지나 바위들이 많은 산골짜기로 나 있었다. 그 길에는 때때로 강도가 출몰했으며 난폭한 사건이 벌어지곤 했다. 이야기 가운데 한 사람이 습격을 받아 귀중품을 빼앗기고 거의 죽게 된 채로 길가에 쓰러져 있던 곳은 바로 그러한 곳이었다. 그가 그렇게 쓰려져 있을 때에 한 사람의 제사장이 그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얻어맞아 많은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그 사람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아니하고 떠나가 버렸다. 그는 “그를 보았으나 다른 편으로 지나”(눅 10:31, 32)갔다. 다음에는 한 레위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하는 호기심에서 발을 멈추고 그 강도 만난 사람을 자세히 보았다 그는 자기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알았으나 그 일은 자기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차라리 그리로 오지 않았더라면 상처 입은 그 사람을 보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후회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일이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자위하면서 그 역시 “그를 보고 다른 편으로 지나”(눅 10:31, 32) 버렸다.” - 실물 379.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사랑함

    6. 사마리아인은 그의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하였습니까? 예수님은 비유를 마치신 후, 그 율법사에게 무엇을 질문하였습니까?

     

    눅 10:34-37 그가 그 사람에게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상처를 싸매 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그를 돌보아 주었느니라. 35 그 다음 날 그가 떠나면서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얼마가 더 든다 해도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으리라.’고 하였느니라. 36 너는 이 세 사람 중에서 누가 강도들을 만난 사람의 이웃이었다고 생각하느냐?”고 하시니 37 그가 말씀드리기를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니이다.”라고 하더라. 그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고 하시더라.

     

    “그리스도께서 이 교훈을 주실 때에 직접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율법의 원칙을 제시해 주신 동시에 그 청중들에게 저희가 이 원칙들을 실행하는 일에 태만히 하고 있음을 지적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하고 예리했으므로 청중들은 책잡을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율법사는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서 한마디도 책잡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에 대해 가졌던 그의 편견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민족적 편견에서 탈피하지 못했으므로 사마리아인이라는 말을 씀으로 그들에게 명예를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너는 이 세 사람 중에서 누가 강도들을 만난 사람의 이웃이었다고 생각하느냐?””(눅 10:36)고 물으셨을 때에, 율법사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니이다.””(눅 10:37)라고 대답하였다.” - 실물 380.

     

    7. 누가 가장 크신 선한 사마리아인입니까? 진정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라 불려야 합니까?

     

    마 9:35, 36 그후에 예수께서 모든 성읍들과 마을들을 돌아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또 백성 가운데서 모든 질병과 허약함을 고쳐 주시더라. 36 주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가엾게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지치고 흩어졌음이라.

    요일 2:6 그분 안에 거한다고 말하는 자는 그가 행하신 대로 자기도 행해야 하느니라.

    마 25:32, 34-40 그 앞에 모든 민족들을 모아 놓고 마치 목자가 양들을 염소들에서 갈라놓듯이 그들을 따로 갈라놓으리라. 34 왕이 그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라, 나의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그 왕국을 이어받으라. 35 이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으며,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대접하였고, 36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혀 주었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문안해 주었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 주었음이라.’ 하리라. 37 그때에 의인들 이 주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여, 언제 우리가 주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실 때에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38 언제 우리가 주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대접해 드렸으며, 헐벗으셨을 때 입을 것을 드렸나이까? 39 언제 우리가 주께서 병드신 것을 보았으며, 또 감옥에 갇히셨을 때 찾아뵈었나이까?’라고 하리라. 40 그러나 왕이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하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내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하리라.

     

    “많은 사람들은 저희 형제나 이웃 사람들이 역경 속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홀로 투쟁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고 있기 때문에 제 삼자로 하여금 그리스도도 그들처럼 냉혹한 이기심을 가진 분으로 생각하도록 한다. 주님의 종들이 그분과 협력하지 않기 때문에 저희에게서 흘러나와야 할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 동포들에게 흘러가지 못하고 그들에게서 차단된다. 인간의 마음과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찬양과 감사의 노래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빼앗기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영혼들과 당신의 나라에 데려 가 당신과 같이 영원토록 살게 되기를 열망하시는 영혼들을 빼앗기고 계신다.” - 실물 383.

     

    더 연구하려면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저희의 위엄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성전이 황폐된 사람들을 냉담하고 멸시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어떤 이들은 이와 다른 동기로써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는다. 저희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보다 가치 있는 어떤 사업을 하려고 애쓴다. 저희가 매우 훌륭한 사업을 하고 있으므로 궁핍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볼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소위 위대한 사업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심지어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것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이 고통스럽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만들고, 그들의 권리를 빼앗으며, 그들의 필요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실물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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