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일 교과

     
    12월 7일(안) 두 목회자가 비교됨
    선교부
    작성일 : 19-12-01 11:55  조회 : 37회 

    두 목회자가 비교됨

    (일몰 : 17:14)

     

    바울이 당면했던 가장 심각한 난관은 유대교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감화로 말미암아 발생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이 고린도교회에 분열을 일으킴으로 바울은 많은 곤난을 당하였다. 저들은 계속적으로 의문의 율법의 효력을 역설하였으며 이 의문의 율법을 그리스도의 복음보다도 높이 평가하였고 바울이 새로 개심한 사람들에게 의문의 율법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여 그를 정죄하였다.“그러나 돌판에 기록되고 새겨진 죽음의 직분이 영광스러워서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용모의 영광, 즉 없어져 버릴 영광 때문에 그의 얼굴을 주목할 수 없었거늘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럽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에 영광이 있다면 의의 직분에는 영광이 더욱 많으리라.”(고후 3:7-9) 고 말하였다.”- 1기별, 236.

    권고를 위한 가장 좋은 편지

    1.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의 목회사업을 수행하는 가운데, 그는 신자들에게 무엇을 제시하였는가? 그는 이것보다 무엇을 더 높였는가?

     

    고후 3:1-3.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들을 추천하기 시작하는 것이냐?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너희에게 줄 추천서와 너희로부터 받을 추천서가 필요하겠느냐? 2 너희는 우리 마음에 기록된 우리의 편지라.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며 읽혀졌고 3 또 너희는 우리가 섬긴 그리스도의 편지임이 분명히 드러났으니 이는 잉크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육신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악의 모양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대는 이보다 더 전진하여, “선행을 배우”(1:17)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업을 행할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대들의 날마다의 연구가 되어야 한다. 주를 따르는 자들은 산 편지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며 읽혀졌 ” (고후 3:2).”- 청년, 348.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사이며, 우리는 우리의 명예를 위해 살아서는안되며, 다만 멸망해가는 영혼을 영멸에서 구해야한다. 우리의 매일의 노력은 그들이 진리와 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나타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치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므로써 우리는 자신에 대한 동정을 이끌어내려고 애쓰는 대신, 우리는 자아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이것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영적 분별과 활력 있는 경건함이 부족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노력했어야 할 사람들의 영혼들을 우리 손에 요구할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위한 모든 일꾼들에게 은혜와 지혜를 허락하신다. 주의 일꾼은 산 편지가 되며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읽히게 된다.”- 건강, 560.

          

     

    2. 어떤 주의 종들이 그들이 만나는 자들에게 권고의 편지로 제시되었는가? 비록 그들이 법문일지라도 인간의 수고를 통해 전해진 구원을 위한 전도사업은 어떤 결과를 맺었는가? 그리스도 없이, 법문이 사람을 공의롭다 하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가?

     

    고후 3:4-6.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그러한 확신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졌노라.

    5 우리는 어떤 일이라도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만족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기 때문이라. 6 또한 그분은 우리로 새 언약의 능력 있는 일꾼이 되게 하셨는데 이는 법문으로 한 것이 아니고 영으로 한 것이니 법문은 죽이고 영은 생명을 주기 때문이라.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

    시내산에서 두려운 위엄 가운데 반포하신 하나님의 율법은 죄인에게 주는 정죄의 발표이다. 정죄하는 것은 율법의 직분이며 율법에는 용서하거나 구원하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율법은 생애를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그 교훈에 일치하게 행하는 사람들은 순종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율법은 율법의 정죄 아래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속박과 사망을 가져다준다.” - 1 기별, 236, 237.

    우리는 열심히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의 탁월함을 연구해야 하며 우리는 그분의 축복을 나누어 주게 되며 사람들로 그분의 발걸음을 따르도록 이끌게 될 것이다. 주의 종들이 이 일을 할 것 같으면 그들의 무능을 개발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이 온유함과그리스도와 같이 자신을 낮춘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람을 알게 될 것이다. 능력은 주의 종에게 임할 것이며 사람들은 주의 종들과의 유대를 통하여 감화를 받아 사람들은 영원한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또 너희는 우리가 섬긴 그리스도의 편지임이 분명히 드러났으니 이는 잉크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육신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법문은 죽이고 영은 생명을 주기 때문이라.” - 사인즈, 1893.7.10.

          

     

    3. 바울은 왜 돌비에 기록되고 새겨진 율법의 직무는 사망의 직무라 하였는가? 사람이 율법을 전해야 한다면 그는 이 일로 의롭다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소망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의 직무는 무엇인가?

    고후 3:7,8. 그러나 돌판에 기록되고 새겨진 죽음의 직분이 영광스러워서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용모의 영광, 즉 없어져 버릴 영광 때문에 그의 얼굴을 주목할 수 없었거늘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럽지 아니하겠느냐?

     

    율법은 말할 수 없이 거룩하고 매우 영광스러웠으므로 모세가 손에 돌비를 받아들고 하나님과 같이 있었던 거룩한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은 영광의 광채를 반사하여 백성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고 바라볼 수 없었으며 모세는 불가불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가리울 수밖에 없었다.

    모세의 얼굴에 비쳤던 영광은 율법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의 의의 반영이었다. 율법 자체에는 영광이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율법 가운데 구현될 때에만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율법에는 구원하는 능력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의와 진리의 충만하신 형상으로 나타나실 때만을 제외하고는 율법에는 아무런 영광의 광채가 없다.....

    돌비에 기록되고 새겨진 율법의 직무는 사망의 직무였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범죄자는 아무런 용서의 희망도 없이 율법의 저주 아래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율법의 직무에는 아무런 영광이 없으며 의문의 율법의 예표와 그림자 가운데 나타나신 약속된 구세주께서 도덕적인 율법을 영광스럽게 하셨다.” - 1 기별, 237.

          

     

    두 직분이 반대됨

    4. 사도바울은 왜 희생제사의 제도가 정죄의 직무라고 불렀는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로 찢어졌을 때 무엇이 끝났는가?

     

    고후 3:9-11. 정죄의 직분에 영광이 있다면 의의 직분에는 영광이 더욱 많으리라. 10 이전에는 영광스러운 것이었을지라도 그것을 앞지르는 영광 때문에 이런 점에서는 영광스럽지 못한 것이라. 11 없어져 버린 것도 영광스럽다면 영속할 것은 영광이 훨씬 더 많으리라.

    5:4. 율법으로 의롭게 된 너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무용하게 되고 은혜로부터는 떨어져 나갔느니라.

    2:7,8 .이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그의 인자하심 가운데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요함을 오는 시대들에 보여 주시려 함이니라 .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희생 제물을 바치는 봉사의 예표와 그림자와 모든 예언들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세상에 이르게 될 자비와 은혜에 대해서 어둡고 희미한 견해를 주었다. 모세에게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표와 그림자의 깊은 의미가 공개되었다. 모세는 예표가 원형(原型)을 만날 때 즉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폐지되어야 할 그 의식의 종국적 목적을 보았다. 따라서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류가 도덕적인 율법을 지킬 수 있음을 보았다. 이 율법을 범함으로 인간이 이 세상에 죄를 가져왔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이르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셨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대신하여 당신의 완전하신 품성을 제공하셨다. 주님께서 친히 불순종의 저주를 짊어지셨다. 희생 제물과 헌물들은 그가 치르셔야 했던 희생을 미리 예표하였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갈 어린 양이신 주님을 예표하였다.

    폐지되어야 할 그 의식의 실물을 바라보는 것은 율법에 나타나신 바 되고 모세의 얼굴에 광채를 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 1 기별, 237.

    그 때에 성전의 휘장이 두 갈래로 찢어짐으로 제사 제도의 신성성과 의의가 떠났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지상의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때가 이르렀던 것이다.” - 소망, 233.

    5.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과 그들을 위해 고통당하시는 구주를 거절한 많은 유대인의 마음은 어떠하였는가? 그들이 수건을 벗을 수 있도록 누구를 인정해야 했는가?

     

    고후 3:12-14 정녕 우리가 그러한 소망을 가졌으므로 담대하게 말하노니 1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이 지금은 없어진 그것의 종말을 지켜보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 얼굴에 수건을 가리는 것같이는 아니하노라. 14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옛 언약을 읽을 때에 그와 같은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남아 있으나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지는 것이라.

     

    바울은 정녕 우리가 그러한 소망을 가졌으므로 담대하게 말하노니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이 지금은 없어진 그것의 종말을 지켜보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 얼굴에 수건을 가리는 것같이는 아니하노라.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옛 언약을 읽을 때에 그와 같은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남아 있으나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지는 것이라. 그러나 오늘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들의 마음을 덮는도다.”(고후 3:12-16)고 말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으며 저들의 의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었고 저들의 희생 제물과 예물들이 그 중대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 1 기별, 238.

     

    장애물과 해결책

    6.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희생될 것에 대한 예언을 읽었음에도 많은 유대인의 마음에는 여전히 무엇이 남아있었는가? 그리스도를 받아드렸다고 주장하면서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의 유효성을 부인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고후 3:15,16. 그러나 오늘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들의 마음을 덮는도다. 16 그렇지만 주께로 돌아서면 그 수건은 벗겨지리라.

    완고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저들 스스로 가리운 수건은 아직도 저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만약 저들이 율법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 수건은 벗겨질 것이다.

    그리스도 교계의 많은 영혼들도 저희 눈과 마음을 어둡게 하는 수건을 쓰고 있다. 저들은 폐지되어야 할 그 의식의 종국을 바라보지 못한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사망시에 폐지된 것은 오로지 의문의 율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저들은 도덕적인 율법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주장한다. 저들의 이해력을 어둡게 하는 수건은 너무나 두껍다. 많은 사람들의 심령은 하나님과 전쟁을 하고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다. 저들이 하나님의 정부의 법칙에 일치하지 않는 한 저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저들이 그리스도를 저희 구세주라고 말할는지 모르나 주님께서는 마침내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그대들은 거룩한 율법을 범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존귀케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었으므로 그대들은 나에게 대한 순수한 신앙도 가질 수 없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 1 기별, 239.

     

    7. 우리가 사람의 생각과 주장을 본다면 우리는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눈을 끊임없이 누구에게 고정시켜야 하는가? 우리가 그분 안에 있는 그분의 영광을 본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고후 3:17,18. 이제 주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그러나 유리를 통해 보는 것같이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는 우리 모두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똑같은 형상으로 변모되느니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봄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발견한다. 왜냐하면 용서라는 글자가 그의 이름 위에 쓰여져 있고 그는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2:10)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의심에 익숙해진 인간성 때문에 이 위대한 진리를 붙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평화를 영혼에게 가져다 주며 얼마나 생기에 넘치는 삶을 가져다 주는가! 하나님께 가납되기 위한 의를 얻고자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라는 말씀에서 잘못된 곳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한다. 왜냐하면 유리를 통해 보는 것같이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는 우리 모두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똑같은 형상으로 변모하기 ”(고후 3:18)기 때문이다. 그대는 세상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므로 그대의 완전을 찾아야 할 것이다.” - 믿음, 108.

     

    더 연구하려면

     

    우리가 예수의 생애를 모방하는 것은 멀직이 떨어져서 그를 바라봄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그분의 완전하심을 깊이 생각하고, 취미를 우아하게 하고, 품성을 고상하게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되는 것이며, 시도해 봄으로써, , 믿음과 사랑으로 열렬하고 참을성 있는 노력으로 완전하신 모본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거듭함으로써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곧 그의 말씀, 그의 습관, 그가 가르치신 교훈들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그처럼 면밀히 연구해 온 그 품성의 덕을 빌려 받게 되고 우리가 그토록 찬양해 온 정신이 스며들게 된다. 예수는 우리에게 만 사람에 뛰어나그 전체가 사랑스러운분이 된다” - 아들과 딸들, 235.

    애정은 그 본래의 순결 그대로 수정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험과 연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얕을 수도 있다. 모든 일에 그리스도를 첫째요 마지막이요 최선으로 삼으라. 끊임없이 그분을 바라보라. 그리하면 그분에 대한 그대들의 사랑은, 시련의 시험을 받아들임에 따라 날마다 더욱 깊고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 대한 그대들의 사랑이 증가함에 따라, 피차를 위한 그대들의 사랑도 더욱 깊고 더욱 강해질 것이다. “ 유리를 통해 보는 것같이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는 우리 모두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똑같은 형상으로 변모되느니라. ”(고후 3:18).” - 7 증언,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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