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끊어 버리게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친 자들이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한 그들을 용서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물론, 회개와 고백으로 마음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도리이긴 하나,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자들이 그 실수를 고백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그들에 대하여 긍휼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아무리 심한 상처를 줄지라도, 불만을 품거나 상처를 받은 자신을 동정하지 말며,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용서받으려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 보훈 113, 114.
1. 레위인의 첩은 어떤 큰 죄를 저질렀습니까? 그가 간통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판 19:1-4.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그때에 에프라임 산지 옆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인이 있었는데, 베들레헴유다에서 그가 한 첩을 취하였더니, 2 그의 첩이 그를 배반하여 행음하고 그를 떠나 베들레헴유다로 그의 아비의 집에 가서 만 넉 달을 보낸지라. 3 그녀의 남편이 일어나서 그녀에게 찾아가 그녀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녀를 다시 데려오려고 하인 한 명과 나귀 두 필을 데리고 갔더니 그녀가 그를 그녀의 아비 집으로 데려오자 그녀의 아비가 그를 보고 반가이 맞이하더라. 4 그의 장인 곧 그녀의 아비가 그를 붙드니 그가 삼 일을 그와 함께 머무니라. 그리하여 그들이 먹고 마시고 거기서 유숙하더라.
“우리는 얼마나 자주 불공평하게 대우받았다고, 우리에 대해 거짓된 말이 있었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거짓된 빛에 세워졌다고 느끼는가. 우리가 이렇게 시련받을 때, 우리는 우리의 정신과 말을 엄격히 지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져야 하며, 용서하지 않는 정신을 품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이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한, 우리가 그들에게 용서를 거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회개와 고백으로 마음을 낮출 때까지 그것을 우리의 마음에 품고 원한을 쌓아두어서는 안 된다....” -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144.
2. 여자와 화해를 바라는 배신 당한 사위에게 여자의 아버지는 어떤 따뜻한 환영을 주었습니까?
판 19:8, 9. 그가 다섯째 날 아침에 떠나려고 일어나니 그녀의 아비가 말하기를 “내가 청하노니 네 마음을 위로하라.” 하니 그들이 오후까지 머물며 둘이서 먹더라. 9 그 사람이 그의 첩과 그의 종과 떠나려고 일어나니 그의 장인인 그녀의 아비가 그에게 말하기를 “보라, 이제 날이 기울고 있느니라. 내가 청하노니 온 밤을 머물고, 보라, 날이 기울었으니 여기서 유숙하며 네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 길을 떠나면 네가 집에 가리라.” 하더라.
“예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야만 하며, 모든 사람에게 연민과 사랑과 선의를 나타내야만 하는 한 모본을 우리에게 주셨다. 친절한 정신, 관용의 정신, 부드럽고 동정심 많은 사랑을 배양하자…. 주님께서는 그분을 존경하고, 그분의 자비하심을 인정하고, 그들 주변의 사람들에게 동일한 은혜로운 성품을 나타냄으로써 그분이 그들에게 베푸신 사랑에 감사함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시기를 기뻐하신다.” -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144.
3. 레위인은 집으로 가는 길에 어디에서 묵을 것을 제안했습니까?
판 19:10-12. 그러나 그 사람이 그 밤을 지체하지 아니하여 일어나 길을 떠나 여부스, 곧 예루살렘 건너편에 이르렀는데 그에게는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그의 첩도 그와 함께 있더라.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웠을 때에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그 종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오소서, 내가 청하오니, 우리가 이 여부스인들의 성읍으로 돌이켜 들어가서 거기서 유숙하사이다.” 하자, 12 그의 주인이 종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타국인의 성읍으로 돌이키지 않고 지나쳐 기브아로 가리라.” 하고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간계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도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우리의 기관들에서는 교제의 감화가 매우 크다. 친구를 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모든 사람은 친구들을 찾기도 하고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우정의 힘에 비례하여, 선을 위해서나 악을 위해서 친구들이 피차 간에 미치는 감화의 정도가 측정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동료들을 갖게 될 것이며,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반대로 영향을 받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묶여지므로 두 사람의 감정과 취향과 원칙들이 밀접하게 혼합되는 연결은 신비로운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정신을 파악하고 그 사람의 길과 행동을 모방한다. 밀초가 도장의 모양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은 교제와 교류를 통하여 생긴 인상을 보유한다. 감화는 무의식적일 수 있지만, 결코 강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 4 증언 587.
4. 기브아 주민들은 이스라엘 인들이었고 광장에서 여행자들을 보았음에도, 그들은 무엇 하기를 거절했습니까?
판 19:13-15. 그가 그의 종에게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까이 가서 온 밤을 유숙하자.” 하더라. 14 그들이 진행하여 길을 가는데, 그들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워졌을 때에 해가 기울더라. 15 그들이 들어가서 기브아에서 유숙하려고 그 쪽으로 돌이켜서 그가 들어가 그 성읍 거리에 앉았으니 이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유숙시킬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더라.
“나는 고귀한 신앙을 가졌다고 공언하나 자기애와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그들은 내가 기록하는 바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은 자기의 생활만을 생각하고 자신만을 위해 산다. 남들을 위해 행하기 위해 희생하는 것, 남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자신을 불리하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해당도 안 되는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자아는 우상이 되었다. 귀중한 시간이 흘러가지만 하늘 기록에는 친절한 행동, 남을 위한 희생, 주린 자를 위한 공궤, 벗은 자를 입힘, 나그네를 영접한 일 등이 남아있지 않다. 나그네를 대접한다는 생각은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다. 그들의 받은 복을 얻으려는 이들이 가치 있는 사람임을 그들이 안다면 이 방면으로 무엇인가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데는 덕이 있다. 우리는 혹 천사를 대접할 수도 있다.” - 2 증언 26.
5. 기브아에서 누가 그 여행자들을 보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습니까?
판 19:16-19. 그런데 보라, 한 노인이 저녁이 되어 밭에서 일을 마치고 오는데 그도 에프라임 산지 출신으로 기브아에 우거하더라.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인이더라. 17 그가 눈을 들었을 때에 성읍의 거리에서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을 본지라, 그 노인이 말하기를 “당신은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 그가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베들레헴유다에서 에프라임 산지 곁으로 가고 있나이다. 나는 그곳에서 온 사람으로 베들레헴유다로 갔다가 이제 주의 집으로 가고 있나이다. 그러나 나를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줄 짚과 여물이 있으며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들과 함께한 청년을 위한 빵과 포도주가 있어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나이다.” 하니
“나그네 대접하는 일을 잊지 말라. 이렇게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한 사람들도 있었느니라”(히 13:2). 이 말씀은 시간이 흐른다 해도 그 힘이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계속 당신의 자녀들의 길에 불행 중에 축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두시며 이 기회를 선용하는 자들은 큰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네 혼을 굶주린 자에게 주어 괴로워하는 혼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솟아나서 네 어두움이 정오와 같이 되리라. 또 주는 너를 계속 인도하여 가뭄에서도 네 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살찌게 하리니 그러면 너는 물 댄 동산 같을 것이며 물이 끊기지 않는 샘물 같으리라.”(사 58:10, 11)” – 선지 132.
6. 기브아에 살고 있던 타국 출신의 이스라엘인들은 그 여행자들과 어떻게 교류했습니까?
판 19:20, 21. 그 노인이 말하기를 “당신에게 평안이 있으라. 당신의 필요한 것은 다 내게 맡기고 오직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더라. 21 그리하여 노인이 그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나귀들에게 여물을 주고 그들은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당신의 충실한 종들에게 “너희를 영접하는 사람은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며, 또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라.”(마 10:40)고 말씀하신다. 그분의 이름으로 나타낸 친절한 행위는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가족 중에 가장 약하고 가장 낮은 자들까지도 똑같이 친절하게 인정하신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들 중 하나” 곧 신앙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어린 아이와 같은 자에게 “냉수 한 잔이라도 주면,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는 결코 자기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고 말씀하신다.” - 선지 132.
7. 왜 성경에는 재판관기 19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타나는 더 슬픈 일들과 그러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것들은 오늘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고전 10:5-8.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대부분을 그리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죽어 넘어졌느니라. 6 이제 이런 일들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그들이 열망하였던 것같이 우리도 악한 일들을 열망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7 너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처럼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와 같으니 곧 “그 백성이 앉아서는 먹고 마시며 또 일어서서는 뛰논다.”한 것이라. 8 우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음행하지 말자. 그들은 그러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느니라.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이와 같은 헌신과 세상에서의 분리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다 같이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명령하고 있다. 주님께는, 세상의 것과, 그분께서 세상에서 택하여 그분 자신에게 거룩하게 하신 것과를 친히 분리시키는 벽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의 부르심과 특성은 독특하며, 그들의 전망 (展望)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 특성이 그들을 다른 모든 백성들과 구별 지어준다.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처음부터 마지막 때까지 하나의 몸이다. 그들은 그 몸을 지도하고 다스리는 하나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분리되도록 고대 이스라엘에게 내린 동일한 명령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리고 있다. 교회의 위대한 머리는 바뀌지 않았다. 이 마지막 날의 그리스도인의 경험은 고대 이스라엘의 여행과 매우 유사하다.” – 1 증언 283,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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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아 주어야 할 고아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일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일은 그들이 하고 싶은 것보다 더 많은 일감을 주며, 자신을 즐겁게 할 여유를 남겨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금이 조사하실 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너그럽지 못하고, 이기적인 영혼들은 천국이 일한 사람들의 것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를 부인한 사람들의 것임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애쓴 사람들을 위하여는 아무런 상급도 없다. 임금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발한 무서운 형벌은 이 경우에는 그들의 큰 죄악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행한 일의 결과로 정죄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죄를 당한다. 그대는 하늘이 맡겨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대는 자신을 기쁘게 하였으므로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들과 분깃을 같이 하게 된다.” - 2 증언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