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묻혀버린 예언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2천년 전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와 골고다 산상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의 성취를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그들은 나사렛땅 가난한 한 가정에서 자라난 목수의 아들 예수라는 사실과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 라고 사칭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한 반역자로서 로마에 의하여 처형된 사실밖에는 더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오늘날 어떤 유대인들에 의하여 예수님은 당대에 랍비 중 한 사람이었으며 매우 지혜로운 랍비였으나 당대의 지도자들의 질투와 질시에 의하여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는 값싼 동정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사단은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경험 가운데 유대 민족의 역사가 반복되도록 활동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저들 스스로 구약의 말씀들을 잘 알고 있는 줄로 상상하였다. 그러나 저들은 비참한 과오를 범하였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관한 예언들을 주님의 초림에 관한 예언인 줄로 생각하였다. 저들이 기대했던 그대로 주님께서 오시지 않았으므로 저들은 주님을 배반하였다.” (2기별, 111).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들은 어떻게 믿고 있는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이요 빛이요 생명이시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다만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고전 1:23-24)인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는 이후 역사에도 반복되었다. 우리는 약 150년 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윌리암 밀러의 재림운동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운동은 성경에서 제일 긴 예언인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13-14)는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반드시 이 땅에 일어나야 할 재림운동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수천만의 개신교도들에게 물어보라 1844년에 일어난 재림운동은 한낱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를 정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한 광신도들의 운동이었다고 말해 버린다.

그리고 그 이후 이 무리들 중에서 거짓 계시를 받은 한 여인에 의하여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림교회를 이단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1844년에 일어난 재림운동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가운데 가장 중요한 2,300주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었고 1,260년 동안의 긴 종교 암흑시대를 벋어나서 드디어 짓밟혔던 하늘성소가 정결함을 받는 엄숙한 예언의 성취이다.

불법의 아들에 의하여 무너지고 황폐되었던 하나님의 율법을 수보하고 수축하기 위해 이 땅에 한 백성이 요구되었고 이 사업을 하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한 백성이 바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인 것이다.

그러나 일요일 개신교회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지금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자처하며 이처럼 중요하고도 확실한 예언과 진리를 거절하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은 흑암에 싸이게 되었고, 기별을 거절한 필연적인 결과로 타락의 길을 걸어가는 명목상의 교회가 되고 말았으며 무너져가는 바벨론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유대교회와 일요일 개신교회들은 분명 하나님의 진리의 교회로 세움을 받았으나, 성경 예언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 인하여 그 시대를 위하여 주어지는 현대진리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은총에서 스스로 떠나가 버렸다. 그러나 그 교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지금도 자신들은 하나님의 교회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발전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사단의 기만이며 두려운 일인가?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기별을 거절한 이런 교회들에게 사단은 능력을 베풀어 하나님이 아직도 그들과 함께 역사하고 있는 것처럼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명목상의 재림 신도들과 타락한 교회들 가운데 당신의 성실한 자녀들을 가지고 계신 것을 보았다. 재앙이 내리기 전에 교역자들과 백성들이 이러한 교회들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나와 기쁨으로 진리를 받아들일 것이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셋째 천사의 기별이 크게 전파되기 전에 그는 이러한 종교 단체들 중에 능력을 베풀어 진리를 거절한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는 신실한 자들을 속여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그 교회들을 위하여 역사하고 계심을 믿도록 유인하고자 한다.” (초기, 261).

 

자신을 돌아봄

이와 같은 사단의 기만은 매 시대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어왔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자신들이 모세시대에나 선지자와 열왕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결코 반역의 편에 서지 않았으며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위 하면서도, 정작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가 오셨을 때 그들은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 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마 23:29-30).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 23:35-38)는 그들에게 하신 질책의 말씀은 매 시대마다 하나님의 기별을 거절하는 교회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처럼 1844년 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한 개신교회들도 하나님의 아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 채 하나님의 은총에서 떠나가 버렸다.

그러면 이제 우리 재림교회는 유대교회나 일요일 개신교회들처럼 중요한 성경상 예언을 간과하고 지나쳐버린 역사가 없는지 한번정도 생각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우리들은 1844년 이후에 전개될 예언의 성취로서 어떤 예언들이 성경에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이미 시작된 계시록 18장 천사의 사업

1844년 셋째 천사의 사업이 시작한 이후에 성취될 예언은 또 다른 천사로 표현된 계시록 18장 천사가 이 땅에 내려오는 예언이다. 이 땅에 내려올 계시록 18장 천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실 자비의 천사로서는 마지막 천사이다. 그런데 이 천사의 사업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하는 선지자의 말씀을 어떻게 우리 재림교회는 생각하고 있는가?

“시련의 시기가 우리에게 임박하였는데 이는 죄를 사유하시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심으로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 땅을 영광으로 환하게 할 천사의 빛의 시작이다.” (1기별, 363).

A.T. 죤스와 E.J. 와그너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기별은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보내시는 하나님의 기별이며 그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은 하나 하나님께서 주신 빛의 광선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하지 않는 자들은 누구든지 화가 있을 것이다.” (원고 24, 1892년).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이 기별은 들리움을 받으신 구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희생 제물에 관한 소식을 세상을 향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보증물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초청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야에서 잃어버렸다.” (목사, 91-92).

이와 같은 선지자의 말씀을 보면서,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해보자. 분명한 것은 A.T. 죤스와 E.J. 와그너에 의하여 주어진 기별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이었으며, 그 사건은 계시록 18장 천사의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예언의 성취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시련의 시기가 우리에게 임박하였는데 이는 죄를 사유하시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심으로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 땅을 영광으로 환하게 할 천사의 빛의 시작이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중요한 예언의 성취에 대하여 1888년 사건과 연관하여 이해하고 있는 재림성도들이 몇 명이나 있는가?

많은 재림 성도들은 1888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으며, 두 젊은 기별자들이 전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계시록 18장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많은 재림성도들은 계시록 18장 천사의 예언은 늦은비의 예언으로만 알고 있기에 아직도 이 예언의 성취는 미래에 속한 예언이며, 그러므로 계시록 18장 천사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고 모두는 생각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성경에 나오는 초림과 재림의 예언을 구별하지 않고 다윗의 권좌에 않을 메시야만을 갈망하며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말 규유에 탄생하신 초라한 모습의 아기와 그리고 온유 겸손한 생애로 일관하신 예수님의 생애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다윗의 왕좌에 오를 메시야를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토록 기다리고 고대하던 예언의 성취를 보았으나, 깨닫지 못하고 메시야를 십자가에 죽이는 일을 한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예언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들을 그토록 눈멀게 하였다.

오늘날 재림교회는 어떤가? 계시록 18장 천사는 늦은비가 교회에 부어질 예언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1888년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늦은비는 이적과 기사를 동반하여 오순절의 능력을 능가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심으로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라는 선지자의 확실한 말씀조차도 그 말씀 속에서 별다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이 땅에 내려온 마지막 자비의 천사인 계시록 18장 천사는 냉대를 받고 말았다.

1888년 이 천사가 내려올 때에 하늘에서는 이 천사의 중요한 사명의 성취를 위하여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으나, 이 땅과 교회는 너무나 조용한 가운데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하고 말았다. 재림교회는 이와 같은 잘못을 깊이 깨닫고 회개하는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지난 호를 통하여 계시록 18장 천사의 사명과 목적을 연구한 바가 있으나, 다시 한번 상기할 것은 이 천사에게는 두 가지 사명이 있음을 분명히 구별하여 이해해야만 한다.

늦은비는 계시록 18장 천사의 두번째 사명이며,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사명은 한 백성을 부흥과 개혁사업을 통하여 늦은비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힘과 능력을 주어 준비시키는 사명과 능력이 이 천사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이 천사는 큰 권세를 가진 천사로 표현된 것이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계 18:1).

교회들에 어떤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내가 미네아폴리스에서 말한 모든 것을 나는 확증 받았다. 개혁이 일어나야만 한다. 왜냐하면 큰 빛과 귀중한 기회와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연약해지고 무지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때 개혁자로서 여러 교단들에서 나온 자들이었으나 이제 저들은 이전의 교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우리는 또 다른 분리가 불가피하게 되지 않기를 희망했다.” (사건, 48).

이와 같은 개혁의 필요성은 늦은비를 받기 위한 필연적인 요구이다. 1888년 와그너와 죤스 형제가 기별자로서 보냄을 받았고 그 기별은 바로 이 천사의 첫번째 사명인 개혁사업을 성취하기 위한 능력과 힘을 가진 기별이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는 기별은 당신의 교회에게 힘과 능력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비의 천사의 기별이었던 것이다.

 

1888년 계시록 18장 천사는 당신의 교회로부터 거절당함

계시록 18장 천사는 셋째 천사들로 상징되고 있는 한 백성들에게 힘과 능력을 도와주기 위하여 이 땅에 보냄을 받았다. 무너진 데를 수보하고 황폐된 곳을 수축하는 개혁사업에는 힘과 능력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1888년을 즈음하여 재림교회는 계시록 18장 천사의 도움이 심히 요구되는 시기였으며, 이 적절한 때에 이 천사는 내려왔었다. 그러나 불행한 일은 교회로부터 환영을 받아야할 이 천사는 거절당하였다는 사실이다. 유대인의 역사가 또 반복되는 슬픈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선지자는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 당시 계시록 18장 천사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들로부터 거절당하는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들은 조롱과 비꼼을 당하였으며 하늘로부터 온 기별은 반대를 당하고 온 땅을 환하게 할 빛은 거절을 당하였다고 기록하셨다. 이와 같은 역사는 사단에 의하여 주관되었다.

선입 관념을 굽히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마음은 주로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E.J. 와그너]와[ A.T. 죤즈] 두 형제를 통하여 주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반대한 정신에 다분히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사단은 반대하는 정신을 자극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특별하신 능력을 우리 신자들에게서 빼앗는 데 성공하였다. 원수는 사도들이 오순절 이후에 진리를 선포한 것처럼 저들이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얻지 못하게 길을 막아 버렸다. 진리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비출 빛이 거절당하였으며 우리 형제들 스스로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 (1기별, 234-235).

“말세의 위기가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다. 사단은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영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모든 마음을 지배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해야 할 특별한 기별을 위탁하신 사람들에 대해 증오심을 키우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사단적 사업을 미네아폴리스에서 시작했다. 후에 그들은 그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르러 왔다는 것을 증거하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해 보고 느꼈을 때, 그것을 더욱 미워하였는데, 이는 그것이 그들을 거스리는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목사, 79).

미네아폴리스에서 팽배하였던 편견과 견해들은 결코 죽지 않았다. 그 곳에서 어떤 이들의 마음에 뿌려진 씨앗들이 생명으로 움터서 수확을 보려고 한다. 꼭대기는 잘려졌지만, 뿌리는 결코 근절되지 않았으며, 그것들은 여전히 그 거룩하지 못한 열매를 맺어 판단력을 망치고, 지각력을 비뚤어지게 하고, 기별과 기별자들에 관련해서 그대가 접촉하는 이들의 이해력을 어둡게 한다.” (목사, 467).

“자 이제, 우리가 만일 하늘에서 빛이 올 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으면 어떻게 그 기별에 관한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보내셨다는 증거의 요소가 없을 때, 우리와 같이 하는 어떤 사람들로부터 흑암의 기만이 우리에게 올 때 그것을 바로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요 5:43 참조). 자, 이것이 이곳 미네아폴리스 집회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일이다.” (1설교, 142).

나는 우리가 미네아폴리스에서 가졌던 경험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때 사람들의 대화들을 지배했던 정신과 악의 권세에 굴복하므로 행해졌던 행동들에 관해 내게계시 되었던 것들을 결코 잊을수 없다.… 그들은  그 회의에서 다른신의 지배를 받았다.” (서신 24s, 1892년).

우리 백성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의에 관한 진리의 빛을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반대했기 때문에 이 일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 이것을 그들은 받아들여 마음과 음성과 펜을 통해 반향 해야만 했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의 유일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

성령께서 강림하신 최대 목적은 그리스도에 의해 명백하게 제시되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 빛이 여러 해 동안 우리 백성들 앞에 제시되어 왔다. 길과 산울가에 있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사단의 통치 아래 죄와 사망 속에 빠져 있는 다수의 인간이 성령의 능력으로 개혁하고 새롭게 될 수 있도록 사업의 대 심장부인 배틀크릭에 성령의 권능이 크게 나타났다. 그러나 사업의 심장부에 있는 인물들에게 빛이 이르러 왔을 때,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목사, 401-402).

“오 세상에서 기별을 전하기 가장 힘든 장소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큰 빛을 받은 책임 있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전하는 것이리라. 그들은 깨우침을 받았으나 빛보다 오히려 어두움을 택하였다.” (서신 32.W, 1890년).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의 심각성은 총회장과 대표자들의 숙소에서까지 비방과 희롱이 난무하였으며 화잇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들은 풍자화 되고 조롱을 당하였다고”고 하였다. 비방은 화잇 선지자에게 까지 미쳤으며 화잇 여사가 약간 망령이 들어 와그너와 죤스의 장단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잇 여사는 한 통신원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증거가 완전히 무시되었으며 나의 평생에 이와 같은 대우를 받기는 이 총회가 처음이라”고 말씀하셨다(운명의 운동, 249-250).

이 모든 말씀은 1888년 당신의 교회의 사자들에 의하여 계시록 18장 천사는 거절을 당했다는 역사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들이 질책을 받음

화잇 선지자는 두 기별자의 기별을 거절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들을 질책하시면서, 이 대총회의 모임이 백성들로부터 하나님의 성령을 차단하기 위해서인가? 라고 말씀하셨다. 목사들(대표자)이 빛을 원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에게라도 이 빛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의 집회는 끝나려고 하는데 단 한번의 자복하는 일도 없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음에 들어오실 수 있도록 마음을 찢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내가 이제 말하노니 우리가 여기에 함께 모인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의 목회하는 형제들이 이곳에 모인 것이 단지 백성들로부터 하나님의 성령을 차단시키기 위한 것인가? … 만일 목사들이 빛을 받지 않는다면 나는 백성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빛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원고 9, 1888년).

“만일 그대들이 빛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방법으로 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기다린다면 그대들의 기다림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더 큰소리로 외치는 초청과 더욱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면 빛은 떠나갈 것이며 그대들은 흑암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리뷰, 1888년 12월 18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7).

 

1888년 기별 거절은 그리스도를 거절한 것에 비교됨

우리들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한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이며 그 결과는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결과를 가져 왔다는 사실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1888년의 기별을 거절했던 교회의 역사에 대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 기별자들을 거절한 것은 얼마나 큰 죄악이며 두려운 결과가 따르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1888년의 기별 거절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한 역사에 비교되리만큼 중요한 사건이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령께서는 많은 기회들을 통하여 역사 하셨다. 그러나 미네아폴리스에서 하나님의 신을 거역한 자들은 다시 한번 입장을 취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정신이 동일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에 그들은 계속되는 증거들을 가지게 되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부드럽게 되고 정복되지 아니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계시될 때마다 그들 스스로의 해석을 붙였으며 많은 것을 상실 하였다.… 만일 이것이 받아드려 졌더라면 이것은 그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하였을 것이며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하기에 적합하게 된 거룩한 사람들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온 하늘 우주세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제시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모욕적인 취급을 목격 하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 앞에 계셨더라면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취급한 방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그분을 취급하였을 것이다. …

미네아폴리스에서 시험에 빠지도록 저희 자신들의 마음 문을 열고 동일한 정신을 품은 채 저희 집으로 돌아간 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성령을 대항하였으며 모욕하였다는 사실을 지금 깨닫지 못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이 회개할 것인가? 여호와의 성령께서는 고귀한 빛과 함께 보낸 당신의 기별자들 위에 임재해 계셨으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의의 태양으로부터 저희 얼굴을 돌렸으므로 그 밝은 빛줄기를 보지 못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내게서 등을 돌려 저희 얼굴을 숨기었도다 고 하셨다. … 누가 지금 내가 기록하는 이 사건을 이해할 것인가? … 주님께서는 속히 오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미네아폴리스에서 풍성하게 부어주신 빛을 감히 거절하였던 자들, 곧 하나님 앞에 마음을 겸비케 하지 않은 자들은 계속하여 반항의 길을 걸어갈 것이며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의 말을 들으리요’라고 말하고 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외치는 자들이 쳐들고 있는 모든 기치들은 그 깃발의 색채를 실제보다 희미하게 하는 다른 색채로 칠해지고 있다.“ (특별증언 씨리즈 A. No. 6, 19-26, 1896년).

그리스도를 거절한 자들을 충동하였던 동일한 정신이 그들의 마음가운데 사무쳐 있으며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 당시에 살고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도 믿음도 없는 유대인들처럼 흡사한 방법으로 그분을 다루었을 것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직원들에게 보내는 특별증언, 16, 17).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마 23:34). 이 예언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사자들을 취급하는 일 가운데서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 말세에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정죄하신 이들의 모본을 따르게 될 것인가?

이 두려운 예고의 말씀을 그들은 아직 완전히 성취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미네아폴리스 집회 전후로 그들의 행동을 특징지었던 동일한 정신을 품는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을 정죄했던 이들의 행위를 온전히 본받게 될 것이다.

말세의 위기가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다. …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해야 할 특별한 기별을 위탁하신 사람들에 대해 증오심을 키우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사단적 사업을 미네아폴리스에서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였고, 유대인들처럼 미움과 질투, 그리고 악한 추측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의 원수를 향해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이 책임 있는 지위들을 차지해 왔으며,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모습을 좇아 사업을 꼴 지어 왔다.” (목사, 79-80).

“나는 결코 부드러운 기별을 전할 수 없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께서 파송하신 사자들을 거절한다면, 그대는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다.” (목사, 97).

사단은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경험 가운데 유대 민족의 역사가 반복되도록 활동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저들 스스로 구약의 말씀들을 잘 알고 있는 줄로 상상하였다.” (2기별, 111).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는 권고가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어졌다.

1888년 사건은 오늘날 재림교회에 매우 거리끼는 역사이며 그 기별을 거절한 것은 분명한 역사이지만, 이것을 시인하는 일에 인색하며 매우 힘이 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1888년 당시에는 기별을 거절하였지만 그 후에는 받아들였다는 등 구구한 변명들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회개하는 일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회개에는 자복이 따라야 하는 것이며 잘못을 시인하고 자복이 따르지 않는 회개에는 평안도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8-9).

만일 1888년 역사에 대하여 교회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는 일이 될 것이며 진리가 교회 안에 없다는 증거이며 1888년의 죄를 공개적으로 자백하는 교단적인 회개가 없다면 그 죄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며 교회는 불의한 역사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구약 성경을 보면 개인의 범죄와 족장이나 제사장들이 범죄할 경우와 이스라엘 전체가 범죄한 경우들을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기별이 거절 된 것은 그 기별을 거절한 개개인들의 거절이 아니고 교회가 거절한 것이며 그 기별을 거절한 책임은 교회가 져야한다. 왜냐하면 그 기별은 어느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에 보내어진 기별이기 때문이다. 1888년 총회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는 기별이 교회의 사자들에 의하여 환영받지 못하고 빛이 거절되어 버린 것은 교회가 범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마치 다니엘이 범죄한 나라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자신이 범죄하기라도 한 것처럼 회개하고 자백하였듯이 모든 재림성도들은 1888년 하나님의 기별을 거절한 죄를 마치 자신의 죄로 시인하고 자백하는 회개의 운동이 교단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이와 같은 진정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하여,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는 권면을 라오디게아 교회는 받고 있다.

모두가 이렇게 열심을 내어 회개하는 일이 일어날 때, 1888년의 기별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는 기별은 능력으로 성도들에게 임하여 늦은비를 받기에 합당한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이론이 아니요 능력이며 체험이라는 사실을 모두는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현대진리,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기별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신임장이 간직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결이란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리뷰, 1889년 9월 3일).

하나님의 신임을 나타내는 기별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그 기별에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엄과 의 그리고 완전한 선과 진리가 나타났으며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의 충만함이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으로 선포되니 선입관으로 마음이 닫쳐지지 않는 모든 사람을 이끌게 되었다. … 우리는 영혼들이 죄에서부터 의로 돌아서는 것을 보았다.” (리뷰, 1890년 5월 27일).

 

지극히 소중한 기별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이 기별은 들리움을 받으신 구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희생 제물에 관한 소식을 세상을 향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보증물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초청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야에서 잃어버렸다.” (목사, 91-92).

1888년 와그너와 죤스 형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기별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으로 대속하신 희생을 믿는 자들에게 입혀지는 칭의를 제공하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라는 초청이었다.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라는 초청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의란 그리스도의 품성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계발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받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소망, 762).

“예수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요 14:30)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안에는 사단의 궤변에 반응한 것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죄를 짓기로 동의하지 않으셨다. 그는 생각으로라도 시험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소망, 123).

인간으로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계발하신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하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시겠다는 초청이었고 죄 있는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생각으로라도 사단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셨던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라는 초청이 1888년 총회에 주어졌던 것이다. 믿음(칭의)으로 말미암아 이 일은 우리들에게도 가능하다는 기별이었다.

이 기별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초청이었고 이것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는 기별이었다.

의는 거룩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요한일서 4장 16절)시다. 의는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시편 119편 172절)며,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로마서 13장 10절)기 때문이다. 의는 사랑이며, 사랑은 하나님의 빛과 생명이다.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받아들임으로써 의를 얻게 된다.” (보훈, 18).

순결한 흰 진주인 그리스도의 의는 흠도 없고 점도 없고 결함도 없다. 이 의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리뷰, 1899년 8월 8일).

1888년의 기별이 교회에 받아들여졌다면, 교회는 일층 더 높은 표준에 올라갔을 것이며 모든 신자들은 “이 권면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속에 작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준을 높이게 하고 진리에 매달리도록 이끌 것이다. … 이 증거는 깊은 회개를 불러일으킬 것인데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든 자들은 순종하여 자신을 순결하게 할 것이다.”(초기, 270)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기별은 라오디게아교회의 사자들에 의하여 거절을 당하였고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시야에서 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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