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경륜에 매료된 백성

성경과 예언의신에서는 남은 무리의 특징에 대하여 말하기를,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율법이 새겨져있는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마음과 생각에 새겨진 백성들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까?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1844년 예수님을 따라 지성소에 들어간 남은 무리들은 그곳에서 두 돌비에 새겨진 십계명을 뚜껑이 열린 법궤 속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계명은 살아 움직이는 듯이 보였고 그중의 넷째 계명은 영광스러운 광채가 서리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속죄소와 법궤의 모습을 보고 그 영광에 매료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남은 무리들이 예수를 따라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와 속죄소를 보고 그 영광에 매료되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예수께서 법궤의 뚜껑을 여셨고, 그러자 아! 거기에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비가 있었다. 그들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계명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들은 거룩한 십계명 중에 넷째 계명이 다른 아홉 계명보다 더 밝게 빛나고 그 주위에 영광스러운 광채가 서리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떨면서 뒤로 물러섰다.” (초기, 255).

믿음으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간 무리들은 두 돌비가 들어있는 법궤와 그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의 모습을 보고 매료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 모든 인류들은 지성소안에 법궤 속에 들어있는 율법을 범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인에게 저주가 된 율법이 들어있는 법궤 위에는 속죄소 곧 시은좌가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이것은 율법과 복음의 아름다운 조화를, 그리고 공의와 자비가 공존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취될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의 아름다움과 고상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물과 빛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이지만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무지개가 만들어지듯이 율법과 복음은 성질에 있어서 반대되지만, 인간들의 믿음 가운데서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들의 생애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무리들은 이 구속의 경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그 다함이 없는 지혜와 사랑에 매료된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생애에는 율법과 복음의 능력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품성을 가진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자칭 남은 무리들은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 구속의 경륜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에 대하여 얼마나 매료되고 있는지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가운데는 당신의 형상이 완전히 회복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는 말씀 하시기를, “복음의 진수(眞髓)는 회복이다.”(소망, 824)라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 하시기를,

“참 교육의 목적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 죄는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고 거의 말살시켰다. 인류를 위한 구원의 계획이 세워지고 유예의 생명이 허락된 것은 이것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인간의 목적은 인간이 처음 창조 받을 그 때의 완전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부조, 595).

복음의 영광은 자비를 끊임없이 나타냄으로 타락한 인류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원칙에 기초되어 있다.” (3보감, 147).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히 죄의 필연적 결과인 고통에서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 오직 영원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이 맞이할 영광스러운 운명을 드러낼 수 있다.” (보훈, 60).

성경 전체 가운데 논의된 중심 주제는 구속의 경륜이며, 이 구속의 경륜은 사람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일이다.” (교육, 125).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능력의 최고의 계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몸과 마음과 영혼이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하는 데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부모, 32).

 

복음의 진수는 회복이다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와 하나님의 율법은 죄인을 구원하여 완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완전한 회복 이것이 바로 셋째 천사의 기별의 주제요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육체 가운데 숨어있는 죄를 찾아내고 복음의 능력은 죄를 치료하여 영혼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완전히 변화시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진수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 하시기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믿음은 이 시대에 합당한 믿음이 아니며 지성소에 합당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단의 형상을 가지게 된 인간들이 어떻게 그렇게 변화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이적 중에 이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설명할 수는 없으나, 이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런 이적은 나타날 것입니다. 선지자는 말씀 하시기를,

“사단의 모습을 가졌던 영혼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었다. 이 변화 자체가 이적 중의 이적이다. 말씀에 의하여 이룩된 변화야말로 말씀의 가장 깊은 신비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수는 없으나 우리는 성경이 선언한 바와 같이 이것이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을 뿐이다.” (행적, 476).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다 땅 위에서 사는 날 동안 그들의 생애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한다. … 주님은 당신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중생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그 길은 좁고, 우리가 들어갈 문은 협착하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새 마음과 새 영을 가져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치면서 남녀노소를 그리로 인도하여야 한다. 해묵은 유전된 성벽들은 극복되어야 한다. 자연 그대로의 욕망들은 변화되어야 한다. 모든 기만과 거짓, 그리고 악담은 내버려야 한다. 남녀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새로운 생애를 살아야 한다.” (3보감, 291).

 

너희도 온전하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하신 우리 주님의 명령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기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온전하게 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은 많은 신학자들에게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으며 그 결론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인간들은 온전하게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맙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우리주님의 말씀은 소위 신학자들에 의하여 신자들이 도달해야할 믿음의 표준은 깎임을 당하고 죄인들에게 적당하도록 진리는 에누리를 당해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은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설명하려고 하는 인간들의 교만 때문이며 이적 중의 이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믿음이 없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지혜로 설명해보려는 소위 신학자들의 잘못된 의도 때문인 것입니다. 복음은 이론이 아니요, 능력이며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설명할 수는 없으나 경험할 수는 있으며, 경험할 수는 있으나 설명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이적이며 신비입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바다 위를 육지와 같이 걸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는 어떻게 바다 위를 걸어갔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고백은 예수님께서 걸어오라는 말씀을 듣고 그냥 걸어갔다는 이야기 외에는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말씀 그대로를 믿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간 무리들은 모두가 이런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으며, 이것이 셋째 천사들의 믿음이요 경험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들이 결코 아버지의 온전하심에 스스로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의 모든 일은 우리 주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말씀하신 분이 그 말씀을 이루실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 11:1). 믿는 자들은 그 실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셋째 천사의 기별 속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 것입니다.

 

율법이 새겨질 사람들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는 자들의 심령에 이제 성령께서는 율법을 기록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게만 율법을 새기실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위급할지라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려는 자들의 생각과 마음 속에만 하나님의 율법은 새겨질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혼을 죄로써 더럽히기보다는 빈곤과 비난과 고독 그리고 어떤 고난도 달게 받기로 선택하라. 수치나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 -교회증언 5권, 147.” (청년, 80).

어떤 사람도 강이나 바다 위에 무엇을 기록할 수 없으며 모래사장위에 중요한 무엇을 기록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람이 불거나 물결이 지나가면 그 기록은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성령께서도 바다 물결처럼 항상 움직이고 정함이 없는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기를 싫어하고 세상의 일락을 좋아하여 고난 받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의 심령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새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험의 바람이 불고 물결이 지나가면 지워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3).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언약은 그 날 이후에 성취될 일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란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일까요? 시대적으로는 1844년 이후를 말함이요, 개인적으로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자들을 말함일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기로 굳게 결심하는 영혼들에게 이루어질 예언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들은 짐승과 그 우상과 접전을 하게 될 것이다. 영생에 대한 그들의 소망은 확고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생명이 위험할지라도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초기, 254).

그러므로 이 일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에게만 성취될 예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1-2).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은 마음을 소생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우둔한 자들로 지혜롭게 하는 것을 믿으며, 금 곧 많은 정금보다도 더 사모하는 자들에게 성취될 예언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7-10).

행실을 항상 깨끗하게 하려고 애쓰는 청년들에게 그 언약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시 119:9-10).

주의 율법이 마음에 즐거움이 되는 영혼들에게만 그 언약은 성취될 것입니다.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시 119:77).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시 119:92).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는 믿음의 귀를 가진 자들의 마음에 율법은 새겨질 것입니다.

“이 율법은 우리에게 ‘더욱 거룩하라, 모쪼록 더욱 더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의 메아리이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충만을 바라라. 그렇다, 의를 주리고 목마르게 사모하라. 약속하신 바는 ‘너희가 배부를 것임이요’이다. 그대의 마음을 이 의에 대한 간절한 소원으로 채우라.” (3기별, 202-203).

품성의 결점을 보여주고 숨겨진 결점을 찾아주는 신비한 율법의 거울을 깨트리려고 하는 마음과 율법의 거울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 일은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거울이며, 사람의 품성 속에 있는 결점들을 보여 준다. 그러나 불의한 것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이 그들의 도덕적 결함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 충실한 거울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나타내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의 마음을 치는 전쟁을 시작하는 대신에 이 참되고 충실한 거울을 치는 전쟁을 벌인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주신 목적은 그들이 기만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 그들의 품성 가운데 있는 결점들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결점들이 이렇게 드러났을 때 그들이 그 거울을 미워해서 되겠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미워해야 할까? 그 결점들을 드러내어 보여준 그 거울을 치워버려야 된단 말인가? 그들이 마음에 품고 있고, 그 충실한 거울이 그들의 품성 가운데 있다고 보여준 그 죄를, 그들이 버리지 않음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되지 않으면 그 죄는 하늘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을 닫아 버릴 것이다.” (리뷰 1870. 3. 8).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일을 고통스러운 멍에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율법을 고통스러운 멍에로 여기는 사람은 죄인이며 율법의 교훈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은 율법을 범한 사람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롬 8:7)다.” (1기별, 219).

셋째 천사들로 상징되는 이 땅의 남은 백성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된 백성들입니다. 제 칠일 안식일을 지키고 십계명을 유창하게 외운다고 하여 그 마음에 율법이 새겨진 것은 아닙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숭경심이 없는 사람들, 더욱 거룩하라 더욱 거룩하라는 율법의 메아리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들, 믿음 오직 믿음을 외치고 사랑을 주장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자들의 마음에는 아직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유난히 빛나는 넷째 계명

선지자는 계시 가운데 넷째 계명이 다른 모든 계명보다 유난히 광채가 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왜 넷째 계명이 유난히 빛이 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선과 악의 대쟁투기 바로 이 계명에 의하여 종결될 것이며, 대쟁투의 계쟁점이 바로 이 넷째 계명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벌어지게 될 싸움에서 여호와의 율법에 충성하지 않고 배교한, 타락한 모든 권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일에 연합할 것이다. 이 싸움에서 넷째 계명의 안식일은 중요한 계쟁점이 될 것인데, 이는 위대하신 입법자께서 안식일 계명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늘과 땅의 창조주로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3기별, 392, 1891년).

예수께서 법궤가 있는 지성소의 문을 열어 놓으신 이래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줄곧 빛을 비추고 있었으며 그들은 안식일 문제로 시험을 받고 있었다.” (초기, 42).

예수께서 지성소의 문을 여실 때 나는 안식일에 대한 빛을 보았다. 그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시험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험을 받았다.” (초기, 254).

1844년 이후 이 땅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은 무너진 하나님의 율법을 수보하는 자로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안식일을 회복하며 그날을 존귀하게 여기며 거룩하게 지키므로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한 백성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일은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노라고 하는 백성들 때문에 하나님은 수치를 받으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선지자는 말씀 하시기를,

“많은 공언하는 안식일 준수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안식일은 훨씬 더 신성하다. 안식일을 의문이나 정신면에 있어서 계명에 따라 지키지 않는 자들로 말미암아 주께서는 크게 수치를 받아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준수의 개혁을 요구하신다.” (교권, 263).

안식일은 하나님의 인이요 충성의 시금석인 안식일이 그 날을 지키노라고 하는 백성들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신다는 말씀은 오늘날 재림성도들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다음의 말씀들을 조금도 가감함이 없이 받아들여야 할 말씀들입니다. 어려운 생활여건을 구실삼아 부분적으로 지키는 안식일 준수와 안식일에도 자녀들을 학교에 보냄으로 하나님은 수치를 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편의상의 문제로 삼고, 그대의 사업이나 기분에 따라 순종하기도 하고 불순종하기도 한다. 이것은 안식일을 거룩한 제도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이러한 무분별한 행동을 함으로 성령을 슬프게 하고 그대의 구속주에게 욕을 돌린다. 안식일 계명을 부분적으로 지키는 것은 주께 가납되지 않으며, 그대가 안식일 준수자라고 공언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영향을 죄인들의 마음에 끼친다.” (4증언, 248).

“만일 부모들이 자녀들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교육받도록 허용하고 안식일을 평범한 날로 만들 것 같으면, 하나님의 인이 그들에게 쳐질 수 없다. 그들은 세상과 함께 멸망당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피에 대한 책임이 부모들에게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교권, 269).

안식일 예비일에 준비를 게을리함으로 온전한 안식일 준수에 실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죄 없다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여섯째 날에 준비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과 안식일에 요리하는 자들은 넷째 계명을 범하는 자들이며 이들은 하나님의법을 범하는 자들이다.” (3영적, 253).

금요일에 안식일 준비가 완료되게 하라. 모든 의복이 준비되고, 모든 요리가 마쳐졌는가 확인하라. 신발은 닦아 놓고, 목욕을 하라.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것을 규칙으로 삼으면 할 수 있다. 안식일에 옷을 수선하거나, 음식을 요리하거나, 쾌락을 구하거나, 기타 세상적인 일을 하지 말 것이다. … 그들이 계명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준비를 하는 데 참여하게 하라.” (6증언, 355).

안식일의 요구를 깨달은 후에 넷째 계명을 무시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보시기에 죄 없지 않다.” (4증언, 247).

이처럼 문자적으로 넷째 계명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머지않아 선악의 대쟁투에서 안식인준수가 투쟁의 계쟁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에 훈련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가 짐승에게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과,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은 자들의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쟁투, 450)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겨진 자들만이 그 날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마땅한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자들만이 승리의 대열에 참여 하게 될 것입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계 13:15) 할 때에 재림성도들이여 우리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지금은 이렇지만 그때에는 정말 믿음생활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그 때에는 이미 때가 늦을지도 모릅니다. 은혜가 풍성한 오늘이라는 시기에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 사람들만이 그 때에도 굳게 설수 있을 것입니다.

 

그룹천사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 위 속죄소에는 양편에 그룹천사들이 두 날개를 펴고 하나님의 율법을 숭경하는 자세로 내려다보면서, 법궤를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화잇 선지자는 하늘 지성소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들어있는 법궤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 중에 거룩한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이 들어있는 법궤가 지성소 안에 놓여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또 그 궤를 성막에 들여 놓고 장을 드리워서 그 증거궤를 가리우니 …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출 40:20-21, 34).

그룹천사는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곳이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숭경하는 자세로 보호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왕이 하나님의 거룩한 법궤를 운반할 때, 제사장들이 어깨로 메어 운반하지 않고 수레에 싣고 운반하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법궤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들이 뜀으로 법궤가 떨어질 위험에 이르렀을 때, 웃사는 엉겁결에 법궤를 붙잡았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웃사는 즉시로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거룩한 율법은 하나님의 그룹천사에 의하여 보호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웃사는 마치 인간들에 의하여 율법이 보호받기나 하는 것처럼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법궤에 함부로 손을 대었을 때에 그는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들어있는 법궤는 그룹천사가 친히 그 법궤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보호하도록 맡겨지지 않았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경건하게 머리 숙여 법궤를 내려다보는 그룹의 자세는 하늘 천사의 무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가지는 존경과 구속의 경륜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나타냈다.” (부조, 348).

재림성도들이시여, 우리는 이와 같은 진리에서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우리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기록 되어 있다면 그룹천사의 관심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기록되어 있다면, 우리들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법궤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천사들의 사명을 지금보다 더욱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은 하늘 존재들의 협력을 받고 있음을 기억함이 좋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과 능력의 군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과 동행하고 있다. 힘이 탁월한 그룹과 스랍, 그리고 천사들이 하나님 우편에 서서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히 1:14)신 바 된다.” (행적, 154).

하나님의 법궤 위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있었듯이 살아있는 법궤들은 어느 곳에 가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이 세상 각 처를 왕래할 때,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된 율법은 아름다운 영광으로 나타나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움직임을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보여 주셨을 때 요한은 이것을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계 18:1)고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마음에 기록된 살아 움직이는 법궤들은 참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낼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생명과 모든 생애는 천사들에 의하여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들이 성경에 보석으로 상징된 144,000인들이요 하늘의 빛이요 별들인 것입니다. 다니엘이 말한 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2-3)고 명한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은 별들은 이미 1844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며 어떤 이들은 죽었으나 하나님의 음성에 의하여 특별부활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일어나 살아있던 144,000인들과 함께 살아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자들인 것입니다. 이들의 생각과 마음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이해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여 궁창의 빛이 되고 하늘의 별들이 되어 영원토록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시여,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는지요?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이스라엘 집으로 세워질 언약이 참으로 확실하게 맺어져 있는지요?

또한 우리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 매료되어 있으며 공의와 자비가, 복음과 율법이 생애에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제 칠일 안식일, 넷째 계명이 얼마나 우리들의 생애에서 존귀함을 받고 있으며 광채를 발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경험들이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경험이 되어야 하며 셋째 천사의 기별 속에서 나타나야할 경험들인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후 13:5).

대속죄일은 하루이며 주님의 재림은 오늘입니다. 결코 내일이 아닙니다.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  멘 -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