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연구

십사만사천인

십사만 사천에 관한 질문들

 

 


편집부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1-4.

 

   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재림성도들에게 가장 흥미 있고 논쟁점이 되었던 교리는 계시록 7장의 십사만 사천인의 인치는 기별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고 십사만 사천인의 특권을 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짐승의 표를 받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든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가 흘러갈수록 십사만 사천인의 인치는 진리는 재림성도들의 관심에서 밀려나고 이제는 너무나도 싱거운 결론을 지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십사만 사천인과 같은 영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하여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추세이다. 마치 더 이상 연구해볼 가치도 없는 것처럼 뒷전으로 미루어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난 세 번의 기회(본 잡지 1-3호)를 이용하여 십사만 사천인에 관한 중요성을 말씀을 찾아 연구하였다. 진리를 찾아 탐구하는 자들이라면 분명한 빛을 보았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진리이지만 이 진리를 무력화시키려는 사단의 노력도 만만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사실은 이 기별은 생과 사가 달려있는 매우 중요한 기별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귀중한 영혼들이 현대진리 곧 인치는 진리와 때에 적당한 식물의 부족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음과 또한 신속한 사자들이 저들의 길을 달려가서 현대진리로 양떼를 먹일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나는 한 천사가 ‘빠른 사자들아 급히 가라’ ‘빠른 사자들아 급히 가라’고 말하는 것과 모든 영혼의 운명은 생사간에 각각 신속히 결정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현대진리 1권, No. 3, p. 3.

   “그리스도인 이라고 자처하는 자들 중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날에 쓴 실망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이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갖지 못하였다.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만 거룩한 성문을 통과할 패스포드를 갖게 될 것이다.” -성경주석 7권, 970.

   “사단은 인치는 시기가 마치고 하나님의 보호막이 그분의 백성에게서 거두어지기까지 온갖 간계를 다 써서 그들을 그러한 처지에 붙들어 놓기 위하여 애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마지막 일곱 재앙이 내릴 때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초기, 44.

   “나는 사단이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혼란시키고 속이고 유혹하는 일을 바로 지금 곧 인치는 시기에 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 진리에 굳게 서 있지 않았다.” -초기, 44.

   십사만 사천인에게 인치는 기별은 현대 진리요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영적 식물이 되며 이 식물의 부족으로 양떼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선지자는 말씀 하셨다. 그리고 사단은 이 인치는 시기동안 온갖 계략을 다하여 현대 진리에서 관심을 돌리게 하여 인을 받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호부터는 십사만 사천인에 관한 질문들을 다루면서 믿는바 진리의 확신을 다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질문 1) 십사만 사천인과 헤일 수 없는 무리들은 같은 무리들인가?

 

   (연구 1) 두 무리의 형성 과정

   어느 때부터인지는 몰라도 십사만 사천무리들은 아담이후 구원받은 모든 무리들을 상징하는 숫자라는 견해가 재림교회 안에 확산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림교회에서 발행한 기관지에서 또는 교역자들의 글 가운데서 읽을 수 있었다. 저희들이 운영하는 홈 페이지에도 이와 같은 견해들을 주장하는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먼저 이 문제를 연구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계시록 7장에 있는 말씀을 보도록 하자.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16).

   계시록 7장 1-3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계시를 보는 가운데 네 천사가 땅 사방에서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는 모습과 동쪽에서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으며 그 천사가 바람을 잡고 있는 네 천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붙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또 4절-8절에는 인 맞을 백성의 수효는 144,000명이 될 것이요 그 무리들은 이스라엘 열두지파 에서 각각 12,000명이 되는 계시를 보았다.

   그 다음 계시의 장면이 바뀌고 9절-12절에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 하나님과 어린양 앞에 경배하며 찬양하는 헤일 수 없이 많은 구원받은 무리들을 보았다.

   다시금 요한은 장로 중 한 사람에 의하여 계시 중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는데   흰옷을 입은 또 한 무리를 보게 되었다. 이때 장로 중에 하나가 말하기를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계 7:13) 라는 질문을 요한에게 하였다. 그런데 요한은 헤일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 중에서 온 것을 알았으나(9절 참조) 장로가 질문하는 ‘이 흰옷 입은 자들은’ (13절)어디서 왔는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요한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장로는 그 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말해 주었다(14-16절).

   그들은 ‘큰 환란에서 나온 자’들이며,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자’들이며, ‘주리고, 목마르고, 뜨거운 태양의 기운에 상하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 큰 환란에서 구원 받은 자가 누구이며 칠 재앙의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목도한자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144,000인들을 가리켜 하는 말인 것이다. 요한은 계시록 7장에서 구원받은 두 무리를 계시 중에 분명히 보았다.  

   계시 가운데 요한에게 말씀하신 분이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 1:1) 예수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 주셨는데 그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무리의 수효가 144,000인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이 144,000무리는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들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하여 보라.

   요한은 분명하게 인 맞은 수가 144,000인이라는 말을 들었고 12지파에서 각각 12,000명, 그래서 144,000명을 확인했다(계7:4-8). “이 일 후에” 곧 144,000명을 확인한 후에(9절)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 두 무리가 같은 무리들인가?

   혹자는 말하기를, 144,000무리도 많은 무리이기 때문에 요한이 셀 수 없는 무리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계시는 인간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의 세계이다. 요한이 육신의 몸으로 하늘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하늘의 계시를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요 육신의 귀로 들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요한이 마치 육신의 눈으로 계시를 본 것처럼 144,000명이 많기 때문에 셀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은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헤일 수 없는 무리 - 각 나라, 백성, 방언에서 나온 구원 얻은 셀 수 없는 무리들.

   십사만 사천인 - 큰 환란(야곱의 환란)에서나온, 그리고 칠 재앙에서 구원받은 무리들.

 

   (연구 2) 성령의 인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엡 1:13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 침이 있어 일렀으되 …” 딤후 2:19.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인 침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이미 모든 시대마다 충성스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의 인침이 있었다. 이것은 구원의 표요 보증으로 주어진 인침 이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 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2)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성령의 인과는 다르게 1844년부터 그 사업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다니엘 8장 14절의 예언과 관련하여 2300주야의 긴 예언과 하늘성소의 정결로 인하여 이 땅에 탄생될 특별한 백성들에게 쳐질 인인 것이다. 상기 할 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은 재림성도들은 모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으므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잘못된 생각이 만연되어 있는 것은 십사만 사천무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헤일 수 없는 허다한 무리에 들어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십사만 사천인의 무리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은 교만한 마음이며 헤일 수 없는 무리의 구원으로 만족하게 생각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구원에 등급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무리와 헤일 수 없는 무리의 특권은 다를 수 있을지라도 구원이 다른 것이 아니다. 똑같이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조건으로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영생을 얻는 조건은 지금도 옛날-에덴 낙원에서 우리의 시조(始祖)가 타락하기 전-과 똑같으니 곧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는 완전한 의가 요구된다. 만일에 영생을 이보다 약한 조건으로 허락하여 준다고 하면 온 우주의 행복은 위험을 받게 될 것이고 모든 재화와 비참을 일으키는 죄가 영원히 불멸(不滅)할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정로, 62.

   십사만 사천인들과 헤일 수 없는 허다한 무리와의 차이는 받은바 빛의 분량과 시대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이 다르며 받을 특권은 같지 않은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과 안식일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일요일 개신교도들은 비록 그들이 구원받는다 하더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인’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중 하나님의 인이 되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셋째 천사의 기별로 말미암아 탄생될 백성들이며  특히 안식일계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셋째 천사의 기별로 구원 얻을 백성들에게 쳐지는 인이요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은 일요일 교인들에게는 쳐질 수 없으며, 1844년 이전에는 쳐질 수 없는 인 인 것이다. 1844년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진 셋째 천사가 이 땅에 내려와 인치는 사업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열 계명 중에서 오직 넷째 계명만이 위대하신 율법 제정자,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인을 포함하고 있다.” -6증언, 350.

   “나는 그 때 셋째 천사를 보았다. 나를 수행하는 천사가 말했다. 그의 사업과 사명은 두렵고 놀라운 것이다. 그는 곡식을 가라지에서 분리해서 인을 치고 묶어서 하늘 창고에 들이는 천사이다. 이 일에 온 마음과 주의력을 기울여야 한다.” -초기, 118.

   “나는 거기서 좁은 길을 여행하고 있는 소수의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모두 진리로 굳게 뭉쳐져 있었는데 마치 나뭇단, 또는 무리처럼 보였다. 천사는 ‘셋째 천사가 그들을 하늘 창고에 들이기 위하여 묶고 있으며 그들에게 인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88-89.

   안식일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요 셋째 천사의 인치는 사업이 1844년부터 시작된 것이 확실하다면 아담 이후 셀 수 없는 큰 무리들과 144,000무리들은 동일 한 무리가 될 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

    헤일 수 없는 큰 무리 - 성령의 인침을 받음.

   십사만 사천인 -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음.

 

   질문 2) 144,000인의 숫자는 상징인가 실제적인 수효인가?

 

   (연구1) 성경이 스스로 말씀하고 있음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4).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1, 3).

   144,000명이 실제적인 숫자라는 것을 인간이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말씀자체가 완벽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위의 성경 말씀에서 십사만 사천인을 상징으로 해석해야 할 어떤 필요와 이유를 찾을 수 있는가? 성경은 더 이상 계시의 말씀에 다른 해석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 이런 경우는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4).

   “…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1. 3).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 19).

 

   (연구2) 말씀 스스로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음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4).

   “내가 보니 보라 …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계 14:1).

   성경에는 계시를 통하여 요한에게 살아 계신 인을 받을 사람의 수효가 십사만 사천인이 될 것이라고 들려주셨고(계7:4) 또한 보여주셨다.(계14:1) 그렇다면 믿을 만 하지 않는가?

   요한이 듣고 본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확인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계 7:4-9).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144,000명(12,000×12=144,000)이 확실하다. 더 이상 무슨 증거를 요구하겠는가? 그래도 불확실하다면 선지자의 글을 보자:

   “유리 바닷가에는 144,000명이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서 있었다.” -초기, 16.

이 말씀을 보면 144,000명이 유리바닷가에 정방형의 모습으로 정렬해있는 모습이다. 정방형으로 정렬을 하기 위해서는 144,000명에서 한 명이라도 많거나 적은 수효라면 정방형의 정렬을 이룰 수가 없다는 사실은 운동장에서 정렬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여 주셨고 듣게 하여 주셨고 두 번이나 같지 않는 방법으로 확인하여 증명 해 주셨다. 그런데도 144,000무리는 상징이라고 하겠는가?

 

   (연구 3) 성경은 더 이상의 논쟁을 거부함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3).

   성경은 ‘새 노래를 부를 사람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없더라’고 말한다.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이라는 말은 한 명도 많거나 적지 않는 또 그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이유로도 성경은 이 문제만큼은 논쟁하는 것을 거부하는 말씀인 것이다.

 

   (연구 4) 실제적 수효가 되어야함

 

   이번에는 144,000명이 실제의 수효가 되어야 하는 타당성을 좀 다른 방법으로 연구해 보자. 성경에는 숫자가 지니고 있는 상징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3 - 삼위 하나님.

   7 - 완전수, 하나님의 완전하심.

   6 - 불완전.

   666 - 짐승의 표.

   12 - 교회를 상징하는 수(12사도 12지파).

   144,000명을 상징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이유 중에 하나는 계시록 7장에 나오는 12지파는 실제적인 지파가 아니요 상징이기 때문에 144,000명도 상징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같은 사건을 다루는 일에 어떤 것은 상징으로 어떤 것은 실제적인 것으로 다룬다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논리이다. 지극히 일반적인 해석이며 논리이다.

   성경의 말씀은 영적인 것이기에 인간적인 논리가 아니라 성경적인 논리로, 영적으로 해석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이스라엘 12지파는 실제 지파요 계시록7장에 나오는 12지파와 144,000명은 상징적인 지파일뿐 실제가 아니다. 라고 모두는 생각한다. 그러나 재림신자들은 개념을 바꾸어서 생각해야 한다. 이스라엘 12지파가 비유요 상징이며 오늘날 재림성도들과 144,000명은 실제 적인 지파라고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야고보서 1장 1절을 보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 곧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구약은 예언이요 비유이며 신약은 성취요 실체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어린양은 상징이요 비유이며 신약의 예수님은 양의 실체요 비유의 주인공이시다.

   그러므로 구약의 12지파가 상징이요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백성인 재림성도들이 실체적인 열두 지파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날 영적 12지파에서 구속의 열매들로 계수된 144,000명을 상징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는가? 잘못된 해석이다. 실체는 글자 그대로 실체요 성취이기에 가감하여 설명해서는 안 된다.

   계시록 21장을 연구해보면 구속의 열매들인 144,000명은 하늘 새 예루살렘 도성의 설계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되며 144,000명은 새 예루살렘 교회와 상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늘 새 예루살렘 도성은 일반적으로 교회를 상징하는 숫자인 12라는 숫자로 설계되었다. 새 예루살렘 도성과 144,000명을 비교해 보자(계 21장 참조).

   12지파(12사도) - 열두 진주문, 열두 기초석

   지파별 12,000명 - 12,000스타디온

   144,000인 - 144규빗의 성곽 (천사의 척량임)

   144,000인의 품성을 상징하는 12보석 - 실제적인 12보석으로 꾸밈.

   144,000인의 품성의 기초인 믿음과 사랑(금) - 정금 거리.

   모두가 보면 144,000명의 품성을 상징하는 보석과 정금으로 꾸며졌으며 그리고 열두지파가 기초가 되고 있으며 결국 12지파의 구속의 열매인 144,000명의 승리한 무리들을 영원토록 기념하도록 건축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건축된 새 예루살렘 교회에는 이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24장로가 새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가 될 것이며 지상에 있던 성소에서 레위 지파가 봉사하였던 것처럼 144,000명은 새 예루살렘 교회에서 봉사하는 레위 지파(집사)의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헤일 수 없는 허다한 무리는 새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되어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 앞에 모두가 모여서 경배하게 될 것이다. 아,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섬기는 종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그 수효를 정하실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교회는 교회에서 봉사할 장로와 집사들의 수효를 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기억할 일은 어떤 필요를 위하여 사용된 숫자나 무엇을 상징하기 위하여 사용된 숫자는 결코 변경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숫자가 바뀌면 뜻이 달라지고, 상징하는 바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2제자 중 가롯 유다의 결격 사유 때문에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바사바와 맛디아를(행1:23) 제비뽑아 그 중 맛디아를 택하여 12명을 채운 사실과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상징하기 위해 7(일곱)이 아닌 6(육)을 사용한다면 어찌 올바른 상징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144,000명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속에서 그분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가운데 특별한 구속의 설계가 이 무리들의 수효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또한 144,000명의 이름이 새 예루살렘성 기둥에 금 글씨로 새겨져 있다.

   “‘이 성전은 일곱 개의 기둥이 떠 받치고 있었으며 일곱 개가 모두 매우 찬란한 진주가 박힌 투명한 금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거기서 본 놀라운 사물들을 다 묘사할 수 없다. 내가 하늘 가나안의 언어로 더욱 좋은 그 세상의 영광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묘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거기서 144,000명의 이름이 금 글씨로 석판들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초기, 19.

   이 이름들이 상징으로 새겨졌을 뿐 실제적인 이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들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자 하지 말자. 그 이름은 상징적인 이름이 아니요 실제적인 이름들이요 실제적으로 구속함을 받을 존재자들이다.

 

   (연구 5) 예언의 신의 확증

   “생사간에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마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셨다. 주님의 백성의 수효는 찼다.” -쟁투, 613-614.

   “나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천사가 잉크 통(뿔로 만든)을 가지고 지구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자기의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고 성도들의 수가 차서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했다. 그러자 나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서 봉사하시던 예수께서 향로를 내던지시는 것을 보았다.” -초기, 279.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끝난 후 그 두려운 시간에 성도들은 중보자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상황은 결정되었고 모든 보석은 헤아려졌다.” -초기, 280.

   이제 생각해보자. 144,000명이 실제의 수효가 아니요 헤일 수 없는 무리라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헤아리고 계셨으며  헤일 필요도 없는 허다한 무리들을 수가 차도록 기다리고 계셨는가?

   주님께서 헤아리시고 수효를 세시며 그 수가 차도록 기다리신 것은 144,000무리들의 수효가 실제적인 수효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야곱의 환란동안 중보자 없이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하며 지킬 수 있음을 온 우주에 증거 할 구속의 열매들이기에 그 수효가 차기를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신 것이다. 마침내 144,000명의 수효가 찰 때, 마지막으로 준비된 영혼이 인침을 받는 순간 천사는 지구로부터 돌아와 예수님에게 144,000명에게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하였다. 구속 사업은 이제 모두 끝이 난 것이다. 법궤 앞에서 향로를 들고 봉사하시던 예수님은 향로를 내던지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고 선언을 하신다.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인들을 위한 간구도 눈물도 흘릴 필요가 없다. 마지막 눈물은 흘려졌고 하늘 성소에는 죄인을 위한 중보자는 떠나시고 계시지 않는다. 죄인들에게 항상 호소하시던 성령도 세상에서 떠나시고 천사들도 더 이상 죄인들을 도울 일이 없어졌다. 144,000명의 수효는 찼고 구속의 열매는 모두 추수되었기 때문이다. 사단은 이것을 안다. 144,000명의 수효가 차는 날 자신의 운명은 끝이 나고 영원한 심판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

   그러므로 이 진리가 나타나는 일은 사단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요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끊임없이 이 진리를 무효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왔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치는 기별로 탄생될 144,000인들이 상징적인 존재자들이라고 결론 짓게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사단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재림교회 안에서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난무하여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 분간할 수 없도록 되어 버렸다.

   어떤 견해들은 일요일 교회들에서 주장하던 견해들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버젓이 재림교회 강단에서 전해지고 있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의 말씀은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

   “그는 ‘내가 나가서 속이는 영이 되어 내가 할 수 있다면 이들을 속이고, 비평하고, 저주하고, 거짓 것을 만드는 이가 되게 하리라’고 말한다. 기만과 거짓 증거의 죄가 큰 빛, 큰 증거를 받았던 어떤 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져서 그 교회는 주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제거할 것이요, 지극히 비이성적인 주장과 거짓된 추측과 거짓 이론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사단은 그들의 미련함을 비웃는데, 이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단의 가증한 횃불에서 불을 붙인 거짓 예언의 횃불을 손에 들고 강단에 서게 될 것이다.” -목사, 409.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