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설교

세 천사의 경험

둘째 천사의 경험

둘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라

 

 


강대천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 14:8.

 

   선고 받은 바벨론

   이번 호부터는 둘째 천사의 기별을 중심으로 우리들이 취해야할 현대 진리와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천사는 첫째 천사의 뒤를 따라와서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기별을 외치고 있습니다.  둘째 천사가 무너졌다고 선고한 바벨론은 어떤 성입니까? 물론 다니엘 시대의 느브갓네살왕이 통치하던 바벨론도성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그 도성은 무너지고 역사의 무대에서 살아진지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바벨론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재림신자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안식일학교 유년반 아이들도 쉽게 대답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벨론은 로마천주교회를 상징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로마천주교회를 바벨론 이라고 합니까? 아마 이 질문은 유년 아이들이 대답하기에는 좀 어려운 질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른들이 대답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왜 로마천주교회를 바벨론 이라고 합니까?

   어른들은 알기는 아시는데 설명하기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간단히 한마디로 대답하기에는 글자가 의미하는 것 같이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바벨’이라는 말의 의미가 혼잡이기 때문이지요.

   성경에서 사용된 바벨론이라는 말은 배교적인 종교를 나타내는데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계시록 17장에는 음란한 여인을 바벨론으로 말하였는데 곧 배도한 교회를 의미하며 순결한 여인은 정결한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로마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우리들이 지금 말하는 로마천주교 곧 큰 성 바벨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녀라고도 말하며 음녀들의 어미라고도 말합니다. 어찌하여 사도바울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를 그렇게 말할 수가 있을까요?  

   “성경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신성하고 영속적인 특성이 결혼의 연합으로 대표되어 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와 애정을 버리고 세속적 사물에 대한 사랑으로 그 마음을 채우므로 그리스도께 성실하지 못한 것은 결혼 서약을 깨뜨리는 것으로 비유되어 있다.” (쟁투, 381).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면 그 아내는 음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령한 아내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사랑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한다면 교회는 음녀가 되는 것이지요.“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교회가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따라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음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유대교는 주님을 떠나 이교도로 더불어 동맹을 맺음으로 음녀가 되었는데, 로마교도 그와 마찬가지로 세속적 권력의 지지를 받기 위하여 스스로 타락함으로 그와 동일한 죄의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쟁투, 382).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세상과 교제하는 정신이 오늘날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 자칭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가! 그리스도교국의 일반 교회들이 겸손, 극기, 단순, 경건 등에 대한 성경상 표준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가있는가! ” (쟁투, 385).

   새로운 바벨론

   비록 사도바울에 의하여 세워진 로마교회이지만 세상 권세의 총애를 얻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고 스스로 타락의 길로 나아갈 때에 음녀의 어미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 바벨론으로 탈바꿈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바벨론이란 순결하였던 교회가 타락하고 배도하였을 때 붙여지는 이름입니다.

   그러면 1844년 둘째 천사는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치고 있는데 어느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까? 타락한 로마천주교회를 말하는 것일까요?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선포하는 요한계시록 14장의 기별은 전에는 순결하였으나 그 후에 타락한 종교 단체들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 기별은 심판의 경고 다음에 주어지는 기별이므로 그것은 분명히 말세에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로마교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로마교는 이미 여러 세기 동안 무너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쟁투, 383).

   1844년 이전 순결하였던 교회들 곧 각 종파의 개신교회들을 바벨론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틴 루터를 위시하여 역사에 나오는 많은 종교 개혁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들을 통칭하여 바벨론이라고 선언하였으며 무너졌다고 둘째 천사는 외치고 있습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에 의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론이 되었으며 충실한 도성이 음녀가 되고 무너지는 운명이 되었는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연고입니까?  선지자의 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개신교회들은 로마교가 “땅의 임금들”과 불의의 관계를 맺은 그 본을 따르고 있는데, 국교들은 나라의 정부와 손을 마주잡고, 그 밖의 다른 교파들은 세상의 총애를 받고자 애쓰고 있다.” (쟁투, 383).

   “그러면 큰 배교의 발단은 무엇인가? 어떻게 교회가 복음의 순수성에서 떠나가게 되었는가? 그것은 다신교의 습관을 따름으로 이교도로 하여금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기 쉽도록 만든 데 그 원인이 있다. … 새 신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인 신앙의 높은 표준을 낮추어버린 결과로 “이교가 홍수처럼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와 그 풍속, 습관, 우상 등이 반입되었다.” (쟁투, 384-385).

   “예배자들은 비싸고 유행에 맞는 옷을 입고 모여든다. 사람들을 잘 다루고 이끄는 재간 있는 목사에게는 높은 액수의 봉급이 지불된다. 그의 설교는 보편화된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유행을 따르는 죄인들은 교회명부에 등록되고, 유행을 따라 생기는 죄들은 믿는다는 가면 아래 감추어진다.” (쟁투, 386).

   하나님의 교회가 바벨론이 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로를 통해서입니다. 결코 처음부터 바벨론 교회라고 간판을 붙여서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이름이 아름답다고 하여 우리교회는 결코 바벨론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은 무서운 사단의 기만입니다. 이 세상 어느 곳 어떤 교회도 자신의 교회를 바벨론이라고 부르거나 바벨론이라는 간판을 붙인 교회는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사단의 기만이 무서운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도 바벨론은 거대한 세력을 가진 교회들로 존재하고 있음을 말씀 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고 무너질 것을 선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이 교회에 도입되게 되면 진리는 외면당하고 교회는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다는 말은 성경의 명확한 기별을 감추어두고 새 신자들을 얻기 위한 명분으로 신앙 표준을 낮추어 버리고 그들의 수준에 맞도록 부드러운 기별만을 강단에서 외칠 때 교회는 타락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844년 첫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하였을 때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세상을 사랑하던 교회들이 바벨론이라는 선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첫째 천사의 경험들을 기억하라

   첫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하였을 때 교회들은 바벨론이 라는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  해야 합니다. 첫째 천사의 기별을 교회가 거절하면 교회가 바벨론이 될 것이며 개인이 거절하면 개인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세 번의 기회를 이용하여 첫째 천사의 경험들을 연구하였습니다.  

   1844년 이후 첫째 천사는 둘째와 셋째 천사와 함께 지금도 공중을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항상 첫째 천사의 경험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첫째 천사의 경험을 잊어버린다면 바벨론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천사의 경험들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원한 복음과 경건의 두려움이 없어지면 그것은 곧 타락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 천사 기별의 경험하지 못하면 둘째 천사의 기별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론적인 지식과 역사와 예언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그 기별을 받고 그것에 따라 사는 사람들로부터 그 기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초기, 188).

   “첫째 천사의 기별을 거역한 자들은 둘째 천사의 빛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그 다음의 기별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초기, 249).

   분리

   1844년 당시에 세 부류의 사람들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으나 사람들의 안목으로는 두 무리의 사람들 밖에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첫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거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첫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무리들 중에 두 무리가 섞여 있었는데 곧 첫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한자들과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한데 어울려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에는 확연히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섞인 무리들을 그냥 두시지 않으시고 신실한 무리들로부터 분리 시키셨습니다. 초기문집 가운데 있는 말씀을 보면. “그분은 예언적 기간을 계산하는데 생긴 과오를 당신의 손으로 덮어 두셨다.”(초기, 235)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과오를 덮어 두셨습니까? 다시 선지자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낙망을 경험하도록 계획하셨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갔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쁨으로 고대하던 자들은 용기를 잃고 슬픔에 잠겼고, 예수의 오심을 사모하지는 않았으나 두려움 때문에 그 기별을 받아들였던 자들은 그가 기다리던 정한 때에 오시지 않자 모두 기뻐하였다. 그들의 증언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고 생활을 정결케 하지 못하였다. 정한 때가 지나가자 그러한 사람들은 뚜렷이 구별되어 드러났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였다. 그들은 먼저 구주의 나타나심을 진정으로 사모한 자들이 슬퍼하고 실망하는 것을 보고 돌아서서 비웃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여 시련의 때에 물러서고 돌아서는 자들을 골라내시는 것이 그분의 지혜임을 보았다.” (초기, 235-236).

   첫째 천사의 경험이 없는 무리들이 “예수의 오심을 사모하지는 않았으나 두려움 때문에 그 기별을 받아들였던 자들은 … 생활을 정결케 하지 못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는 마치 신실한 백성처럼 보였으나 첫째 천사의 경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망이라는 시련의 도구를 통하여 첫째 천사의 경험이 없는 자들을 골라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신실한 백성과 그렇지 않는 자들을 구별하시는 지혜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시여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들입니까? 진실한 무리와 지금은 함께 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방법에 의하여 진실 된 백성들과 분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엄숙한 일입니까? 첫째 천사의 경험이 없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구원의 대열에서 분리되고 말 것입니다. 그때에 자신이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권면을 거역하고 있으며 사단과 그의 천사들과 연합하여 하늘이 보낸 기별을 실천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초기, 237).

   두려운 일은 구원받을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으나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은 우리들에게도 가능한 일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험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7-18).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사단의 속임수에 의하여 자기 기만에 빠져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벌거벗고 가련하고 곤고한 상태에 있지만 본인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지요.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하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첫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의 참된 증인께서는 첫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8-19)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 전했던 두 천사의 기별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그의 악한 눈을 그들에게 돌려 저들을 넘어뜨리려 하였다.” (초기, 256).

   “나는 교회를 향하여 엄숙한 말을 한다. 현재 교회 녹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20명중 한 사람도 지구 역사를 끝마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대총회회보 1893년. p. 132.

   1893년경에 20명중 한사람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오늘날은 몇 사람 중 몇 명이나 준비되어 있을 것인지 실로 두려운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지 않고 경건의 모양으로 만족하면서 철저한 회개와 자복이 없다면, 그리고 회개 할 것이 없는 회개가 깊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총에서 분리되고 말 것입니다.

   “교회들이 첫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을 때 그들은 하늘에서 온 빛을 거절한 채 하나님의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였으며 첫째 기별을 거절함으로 둘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초기, 237).

   둘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라

   1844년3월 22일 정한 때가 지나가자 첫째 천사의 기별을 진실로 받아들인 무리들은 오히려 큰 실망을 당하였고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실망 중에서도 다시금 말씀을 연구하였고 다니엘서에 나타난 2,300주야의 예언을 다시금 검토한 결과 2,300주야의 계산에는 조금도 잘못이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2,300주야의 기산점이 되는 예루살렘의 중건령이 봄철이 아닌 가을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성의 중건령을 내린 아닥사스다왕의 조서가 봄이 아닌 가을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고 그 해 유대민족의 대속죄일이 10월 22일 가을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과오가 거기에 있었음을 깨달은 신실한 무리들은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되었고 1844년 10월 22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오심이 봄이 아니라 가을로 변경된 것이지요. 그들은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몇 개월을 성경과 기도의 씨름을 하였으며 드디어 자신들의 과오를 알게 되었고 실망은 더 큰 확신으로 변화되어 기쁨이 충만함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와 있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첫째 천사의 기별을 전할 때와는 다른 엄숙한 두려움과 의무감으로 압도되었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환희와 열광적인 기쁨에 도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들처럼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그저 기뻐하고 찬미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었고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 얻기 때문에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라 구원은 믿는 자들의 것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고 외치는 그런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신실한 백성들의 경험을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열광적인 기쁨은 별로 없고, 오히려 마음을 깊이 살피고, 죄를 고백하고, 세상을 버리는 일들이 있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는 그들의 번민하는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부담이었다. 그들은 끈기 있는 기도와 확고한 헌신을 주께 드렸다.” (쟁투, 400-401).

   “열광적인 환희는 없었다. 그런 일은 미래에 속한 것으로 하늘과 땅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충만하여질 그 때를 위하여 남겨 두었다. 또한 즐거운 환호성(歡呼聲)도 없었다. 그것 역시 하늘에서 환호성을 올릴 때를 위하여 남겨 두었기 때문이었다. 노래하는 사람들도 잠잠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찬양대, 곧 천사들의 무리와 연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의견의 충돌이 없었고,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뭉쳐있었다.” (쟁투, 401).

   오늘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어떤 사람들처럼 가벼운 대화와 경솔한 행동, 경박한 웃음과 세상을 사랑하는 옷차림, 마음을 찢는 회개와 자복이 없는 거듭남, 죄에 대한 혐오가 없이 기쁨과 평안만을 추구하는 복음, 경건한 두려움과 전심을 바치는 헌신과 굴복이 없는 생애와는 전혀 다른 경험들이었습니다.

   선지자께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운동은 각 곳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깊이 살피는 일과 심령을 겸비하게 하는 일을 일으켰다. 그 운동은 세속적 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게 하였고, 다툼과 원한을 화해하고, 모든 잘못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용서와 가납하심을 얻기 위하여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탄원하게 하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겸비와 완전한 순종을 하게 하였다.” (쟁투, 401).

   사랑하는 재림 성도들이여 아직도 세상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고 형제들간에 다툼과 원망이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자비와 용서를 얻기 위해 완전한 회개와 자복이 없다면,  그리고 주님께 굴복하여 겸비한 마음으로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의 각오가 없다면, 우리들은 아직 둘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을 떠날 준비

   1844년 10월 22일을 기다리는 진실된 백성들의 생애는 세상의 사물을 완전히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경험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둘씩 둘씩 손을 잡고 숲 속이나 한적한 곳을 찾았고, 잠시 후 그들은 눈물 젖은 눈으로 새 친구가 되어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두는 나쁜 감정을 그리스도의 재림의 아침까지 갖고 가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자녀들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죽는 일도, 젊은이들이 폐결핵으로 쓰러지는 안타까운 일도, 이별도, 슬픔도, 고통도, 이제 3개월 후가 되면 모두가 끝이 날 것이었습니다. 무서운 혹한 추위의 겨울이 오기 전에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날 것이었습니다.

   1844년 10월 14일 재림기별을 전하던 찰스 핏취(초기문집 18; 화잇 부인의 계시 속에 만난 인물임)는 과로로 인하여 숨졌으나 유족들은 슬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주일후면 다시 만날 것이 확실하였기 때문이었지요.

   상인들은 조용히 상점의 문을 닫았고 3개월 후면 만나 뵈올 만왕의 왕을 뵈옵기 위하여 사업을 그만둔다는 안내문을 써 붙였습니다. 기술자들은 주인과 상사들을 찾아가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빚진 자들은 빚을 갚기 위해 재산들을 정리하였고 채권자들과 부자들은  형제들의 빚들을 탕감해주었으며 빚을 갚을 수 없어 어쩔 줄 몰라하는 형제들의 빚을 대신 갚아 주었습니다.  

   농부들은 감자를 추수하는 일을 포기하였고 오히려 토지를 팔아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인쇄물을 제작하고 주의 오심을 광고하는 자금으로 헌신하였습니다. 급기야는 더 이상 돈이 필요 없으니 가지고 오지 말라는 광고가 나왔으며 뒤늦게 돈을 가지고 왔던 어떤 형제들은 하늘 창고에 보물을 저축할 수 없어 안타까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844년 10월 22일, 주님의 오심을 알리는 전도지들은 낙엽과 같이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고 인쇄기들은 밤낮을 쉬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재림을 알리는 신문에는 ‘나에게 피해를 입은 자는 저를 찾아 달라’는 기사들이 실렸고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신을 정결케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1844년 10월 19일 주님이 오시는 날  3일전이 되었을 때 숨쉴 여유도 없이 밤낮으로 돌아가던 인쇄기계는 멈추어졌고 수많은 청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세워졌던 천막도 거두어졌으며 기별자와 청중들은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 정돈 한 후 주님을 맞기 위해 헤어졌습니다. 3일 후에 하늘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모두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기별은 전하여 졌고 모든 준비는 끝이 난 것이었습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선고가 이제는 내린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1844년 10월 22일 재림을 기다리던 성도들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001년 8월을 살아가는 오늘날 재림성도들의 경험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재림성도들은 참으로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요?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도 둘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재림성도들보다 못한 경험을 가지고도 하늘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하는 믿음은 기만입니다.

   혹시 형제들 사이에 나쁜 감정들이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에 남아 있지는 않는지요?

   세상에 대한 애정과 야심을 버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일을 미루고 있지는 않는지요?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재물을 사랑하여 부당한 방법과 양심을 잠재우는 일은 없는지요? 그렇다면 아직도 우리들은 둘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재물은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져 있어야 하며 언제 어느 때이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주저 없이 바칠 수 있는 믿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도 어린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한번의 저항도 해보지 않은 채 굴복해 버리는 젊은이들, 이와 같은 사실을 보고도 한마디의 경고도 하지 못하는 교회의 지도자들, 이 모든 현실은 둘째 천사의 경험과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과 자신을 포기하라

   “세상 모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구원의 가치와 세상의 모든 이익보다 더욱 고귀한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것, 지위, 가옥, 명예 등 모든 것을 가져와야 한다. 완전히 헌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보류함이나 부분적 희생이나 우상은 승인하지 않으신다. 모두는 자신과 세상에 대해 죽어야만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날마다 하나님께 헌신을 새롭게 하자. 영생은 평생 동안 인내와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할 만큼 가치가 있다.” (우리의 높은 부르심, 308).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 말씀은 비록 희미하게 밖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가장 치욕적인 수욕,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까지 그들이 복종해야 할 것을 지적하신 것이었다. 이 말씀보다 더 완전한 자아 포기를 묘사한 말씀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 그리고 품성으로 세상에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나타난 자기희생, 동정, 사랑이 하나님의 일꾼의 생애에서 재현(再現)되어야 한다.” (소망, 416, 417).

   “천사는 말했다: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라. 자아는 죽어야 한다. 육신적 욕망과 거듭나지 못한 마음의 성향은 굴복되어야 한다.’” (1증언, 508).

   “이와 같이 자아를 포기하는 일은 그리스도인 생애를 처음 시작할 때에만 할 것이 아니라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매 발걸음마다 거듭되어야 한다.” (실물, 159).

   “많은 사람들은 저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으며 또 자기 자신과 죄에 대하여 종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같은 상태를 개선하고자 애를 쓰고 있으나 저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는다. 그들은 저희 자신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고 그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거룩한 능력을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형성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막연하게 저희의 결함을 시인하나 그 죄를 낱낱이 구별하여 버리지는 않는다. 악을 행할 때마다 우리의 이기심은 점점 강하게 된다.” (실물, 48).

   둘째 천사는 지금도 공중을 날아가고 있습니다. 재림성도들이여! 만약 우리들의 생애에 둘째 천사의 경험이 없다면 바벨론의 운명이 우리들의 운명이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천사의 기별은 모든 악을 버리고 자신을 포기하라는 것이며 모든 부정한 곳에서 분리하라는 것입니다. 재림성도들이여! 지금도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둘째 천사와 연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 전했던 두 천사의 기별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그의 악한 눈을 그들에게 돌려 저들 을 넘어뜨리려 하였다.”-초기, 256.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