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기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믿음의 실제 III

 

 


A.T. 존스

 

   우리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이것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먼저 자신이 경건치 아니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음에 하나님이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것을 믿으라. 그러면 그는 바로 하나님의 의로 의롭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경건치 않다. “경건치 아니하다”는 말은 “하나님과 같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 선하심, 품성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롬 3:24)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건치 않다고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있지 않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롬 3:9-18) 그러나 이 세상에는 경건한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을 의롭다 해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 편에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온전히 값없이 그리고 확실하게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의와 구원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기 위하여 하여야 할 일은 오직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경건치 아니한 우리 개개인을 의롭다 해 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말같이 들릴른지는 모르겠지만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한 유일한 자격과 준비는 각 사람이 경건치 아니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에 이런 자격을 갖추고 준비를 하였으므로 의롭다 함을 완전히 값없이 그리고 확실하게 얻기 위하여 하여야 할 일은 오로지 하나님이 경건치 아니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경건치 않다는 것을 믿고 시인하는 것까지는 매우 쉬운 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신 것을 믿지를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의롭다 하신 것을 믿을 수 없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너무나 경건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자신 안에서 어떤 선함을 조금이라도 발견할 수 있고 또 자신을 고쳐서 올바르게 될 수 있다면 (선을 찾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기를 바랄 용기를 좀 가질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길을 막아버릴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 안에서 선함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미 선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곳에서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대단히 경건치 못하므로 주님이 어떻게 나를 의롭게 해줄 수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말에 모순이 있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경건하다면 나는 의롭기 때문에 의롭게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건과 불경건 사이에는 중간 지대가 없다. 그러나 자신이 대단히 경건치 못하여 의롭다 함을 발견할 어떤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 때에 바로 거기에서 믿음이 생긴다. 정말로 믿음이 들어올 수 있는 지점은 오직 그곳뿐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의존하거나 또는 자신을 의존할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한 믿음이 있을 수 없다. 그러는 한 믿음이 있을 자리가 없다. 왜냐하면 믿음은 다만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의지할 만한 모든 근거가 없어지고 또 없어진 것을 인정할 때에 눈에 보이는 모든 일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을 때에 바로 그때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면서 오직 하나님의 약속 곧 말씀에 자신을 맡길 때에 믿음이 들어온다. 그러므로 비록 완전히 경건치 않을지라도 믿음으로 온전히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 세우셨으니 …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 말씀들은 영원한 진리일 뿐이다. (롬 4:5; 3:22,25) 이것이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믿음을 행사하고 있는가? “믿음을 행사하는 법을 깨닫는 것 이것이 복음의 과학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2월 7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믿음은 말씀에서 말씀하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단순히 말씀만을 의존하여 의로 여김을 받는 것을 말한다.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오직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은 말씀 속에 계신 하나님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만을 의존하여 의롭다 함을 받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의존함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 죄많고 경건치 않은 죄인들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 밖에 없는데 그 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다윗이 인구를 조사하는 범죄를 하여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게 되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셨다. 7년 기근이나 다윗이 그의 대적에게 쫓겨 석달을 도망다니거나 또는 3일 동안의 온역의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택하려 하지 않고 모두 여호와께서 알아서 하시도록 맡기면서 “여호와께서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말했다.(삼하 24:14) 우리가 말씀 속에 계시는 하나님만을 의존할 때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와 같이 하면 정말로 의를 얻으며 그리고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기 때문이다(사 32:17). 우리가 말씀 속에 계시는 하나님만을 의존하여 의를 얻을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린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하나님과 인간)로 하나를 만드사 … 원수된 것 … 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하나님과 인간)로 자기 안에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4,15) 더 나아가서 말씀 속에 계시는 하나님만을 의존하여 의를 얻을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화평을 누린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골 1:20-23). 다시 말하면 만일 너희가 오직 말씀 속에 계시는 하나님만을 계속 의존한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화평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아주 분명한 길과 완전한 칭의와 확실한 평강을 이루어 놓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만을 의지하여 이 모든 것을 받기만 하라고 요청하실 때에 왜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려고 하지 아니하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믿음을 행사하는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성경에서 뜻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믿음을 행사하고 있는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는가? 믿음으로 얻는 의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리고 있는가? “하나님을 믿으라.”(막 11:22) (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2월 14일).

   믿음은 말씀에서 온다

   믿음은 말씀에서 말씀하는 일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완전히 의존하는 것이다. 믿음이 곧 이러한 것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서는 어떤 믿음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진리에서도 말해주고 있다(롬 10:17). 이와 같이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는 믿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이것은 다윗의 생애에 있었던 한 사건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다윗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려는 생각을 하였을 때에 여호와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그때에 다윗은 기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를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 7:11-29) 다윗의 기도는 오로지 믿음의 기도였었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기도의 원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기도의 기초였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기도를 항상 응답해 주실 것을 믿는 다윗의 소망 전부였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였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따라 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 것을 알았다. 그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구한 것을 얻은 줄을 알았다(요일 5:14). 그러므로 그는 그대로 하자고 말했다. 그러므로 역시 그 기도의 응답은 다윗에게 과거와 현재와 영원히 확실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록하여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기도를 하는 법을 알고 또 기도로 믿음을 기르는 법을 배우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찬가지로 가서 이렇게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믿음을 기르는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성경이 뜻하는 바를 아는 지식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다른 어떤 지식보다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2월 21일)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는 어떤 믿음도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서 믿음은 그 말씀에서 말하는 일을 이루도록 그 말씀만을 완전히 의존하는 것이다. 이 모든 진리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누구나 믿음으로 구하기 위하여 먼저 그가 구하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구하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므로 다윗과 같이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오직 온전한 믿음으로 기도할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구하려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구한 것을 얻은 줄을 안다. 왜냐하면 그의 소망의 유일한 기초는 그것을 이미 말씀하셨고 또 그의 기도의 유일한 기초는 곧 말씀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 이와 같이 하여 우리의 믿음이 계속 견실하고 강하게 성장하도록 모든 준비를 해 놓으셨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하지만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또 그들이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가 응답받는지에  관해서 매우 모호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불확실하게 행동하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을 주셔서 누구나 모든 선행을 하도록 철저한 준비를 하시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준비해 두신 것들을 구하고 그 분명한 말씀을 기초하여 그것을 얻으려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따라 간구하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기도한 것을 받은 줄로 안다. 이렇게 기도할 때에 모든 기도가 항상 확실하고 생애는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선물로 충만하게 될 것이며 믿음은 확실하고 강할 것이며 날마다 능력이 더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이 기도한 것처럼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기도한다.(눅 17:5) 이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도와 함께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많아짐에 따라 우리 안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 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서 말하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주님에게 기도하고 그 말씀을 완전히 믿으며 그것을 이미 받은 것을 인하여 감사하는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그 말씀은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 안에서 살아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건축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유 20) 이것이 믿음을 행사하는 방법이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행사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는 어떤 믿음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행사하는 법을 깨닫는 것, 이것이 복음의 과학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2월 28일)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누가 의인인가? 그들은 오직 믿음에 속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 되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믿음에 속한 자들 오직 이런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서 의인이다. 그런데 믿음은 말씀에서 말하는 것을 그 말씀이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의존하는 것이다.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이 … 나의 뜻을 이루며”(사 55:11)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의존하여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한 자들이다. 이것이 사람이 의롭게 되는 방법이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므로 의롭게 될 뿐만 아니라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의로운 사람은 그가 의롭게 되는 것과 똑같이 믿음으로 산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의롭게 된 후에 의롭게 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 의미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에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믿음으로 사는 것 곧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 외에는 정말로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만물은 다만 죽음뿐이다. 왜냐하면 태초에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만물의 시작이요 생명이다. 왜냐하면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과 무생물 곧 해와 달과 별과 동물과 인간들 모두가 존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의존되고 있다. 하나님이 오직 인간에게만 죽고 사는 문제를 선택하도록 하는 놀라운 선물을 주셨다. 이 선물은 믿음의 문을 연다. 사람이 유일한 생명의 수단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를 선택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의존하는 믿음이 그가 생명의 수단을 붙드는 방법이 된다. 이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는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은 죄니라”는 말씀은 단순히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은 죄라고 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믿음의 과학을 행사하기까지는 건전한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가질 수 없고 구원에 이르는 복음에 순종할 수 없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 “저희는 …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3월 7일)

   의는 하나님의 선물로 받는 것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롬 1:17).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의지하여 그 말씀에서 말하는 일을 그 말씀이 이루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이 그 말씀하는 바를 이루도록 사람들이 그 말씀을 완전히 믿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의가 있는가? 그렇다. 그 의가 바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목적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었다. (롬 3: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의를 분명히 나타내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으므로 우리가 그 말씀을 완전히 신뢰하고 말씀에서 말하는 바를 말씀이 이루도록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또한 주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어디에서 말씀하셨는가? 이 말씀은 “용서”라는 말에 나타나 있다.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용서)하시며”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이다.(요일 1:9; 시 103:4) 그러면 “용서”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용서”라는 말의 뜻은 “대신 준다”는 말이다. 주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단순히 대신 준다는 의미이다. 주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죄를 대신하여 무엇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주께서 죄 대신에 무엇을 주시는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를 주신다. 그러므로 주께서 죄를 용서하실 때에 죄 대신에 의를 주신다.

   그런데 주께서 가지고 계신 유일한 의는 그분 자신의 의이므로 하나님께서 죄 대신에 주시고 또 주실 수 있는 유일한 의는 하나님의 의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하나님의 의는 선물이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으므로 깨끗하게 되려면 완전히 값없이 용서를 받아야 한다. 죄의 용서 - 죄 대신에 주시는 하나님의 의는 거저 주시는 것이므로 이 하나님의 의는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하는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롬 5:18)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죄의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은 바로 죄 대신에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은 오로지 용서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용서를 구하고 있다.  그런데 믿음은 말씀에서 말하는 바를 이루도록 완전히 말씀만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는 전혀 믿음에 속한 것이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마 7:8) 우리가 주님에게 여러번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죄 대신에 무엇을 주시기를 구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에게 죄 대신에 주시기를 구할 때에 그것은 바로 죄 대신에 주시고 또 주실 수 있는 유일한 것 곧 의를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주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구할 때에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 주님께서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는 우리를 용서하신다. “저는 미쁘시고” 다시 말하면 그는 틀림없으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신다. 주님이 죄를 대신하여 주시는 유일한 것은 그분의 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때에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거저 주시는 의에 대하여 왜 그에게 감사하지 않겠는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하나님께서 죄의 용서를 구하는 것만큼 간단하고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정말로 그렇게 쉽고 간단한 것이다.

   우리가 용서를 구할 때에 우리의 죄 대신에 의를 주신다는 것을 믿고 그 의를 하나님의 선물로 감사하게 받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행사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불신 속에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 “저희는 …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3월 14일).

   역사하는 믿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갈 5:6) 이 성경 말씀이 원래 쓰여졌을 때 그들의 마음에 품은 것은 할례가 전부였다. 단순히 할례가 의미하는 것 때문에 그들에게 전부가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할례가 의미하는 것은 행위 오직 행위였었다. 할례는 모든 행위 중에서 가장 큰 것이었으므로 창조보다 더 컸던 것이다. 왜냐하면 랍비들이 말한 바와 같이 “매우 위대한 것은 할례이므로 만일 할례가 없다면 거룩하시고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계명만큼 위대하고 율법의 모든 계명과 동등하다.”(바울의 생애 파라 저 22:5; 35:4)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토록 위대했던 이것을 주님은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로 바람에 휩쓸려 가는 먼지 보듯 생각하셨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가 아무런 효력이 없다. 그러므로 할례를 신봉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이것은 단순히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행위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견지에서 그들의 행위가 없는 것을 자랑하고 죄를 변명하려고 하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로되”,”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라는 말씀이 똑같은 효력이 있다(갈 6:15; 5:6). 이와 관련하여 볼 때에 이것은 단순히 행위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행위가 없는 것 즉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그러므로 행위가 있고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행위의 있고 없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말씀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의 모든 공로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이 일찌기 행하고 행하지 않은 어떤 행위에서 내세울 수 있는 모든 공로의 근거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배제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이다. 오늘날에도 사람이 그리스도 밖에 있건 또는 안에 있건 간에 행위가 있고 없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런 말씀이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자신들이 잘못하고 무력하고 정죄 받은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문, 명성, 재산, 재능, 덕, 경건 및 당신 안에 혹은 당신과 관련되어 있는 다른 어떤 것도 당신 자신과 그리스도 사이에 연합의 띠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 (교회증언 31번 44, 45) 그러면 무엇이 소용있다는 말인가? 모든 사람이 완전히 버림을 받았다는 말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영원히 효력이 있도록 해 주신 주님에게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고” 행위가 있고 없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 영원한 진리라고 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역사하는 믿음”이 소용있다는 것도 영원한 진리인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행위가 아니고 “역사하는(행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유의하자. 이것이 스스로 역사할 수 있고 또 역사하는 믿음이다. 이것, 오직 이것만이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에게 속한다. 그리고 믿음이 역사할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할 뿐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소용되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당신 안에 어떤 선함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인자하신 구세주의 자비로 돌릴 수 있다. …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교회와의 관계나 형제들이 당신을 존경하는 태도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분에 대해서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분을 믿어야 한다. 그분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완전히 신뢰하여야 한다.”(상동 44,45)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자.”“저희는 …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3월 28일).

   구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이 말씀은 얼마나 복된 약속인가! 그러므로 이 말씀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된다. 육신의 욕심을 생각해 보라. 이것은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는가! 그 육신의 명령은 얼마나 가혹한가! 그 법은 얼마나 탄압적인가! 인간에게 부과하는 노예생활은 얼마나 암담한 것인가! 모든 사람이 이런 삶을 경험했었다. 그들은 원하는 선을 행하기를 갈망하나 미워하는 죄악을 행할 뿐이었으며, 선을 행할 마음을 가지고는 있으나 선을 행할 능력이 없었다.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지만 그들의 지체 속에 다른 법이 있어서 마음의 법과 싸워 그들의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혀 오는 것을 보고 마침내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외친다(롬 7:14-24).

   바로 여기에 구원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주님에게 감사하자. 이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와 우리 하나님의 영 안에서 발견한다.(롬 7:25; 8:1,2)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으므로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날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고 성령 안에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가 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욕심이 역사하는 것들을 한번 열거해 보자.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밖에 이와 비슷한 것”이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할 때에 이러한 일을 하나도 행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를 한다. 이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은 미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매우 바랄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것은 가질만한 가치가 있지 않는가? 단지 구하고 받을 때에 이것은 구하고 받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받으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신 자유 안에서 서고 더 굳게 서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그렇다.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행하라.” (마 7:7,8; 요 20:22; 엡 5:18) (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3월 14일).      

     

 

   믿음으로 사는 것 곧 단순히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는 것 외에는 정말로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만물은 다 죽음 뿐이다. 왜냐하면 태초에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