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연구

십사만사천인

십사만 사천인과 율법전쟁

 

 


편집부

 

   야곱의 환난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 보라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 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렘 30:5-7.

   인류가 범죄하자, 하나님께서는 뱀을 저주하신 후 여인에게는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의 고통을 선언하셨다. 여인에게 잉태의 고통과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죄를 기억하게 하셨고 생명의 고귀함을 알게 하셨다.

   여인들이 아기를 잉태하였을 때, 몇 달 동안을 음식을 먹지 못하여 고통을 당하는 모습과 해산 할 때의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는 고통을 치르면서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인들의 희생을 우리는 본다. 여인들의 해산의 고통을 일컬어 인생들이 당하는 고통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죄가 가져온 것이요, 여인의 후손이 당할 고통을 약간은 맛보는 것이리라!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라고 부르짖으셨다. 아무리 여인들의 해산의 고통이 크다한들 인류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어린양의 고통에야 어찌 비교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기 여인들의 해산의 고통을 능가하는 또 하나의 고통을 말하고 있으니 십사만 사천인들이 당할 야곱의 환란이 바로 그것이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의 무리가 보좌 앞에 있는 수정같이 맑은 바다, 불이 섞인 유리바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바닷가에 모인다. 땅에서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명은 하나님의 거문고를 손에 들고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선다.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 …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들은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십사만 사천 명 외에는 아무도 배울 수 없는 노래이다. 그것은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 곧 구원의 노래이다. 그 노래는 십사만 사천 명 외에 아무도 부를 수 없는 노래이다. …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계 15:2, 3; 14:1-5)이다. 또한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그들은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의 시기를 지내고, 야곱의 환난을 견디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마지막으로 내릴 때 중보자 없이 선 자들이다.” -쟁투, 649.

   범죄이후 인간들의 최대의 고통을 여인의 해산 고통을 말하지만 십사만 사천인들이 당할 야곱의 환란은 남자가 해산하는 고통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상이 존재한 이후로 아직 남자가 아기를 해산한 역사는 없었다. 그처럼 십사만 사천인들이 당할 야곱의 환란은 이 세상이 존재한 이후 지금까지 없었던 환란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곧 개국 이래로 없었던 환란을 경험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비가 섞이지 않는 재앙이 내리는  동안 성령이 거두어진 세상에 중보자 없이 하나님 앞에 살아서 야곱의 환란을 통과 할 자들인 것이다.

   중보자가 없음

   십사만 사천인들의 경험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던 경험을 하게 될 것인데, 그들은 중보자가 없는 생애를 경험하게 된다. 아담 이후 중보자가 없는 상황에서 살아온 자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죄에서 승리한 자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십사만 사천인들은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이 거두어진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자들이다.

   중보자가 없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성경에는 기라성같이 우뚝 선 믿음의 영웅들의 이름이 나온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 등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믿음의 노독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중보자가 없었다고 생각해보자. 다윗이 범죄 하였을 때,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고 화를 냈을 때, 아브라함과 야곱이 거짓말을 했을 때, 노아가 술을 먹고 실수를 했을 때, 비록 단 한 번의 실수였다 할지라도 누가 그들의 죄를 그의 기록 책에서 지울 수 있으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은혜의 시기가 끝난 후에, 십사만 사천인들의 생애에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은 그들에게는 중보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경험이 아닌가? 한 번의 실수는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이 될 것이며, 두 번 다시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는 중보자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이 거두어짐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끝났다.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그분의 사랑을 멸시하고 그분의 율법을 유린하였다. 악인들은 그 은혜 시대에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렸고 계속적으로 거절당한 하나님의 영은 마침내 거두어졌다.” -쟁투, 614.

   성령이 떠나버린 세상에서 홀로서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가실 때가 되었을 때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 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7, 8.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다. 신성의 능력이 충만하신 성령은 우리에게 의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깨닫게 하여 주셨다. 시간과 공간에 장애를 받으심이 없이 성령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함께 하셔서 친히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발길을 인도하여 주신 분은 성령이셨다.

   우리들이 연약하여 빌 바를 알지 못하고 당황할 때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언 간구하신 분이 누구이셨던가?

   죄의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며 실망하여 기도할 때에 마음 속에 속삭이시며 십자가로 인도하신 분은 누구이신가?

   사단의 시험과 유혹으로부터 구원하시며 죄를 이길 힘과 능력을 주신 분은 누구이시며 구원의 기쁨과 확실한 소망으로 기쁨을 충만케 하신 분은 누구이셨던가? 바로 보혜사 성령님 이셨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었던 성령께서 이 땅에서 떠나가신 후에 십사만 사천인들은 마귀와 싸워야 한다.

   두려운 것은 악인들을 억제하던 성령이 떠나버린 이 세상은 악령이 모든 사람을 지배할 것이며 악령의 지배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십사만 사천인들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겠는가?

   “얼마 후에 나는 성도들이 큰 정신적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지상의 악한 거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대적하였다.” -초기, 283.

   사단과 악인들이 십사만 사천인들을 에워싸고 위협할 때 누가 그들을 위로 할 것이며 어디서 도움이 올 것인가?

   더욱이 두려워 할 것은 사단은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들을 모두 기억나게 할 것이며 그것들을 더욱 과장하고 크게 하여 제시 할 때, 마치 하나님의 은총에서 자신이 제거된 것처럼 주장할 때에 성령이 거두어진 세상에서 어디서 위로를 받을 것인가? 마치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은 느낌에서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던 경험처럼 될 것이다.

   야곱의 환란은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며 두려운 것이 된다. 이 때에 만약 회개하지 않은 죄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야곱이 속임수로 장자의 상속권을 빼앗은 죄를 사전에 회개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심으로 그의 생명을 자비롭게 보호해 주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민과 공포로 괴로워할 동안 만일 아직 자복 하지 아니한 죄가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면 그들은 압도당하고 말 것이다.” -쟁투, 620.

   이와 같이 십사만 사천인들은 아담 이후, 그 어떤 사람도 경험하지 않은 중보자가 없는 경험과 성령의 도움이 없는 가운데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과 싸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아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경험이 되겠는가? 왜 십사만 사천인들에게 이와 같은 경험이 요구되는가?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십사만 사천인들의 후보자들에게는 그 날을 준비하는 일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이유 - 율법에 대한 사단의 또 다른 기만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사단의 적의는 집요하고 끈질기다. 사단은 대 쟁투의 시초에 하나님의 율법에 관하여 싸움을 걸어 왔다.

   “대쟁투의 초기에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으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는 죄인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소망, 761.

   “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며,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하여 그것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써왔다.” -부조, 69.

   이와 같은 사단의 주장을 옹호하는 인류의 범죄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의 희생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종국으로 이끌어 왔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는 것과 죄인을 구원하는 두 가지의 목적을 동시에 이루셔야 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에 못지 않게 그분의 공의에도 표현되어 있다. 공의는 그분의 보좌의 초석이며 그분의 사랑의 열매이다. 진리와 공의로부터 자비를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의 의가 평화의 적이 된다는 것을 밝혀 보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것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도록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므로 전자는 후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시 85:10)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자비를 손상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죄는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율법은 의로우며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율법에 대한 사단의 비난은 반박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그분의 사랑의 명백한 증거를 주셨다.” -소망, 762.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은 의롭고 공의로우시며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으나, 사단은 굴복하지 않고 인류를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율법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늘의 천사들과 우주 거민들은 사단의 기만과 죄의 본질을 알았으나 아직도 무지한 인생들은 자기의 구속주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있었다. 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스런 기만인가?

   인생들의 무지함을 이용하여 사단은 십자가 이후 또 다른 기만으로 인간을 유혹하여 십자가의 효능을 무효화시키려 하고 있다.

   새로운 쟁점

   사단의 또 다른 기만도 역시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가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율법의 공의는 십자가에 폐기되었다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해방되었고 결함이 있는 율법의 어떤 세목은 변경  되었다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결함이 있어 지킬 수 없다는 종래의 기만과 함께 이제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는 이루어졌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해방되었고 결함이 있는 율법의 어떤 세목은 변경되었다는 기만이 첨가되었다.

   “사단은 또 다른 속임수를 내놓을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공의를 파괴시켰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시켰다고 선언했다. … 율법은 결코 변함이 없으며 인류는 이 교훈을 순종함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확립하신 바로 그 방법을 사단은 율법을 파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놓고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의 육성으로 말씀하신 율법에 결함이 있어서 어떤 특정 부분이 제거되었다고 사단은 이제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그가 세상에 가져올 마지막 대 기만이 될 것이다.” -소망, 762.

   이와 같은 사단의 기만은 온 세상에 편만하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 이 기만에 빠져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전쟁은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그 전쟁은 세상 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순종이냐 불순종이냐는 온 세계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과 사람의 율법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때 분리(分離)의 선은 그어질 것이며 거기에는 오직 두 가지 부류의 사람 밖에는 없을 것이다. 모든 품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며 모든 사람은 저희가 충성의 편을 택했는지 아니면 반역의 편을 택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그 때에 끝이 이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옹호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사단과 그의 반역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끊어질 것이다.” -소망, 763.

   앞으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수백 번 입으로 공언한다 한들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

   그러므로 사단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행동으로 자신이 만든 율법을 지키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율법은 결함이 있어 변경되었으며 지킬 수 없는 율법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게 할 것이다. 사단은 자신의 모든 지혜와 초인간적인 능력을 행사하여 모든 인류들을 속일 것이며 자신의 기만에 속지 않는 자들은 강제적으로 자신이 만든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게 될 것이다. 누가 사단의 기만에 속지 않을 것이며 사단의 강요를 이기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것이며 율법의 불변성을 옹호할 것인가? 하늘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셔야 할 것인가? 그분은 이미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고 하나님의 율법에는 결함이 없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생애로 입증하셨다.

   놀라운 것은 누가 이 사실을 온전히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가능하였다는 사단의 기만에 세상은 물론 하나님의 교회라고 자처하는 곳에서까지도 옹호 받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기만을 벗어나 당신의 율법을 옹호하는 한 백성을 소유하게 될 것인데 그들이 바로 여자의 남은 자손인 십사만 사천인들이다.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은 순종할 수 있으며 영원 불변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실 것이다.

   그때에 사단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모든 인류들까지도 하나님의 율법은 자비롭고 공의로우며 결함이 없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하늘에서 시작한 율법전쟁은 종결을 고하고 죄의 창시자요 거짓의 아비인 사단을 영멸에 처하실 수 있게 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계명을 존중함으로서 당신의 명예를 옹호하는 한 백성을 이 땅 위에 두실 것이다.” -믿음과 행함, 42.

   완전한 승리

   “대쟁투가 끝나게 될 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구속의 경륜이 완성되며 하나님의 성품은 창조함을 받은 모든 지적 존재자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은 완전하고 영원 불변하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 그 때에 죄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고 사단은 그의 성격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죄가 근절됨으로 인하여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저희 마음속에 당신의 율법이 있는 우주의 거민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옹호되고 그분의 영광이 확립될 것이다.” -소망, 764.

   “대쟁투의 최고 절정 저편을 바라본 요한은 시온에서 ‘이긴 …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계 15:2, 3).” -행적, 589.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그들은 당신의 영광에 동참자가 되도록 되어 있다. 거룩한 이상 가운데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남은 교회의 최후의 승리를 보았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 15:2, 3).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또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 14:1). 이 세상에서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성별되었다. 그들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겼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이마’에 당신의 이름을 두실 수 있으시다.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계 22:5). 그들은 거처를 구걸하는 자들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하지 않는다. …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계 14:4)다. 선지자의 계시는 그들을 거룩한 예배를 위하여 성도들의 의인 흰 세마포를 입고 시온산에서 있는 자들로 묘사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어린양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불평하거나 변덕스럽게 함이 아닌, 마치 양떼가 목자를 따르듯이 신뢰하고 사랑하고 자원하는 그런 순종으로써 지상에서 먼저 그분을 따른 사람이어야 한다.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 …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 14:2-5).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계 21:2, 11, 12, 21, 22).” -행적, 590-592.

   욥의 시련과 비교함

   사단의 참소와 변명 그리고 여러 가지 구실들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성도들의 진실을 증명하는 기회가 된다. 욥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하나님께서 욥의 진실을 칭찬  하였을 때 사단은 참소와 여러 가지 구실을 들어 욥의 진실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 1:8.

   그 때에 사단은 말하기를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욥 1:9, 10)라고 참소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욥은 까닭도 모르는 혹독한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증명하여야 하였다. 욥은 그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진실과 순결을 시련 중에서도 생애로 증명하였다. 결과적으로 사단은 패배하였고 하나님은 욥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셨다.

   이와 같이 십사만 사천인들이 중보자도 없이,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가운데서 야곱의 환란을 통과해야 하는 것은 구속의 경륜 가운데 반드시 요구되는 하나님의 계획이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한 것에 대하여 사단이 비난함으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시험하도록 사단에게 허락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들의 확신과 믿음과 견인불발의 정신은 격렬하게 시험을 받을 것이다.” -쟁투, 618.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십사만 사천인들의 믿음과 순결을 알지 못하셔서 그들을 그처럼 혹독한 시험을 통과하게 하시리라고 생각하지 말자. 사단의 참소와 비난은 십사만 사천인들이 야곱의 환란을 통과함으로서만이 침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없다면 사단의 참소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대쟁투가 끝나게 될 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구속의 경륜이 완성되며 하나님의 성품은 창조함을 받은 모든 지적 존재자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은 완전하고 영원 불변하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 그 때에 죄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고 사단은 그의 성격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죄가 근절됨으로 인하여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저희 마음속에 당신의 율법이 있는 우주의 거민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옹호되고 그분의 영광이 확립될 것이다.” -소망, 764.

   이유 - 사단의 참소를 끝냄

   성경에는 에녹과 같이 죄의 기록을 갖지 않고 완전한 승리의 생애를 살아간 사람들의 기록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죄악 세상에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죄에서 승리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과 중보자의 도움 없이 승리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인류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사단의 능력을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의 생애에서도 그들이 승리한 것은 중보자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 아래에서의 승리였던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서의 그들의 승리를 사단이 인정하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사단의 비난과 참소를 피할 수 있을까? 십자가 우편의 강도가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하여 사단의 참소가 없겠는가? 그가 만약 생명이 더 연장되었더라면, 나는 그를 범죄케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참소자의 항의가 있지 않겠는가? 만약 사단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요행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될 말인가?

   사단은 이 지상에 살았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의 생애를 인정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참소 하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들이 승리의 생애를 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을 범죄케 할 수 있었다고 항변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단의 참소와 비난을 논박할 존재들이 구속의 경륜 가운데 요구되는 것은 너무도 절실하고 당연하다.

   십사만 사천인들의 승리는 우편 강도의 생명이 연장되었더라면 그를 범죄케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단의 주장도 그 때는 힘을 잃을 것이다.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의 승리는 인류도 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보증이었고 십사만 사천인들의 승리는 그것의 실증이다.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이 거두어진 가운데서 사단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는 이러한 사단의 주장을 논박하는 완전한 승리요 아담 이후 믿음 안에 잠든 모든 성도들의 승리가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머리요 모든 성도들은 한 지체요 한 몸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 13).

   이들의 승리로 말미암아 육천년 동안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았던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은 결함이 없고 온전하며 순종할 수 있다는 완전한 증거를 갖게 되실 것이다. 이제 사단은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이 죄악의 창시자임이 온 우주와 모든 거민들에게 폭로된다.

   “대쟁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하나님의 품성을 그릇 나타내고, 그분의 율법에 대하여 반역을 선동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었다. 이 일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기만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반역하였다. 그러나 악의 활동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목적은 차근차근 성취되어 간다. 그분께서는 창조함을 받은 모든 지적(知的) 존재들에게 당신의 공의와 자애를 드러내고 계신다. 사단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전 인류가 하나님의 율법의 범법자들이 되었지만, 그분의 아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아버지의 율법을 순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 시대마다 배교와 반역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진실한 백성 곧 마음에 그분의 율법이 있는 백성을 모으신다(사 52:7). …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취급하심이 그토록 오랫동안 은밀하게 수행되어온 일의 정체를 완전히 폭로시키게 될 것이다. 사단의 통치의 결과 곧 하나님의 율법을 도외시한 결과가 창조함을 입은 모든 지적 존재자들의 목전에 나타날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율법은 온전히 옹호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그분의 백성의 영원한 행복과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들의 행복을 염두에 두고 행해져 왔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사단 자신도 온 우주가 보는 데서 하나님의 정부의 공의와 그분의 율법의 의로움을 고백할 것이다.” -부조, 338, 339.

   처음 익은 구속의 열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 14:4.

   열매는 나무의 진가를 판가름하는데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실례를 들어보면 극상품 포도나무와 들포도나무의 외부적인 모습으로는 어느 나무가 극상품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구별이 어렵지 않으나 어떤 사람이 전문가의 지식을 무시하고 들포도나무를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우겨댄다면 참으로 난처할 것이다. 물론 그에게 상세하게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둘의 차이점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고집 센 사람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두 나무에서 열매가 맺혀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아무리 고집이센 사람이라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열매는 가장 강력하게 진실을 말해주는 논증이 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시작된 율법 전쟁도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서도 사단은 줄기차게 하나님의 율법은 결함이 있어 순종할 수가 없으며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나님께서는 육천년 동안 무던히 참으시는 가운데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려 오셨다. 2,300주야의 긴 예언이 지나고 암흑시대를 지나 하늘 성소가 정결하게 되기 시작한 1844년부터 극상품 포도나무인 셋째 천사의 완전한 기별에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온 천사”는 구속의 열매가 맺힐 때마다 인을 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때 셋째 천사를 보았다. 나를 수행하는 천사가 말했다. 그의 사업과 사명은 두렵고 놀라운 것이다. 그는 곡식을 가라지에서 분리해서 인을 치고 묶어서 하늘 창고에 들이는 천사이다.” -초기, 118.

   셋째 천사는 이와 같은 구속의 열매들이 십사만 사천이 될 때까지 수효를 세며 인을 치고 있다. 이 무리들이 육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경영하신 복음의 농원에서 자란 의의 나무의 열매들이요 구속의 열매들이다.

   “나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천사가 잉크 통(뿔로 만든)을 가지고 지구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자기의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고 성도들의 수가 차서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했다. 그러자 나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서 봉사하시던 예수께서 향로를 내던지시는 것을 보았다.” -초기, 279, 280.

   “천사들은 하늘에서 분주히 왕래하고 있다. 지상에서 돌아온 한 천사는 그의 일이 마쳐진 것을 보고한다. 마지막 시험이 이미 세상에 주어졌고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한 것이 입증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계 7:2)을 받았다. … 주님의 백성의 수효는 찼다.” -쟁투, 613.

   “이스라엘이여,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품으라. 포도원 주인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모든 민족과 백성들 중에서 오랫동안 바라시던 귀한 열매들을 모으고 계신다.” -선지, 22.

   십사만 사천인들이 야곱의 환란을 통과할 즈음이면, 아무리 고집이 세고 거짓의 아비라 할지라도 사단은 고개를 숙이고 말 것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의 도움이 없이도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아, 얼마나 멋진 구속의 경륜이며 완벽한 승리인가? 참으로 무한히 자비로우시고 은혜가 많으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무력과 힘으로 아니 하시고 지혜와 사랑으로 원수를 정복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죄와 죄의 창시자인 사단은 영원히 도말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 14:1-5.

   재림 성도들이여 십사만 사천인들의 영광에 동참하지 않으시려는가?     아 멘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