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연구

십사만사천인

십사만 사천인과 율법전쟁

 

 


편집부

 

      짐승과 그의 우상을 이긴 사람들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계 15:2.

 

   거룩한 계시에서 요한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계 15:2)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십사만 사천인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보니 보라 어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1-3).

   이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 자 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예언을 상기시켜 준다. 13장에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들은 몇이든지 다 죽이라는 명령이 내린 것과 짐승의 표를 이마에나 오른손에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받지 않은 자들에게는 매매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인류 역사상 선과 악의 대쟁투가 여기에서 결정 나는 대격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십사만 사천인은 이 대쟁투에서 승리한 자들이라고 요한은 계시 가운데서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계시록 7장에서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십사만 사천인은 어떤 싸움에서 이긴 자들이 되었으며, 또 어떤 환란을 통과하였는지를 오늘날 재림성도들은 반드시 알아야할 진리라고 생각한다.

      최초의 율법전쟁

   최초의 전쟁은 하늘에서 시작되었음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계 12:7) 곧 미가엘이신 예수님과 용으로 상징된 사단과의 싸움이 전쟁의 시초가 된다.

   그런데 창조주시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와 피조물에 불과한 사단과의 사이에서 어떻게 싸움이 성립되었는지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도 사단의 존재를 없애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단이 처음부터 전쟁을 일으킨 목적을 알게 됨으로써 이 모든 궁금증은 해소할 수 있게 된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사 14:12-14).

   사단이 전쟁을 일으킨 목적은 하나님과 동등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단의 목적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 할 수가 있다. 그것은 전능하신 창조주와는 본질적으로 동등 될 수 없음을 사단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단이 하나님과 동등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었는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등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보좌보다 자신의 보좌를 높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율법에 대한 사단의 도전

   “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며,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하여 그것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써 왔다. 율법을 공격함으로 그는 그 율법의 제정자의 권위를 뒤집어 엎으려고 하였다.”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하여 그것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써 왔다.”-부조, 69.

   “법왕권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킴으로써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와 같이 변경된 율법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준수하는 자는 그 율법을 변경시킨 자에게 최상의 영광을 돌리는 셈이다.”-쟁투, 446.

   사단이 하나님의 율법에 트집을 잡은 것은 하나님과 동등 되기 위해서였다. 사단의 주장대로 하나님의 율법에서 결함이 발견된다면 그리하여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된다면,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 동등 됨이 불가능 하지만 그의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보다 더 우월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인격체들로부터 하나님과 동등한 존귀와 명예와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도전하여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만약 하늘에서 사단의 주장대로 하나님의 율법에 결함이 있는 것이 증명되었다면 사단은 승리하였을 것이다.

      여러 가지 사단의 기만들

   ◎ 율법 무용론

   “그는 하늘 거민들을 통제하는 법칙이 필요없는 구속을 가하는 것이라고 암시함으로써 거기에 대한 불만을 자극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천사들의 본성은 성결하므로 그들은 자기 자신의 의지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쟁투, 495.

   “그는 하늘의 존재자들을 다스리는 율법에 관하여 의심을 심어 주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세계들의 거민들에게는 율법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천사들은 더 높은 존재자들이므로 그와 같은 속박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의 지혜가 충분한 안내자가 되기 때문이다 라고 암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는 존재자들이 아니며, 그들의 모든 생각이 거룩하며, 하나님 자신이 죄를 범하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부조, 37.

   이같은 사단의 암시는 율법을 무효와 시키므로 하나님의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였다. 세상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정부도 율법이 기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율법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이므로 모든 지성적 존재들의 행복은 그들이 이 의의 대원칙과 완전히 일치함에 달려 있다.”-부조, 34.

   ◎ 율법에 결함이 있다

   “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며,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하여 그것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써왔다. 율법을 공격함으로 그는 그 율법의 제정자의 권위를 뒤집어엎으려고 하였다. 그 대 쟁투에서 하나님의 율례에 결함이 있어 변경해야 되는지 혹은 완전하여 변할 수 없는 것인지가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부조, 69.

   “그는 자기 자신이 완전히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정부의 안정을 위해 하늘의 질서와 율법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부조, 38.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단의 주장은 하나님의 품성에 결함이 있다는 말이 된다. 이 얼마나 무서운 기만인가?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 자신만큼 신성하다. 이것은 그분의 뜻의 계시요, 그분의 품성의 사본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표현이다.”-부조, 52.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자신처럼 거룩하므로 …”-부조, 63.

   “율법은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이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이면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된다.”-소망, 308.

   ◎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다

   “대쟁투의 초기에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으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는 죄인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소망, 761.

   “사단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형상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완전한 순종을 통해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될 때 하나님의 모든 법도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실물, 314.

   이와 같은 사단의 주장은 얼마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 지키라고 하신다면 과연 하나님은 사랑이신가? 생각해 보라.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은 채 우리에게 지키라고 하시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 의해 순종될 수 없는 계명은 하나도 주시지 않으셨다.”-소망, 204.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술에서 너무나 서슴없이 하나님의 율법은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그와 같은 말을 듣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 얼마나 짙은 어두움이 땅을 덥고 있는가? 다음의 말씀은 매우 심각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나는 과연 어느 편에 속하여 있는가?

   “하나님의 율법을 불순종하고 또한 남에게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는 자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정죄 당한다. 구주의 순종의 생애는 율법의 주장을 옹호하였으며 인류가 율법을 지킬 수 있음을 증명하였으며 순종에 의하여 개발되는 품성의 탁월성을 보여 주었다. 예수께서 순종하신 것과 같이 순종하는 자들은 율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롬 7:12)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모든 사람들은 율법이 의롭지 못하며 순종할 수가 없다는 사단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 그들은 큰 원수 마귀의 기만을 후원하고 하나님께 욕을 돌린다. 그들은 최초에 하나님의 율법을 반역한 악한 마귀의 자녀들이다.”-소망, 308, 309.

      사단의 증인

   법적인 싸움에는 증인이 요구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결함이 있다는 어떤 증거가 있는가? 만약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만한 증거가 없다면 그의 주장은 아무런 효력이 없을 것이었다. 사단은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하여 그것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써왔다.”-부조, 69.

   하늘에서 증거를 얻지 못했던 사단은 이 땅에서는 너무도 싶게 증인을 얻게 되었으니 곧 아담의 범죄가 그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불공평하고 순종할 수 없다는 증거로써 아담의 범죄를 가리켜 왔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성으로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실 것이었다.”-소망, 117.

   일찍이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공의와 자비가 조화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대쟁투의 초기에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으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는 죄인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소망, 761.

   그렇다면 율법의 공의는 무엇인가? “범죄 한 영혼은 죽으리라.”이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은 아담이 죽음으로서만 성취될 수 있는 변경할 수 없는 율법의 공의이다.

   아담이 죽음으로서 율법의 공의가 성취된다면 자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범죄한 영혼이 죽음으로서 공의를 충족시켜야 한다면 자비는 변경되거나 파기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증거를 반증할 수 있는 증거가 요구되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 34:6, 7.

   하나님의 품성은 공의와 자비가 공존하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율법과 품성은 시험을 당하였다. 하늘정부의 기초가 되는 율법을 세우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의논이 있었으니 곧 “평화의 의논”(슥 6:13)이다. “자비와 공의” 어느 한쪽도 손상됨이 없이 아담의 죄는 처리되어야 하고 동시에 구원의 길이 마련되어야 했다.

      감추인 비밀

   “평화의 의논”의 결과,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었던 비밀”이 공개되었으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는 선언이다.

   범죄한 인류를 대신하여 여자의 후손 곧 창조주시요 율법의 제정자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셔야 한다는 것이 복음 선언이다.

   “사람의 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경륜에는 온 하늘의 무한한 희생이 포함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경륜을 천사들 앞에서 공개하셨을 때에 천사들은 기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구원은 그들의 사랑하는 사령관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애를 필연적으로 요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슬픔과 놀라움으로 천사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당신께서 어떻게 하늘의 순결과 평화, 그 기쁨과 영광 및 불사의 생명을 떠나 내려오셔서 지상의 타락과 접촉하시고 세상의 슬픔과 수치와 죽음을 견디셔야만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그분은 죄인과 죄의 형벌 사이에 서실 것이었다.”-부조, 64.

   율법의 시여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율법의 공의는 충족되었고 범죄한 죄인에게는 다시 한번 구원의 기회가 마련된 것이었다. 십자가에서 공의와 자비가 만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반역한 이세상의 죄인을 위하여 죽으시는 일은 사단은 물론이요 우주의 거민들과 천사들 까지도 이해 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이것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하나님의 비밀’(골 1:26)이었으나 복음 선언과 함께 공개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목표는 공의와 자비를 조화시키는 일이었다. 공의와 자비는 각기 독립된 위엄을 보전하게 하셨지만 서로 연합되게 하셨다. 그의 자비는 유약한 것이 아니었고 죄를 벌하는 두려운 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사랑을 이끌어내는 힘이 되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의는 그 드높은 거룩함을 단 한점도 손상시킴이 없이 용서가 가능케 되었다. 공의와 자비는 널따란 계곡을 사이에 두고 각기 반대편을 마주보고 서 있다. 우리의 구속주께서 신성에다 인성을 입으시고 인간을 위하여 점도 없고 흠도 없는 품성을 이루셨다.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십자가를 심으시고 그것을 두길 곧 자비와 공의를 끌어당겨 서로 만나게 하는 물건이 되게 하셨으며 그 깊은 수령을 건너서 자비와 공의를 묶어 놓았다. 공의가 그 높은 보좌에서 일어나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십자가의 가까이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공의는 불의와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을 담당 하신 분, 하나님과 동등 하신 분을 보았다. 공의는 완전히 만족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십자가에 머리를 숙이고 ‘족하다’고 말한다.”-원고, 94, 1899.

      인류는 사단의 동역자

   아담은 선악과를 먹는 결과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선고를 생각할 때, “그는 그 여자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여자가 죽어야 한다면, 그도 그 여자와 함께 죽을 것이었다.”-부조, 56.

   아담은 선악과를 먹는다면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다.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죄 값을 담당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범죄 이후에 별다른 죄의식이나 하나님께 대한 범죄 의식을 갖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아담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으로써 자신이 지은 죄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죄 짓는 일에 담대하며 죄의식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죽음 자체로 인하여 자신이 지은 죄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사상들은 모두가 사단으로부터 기만 당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아담도 철저하게 이와 같은 사단의 기만을 당하고 있었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찾아 오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아담이 대답하기를,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창 3:11)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하와에게 질문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3)라고 대답하였다. 아담과 하와의 말들을 주의깊이 관찰하여 보면 그들은 완전히 사단의 동역자가 되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담과 하와도 똑같은 정신으로 사단과 연합되어 있었으니 아담은 자신의 죄를 하와에게, 하와는 자신의 죄를 뱀에게 전가시켰다. 그렇다면 뱀은 누가 만드셨는가? 뱀은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그러므로 죄는 곧, 뱀을 만드신 하나님이 책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를 자신의 증인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담은 그의 죄를 부인하거나 변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참회의 태도를 나타내는 대신에 … 그는 범죄한 지금에는 그의 아내와 심지어 창조주 자신에게까지 범죄의 책임을 씌우려고 하였다. 죄악의 세력은 그처럼 무서운 것이다. … 왜 뱀이 에덴에 들어오도록 허용하셨습니까?’ 이것들은 그 여자의 죄에 대한 변명 가운데 암시된 질문이었다. 이처럼 그 여자도 아담과 같이 그들의 타락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렸다.”-부조, 57, 58.

 

      구속의 경륜

   아담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의식과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죄는 자신이 책임 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는 아담에게 구속의 경륜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의 생명으로 그들의 죄악을 속죄하시겠다고 제의하셨다.”-부조, 66.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아담 자신은 자신의 죄를 인하여 죽으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아담 자신은 죽음으로 끝날지 모르나 사단은 아담의 범죄를 들어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율법은 결함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닌가? 아담의 후손인 우리들은 어떤가? 우리들은 죽음으로 끝날지 모르나, 우리가 지은 죄는 영원토록 사단의 증거물로서 남아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결함의 증거로 이용될 것이다.

   드디어 아담은 자신의 범죄는 아담 자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독생자가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로 인하여 결국 아담은 자신의 죄의 두려운 결과에 의하여 압도당했다. 자신의 범죄 행위는 곧 창조주의 죽음을 초래한 것이기에, 그 죄는 온 우주보다 더 큰 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비로소 용서받을 수 없는 흉악한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 아담은 말했다. 자신의 죄는 자신의 죽음으로서 충분하지 왜 그리스도가 죽으셔야 하는가 라고 부르짖었다.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요구된 희생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한 특성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저들은 전에 결코 본 일이 없는 죄과와 그것의 비참한 결과를 보았다. 그들은 후회와 괴로움 가운데서 그 형벌이, 그분의 사랑이 그들의 모든 즐거움의 근원이 되었었던 분에게 내리지 말고 차라리 그들과 그들의 자손에게 내리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부조, 66.

   아담은 자신에게 기쁨의 근원이었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울면서 말했다: “당신이 죽지 않고 나와 나의 자손이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철회할 수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범죄는 이루어졌고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죄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아담은 알게 되었다.

   “구속의 경륜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넓고 깊은 목적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단순한 사람의 구원이나 이 작은 세계의 거민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마땅히 생각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 우주 앞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려는 것이다.”-부조, 68.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사망을 맛보신 것은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또한 율법을 크게 하고 존귀케 하기 위하여 오셨다. 율법은 마땅히 존중을 받아야 하는바 그분께서 오신 것은 이 세상의 거민들이 율법을 그처럼 존중히 여기도록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세계에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함이었다.”-쟁투, 503.

   하늘에서 시작된 율법 전쟁은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도 이미 온 우주 세계에는 관심거리였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인류의 범죄는 사단의 주장을 옹호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정부를 몹시 난처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구속의 경륜은 사람을 구속하는 이상의 더 넓고 깊은 목적이 있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하며 결코 결함이 없다는 증거가 요구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의 온전함을 증거 해 줄 분은 누구인가? 이제 범죄 한 인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심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함으로서만이 하나님의 율법은 결함이 없으며 순종할 수 있다는 증거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인간의 구원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범죄로 말미암아 오해받게 된 하나님의 율법, 곧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다.

      입혀주신 가죽옷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는 아담이 받아야 할 고통과 사망을 그리스도께서 모두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아담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으실 수가 있으셨다. 이제 아담은 더 이상 자신의 죄에 대하여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할 뿐이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장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계시로 보여주셨다. 그의 후손들의 타락과 노아 홍수, 그리고 이 땅에 육체를 가지시고 태어나시는 초림의 그리스도, 급기야 자신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높이 달려 돌아가시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아담은 보았다. 그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한 마리의 죄 없는 양을 죽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선고를 내리신 때로부터 홍수 때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초림때까지의 인류 역사상 중요한 사건들이 아담에게 계시되었다.”-부조, 67.

   “최초의 희생 제물은 아담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의식이었다. 그의 손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생명을 취하려고 들리어야 하였다.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본 죽음이었다.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였더라면 사람이나 짐승의 죽음은 없었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가 무죄한 양을 죽일 때에 자기의 죄가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흘릴 것을 생각하고 떨었다. 이 장면은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외에는 어느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그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더 깊고 더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 주었다.”-부조, 68.

   아담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어린양을 보면서 자신의 죄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후회와 통회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죄로 인해 죽은 양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아담에게 입혀 주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 그리고 추위에 견딜 수 있는 가죽옷을 지어 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아담에게 무슨 공로가 있었는가? 그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독생자가 죽으실 것을 믿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죄 없는 어린양을 죽였던 것이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는 복음 선언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인생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은 인생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오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제2차 선악의 대쟁투

   하늘에서 있었던 그리스도와 사단과의 율법 전쟁은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났다. 사단은 하늘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하였으며 이 땅으로 쫓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는 아담을 굴복시킴으로 있을 곳을 얻게 되었다. 그는 이제 인간 대리자들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며 이 땅을 영원히 자신의 왕국을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내사” 아담이 잃어버렸던 이 땅의 통치권을 돌려받기 위해 보내신 것이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훼손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야 했고 또한 죄 중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분은 오셔야만 했다.

   이제 그분은 신성의 영광을 버리시고 인성을 취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다는 사실로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죄 없는 인성을 가졌던 아담을 너무도 쉽게 굴복시켰던 그의 경험으로 보아 만약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인성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다면 그는 쉽게 그리스도를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단은 예수께서 그의 능력과 영광을 버리고 하늘을 떠났을 때 기뻐 날뛰었다. 그는 그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에덴에서 두 부부를 너무도 쉽게 유혹하였으므로 그는 하나님의 아들도 그의 악랄한 수법으로 넘어뜨려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고 왕국을 차지하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초기, 157.

   왜 예수께서는 신성을 버리시고 육신이 되셔야만 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성으로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실 것이었다.”-소망, 117.

   사단은 아담의 범죄를 이유 삼아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는 증거라고 하였다. 이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수 있는 율법이라는 사실을 증거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분은 신성으로 오셔서 율법을 지킨다면 그것을 결코 완전한 증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분은 반드시 인생들과 같이 되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때만 완전한 증거가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때가 차매 … 여자에게 태어나시”었던 것이다.

      우리와 같이 육신에 속하심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며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 (히 2:14).

   “유혹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 아담은 아무런 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 그는 에덴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었고 날마다 하늘의 천사들과 교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단과 상대하시기 위하여 광야에 가셨을 때에는 그렇지 못했다. 4천 년간 인류는 체력과 정신적 능력, 그리고 도덕적 가치가 퇴보되어 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퇴보된 인류의 연약함을 취하셨다. …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시험에 정복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처지에 서지 못하셨을 것이며, … 만일 우리가 어떤 점으로든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보다 더 혹심한 투쟁을 당한다면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는 온갖 연약성을 지닌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을 가진 인성을 취하셨다.”-소망, 117.

   우리 주님께서는 아담보다 훨씬 불리한 입장을 취하시어 이 땅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아담이 실패했던 그 점을 만회하기 위해 오신 것이며 또한 죄로 말미암아 연약해진 인류의 육체를 가지시고 마귀로부터 모든 시험과 시련에서 승리하시므로 우리 인류들도 죄로부터 승리의 생애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신 것이었다.

   그분은 우리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죄에서 구원하시겠다는 말은 곧 우리들이 죄 없는 생애를 살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말이며, 죄가 우리의 생애에서 끝날 때 그 목적은 성취되는 것이다. 죄는 곧 불법이다. 죄를 이기고 죄 없는 생애를 산다는 것은 율법을 온전히 순종한다는 말이다.

   사단은 인류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사단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시기 위해 먼저 그분 자신이 육체를 가진 인간이 되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해야 할 것이며 그 다음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며 죄 없는 생애를 살 수 있다는 증거가 나타날 때 사단의 기만은 온 천하에 폭로될 것이며 그때에야 비로소 이 우주 안에 죄를 소멸하고 사단을 영원한 불에 심판 받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참으로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인생이 되셨음을 믿어야 할 것이며 그분이 순종하여 죄 없는 생애를 사시고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승리의 생애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는 것은 거의 무한한 굴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인류가 4천 년간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진 때에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아담의 모든 자녀들과 같이 유전 법칙이 끼쳐온 결과를 받으셨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예수의 육신의 조상들의 역사 가운데 드러나 있다. 그는 이러한 유전을 지니고 우리의 슬픔과 시험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죄 없는 생애의 모본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소망, 48.

      십사만 사천인의 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재림성도들이여 무엇을 원하며,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소망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이 되게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바랄 것인가? 그리스도의 죄 없는 생애, 마귀를 이긴 승리의 생애가 곧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믿음은 이와 같은 소원을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죄 없는 생애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며 구속의 경륜을 전혀 알지 못하는 증거이며 사단의 기만에 속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2). 이 말씀을 볼 때, 우리가 죄 없는 생애로 살 수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셔서 죄 없는 생애를 살으셨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이였기 때문에 죄 없는 생애가 가능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요 5:30).

   “사단은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이기적인 율법으로 나타낸다. 그는 우리 인간이 그 율법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 그는 우리 시조(始祖)의 타락과 거기에 따른 모든 재난의 책임을 조물주에게 지우고 사람들로 하나님을 죄와 고통과 사망의 창시자로 여기도록 만든다. 예수께서는 이런 기만을 폭로시키실 것이었다. 그는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어 순종의 모본을 주실 것이었다.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그는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의 경험을 몸소 체험하셨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 만일 우리가 예수께서 겪지 않으신 어떤 일을 겪어야 한다면 사단은 이 점에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에게 충분하지 못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히 4:15)으셨다. 그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을 겪으셨다. 그는 자유롭게 쓰도록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능력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조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으로서 시험을 대하시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으로써 승리하셨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특성과 그의 봉사의 본질을 명백하게 드러내셨다. 그의 생애는 우리도 또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수 있음을 증거 하는 것이다.”-소망, 24.

      십사만 사천인의 승리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증거를 들러낼 사람들이 누구이겠는가? 하나님의 율법은 지킬 수 없다는 사단의 참소를 영원히 침묵시킬 사람들이 누구인가? 이들은 불이 섞인 유리바다에서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십사만 사천인 들인 것이다. 십사만 사천인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승리한자들임을 기억하자. 세상을 이긴 자들, 마귀의 권세를 이긴 자들, 곧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킨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중보가 끝이 나고 성령이 지상에서 거두어진 야곱의 환란동안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율법이 완전함을 증거하며 사단의 참소를 영원히 침묵시킬 사람들인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이 마쳐지면 세상의 죄인들을 위한 자비의 탄원은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사업을 다 이루었다. … 천사들은 하늘에서 분주히 왕래하고 있다. 지상에서 돌아온 한 천사는 그의 일이 마쳐진 것을 보고한다. 마지막 시험이 이미 세상에 주어졌고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한 것이 입증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계 7:2)을 받았다. …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마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셨다. 주님의 백성의 수효는 찼다. … 이처럼 두려운 시기에 의인들은 중보자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쟁투, 613, 614.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으니 이보다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완벽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재림 성도들이여, 이 목적을 위하여 한 백성을 택하였으니 곧 셋째 천사의 기별로 말미암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우리들이 아닌가?

   “나는 그 때 셋째 천사를 보았다. 나를 수행하는 천사가 말했다. 그의 사업과 사명은 두렵고 놀라운 것이다. 그는 곡식을 가라지에서 분리해서 인을 치고 묶어서 하늘 창고에 들이는 천사이다. 이 일에 온 마음과 주의력을 기울여야 한다.”-초기, 118.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1, 3).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계 15:2, 3).

   재림성도들이여 짐승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어린양의 새 노래를 부를 십사만 사천인의 특권을 누리시지 않으시겠는가?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