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설교

세 천사의 경험

첫째 천사의 경험

영원한 복음을 경험하라

 

 


강대천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6, 7.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게 전해야 할 기별

   지난 호에 이어서 이번 호에서는 “영원한 복음을 경험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와 같은 설교 제목을 선택한 이유는 공중을 날아가는 첫째 천사는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같이 한 민족이 한나라를 이루고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한 나라 안에도 여러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언어와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민족과 민족이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는 나라의 개념보다는 족속과 방언 중심으로 살아가는 많은 원주민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중을 날아가는 첫째 천사의 기별은 나라들에게만 전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족속들에게만 전해져서도 안 됩니다. 이 땅에 거하고 있는 모든 나라, 모든 족속, 모든 백성, 모든 방언에게 전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첫째 천사의 영원한 복음은 이 땅에 거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할 매우 중요한 기별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복음(福音)

   “…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 에게요 또한 헬라인 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 17.

   복음에는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바울 사도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복음은 무엇입니까? 가장 성경적인 대답은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롬 1:2)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곧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복음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복음이 됩니까? 그 이유를 우리는 성경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첫째 천사는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공중을 날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온 땅에 거하는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게 전해야 할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영원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 딤전 1:15.

   예수께서는 의인이 아닌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 세상에 복음이 되시는 것입니다.

      죄인은 구원 얻을 자격이 있음

   2,000년 전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던 초림의 메시야는 복음이시요 우리들의 구원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류들에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모든 인류가 죄인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자비인 것입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0.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고, 일등 국민이라고 자부하는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무지한 이방 백성을 물론하고 모두가 하나님을 떠나 미련한 죄인이 되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9.

   재림성도들이여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나으뇨? 성도들이여 죄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죄인들에게 구원 얻을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깨닫는 일은 참으로 복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인이 되기 위해 죄를 지을 것입니까?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1, 2.

   이와 같은 진리는 사도바울이 깨닫기를 원하는 진리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외쳤습니다. 죄인은 죄인이 되기를 두려워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자비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죄인에게 구원의 자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영원한 복음

   2,000년 전에 아기로 오신 초림의 예수는 복음이셨으나, 앞으로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시는 재림의 예수는 영원한 복음이십니다. 공중을 날아가는 첫째 천사의 손에는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계 14:6.

   그러나 영원한 복음이신 재림의 예수님은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히 9:28.

   이제는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시는 영원한 복음이신 예수님이 온 땅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천사는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공중을 날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온 땅에 거하는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게 전해야 할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영원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들을 이제는 죄와는 상관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은 우리들에게 죄짓지 않는 생애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영원한 복음을 경험하라

   1844년 3월 22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기별은 참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복음이었습니다. 이 영원한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경험들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이 경험은 영원한 복음을 믿는 모든 재림성도들이 반드시 경험해야할 경험인 것입니다. 1844년 당시 재림성도들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감동적인 호소는 일반 강단에서 전해지는 평화와 안전을 보증하는 설교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복음을 전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성경 말씀의 증언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졌고,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신앙인이라고 공언하던 사람들이 거짓된 안일 상태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타락, 속화(俗化), 불신, 자존심, 이기심들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세상에 두었던 애정을 하늘에 두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으며, 그들은 부드럽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기별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였다. 죄인들은 울면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하였다. 부정직한 생애를 하여 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입힌 손해를 보상하고자 열망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하였다. 부모의 마음은 그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은 그 부모에게로 돌아갔다. 자존심과 장벽은 없어졌다.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였고, 가족들은 모두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따금 가장 열렬하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나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탄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확증을 얻기 위하여, 또한 그들의 친척과 이웃 사람들을 회개시키고자 밤을 새우면서 기도의 씨름을 하였다.”-쟁투, 369.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소망으로 구주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날 것으로 기대했던 그 시간은 눈앞에 박두하였다. 그들은 매우 엄숙하게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간격없는 교통을 하면서 그들 앞에 놓인 광명한 미래로 마음이 평안하였다. 그 희망과 신뢰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당시의 그 귀중한 기다림의 시간을 도무지 잊어버릴 수 없었다. … 진실한 신자들은 마치 죽는 사람이 임종 시에 몇 시간 동안 세상 사물을 초월하여 명상하는 것처럼 자기들의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살펴보았다. …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지금도 그 때와 같이 스스로를 살피고, 열렬하고, 확고한 신앙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쟁투, 373.오늘날 이 세상에는 죄에 대한 혐오와 증오심이 없는 회개와 마음의 청결과 순결을 갈망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는 복음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복음들이 마치 영원한 복음인양 전해지고 있으며, 진정한 마음의 통회와 자복이 없이 구원의 기쁨만을 주려는 복음이 세상에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1843년 당시의 외침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것을 보았다. …이 기별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울면서 용서를 구했으며, 부정직하게 살아온 자들은 원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애썼다. 부모들은 그들 자녀들의 구원을 위하여 애를 태웠다. 이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은 그들의 개심하지 않은 친구들과 친척을 찾아가 그들이 이 엄숙한 기별에 굴복하고 인자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탄원했다.”-초기, 232, 233.

   영원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죄인들의 마음은 움직였고, 영원한 복음은 죄인들의 마음속에 깊은 회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영원한 복음의 능력은 통회와 자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재림성도들이여 여러분이 믿고 있는 복음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회개하지 않은 죄가 기억되지는 않습니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회개와 자복의 경험과 죄에 대한 혐오와 증오심을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자신의 마음임을 깨닫고 마음의 청결과 순결을 갈망하는 마음과 하나님과 화목하고자 하는 진정한 소망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역사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영원한 복음을 경험한 자들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죄에 대한 혐오와 증오심이 없는 회개와 마음의 청결과 순결을 갈망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는 복음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복음들이 마치 영원한 복음인양 전해지고 있으며, 진정한 마음의 통회와 자복이 없이 구원의 기쁨만을 주려는 복음이 세상에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입니다.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첫째 천사는 지금도 공중을 날아가면서 우리들에게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교리를 그들의 시야에서 잃어 버렸다.”-리뷰 앤드 헤럴드 1889년 8월 13일.

      확실한 증언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잠 28:13). 이것은 복음의 능력과 목적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죄를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무기력하며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백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딤전 1:15).

   “자기의 죄를 자복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저희 마음을 겸비히 하지 아니한 자들은 아직 하나님께 기뻐 받으시는 첫째 조건도 이행하지 아니한 자들이다.”-정로, 37, 38.

   “그러나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하고 자신에 대한 이같은 지식이 우리로 통회하게 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용서와 화평을 얻을 수 없다. …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만을 구원하실 수 있다. 그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눅 4:18)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눅 5:31)다.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상태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위험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피난처로 달려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상처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치료를 받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실물, 158.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그에게 나오는 가장 극심한 죄인까지라도 구원하실 수가 있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그들을 정결하게 하실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죄에 매달려 있으면 그들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는 회개하지 아니한 어떠한 죄도 덮어 주지는 않는다.”-7주석, 931.

   “변명으로 우리의 죄를 감소시키고자 노력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야 하며, 그것은 실로 무겁다. 오직 갈바리만이 죄의 무서운 흉악성을 나타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의 죄를 담당해야 한다면, 죄가 우리를 눌러 뭉개 버릴 것이다. 그러나 죄 없는 분께서 우리와 입장을 바꾸셨다. 그렇게 할 책임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장 9절). 당신의 율법에 공의로우면서도,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진리인가!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가 7장 18절).”-보훈, 116.

      죄를 가리워 주지 않음

   “언제나 값진 진주를 찾아 헤매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저들은 저들이 가진 바 그릇된 습관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또한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저들 안에 사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죽지 않는다. 그런고로 저들은 보배로운 진주를 발견하지 못한다. 또한 저들은 부정한 야심과 세속적인 매력에 대한 저들의 애착을 버리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십자가를 높이지 않으며 극기와 자아 희생의 생애로써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 완전한 복종이 없이는 진정한 안식과 기쁨이 없으므로 저들은 영혼 안에 화평과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 무엇임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 저들은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하였으나 아직 완전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며 저들은 하늘 왕국에 접근한 듯이 보이나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완전히 구원받지 못하고 거의 구원받을 뻔했다는 말은 거의 구원받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히 구원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1기별, 399, 400.

   “우리 모두가 죄와 범법 행위를 떠나서 하늘의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을 수 있으나, 그분의 의는 약간의 악도 가려주지 않을 것이다. ‘너희를 씻어 정결케 하리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위해 열려진 샘이 있으며 모든 흠을 거기서 정결케 할 수 있다.”-영문시조, 1889년 7월 29일.

      죄 있는 상태로 구원하지 않으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지 않으시고 죄로부터 구원하신다.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면 구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희망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의 영께서 마음가운데 거하시면 죄가 마음에 있을 수가 없다.”-리뷰 앤드 헤럴드, 1886년 3월 16일.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겸비한 영혼에게서 죄를 분리시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역사를 멸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모든 회개하는 영혼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보전할 만반의 대비책을 세우셨다.”-소망, 311.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요일 5:18-21.

   “예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되 죄 있는 그대로 구원하지 않으시고, 죄에서 떠나도록 구원하고자 돌아가셨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며 자아를 부정하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을 순종하면서 자신의 길의 잘못을 버려야 한다.”-4증언, 251.

   “한 가지 죄를 마음에 품거나 한 가지 그릇된 행습이 생애 가운데 남아 있다면 온 심신이 오염된다. 그 사람은 불의의 도구가 된다.”-소망, 313.

      약속

   “구주께서는 연약한 인성을 취하시고 죄없는 생애를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인간성의 약점 때문에 승리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리고 그분의 생애는 인성이 신성과 연합할 때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치료, 180.

   “자신의 더러운 예복을 벗어버려야 하는 죄인들은 의의 예복을 입혀주시기 위해 그것을 마련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모든 인간들은 소망이 있다. … 순결하고 거룩한 예복은 도성 문을 통과한 후에는 누구에게도 입혀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 도성에 들어가는 모든 자는 그리스도의 의의 예복을 입고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한다. 이 이름은 사도가 계시가운데서 본 상징이며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지적이고 충성된 마음으로 순종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 품성의 결점을 가리기 위해 어떤 죄나 잘못을 가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예복은 빨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여 흠없게 되어야 한다.”-청년 지도자, 1886년 8월 18일.

   “하늘 베틀로 짠 이 두루마기에는 사람이 만든 실은 한 올도 섞이지 않았다. 인성으로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품성을 나타내셨고 이 품성을 우리에게 나눠 주신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사 64:6)과 같다.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죄로 더럽혀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죄는 ‘불법’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모든 계명을 지키셨다. 그는 자기에 대하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요 15:10)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당신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때에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분의 뜻에 합병되고, 우리의 정신은 그분의 정신과 하나가 되고, 우리 생각은 그분에게 사로잡히게 되어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이다. … 의(義)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행위로써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품성은 우리의 행위로 나타난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믿음이 진실된 여부를 보여 준다. …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이것이 참된 거듭남의 증거이다. 우리가 어떠한 공언을 하든 간에 우리의 옳은 행실로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않을 것 같으면 그 공언은 아무 소용이 없다.”-실물, 311-313.

      첫째 천사는 날아가고 있음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첫째 천사는 지금도 공중을 날아가고 있습니다.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첫째 천사는 큰 음성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재림성도들이여, 우리 모두는 불원간에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계 22:11)는 선고를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선고가 날 때에 의롭게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는 의로운 자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때는 의롭고 거룩한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이 주어질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죄 없는 생애를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는 선고를 내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들 마음에 어떤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영원한 복음에는 믿는 자들에게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영원한 복음은 죄 짖지 않는 생애가 가능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이 아닌 것은 첫째 천사가 전하고자 하는 영원한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실상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 11:1) 이것이 영원한 복음이요 참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입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1844년 당시 영원한 복음을 기다리든 모든 재림성도들의 경험이요 첫째 천사의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오늘날 영원한 복음을 기다리는 우리들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기별입니다.

   이 영원한 복음이 온 땅에 거하는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복음과 같이 전해져야 할 기별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계 10:7).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 전했던 두 천사의 기별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그의 악한 눈을 그들에게 돌려 저들을 넘어뜨리려 하였다. 그러나 셋째 천사는 저들을 지성소로 향하게 하였으며 과거의 기별들에 경험을 가진 자들은 그들에게 하늘 성소의 길을 가리켜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완전한 진리의 연결을 보고 그 순서대로 즐거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 성소로 들어갔다. 이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닻이 된다고 하였다. 이 기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사단의 수많은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초기, 256.

   우리 모두 첫째 천사의 영원한 복음을 경험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왕국의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다. 인간은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주장할 수 있다. 그들은 의(義)에 관해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호와의 율법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것만이 참된 의(義)이다. 의(義), 선함, 덕, 순결, 이 모든 것은 여호와의 율법에 부합하는 것을 의미한다.”-원고철 2권 145.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