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기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믿음의 실제 I

 

 


A.T. 존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이며(롬 14:23), 죄는 전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1898년 10월 18일 리뷰 앤드 헤럴드지의 첫 페이지에서 예언의 신이 말한 바와 같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그 의미하는 바를 아는 것은 다른 어떤 지식을 얻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 근거하여 이번 호부터 리뷰 앤드 헤럴드지의 본란에 믿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계속 기고하여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믿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여 믿음이 오며 믿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등의 “다른 어떤 지식을 얻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이 지식을 얻도록 하려고 한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8년 11월 29일).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성경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그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믿음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지식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믿음을 길러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해 보았자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 주님이 믿음에 대해서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하셨지만,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들은 믿음의 정의가 무엇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실제가 무엇이며 그 정의에 들어 있는 사상이 무엇인지를 알거나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 믿음의 정의를 다루는 것보다는 오히려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 연구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무엇인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를 보면서 그 실제 자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르러 온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그 의미하는 바를 아는 것은 다른 어떤 지식을 얻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믿음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어떤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성경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그 의미하는 바를 아는 것은 다른 어떤 지식을 얻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성경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그 의미하는 바를 아는 것은 다른 어떤 지식을 얻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마 8:6-10) 여기에 예수님께서 믿음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임을 발견할 때에 믿음이 무엇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성경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그 의미하는 바를 아는 것은 다른 어떤 지식을 얻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가 되시는데 그가 백부장이 나타낸 것을 믿음, 곧 큰 믿음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백부장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그가 주님께서 그 일을 해 주시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백부장은 그것을 막으면서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주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제 백부장은 무엇이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는가? “다만 말씀으로만” 하셔도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그의 하인을 치료하기 위하여 오직 무엇에만 의존했는가? “다만 말씀”에만 의존하였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형제자매들이여 믿음이란 무엇인가? (리뷰 앤드 헤럴드 1898년 12월 6일).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그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며 또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마음 속에 넣어 주기 위하여 말씀 그 자체 안에 그 말씀이 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진리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것을 가르치고 다른 어떤 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것은 참으로 “미쁘신 말씀” 곧 믿음으로 충만한 말씀인 것이다.

   성경의 맨 처음 장의 대부분이 믿음 안에서 가르치는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믿음을 분명하게 깨우쳐 넣어주는 여섯 구절의 분명한 말씀이 있으며 여기에 첫 절을 이 여섯 구절들을 근본적으로 연결시키는 말씀으로 보면 일곱 구절의 말씀이 있다. 믿음을 넣어 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하는 바를 스스로 이룬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성경의 맨 처음 절부터 읽어보도록 하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시 33:6-9)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없었지만 말씀하시니 “이루었다.” 단지 말씀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이루어지게 했는가? 오직 말씀이 그것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흑암이 모든 깊음 위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빛이 있기를 원하셨다. 모든 것이 완전히 흑암이었을 때에 어떻게 하여 빛이 있을 수 있게 하셨는가? 다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빛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이 빛을 창조하셨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빛이)비취”었다. (시 119:130) 첫째로 궁창 곧 공중이 없었는데 하나님은 궁창이 있기를 원하셨다. 어떻게 궁창이 있게 되었는가? “하나님이 가라사대 궁창이 있어 … 그대로 되니라.” “그대로 되니라”는 말의 다른 번역은 “이렇게 되었느니라”고 했다. 무엇이 궁창을 있게 하였는가? 무엇이 궁창을 이렇게 있도록 만들었는가? 오직 말씀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에 말씀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자체가 이것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음에 하나님께서 뭍이 있기를 원하셨다. 이 뭍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다음에 채소와 과목이 있었다. 이것들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 (그대로 되니라).”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뭍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 (그대로 되니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만물이 창조되었다. 그는 말씀만 하였으며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의 하신 말씀 자체가 만물을 창조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 구속 사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오로지 말씀으로 병자를 치료하셨고 마귀를 쫓아 내셨고 태풍을 잔잔케 하셨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셨으며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죄를 용서하셨다. 이 모든 일에서도 역시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라는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언제나 창조주이시며 언제나 말씀으로만 모든 일을 하신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말씀으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하신 일을 스스로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 근거하면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말씀 그 자체가 그 말씀한 일을 이룰 것을 기대하는 것이며 말씀이 그 말씀한 것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그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믿음을 가르치려면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이 이러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이며 사람들에게 믿음을 행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할 것이며 사람들에게 믿음을 행사하는 법을 가르치려면 하나님의 말씀 스스로 그 말씀하는 일을 이룰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하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오직 그 말씀만 의존하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이며 또 믿음을 기르는 것은 말씀이 그 말씀한 일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 말씀하는 바를 이루도록 그 말씀 자체만을 의존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그 의미하는 바를 아는 것은 다른 어떤 지식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여러분은 믿음을 기르고 있는가? (리뷰 앤드 헤럴드 1898년 12월 27일).

   말씀은 스스로 이룬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하는 바를 스스로 이룰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이 그 말씀한 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그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할 때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씀이 어떠하다는 것을 아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의 능력이 들어 있으므로 그 말씀에서 말씀하는 일의 실상을 창조할 수 있으며 믿음은 말씀 자체가 그 말씀하는 바를 이룰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하는 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오직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 안에 창조의 능력이 있으므로 만일 창조의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을 창조하여 존재하도록 하고 볼 수 있도록 하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 일을 하도록 기대하고 그 일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다만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므로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것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히 11:3) 믿음을 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의 능력이 있으며 그러므로 그 말씀하신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고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결코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지 않는다.

   믿음을 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는 지금 보이는 것들이나 그러한 것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가 말씀하셨을 때에 그 말씀 자체가 세계를 존재하게 하였으므로 세계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 사이의 차이점이다. 사람은 말을 할 수는 있으나 그의 말에는 말한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만일 그가 말한 것을 이루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것위에 다른 어떤 일을 부가적으로 해야 하며 그의 말을 실행하기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하신 일이 실제로 존재한다. 단순히 그가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을 성취시킨다.

   주님은 사람과 같이 하신 말씀 외에 다른 어떤 일을 행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의 말씀에 어떤 능력을 더하여야 할 필요가 없다. 그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그는 “말씀만”을 하실 뿐이며 그러면 그 일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곧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행사하는 우리의 속에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시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단순히 거짓말하기를 원하시지 않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또 거짓말을 하실 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직 거짓말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시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 하신 말씀 속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어서 다만 말씀만 하면 말씀하신 그대로 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시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사람은 말을 할 수는 있으나 실제는 그 말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말에는 그 말대로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분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렇게 된다.

   이것은 역시 하나님이 미래에 다가올 수백년 간의 예언과 같이 어떤 때에 해당하는 말씀을 하셨을 때에 그때가 실제로 이르러 오면 그 말씀이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말씀이 그때에 성취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말씀 외에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시기 때문이 아니고 그때를 위하여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며 그 말씀 속에 창조의 능력이 있어서 그때에 말씀하신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치지 않았더라면 돌들이 즉시 소리쳤을 것을 보여주며 또 이것은 사흘이 되던 날에 그를 더 이상 사망에 붙들어 두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다. 그 안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으며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성취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이러한 말씀으로 신뢰하고 의존한다면 그것이 곧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리뷰 앤드 헤럴드 1898년 1월 3일).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