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흔히 교회와 남은 교회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와 남은 교회는 분명 다르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대한 예언을 보면서 교회와 남은 교회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하자.

한 시대의 교회가 사단의 집요한 유혹 및 핍박에 의하여 세속화 되고 타락하여 진리의 촛대가 꺼질 위험성이 발생하면 하나님께서는 충실한 무리들을 일으키시고 교회가 등한시하고 거절한 진리의 촛대를 보관하셨다. 이처럼 진리의 촛대를 보관한 극소수의 무리들을 일컬어 남은 무리 혹은 남은 교회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촛대가 꺼져갈 위험이 있을 때마다 남은 교회를 일으켜 세우셨는데 그리하여 같은 시대에 교회와 남은 교회가 공존하는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 남은 무리들이 다음 시대의 교회의 초석이 되고 기둥이 되게 하셨다.

지나간 교회 역사의 실례를 들면, 1833년에서 1844년 당시 첫째 천사의 기별과 둘째 천사의 기별이 전파된 10년 동안을 일컬어 빌라델비아교회라고 말한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교회는 일요일 개신교회들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교회는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하고 그 진리들을 등한시 하므로 진리의 촛대가 꺼질 위험성이 발생 하였다. 빌라델비아교회시대는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하는 시기였는데(계 3:10 참조) 이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첫째와 둘째 천사가 전하는 진리의 기별을 소중하게 보관한 극소수의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빌라델비아시대의 남은 무리들이었다. 이들에 의하여 교회에 의탁된 진리의 촛대는 보전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들은 엘렌 지, 화잇 선지자를 위시한 그의 남편과 죠셉 베이츠, 헤스켈, 라포보로우 등 기라성 같은 재림 선구자들이다. 이들은 곧 빌라델비아교회시대의 남은 무리들이요 이들에 의하여 라오디게아교회 곧 일곱째 마지막 교회를 대표하는 제칠일 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기둥과 초석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화잇 선지자는 우리는 “남은 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면 그 남은 무리는 라오디게아의 남은 무리가 아니요 빌라델비아 교회의 남은 무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화잇 선지자께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를 남은 교회라고 말씀하신 것은 정당하지만 이미 그 세대들은 잠들고 재림의 열기는 식고 뜨겁던 성도들 간의 그리스도의 사랑은 식어 버리고 세월은 흘러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 그리고 1,300만 명의 교인과 하루에도 천여 명의 침례교인을 양산하는 거대한 지금의 교회를(SDA) 남은 무리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모순인가? 남은 무리란 항상 극소수의 무리들이기 때문이다. 이  남은 무리들에 의하여 교회가 조직된다. 그리고 이 교회가 부흥하여 세계 곳곳에 교회들이 세워지고 많은 신자들로 채워질 때면 이제 그 교회는 남은 교회가 아니요 새로운 한 시대의 모 교회가 되는 것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남은 무리는 그 시대에 일어나는 것이며 모든 시험에서 이기고 승리한 무리들에게 주어져야 할 이름이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교회시대의 남은 무리는 라오디게아교회 시대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림교회는 아직도 남은 교회라는 일반적인 통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식어버리고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임재가 없는 상태의 교회가 되었지만 알지 못하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한 백성으로서 우리의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4. 12. 15).

“교회는 라오디게아의 상태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는다.”화잇부인 비망록, 99(1898년).”

벌거벗었으나 수치를 알지 못하며 눈이 멀었으나 어두움을 알지 못하며 가난하고 가련하지만 진리에 부요하다고 생각하는 교회, 믿음으로 말미암아 입혀진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벗겨지고 수치는 들어났으나 깨닫지 못하는 재림교회가 되고 말았다.

1888년 주님께서는 벌거벗은 교회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당신의 의의 옷을 가지고 교회를 찾아왔으나 교회는 벗은 줄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 우리의 의의 기별을 거절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전해져야할 진리의 촛대는 꺼져버린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주의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권고하셨다.

“교회들에 어떤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내가 미네아폴리스에서 말한 모든 것을 나는 확증받았다. 개혁이 일어나야만 한다. 왜냐하면 큰 빛과 귀중한 기회와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연약해지고 무지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때 개혁자로서 여러 교단들에서 나온 자들이었으나 이제 저들은 이전의 교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우리는 또 다른 분리가 불가피하게 되지 않기를 희망했다. 우리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우리는 글이나 말로써 완고함에 대해 항의하는 일을 그치지 않게 될 것이다.”(1888년 기별 모음집, 356, 357(1889년).

“그들이 받은 빛을 자랑하면서 그 빛 가운데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 [큰 빛을 받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인들]아 네가 하늘 [특권의 지점]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리뷰 앤드 헤랄드, 1893. 8. 1).

1888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리스도 우리의 의 의기별은 거절되고 말았다. 교회에게 주어진 진리의 촛대는 꺼져버릴 위험에 이르렀으나 극소수의 신실한 무리들에 의하여 이 진리의 촛대는 보전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를 부인하고 재림교회는 아직도 남은 교회라는 특권을 주장하고 있다. 세상을 사랑하므로 세속화된 교회의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남은 교회이기 때문에 결국 알곡만이 남는 교단이 될 것이라는 분홍빛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일요일 법령이 내리면 가라지들이 모두 나가고 교회가 정결하게 될 것이라는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대하여 신자들은 무작정 동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옛날 이스라엘백성들의 실패의 역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 이스라엘백성들은 많은 잘못된 고정관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도 특히 메시야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와 같은 잘못된 고정관념들 때문에 다른 진리를 이해하는 일에도 많은 장해를 가져왔다.

많은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은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지 않았고 고정관념인 조상의 유전을 존중하여 성경 속에 나타난 명료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 일에 실패하였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유대민족에 대한 불길한 예언들을 말씀하셨을 때 이스라엘백성들은 예수님께 대한 적의를 공공연히 나타내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아울러 돌 하나도 돌 위에 첩 놓이지 않고 철저하게 멸망할 유대민족의 장래에 대한 예언은 이스라엘백성들로 분노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그 말씀은 이미 진리를 거절하고 메시야를 거절 한 유대민족에 대한 운명이었고 진리의 촛대가 옮겨진 교회의 당연한 결과였으나 철저한 고정관념에 쌓여있던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하였다.

재림교회도 마찬가지이다. 1888년 기별을 거절한 것은 교회의 운명이 달린 기별이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나는 참된 증인의 증거가 절반도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교회의 운명이 달려 있는 이 엄숙한 증거가 전적으로 무시당하거나 가볍게 평가되고 있다. 이 증거는 깊은 회개를 불러일으킬 것인데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든 자들은 순종하여 자신을 순결하게 할 것이다.”(초기문집, 270).

1888년 기별은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시는 참되고 진실하신 증인의 기별이었으며 교회의 운명이 달린 기별이었다. 그러나 옛날 유대인들처럼 깨닫지 못하였다.

옛날 예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개인을 두고 비난 하거나 그들에게 증오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교회의 암담한 상태와 장래를 생각하시며 통분하시어 하신 말씀이셨다. 그러나 그 말씀을 하실 때 그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으나 그들은 보지 못했다.

 

오늘날도 참된 개혁자들은 야곱집의 허물과 죄를 고해야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며 한 백성, 한 형제들로부터 많은 오해와 미움을 받는 일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야곱집의 허물과 죄’가 공개 될 때에 그 목적과 동기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참된 개혁자들은 결코 어떤 개인이나 어떤 교단을 비난하려는 마음의 동기가 추호도 없음을 감히 고백 할 수 있다. 다만 오늘날 재림교회와 재림을 기다리노라고 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가련하며 무서운 기만 속에 있는가를 진실로 깨닫기를 진정으로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철저한 기만 속에 있으면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는 라오디게아상태로서는 희망이 없다. 이번 기회에는 라오디게아시대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재림교단이 갖고 있는 매우 위험한 고정관념들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이 시대의 남은 무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피할 길을 주셨는지를 모두 함께 진리를 연구함으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되기를 희망하며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두는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는 호소에 응답 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영광스럽게 승리하는 남은 무리들 가운데 함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다음은 재림교회가 주장하는 잘못된 고정관념들을 말씀과 비교해 본다.

 

[의문점 1]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결국 가라지들이 나가고 알곡만이 남는 교단이 될 것이다.

 

일반적인 재림교회의 고정관념은 이런 저런 구실로 가라지들은 재림교회에서 나가고 결국 알곡만이 남는 교단이 될 것이라는 분홍빛 고정관념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형은 매우 불길한 징후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최후의 핍박이 올 때면, 다시 말해 일요일 법령이 내리면 가라지들이 모두 나가고 교회가 정결하게 될 것이라는 청사진을 보여주면서 순진한 백성들을 달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안에 있는 개인적인 가라지들도 문제지만 교회(교단)자체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교단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고 목적이 확실하다면 개인적인 가라지들이야 언젠가는 이런 저런 구실로 떠나가고 교단이 정결해 지리라는 고정관념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개인이 아닌 교단이다. 교회가 과연 올바른 진리의 토대위에 굳게 서있고 진리의 푯대를 향하여 정확하게 나아가고 있다면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라오디게아교회의 참된 증언은 교회에 대한 매우 불길한 말씀을 하고 있다.

  

“나는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상태를 생각할 때 슬픔으로 충만해 진다. … 교회는 그 지도자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서 돌아섰고 꾸준히 애굽을 향하여 퇴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 결핍에 우려를 나타내거나 놀라는 자들은 별로 없다.”(교회증언 5권, 217).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흑암의 세력과 타협해 왔다.”(교회증언 5권, 222).

 

이 말씀에 의하면 개인이 아닌 교회가 지도자 되신 그리스도를 떠나 애굽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어떤 개인들이 애굽으로 되돌아간다면 그들만이 지도자 되신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그만 이요 교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 속하여 있는 많은 영혼들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교회가 애굽으로 돌아간다면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영혼들은 결국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는가?  

마치 어떤 열차의 기관사가 서울행 표지판을 달고 부산을 향해 달린다면 서울로 가기 위해 승차한 승객들은 결국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아무리 표지판은 서울 행 열차라는 것을 확인 하고 승차 하였다 하더라도 기관사가 부산을 향하여 열차를 달린다면 부산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애굽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개인적으로 혼돈을 일으켜 열차를 잘못 타는 경우가 아니라 기관사와 열차가 잘못된 방향으로 열차를 몰아가는 경우를 말한다.

부산에서 하차 한 후 아무리 항의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승객들이 졸지 않고 있다면 가는 도중에 자신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표지판들과 지형들과 안내서들을 이용하여 확인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분명 서울 가는 열차를 탓기 때문에 이 열차는 분명히 서울로 갈 것이야. 라고 믿는다면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서울로 데려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의 지성은 깨닫는다.

위에 언급된 교회증언이 진실하다면 재림교단은 지금 분명 하늘가나안이 아닌 애굽으로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래에 기록된 교회의 증언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한때 진실한 재림 교인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습관과 풍속과 이기심에 있어서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 세상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순종하게 하는 대신에 교회가 날마다 세속화되고 있다.”(교회증언 8권, 119).

“만약 사업의 영향력을 방어하기 위하여 가장 진지한 경계가 사업의 큰 심장부에서 보여지지 않는다면 교회는 다른 교파의 교회들처럼 부패 될 것이다.”(교회증언 4권, 513).

한때 진실한 재림 교인이었던 사람들이 그 습관과 풍속과 이기심에 있어서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 하면 교회가 애굽으로 향하여 가면서 애굽의 풍경과 애굽의 풍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서히 서서히 점진적인 변화이기에 세밀한 관찰력과 깨어있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없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교회는 애굽처럼 부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개인들이 아닌 교회가 날마다 세속화되고 있다고 하신 것이다.

교회가 애굽으로 가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일반 영혼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교회의 심장부가 빛을 거절(1888년)한 연고이며 그 결과 심장부(대총회)가 병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교회지도자들은 연약한 믿음과 낮은 표준에 만족하고 있으며 서서히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세상을 향하여 교회는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이루어졌던 동일한 사업이 대총회의 변장아래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 단체의 신령한 특성은 신속히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순결하고 거룩하며 더럽혀지지 않는 것으로 존중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거룩한 신임장을 지니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대개 대총회는 그 신령한 특성을 상실하여 버렸는데 왜냐하면 그 단체와 관련이 있는 자들이 미네아폴리스에서 열렸던 대총회 이후에 그들의 감정은 조금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임 맡은 지위에 있는 어떤 이들은 저의 자신들의 마음대로 오나고하게 나아가고 있다. …

누가 대총회의 결정 사항을 존중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 교인들이 저의 자신들이 붙인 불빛을 따라가고 있는 자들의 경영 수완을 알게 된다면 그들이 저들의 결정 사항을 존중 하겠는가? 나는 결코 ‘아니다’고 대답한다. 나는 대다수의 백성들이 베틀크릭의 사업의 중심부가 부패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백성의 대다수가 무감각하고 냉담한 혼수상태에 빠져있으며 그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계획들에 찬성하고 있다. 백성들이 들을 수 있는 음성 즉 그들이 참된 목자에게서 오는 것으로 알 수 있는 음성은 누구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주어지겠는가?”(베틀크릭 사업에 관한 특별증언, 1896년 5월 31일).

“사업의 심장부에서 일하는 책임 있는 사람들이 졸고 있다. 사단은 그들을 마비시켜서 그의 계획과 간계가 발각되지 않게 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는 사로잡고, 속이고, 파괴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교회증언 2권, 439).

“나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상징적인 모습으로 장면들이 잇달아 내 앞을 지나갔으며, 그것들을 모두 쓰기 시작하기까지는 결코 안정을 얻을 수 없다. 사업의 중심부에서 일이 꾸며지고 있으며 다른 모든 기관은 동일한 길을 따라가고 있다. 대총회 자체가 잘못된 의견들과 원칙들로 말미암아 부패되어 가고 있다. 계획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아주 오랫동안 베틀크릭의 일들을 지배해 왔던 동일한 원칙들이 나타나고 있다.

유대 민족이 그들의 사상과 관습 상태에 빠진 것은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이 아님을 나는 보았다. 세대를 거쳐 내려가면서 그들은 진리에 위배되는 원칙들을 완성하고, 그들의 종교 사상과 인간 지성의 산물인 계획들을 결합 시켜서 결국 거짓 이론에 따라 움직이게 된 것이다.”(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359).

 

◎.교회에 대한 예언과 말씀은 불길하다. “재림 교회는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대총회, 즉 사업의 중심부가 부패 하였다고 선지자는 말씀하셨다. 이미 오래전에 교회는 하나님의 신임을 받는 일에 실패하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은 나아 졌는가?  아니다. 결국 다른 교파들처럼 타락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있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사 9:16).

 

[의문점 2]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영광스럽게 승리할 교회이다.

 

일반적인 재림교회의 또 하나의 고정관념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단은 마지막 남은 교회이기에 늦은비를 받아 영광스럽게 구속사업을 마치고 승리할 교회라고 믿고 있다. 물론 성경과 증언의 말씀으로 예언된 말씀들을 찾을 수 있다. 예언은 분명 성취 될 것이며 이루어지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의의 갑옷을 입고 최후의 투쟁에 들어가야 한다.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아 6:10) 교회는 온 세상에 나아가 정복하고 정복해야 한다.”(선지자와 왕, 725).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성경에 예언된 모든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모시기를 거절 하였다. 지금도 그들은 영광스럽게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이다. 물론 성경의 많은 축복들이 그들을 대상으로 주어진 축복의 예언인 것은 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예언과 축복은 믿음과 순종의 조건위에 성취될 것이었으며 그들은 이 조건을 성취시키는 일에 실패 하였다.

오늘날 재림교회도 유대백성들 못지않게 교회에 대한 신임도가 높다.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 되었다고 하드래도 그래도 교회는 재림교회밖에는 없고 또 다른 교회는 있을 수 없으며 이 교회가 영광스럽게 복음사업을 마치는 교회가 될 것이라는 충성스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증언의 말씀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성소의 저울에 달려져야한다. 그는 자기가 갖고 있던 특권과 편익들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교회의 영적 체험이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댓가로 그에게 주신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선고가 교회에게 발하여질 것이다.”(교회증언 8권, 247).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성소의 저울에 달려져야한다고 증언에 기록되어 있다. 성소의 어떤 저울에 달려질 것인가? 1844년 10월 22일은 실제적인 대속제일이며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예언을 성취시키는 해였다. 이 사실을 알고 가르치는 재림교회는 바로 지성소의 백성들이며 대속제일을 지키는 지상의 유일한 백성이 되었다. 그렇다면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지성소의 저울에 달려져야 할 것이 분명하다.

지성소가 어떤 곳인가? 죄가 용납되지 않는 곳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 곳이며 완전한 곳 중에 완전한 장소이며 거룩한 곳 중에 거룩한 곳이다. 이 저울에 의하여 재림교회는 달려질 것 인데 왜냐하면 받은 빛의 특권과 편익을 따라 교회는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의 결과가 어떨 것이라고 예견되는가?

애굽으로 착실하게 후퇴하여가는 교회, 날마다 세속화를 더해가는 교회, 심장부가 병들은 교회가 주어진 빛과 편익에 합당한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못하다면 달아보니 부족하다는 “메네 메네 델겔 우바르신” 이라는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그 결과를 증언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그 때 나는 슬픔으로 통곡하는 다른 한 무리를 보았는데 그들의 옷에는 큰 글자로 ‘그대를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고 씌어 있었다. 이들이 어떠한 무리냐고 천사에게 물으니 천사는 ‘이 사람들은 한때 안식일을 지켰으나 후에 포기한 자들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들이 큰소리로 ‘우리가 당신의 오심을 기다렸고 열심으로 그것을 가르쳤나이다’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 나는 그들이 깊은 샘에서 실컷 마시고 나머지는 발로 더럽힌 것 즉 안식일을 짓밟은 것을 보았는데 이것이 그들로 달아보니 부족하다는 말을 듣게 한 이유이었다.”(초기문집, 36, 37).

 

      충실한 도성이 음녀가 됨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분명 충성스럽게 시작한 교회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증언의 말씀들을 보자.

 

“어떻게 하여 충실한 도성이 음녀가 되었는고! 내 아버지의 집은 장사하는 집이 되어 거룩한 임재와 영광이 그 곳에서 떠났다. 이로 인하여 연약함이 있으며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지금 자신의 타락으로 부패되고 있는 교회가 회개하여 변화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미워하게 되기까지 자신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교회증언 8권, 250).

 

“사업의 중심부에서 일이 꾸며지고 있으며 다른 모든 기관은 동일한 길을 따라가고 있다. 대총회 자체가 잘못된 의견들과 원칙들로 말미암아 부패되어 가고 있다. 계획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아주 오랫동안 배틀크릭의 일들을 지배해 왔던 동일한 원칙들이 나타나고 있다.”(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359).

 

“세속적인 것은 교회 안에 도입되지 말아야 하며, … 이러한 길을 통해서 교회는 정말로 부패하게 될 것인데,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처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될 것이다.” -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265.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일에 열성적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무관심하고 냉담해져 있다는 것은 숙연하고 두려운 일이다. 세속적인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과를 구분하는 선은 거의 분별할 수 없다. 한때 열렬했던 많은 재림신자들이 세상과 일치되어 있다. 곧 세상의 습관과 그 풍습과, 그 이기심과 일치되어 있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도록 세상을 지도하는 대신에 교회가 불법을 통하여 세상과 점점 더 가까이 연합하고 있다. 날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변해 가고 있다.”(교회증언 8권, 118).

 

“교회가 세상과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될 것이다. 그곳은 모든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5. 2 26).

 

◎. ‘충실한 도성’, ‘대총회’,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무리’가 누구인가? 이들이 음녀가 되고 그릇된 사상과 원칙들로 부패되고, 세상이 교회에 들어와 세속화되어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아닌가? 이미 더럽고 가증한 곳이 되어버린 개신 교회들처럼 부패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과연 오늘날 명목상의 재림 교회의 모든 사업들이 세속화되지 않았는지, 장사하는 곳이 되지 않았는지 살펴보라.

재림 교회는 성소(지성소)의 저울(표준)에 달려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 결과는 ‘달아보니 부족하다’는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5, 17).

“‘또한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는 명령이 주어져 있다. 허물에 대하여 견책을 받아야 할 자들은 사악한 이 세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는 자들이다. … 여기에 자신들을 의롭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특별한 흥미를 나타내는 것 같은 한 단체가 보인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당신의 계명을 유린하고 있는 자라고 단호하고도 엄숙한 견책을 하신다.”(각 시대의 쟁투, 452).

 

    유대민족의 역사가 재현될 것임

 

“그들의 현재 상태로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품성을 재현하기가 불가능하다. … 계속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는 선고가 내려져야 할 때는 분명히 올 것이다. … 과연 교회는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생각할 것인가? … 거룩한 감찰자께서는 교회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나무와 같음을 발견하신다. 우리 교회에 있어서 이것은 얼마나 엄숙한 문제인가?”(리뷰 앤드 헤랄드, 1890. 12. 23).

 

“사단은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경험 가운데 유대 민족의 역사가 반복되도록 활동하고 있다.”(가려뽑은 기별 2권, 111).

 

“유대 교회에 보였던 것과 동일한 불순종과 실패의 특성이 이 시대의 큰 빛을 받은 백성들에 의해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다.” -교회증언 5권, 456.

 

◎. ‘잎만 무성한 교회’, ‘이 시대에 큰 빛을 받은 백성’, ‘현대진리를 믿는 무리’들이 누구인가? 사단은 이들에게 유대인의 역사가 반복되고 더 크게 나타나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다. ‘에브라임이 우상과(세상사랑)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는 선고가 분명히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실 때 그 나무가 말라 버렸다(마 21:18, 19). 이것은 유대민족의 장래를 보여 주신 것이었다. 이 역사가 명목상의 재림교회에 반복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교회(SDA) 당국자들은 모든 가라지는 교회에서 나갈 것이며 늦은비를 받고 교회는 승리한다고 가르친다. 너무나 안일하게 백성들에게 자장가를 부르고 있지 않는가?

 

“사역자들은 육적인 신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무난한 것들을 설교한다. 그들은 감히 예수와 성경상의 명료한 진리를 설교하지 못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이 육적인 신자들이 교회 안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이것이 사단이 원하는 바이다.”(초기문집, 228).

 

“그들이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사 30:10, 11).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렘 7:4).

교회의 당국자들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결코 타락하지 않을 것이며 영광스럽게 승리할 교회라고 가르친다.

축복과 저주는 서로 마주하여 있다. 그러므로 남은 무리들은 재림교단이 축복과 저주 그 어느 곳에 위치하여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자신의 위치를 선택하여야 한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하며 진실하시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굳게 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영원한 미덕, 많은 세대의 기쁨으로 삼으실 것이다.”(사도행적, 600).

“예수님께서는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흠이 없는 교회를 하늘 아버지께 바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증언보감 1권, 56).

“자기 영광스런 교회를 세우사 앞에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7).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