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2 : 십사만 사천명은 죽음을 맛보지 않는 자들로 구성될 것이 아닌가?


답변 : 십사만 사천인은 죽음을 맛보지 않는 자들로 구성될 것이라는 내용의 말씀은
성경과 예언의 신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신실하게 살다가 죽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인에 포함될 것이라는 내용의 말씀과 또 그렇게 포함되어야 할 이유들은
성경과 예언의신의 말씀으로 많은 증거를 보았기에 지금은 왜 십사만 사천인은
죽음을 보지 않은 자들이라고 하는 견해가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두 가지 요인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첫번째 요인 : 아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되었다.

“그 노래는 십사만 사천 명 외에 아무도 부를 수 없는 노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체험의 노래,
곧 다른 어떤 사람도 체험하지 못한 경험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서 땅으로부터 끌어 올림을 받은 사람들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648.

“… 그런데 144,000인은 살아있는 성도로서 그리스도의 재림시애 변화될 자들이다.” -다니엘서 연구 629 (우라이야 스미스 저).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두려운 광경들 가운데서, 이곳 지구상으로부터 하늘 창고에 드릴만큼 여물었고,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변화 승천하고 탁월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144,000인은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처음 익은 열매라고 부르는데는 아무런 모순도 없을 것이다.” -다니엘서 연구 631 (우라이야 스미스 저).

십사만 사천인들은 “살아있는 자들 가운데서 땅으로부터 끌어올림을 받은 사람들이다.(대쟁투648)”라는 말씀과
그리고 우라이아 스미스의 다니엘서 연구 629, 631페이지의 말씀을 오해한데서 비롯되었다.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변화 승천하고”라는 말씀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의 전후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 말씀의 배경은 이렇다.

“나는 한 문서가 여러 장 복사되어 세상 각처로 전달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문서의 내용은 성도들이 만일 그들의 특수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안식일 대신 주일 중 첫째 날을 지키지 않는다면 특정한 기간 이후에 그들을 죽여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의 기간에도 성도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들을 위하여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의지하는 가운데 태연자약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그 법령이 시행되기도 전에 악인들이
성도들을 학살하기 위하여 밀어닥쳤다. 그러나 천사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들을 위하여 싸웠다.

사단은 지존자의 성도들을 실망시키려 했으나 예수께서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보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보는 가운데 그의 율법을 지킨 자들과 언약을 맺으심으로 존경을 받으실 것이며
예수께서는 자기를 오랫동안 기다리던 신실한 자들이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됨으로써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초기문집, 282-283.

“엘리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지상에 살아 있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성도들을 예표하였다.” -선지자와 왕, 227.

여기에서 “자기를 오랫동안 기다리던 신실한 자들이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됨으로써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라는
말씀을 144,000인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은 자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요 야곱의 환란 때에 있을 위기일발의 위급한 상황을 묘사 한 말씀이다.

“성도들이 도시와 마을을 떠날 때 그들을 죽이려는 악한 자들이 추격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려고 치켜든 칼이 부러져 지푸라기처럼 힘없이 떨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천사들이 성도들을 보호할 것이다.
그들이 밤낮으로 구원을 위하여 부르짖을 것이며 그들의 간구가 주님 앞에 상달될 것이다.”(초기, 284)

야곱의 환란 때에 모든 성도들을 죽이라는 사형 선고가 내린 상황 아래에서
폭도들은 법령이 시행되기도 전에 성도들을 학살하려고 할 것이나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사들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 위기일발의 극적인 상황을 묘사하신 말씀이다.

두번째 요인 : 시기를 정하는 자들의 영향을 받음

1894년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한 여인의 거짓 계시를 믿는 광신자들에 의하여
그러한 가르침이 공표되었다. 그들이 믿는 바, 144,000의 견해 가운데는
144,000인들은 죽은 자들은 포함되지 않으며 주님의 재림 시에
살아있는 자들로만 구성된다는 견해를 전하였고 당시 사람들에게 크게 공감을 얻게 되었다.

특히 이 거짓 계시자는 화잇 부인도 자신의 계시에 동의했다는 말까지 유포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인상을 심어 주었다.(나중에는 화잇 부인이 그의 계시를 동의 했다는 말은
거짓이었음이 밝혀짐) 그러므로 화잇 부인은 이 거짓 계시자의 전모를 이렇게 기록하셨다:

“내가 겪어야 했던 가장 어려웠던 일은 주님을 따르기 원했던 자로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을 다루는 일이었다.
한동안 그는 자기가 새로운 빛을 받고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매우 중병에 걸려 있었으며 불원간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 나는 그가 행하고 있는 일에 관하여 내가 말할 필요가 없게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그의 증거하는 견해들을 들은 자들은 매우 열중하였으며 어떤 이들은 그가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하나의 도표를 만들었으며 내가 기억하기로는 1894년의 어떤 날에 주님께서 오실 것을
성경을 가지고 추리하였다.

그의 논법 중 대부분이 결함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말을 따르던 자들은 그의 병실에서 들려오는 강력한 권고들을 귀담아 들었다.
그는 가장 놀라운 광경들을 보았다. 그러나 과연 그가 받은 영감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고통을 완화시켜주기 위한 모르핀 진통제의 영향 때문이었다.

내가 호주로 오기 직전에 미쉬간 주의 랜싱 시(市)에서 개최된 장막 집회에서 이 새로운 빛에 관하여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신자들에게 저들이 들은 말들이 영감으로 된 진리가 아니었음을 말해 주었다.
진리의 외관을 보여준 놀라운 빛은 성경 말씀을 오용한 결과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주님의 사업이 1894년에 끝을 맺을 것이 아니었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였는데,
“이것은 진리가 아니며 다만 낯설은 길로 인도할 뿐 이러한 증거로 말미암아 어떤 자들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며
그 결과로 믿음을 저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가려뽑은 기별 2권, 113.

그러므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는 144,000인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과 예언의 신에서 가르치는 진리가 아니다.
그리고 시기를 정하는 그들에 의하여 전하여졌던 이와 같은 잘못된 144,000인의 새로운 빛은 오류임이
동시대의 재림교회의 목사였던 라포보로우 목사에 의하여 증거 되었다. (J. N. 라포보로우 목사의 견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