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1 - 성경이 스스로 말씀하고 있음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4).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1, 3).

144,000명이 실제적인 숫자라는 것을 인간들이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말씀자체가 완벽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위의 성경 말씀에서 십사만 사천인을 상징으로 해석해야 할 어떤 필요와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성경은 더 이상 계시의 말씀에 다른 해석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이다.
아래의 말씀 중에 분명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는지 찾아보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4).

“…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1. 3).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 19).

연구2 - 말씀 스스로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음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4).
“내가 보니 보라 …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계 14:1).

가장 확실한 증거는 듣고 보는 것이며 확인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요한에게 살아 계신 인을 받을 사람의 수효가
십사만 사천인이 될 것이라고 들려주셨고(계7:4) 또한 보여주셨다.(계14:1) 그렇다면 믿을 만 하지 않는가?

요한이 듣고 본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확인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계 7:4-9).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144,000명(12,000×12=144,000)이 확실하다.
더 이상 무슨 증거를 요구하겠는가? 그래도 불확실하다면 선지자의 글을 보자:

“유리 바닷가에는 144,000명이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서 있었다.” -초기, 16.

이 말씀을 보면 144,000명이 유리바닷가에 정방형의 모습으로 정렬해있는 모습이다.
정방형으로 정렬을 하기 위해서는 144,000명에서 한 명이라도 많거나 적은 수효라면
정방형의 정렬을 이룰 수가 없다는 사실은 운동장에서 정렬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여 주셨고 듣게 하여 주셨고 두 번이나 같지 않는 방법으로 확인하여 증명 해 주셨다.
그런데도 144,000무리는 상징이라고 하겠는가?

연구3 - 성경은 더 이상의 논쟁을 거부함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3).

성경은 ‘새 노래를 부를 사람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없더라’고 말한다.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이라는 말은 한 명도 많거나 적지 않는 또 그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이유로도 성경은 이 문제만큼은 논쟁하는 것을 거부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 말씀에 의 의를 제기하지 말라.

연구4 - 실제적 수효가 되어야함

이번에는 144,000명이 실제의 수효가 되어야 하는 타당성을 좀 다른 방법으로 증명해 보자.
성경에는 숫자가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뜻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3 - 삼위 하나님.
7 - 완전수, 하나님의 완전하심.
6 - 불완전.
666 - 짐승의 표.
12 - 교회를 상징하는 수(12사도 12지파, 12의 배수).

144,000명을 상징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이유 중에 하나는 계시록 7장에 나오는 12지파는
실제적인 지파가 아니요, 상징이기 때문에 144,000명도 상징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같은 사건을 다루는 일에 어떤 것은 상징으로 어떤 것은 실제적인 것으로 다룬다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논리이다. 지극히 일반적인 해석이며 논리이다.

성경의 말씀은 영적인 것이기에 인간적인 논리가 아니라 성경적인 논리로, 영적으로 해석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이스라엘 12지파는 실제지파요 계시록7장에 나오는 12지파와 144,000명은
상징적인 지파 일뿐 실제가 아니다. 라고 모두는 생각한다. 그러나 재림신자들은 개념을 바꾸어서 생각해야 한다.

이스라엘 12지파가 비유요 상징이며 오늘날 재림성도들과 144,000명은 실제 적인 지파라고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야고보서 1장 1절을 보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 곧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구약은 예언이요 비유이며 신약은 성취요 실체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어린양은 상징이요 비유이며
신약의 예수님은 양의 실체요 비유의 주인공이시다. 그러므로 구약의 12지파가 상징이요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백성인 재림성도들이 실체적인 열두 지파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날 영적 12지파에서 구속의 열매들로 계수된 144,000명을 상징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는가?
잘못된 해석이다. 실체는 글자 그대로 실체요 성취이기에 가감하여 설명해서는 안 된다.

계시록 21장을 연구해보면 구속의 열매들인 144,000명은 하늘 새 예루살렘 도성의 설계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되며 144,000명은 새 예루살렘 교회와 상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늘 새 예루살렘 도성은 일반적으로 교회를 상징하는 숫자인 12라는 숫자로 설계되었다.
새 예루살렘 도성과 144,000명을 비교해 보자(계 21장 참조).

12지파(12사도) - 열두 진주문, 열두 기초석
지파별 12,000명 - 12,000스타디온
144,000인 - 144규빗의 성곽 (천사의 척량임)
144,000인의 품성을 상징하는 12보석 - 실제적인 12보석으로 꾸밈.
144,000인의 품성의 기초인 믿음과 사랑(금) - 정금 거리.

모두가 보면 144,000명의 품성을 상징하는 보석과 정금으로 꾸며졌으며 그리고 열두지파가 기초가 되고 있으며
결국 12지파의 구속의 열매인 144,000명의 승리한 무리들을 영원토록 기념하도록 건축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건축된 새 예루살렘 교회에는 이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24장로가
새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가 될 것이며 지상에 있던 성소에서 레위 지파가 봉사하였던 것처럼
144,000명은 새 예루살렘 교회에서 봉사하는 레위 지파(집사)의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헤일 수 없는 허다한 무리는 새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되어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 앞에 모두가 모여서 경배하게 될 것이다. 아, 이 얼마나 감격스런 장면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섬기는 종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그 수효를 정하실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교회는 교회에서 봉사할 장로와 집사들의 수효를 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기억할 일은 어떤 필요를 위하여 사용된 숫자나 무엇을 상징하기 위하여 사용된 숫자는
결코 변경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숫자가 바뀌면 뜻이 달라지고,
상징하는바 실체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2제자 중 가롯 유다의 결격 사유 때문에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바사바와 맛디아를(행1:23) 제비뽑아 그 중 맛디아를 택하여 12명을 채운 사실과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상징하기 위해 7(일곱)이 아닌 6(육)을 사용한다면 어찌 올바른 상징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144,000명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속에서 그분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가운데 특별한 구속의 설계가
이 무리들의 수효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144,000명의 이름이 새 예루살렘성 기둥에 금 글씨로 새겨져 있다.

“‘이 성전은 일곱 개의 기둥이 떠 받치고 있었으며 일곱 개가 모두 매우 찬란한 진주가 박힌
투명한 금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거기서 본 놀라운 사물들을 다 묘사할 수 없다.
내가 하늘 가나안의 언어로 더욱 좋은 그 세상의 영광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묘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거기서 144,000명의 이름이 금 글씨로 석판들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초기, 19.

이 이름들이 상징으로 새겨졌을 뿐 실제적인 이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들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자 하지 말자. 그 이름은 상징적인 이름이 아니요 실제적인 이름들이요
실제적으로 구속함을 받을 존재자들의 이름이다.

연구5 - 예언의 신의 확증

“생사간에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마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셨다. 주님의 백성의 수효는 찼다.” -쟁투, 613-614.

“나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천사가 잉크 통(뿔로 만든)을 가지고 지구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자기의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고 성도들의 수가 차서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했다.
그러자 나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서 봉사하시던 예수께서 향로를 내던지시는 것을 보았다.” -초기, 279.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끝난 후 그 두려운 시간에 성도들은 중보자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상황은 결정되었고 모든 보석은 헤아려졌다.” -초기, 280.

이제 생각해보자. 144,000명이 실제의 수효가 아니요 헤일 수 없는 무리라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헤아리고 계셨으며 헤일 필요도 없는 허다한 무리들을 수가 차도록 기다리고 계셨는가?

주님께서 헤아리시고 수효를 세시며 그 수가 차도록 기다리신 것은
144,000무리들의 수효가 실제적인 수효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야곱의 환란동안 중보자 없이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하며 지킬 수 있음을 온 우주에 증거할 구속의 열매들이기에
그 수효가 차기를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신 것이다.

마침내 144,000명의 수효가 찰 때, 마지막으로 준비된 영혼이 인침을 받는 순간
천사는 지구로부터 돌아와 예수님에게 144,000명에게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하였다.

구속 사업은 이제 모두 끝이 난 것이다. 법궤 앞에서 향로를 들고 봉사하시던 예수님은 향로를 내던지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고 선언을 하신다.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인들을 위한 간구도 눈물도 흘릴 필요가 없다.
마지막 눈물은 흘려졌고 하늘 성소에는 죄인을 위한 중보자는 떠나시고 계시지 않는다.
죄인들에게 항상 호소하시던 성령도 세상에서 떠나시고 천사들도 더 이상 죄인들을 도울 일이 없어졌다.

144,000명의 수효는 찼고 구속의 열매는 모두 추수되었기 때문이다. 사단은 이것을 안다.
144,000명의 수효가 차는 날 자신의 운명은 끝이 나고 영원한 심판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

그러므로 이 진리가 나타나는 일은 사단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요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끊임없이 이 진리를 무효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왔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치는 기별로 탄생될 144,000인들이 상징적인 존재자들이라고
결론짓게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사단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재림교회 안에서는 여러가지 견해들이 난무하여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
분간할 수 없도록 되어 버렸다.

어떤 견해들은 일요일 교회들에서 주장하던 견해들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버젓이 재림교회 강단에서
전해지고 있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의 말씀은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

“그는 ‘내가 나가서 속이는 영이 되어 내가 할 수 있다면 이들을 속이고,
비평하고, 저주하고, 거짓 것을 만드는 이가 되게 하리라’고 말한다.
기만과 거짓 증거의 죄가 큰 빛, 큰 증거를 받았던 어떤 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져서
그 교회는 주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제거할 것이요, 지극히 비이성적인 주장과 거짓된 추측과
거짓 이론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사단은 그들의 미련함을 비웃는데,
이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단의 가증한 횃불에서 불을 붙인
거짓 예언의 횃불을 손에 들고 강단에 서게 될 것이다.” -목사, 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