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9 : 오늘날 개혁운동은 참된 개혁운동이 아니다.

답변 : 예언상 개혁운동에는 병자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계시록18장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무리들에게서는 그런 기적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증언 9권 126에 있는 “큰 개혁운동”에 관한 말씀을 읽고
예언상 참된 개혁운동에는 병자가 일어나고 기적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믿고 가르친다.

이와 같은 견해는 계시록18장천사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이다.
화잇 선지자의 말씀 중 ‘개혁운동’, 곧 계시록18장천사의 운동은 두 국면으로 나눌 수 있다.

다음의 말씀들을 유의해 보라.

1. 내적 개혁

“우리 대열 가운데 철저한 개혁이 있어야 한다. 백성들은 병자의 고침을 위하여 두드러진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기 전에 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의료봉사, 16.

“우리는 품성에 있는 결함들을 고치고 심령의 전에서 모든 불결한 것을 정결케 하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그것들이 고쳐지고 정결하게 될 때에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이른비가 내렸던 것처럼
늦은비가 우리에게 내릴 것이다.” -교회증언 5권, 214.

위의 말씀을 보면 “병자의 고침”, “늦은비”를 받기 전에
“보다 높은 수준”, “정결케 됨”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늦은비를 받기 전에 필연코 성취되어야 할 내적 개혁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곧 재조직, 사상, 이론, 습관의 변화가 있기 전에는 결코 늦은비를 받을 수 없을 것이며
이적과 기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 외적 개혁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일어나고 있는 큰 개혁운동의 대표적인 것들이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었으며 병자들은 고침을 받고 다른 이적들이 행하여 졌다.”-교회증언 9권, 126.

이 말씀은 개혁운동의 절정 곧 늦은비 때에 나타날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 계시록18장천사의 첫째 사명은
내적개혁을 통하여 높은 표준에 도달 하는 것이며 이것은 개혁사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큰 개혁운동 즉 외적개혁은 개혁사업의 완성이며 계시록 18장천사의 두 번째 사명인 것이다.

이 두 가지 국면을 모두 선지자는 개혁운동이라고 하셨다.
만약 개혁운동을 마지막 늦은비의 상황만을 지칭한다면, 매우 난처한 모순 가운데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개혁이란 사상, 이론, 개심, 습관의 변화를 뜻한다고 하셨는데
개혁운동을 이적과 기적을 동반하는 큰 개혁, 곧 늦은비의 상황에만 적용한다면
늦은비를 받은 후에 사상, 이론, 개심, 습관의 품성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씀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다음의 말씀은 모순이 된다.

“우리의 품성 중에 있는 결함을 고치고 심령의 전의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다. 그 때에야 오순절에 이른비가 내렸던 것처럼 늦은비가 우리에게 내릴 것이다.”-교회증언 5권, 214.

품성이 준비(개혁)된 자들에게 늦은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큰 개혁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내적 개혁인 품성의 변화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
늦은비는 우리의 백성의 품성을 고정시키며 환난을 위하여 마지막 덮개로 씌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운동은 시작이 있고 절정이 있는 것이다.
개혁사업의 목적은, 첫째로 우리의 품성 변화이며 두번째가 늦은비의 절정을 보게 하는것이다.

오늘날 본 교단이 전개하는 개혁운동은 늦은비를 받기 위한 내적개혁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적 개혁운동에는 어떤 외형적인 표적과 기사가 따르지 않으며
또 그와 같은 어떤 큰 시위운동을 보고자 하는 것은 잘못이다.
엘리야가 배워야 했던 것을 엘리야의 사업을 하고 있는 우리들도 배워야 할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가장 성공적으로 성취시키는 것은
언제나 최대의 시위운동을 하는 것만이 아님을 엘리야에게 가르치고자 하셨다. …
성령의 감화는 조용하고 분명하게 성품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킨다.
하나님의 성령의 세미한 소리가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졌다.”-선지자와 왕, 168-169.

화잇 선지자가 개혁운동에 관한 계시를 본 것은 시작과 끝을 모두 보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 국면만을 주장하여 적용한다면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초림을 구별하지 않았던 모순을 재연하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