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3 : 부흥과 개혁은 교회(SDA) 안에서 행해져야 되지 않는가?

답변 : 부흥과 개혁사업은 분명히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만일 교회 안에서는 불가능하며
또한 교회가 그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적인 실례들을 보자.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기 위해(부흥과 개혁)당신의 성전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나 유대 교회는 부흥과 개혁의 정결 사업을 용납지 않았다.

그분의 사업은 방해를 받으셨고,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의 사업은 반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열두 제자를 안수하시어 교회를 조직하셨다(사도행적, 93 참조).
분명히 교회 안에서 시작하셨으나, 교회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음으로 교회 밖에서 그 사업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

“만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면
그는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자기의 기별자가 되는 영예를 그들에게 주셨을 것이다. …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권고하시는 때를 알지 못했다.
유대 지도자들의 시기와 불신은 공공연한 증오심으로 무르익어 갔으며 백성들의 마음은 예수에게서 떠나갔다.
산헤드린은 그리스도의 기별을 거절하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고 열중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제사장들과, 성전과, 종교적 지도자들과,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에게서 떠나서
당신의 기별을 선포하시고 복음을 만국에 전파할 자들을 모으시기 위하여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로 향하셨다.
사람들의 빛과 생명이 그리스도의 시대의 교회 당국자들에 의하여 배척당하였던 것과 같이
그 후의 각 세대에 있어서도 그래 왔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에서 물러나신 것과 같은 역사가 거듭거듭 반복되었다.
개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들은 기성 교회에서 분리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종교적 지도자들이 그 빛을 용인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그 빛을 전하던 자들은
진리를 사모하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도 개혁자들을 따른다고 공언하는 이들 중에 개혁자들의 정신에 자극되어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나님의 음성을 귀담아 듣고 어떤 모양으로 진리가 제시되던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가 드물다.

개혁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들은 흔히 하나님의 말씀의 명료한 가르침을 선포하기 위하여
그들이 사랑하는 교회를 불가불 떠나가지 않을 수 없다.”-시대의 소망, 231-232.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운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떤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천주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천주교회가 그것을 용납했는가? 아니다.
그 결과로 개혁 사업은 교회 안에서 시작하였으나 성취는 교회 밖에서 이루어졌다.

또 같은 역사를 보자. 첫째 천사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외쳤던 월리암 밀러는 어떠했는가?

그도 역시 자신의 교회를 새로이 조직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사업은 교회 안에서 반대와 배척을 당하였다.

1844년 그 해 여름 5만 명이 교회로부터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결과적인 분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도 분명 교회 안에서 그 사업을 시작하였고 그 사업은 교회를 떠나 밖에서 성취되었다. 다음의 말씀을 보자.

“밀러는 말하였다. ‘나는 기성 교파들로부터 분리된 별개의 교파를 만들거나
어떤 교파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교파에게 손해를 끼치려는 욕망이나 생각은 전혀 없었다. …

그러나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재림교리를 배척하기로 결의하고
그 문제에 관하여 일체의 토의를 하지 못하도록 한 후부터 그들은 강단에서 그 문제를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인들이 재림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하는 일까지도 금하고, 심지어 교회의 기도회 같은 데서
그들의 소망을 말하는 일까지도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그들이 큰 시련과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교회를 사랑하였고, 거기서 떠나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막으려는 자들을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구성하는
자들이라고 볼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본래 속해있던 교회에서 떠나는 일을 정당하다고 생각하였다.
1844년 여름에 5만 명의 교인들이 여러 교회에서 나왔다.”-각 시대의 대쟁투, 375-376.

그와 같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개혁사업은 분명히 교회 안에서 시작되었다.
곧 1888년의 기별로 개혁과 부흥의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기별은 하나님의 신임장이 들어있는 기별이요, 성결의 열매를 요구하는 개혁기별이었다.
교회가 미지근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의 기회였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수준을 높이’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별은 그 능력과 가치에 있어서 인정받지 못했으며 거절당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이 기별을 통해 성취시키고자하시는 목적이 교회의 지도자들로부터 거절당하므로 방해를 받았다.

“나는 내가 본 흔들림의 의미를 물었는데 그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참된 증인의 권면으로 인한 결과임을 보여 주었다. 이 권면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속에 작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준을 높이게 하고 진리에 매달리도록 이끌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바른 증거를 저버릴 것이며 그것을 대항하여 일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흔들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는 참된 증인의 증거가 절반도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교회의 운명이 달려 있는 이 엄숙한 증거가 전적으로 무시당하거나 가볍게 평가되고 있다.
이 증거는 깊은 회개를 불러일으킬 것인데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든 자들은
순종하여 자신을 순결하게 할 것이다.”-초기문집, 270.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위기를 통하여 1888년의 기별을 옹호하는 극소수의 무리들은
그 기별로 말미암아 양심이 순결하여졌으며 그들의 믿음은 율법을 순종함으로 나타낸 그리스도의 생애를 따랐다.

전쟁과 군대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일이 불가능하고 또한 오늘날의 전쟁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반대되므로, 1914년 세계 1차대전에서 그들은 생명을 버리기까지 율법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1888년의 기별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치 못하고 거절했던 교회는 어떠했는가?

교회는 율법을 높이는 일에 실패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생명으로 율법을 고수했던 이들을 교회로부터 출교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개혁사업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밖에서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며 진실이다.
틀림없이 개혁사업은 충실한 무리들에 의하여 교회 안에서 시작하였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세계선교회 선구자들은 자신들이 교회로부터 분리하거나
분리할 것에 대하여는 전혀 생각지 않았었다.

그러나 교회는 이들을 용납해 주지 않았고 출교시킴으로 말미암아 슬프게도 분리가 마지막 교회에서 일어난 것이다. 개혁운동은 안에서 시작된 것이나 성취는 역시 교회 밖에서 성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