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하여 알았더면 좋을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눅 19:42-44).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권고를 받았으나 깨닫지 못하였고 결국은 멸망당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과 꼭 같이 현대 이스라엘에게도 다음과 같이 권고하셨다.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을 기다린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조류를 따라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갈채 받기를 훨씬 더 열렬히 구하고 있으며
저희들이 갓 떠나온 이름뿐인 교회들처럼 냉냉하고 형식적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의 말씀은 저들의 현재의 형편을 완전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저들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고 그저 미지근하다. 저들이 신실하고 참된 증인의 권고를 듣고
열심을 내어 회개하지 않으면…저들을 토하여 내치실 것이다” 초기문집 112.

“하나님께서 이 때를 위한 신성하고 엄숙한 시험하는 진리를 위탁한 백성들이 그들의 진지에서 잠자고 있다.
그들은 행동으로 말한다. 우리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부자다. 재물도 점점 늘어간다.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 이런 때에 참된 증인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신다. 그대들은 불행하다.
초라하기 짝이 없고 가난하다. 눈도 멀었다. 그리고 벌거벗었다. 이런 그대의 모습을 그대들은 모르고 있다.
어떤 말씀으로 현대 교회 상태를 이보다 더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교회증언 5권, 101.

이와 같은 말씀들을 볼 때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특권에 비하여 의무에 불충실하면서
참된 증인의 권고를 무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때 이후로 주의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였다.
곧 교회의 촛대를 옮기리라는 경고였다. 1879년에 다음과 같이 경고의 말씀을 하셨다.

“만약 그들이 잠에서 충분히 깨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빛과 축복을 거두실 것이다.
그분은 그의 천사로 촛대를 제자리에서 옮기게 하실 것이다” 교회증언 4권, 286.

1886년에는 또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뻔 하였거니와' 하셨다.
이것은 오늘날 역시 하나님의 교회에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그분의 율법의 보관자로 삼으셨다. 그러나 신뢰와 은총이 이와 같은 날들은 점점 그 마지막을 신속히 앞당기고 있다. …
사단의 덫이 그대에게 덮칠지도 모른다. 촛대가 옮겨져서 그대는 어두움 속에 남아있게 될지 모른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6년 11월 6일.

그 이듬해 1887년 똑 같은 경고가 주어졌다.

“우리가 우리 사업을 성취하기를 중단하는 때에 촛대가 빛을 반사하기를 거절할 때…
그럴 때는 그 촛대는 옮겨질 것이다.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또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빛을 비출 것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7년 6월 7일.

드디어 1888년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인이 교회를 찾아오셨다. 이 참된 증인은 교회를 향하여 비통한 말씀을 하셨다.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암닭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고 교회를 보시며 호소하셨다.
그러나 교회는 그의 호소를 깨닫지 못하였다. 주의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저들은 이 사단적인 일을 미네아폴리스에서 시작하였다. 그 후에 저들은 그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증거하는 성령의 증거를 보고 깨달았을 때 저들은 그 기별을 더욱 미워하였다” 목사들에게 보내는 증언, 79, 80.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개혁하기 위해 결정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그대들의 등불은 깜박거리다가 더욱 어둡게 되어 마침내 그것들은 꺼져 버릴 것이다. …
활용되지 않은 채로 지나가 버린다면 이런 경고가 주어질 것인데 즉,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교회증언 5권, 612.

이 말씀들은 교회의 촛대가 옮겨질 가능성이 확실함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받을 축복과 특권이 조건적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단의 축복과 특권도 역시 조건적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선지자를 통하여 교회의 촛대를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하여 경고하고 계신다.
'촛대를 옮기리라'는 경고의 말씀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으나 한 두 곳을 더 찾아보도록 하자.

“교인들이 스스로를 열심 있고 생기 있는 활동으로 주님 앞에 겸비할 때에 주님은 그들을 받으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회개하라'고 선언하신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경고가 물리침을 받을 것인가?
교회는 열매없는 나무와 같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0년 12월 23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는가?” (리뷰 앤드 헤랄드 1893년 4월 4일)

'촛대를 옮기리라'는 말씀은 교회와 교회의 사자들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사자들은 교회를 대표하므로 사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역시 교회를 향하여 경고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축복과 특권은 항상 조건적이다. 의무를 등한히 하였다면 특권은 없어지는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의 특권은 참으로 크고 놀라웠다.
그러나 의무와 순종의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그 특권은 없어지고 말았다.
이와 같은 역사는 오늘날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단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 재림교회에 대한 약속은 확실하다.

그러나 특권은 옮겨질 수 있는 것이다. 조건이 이행되지 않을 때에 그렇게 된다.
'촛대를 옮기리라'는 경고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교회가 깨달아야 했을 것이다.
이제 1895년에 와서는 다음과 같이 결정적으로 말씀 하셨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않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성령을 교회에서 거두셔서 그것을 감사히 여길 다른 이들에게 주실 것이다. …
그리하여 하나님과 일치하지 아니하여 외형적이 되고 있으며 빛은 흐려지고 꺼져서 촛대는 옮겨진 바 되었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5년 7월 16일.

주의 종은 1895년에 이르러 드디어 '촛대는 옮겨졌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즉시 여러 가지 의문점을 제시할 것이다. 이 말씀은 1895년에 주의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인데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단으로부터 촛대가 옮겨졌다면 그 촛대는 어디로 옮겨졌다는 말인가?

화잇 선지자는 1895년 이후에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에 여전히 소속되어 있었다.
촛대가 없는 그 교회에 왜 그가 소속되어 있었는가? 하는 의문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에는 이와 유사한 경우가 많이 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기별을 거절하고 반역하므로 하나님께로부터 광야에서 죽으리라는 선고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그들의 특권은 상실했지만 광야에서 여행하는 사십년 동안
모세도 그들과 함께 하였고 하나님께서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그러나 이와 같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이
반역한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특권이 회복되었다거나 촛대가 옮겨지지 않는다는 의미는 될 수 없다.
그들의 특권은 분명히 상실되었고 촛대도 그들의 후손들에게로 옮겨져 있었다.
다만 외형적으로는 별다른 변화를 볼 수 없었으나 분명히 그들에게 주었던 특권은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스라엘백성이 광야 사십년을 방황하는 동안 모세가 그들과 함께 하였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그들을 인도하였던 것처럼 1888년 기별을 거절한 재림교회도
그들에게 주어진 실제적인 특권과 촛대는 분명히 다른 무리(후손)에게 있으나
외형적으로는 다른 어떤 변화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잇 선지자도 그들에게 소속되어 있었다.

새로운 남은 무리들이 나타나서 재조직될 때까지는 교회는 특권은 지속적으로 행사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미 선고된 교회의 특권이 회복되었거나 촛대가 옮겨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의 선지자가 1895년에 이르러 '촛대는 옮겨진바 되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여
의문 속에 방황할 필요는 없다. 이 문제를 또 다른 역사의 거울을 통하여 연구해 보자.

사무엘상 15장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는 명령을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우양과 젖 먹는 유아들까지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명령을 하셨다.
사울은 이 명령을 따라 아말렉을 쳤다. 그 결과 사울은 놀라운 승리를 얻었으나
사울은 그 승리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범죄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우양들을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으나 사울은 그 명을 거역하고
살찐 우양들을 몰고 돌아왔던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들처럼 '1888년의 사건이 그렇게 큰 범죄 행위인가?'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은 사울왕의 범죄에 대하여 우 양떼를 살려온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인지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는지 하나님의 처사에 대하여 이해하기가 싶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항상 말씀을 거절하고 깨닫지 못하는 영혼들이 느끼는 동일한 생각이며 질문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책망 받은 사울은 변명하기를 하나님께 제사 지내기 위해 남겨왔다고 말하였다. 그 때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무엘이 물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23).

이와 같이 사울이 하나님을 거역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시며
사무엘에게 명하여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도록 하셨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렸노라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라”(삼상 15:35; 16:1)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6:13)

이와 같은 성경 역사를 보면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버리시고
그를 대신하여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택하셨다.

다윗은 분명히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이스라엘 왕으로 택함을 받았다.
반면 사울은 범죄 함으로 이미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특권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다윗은 양을 돌보는 목자에 불과하였고 여전히 사울은 왕으로서의 백성을 다스렸다.

사울이 여전히 보좌에 앉아 있었다고 해서 그에게 촛대(왕권)가 머물러 있다거나 하나님의 선고가 취소된 것은
아니며 선지자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함께하였다고 하여 촛대가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촛대는 다윗에게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이와 같은 상태는 계속되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총이 자신에게서 떠나 다윗과 함께 함을 알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촛대가 옮겨져 버린 사울왕은 점점 죄에 깊이 빠져 결국은 전쟁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되었고
다윗은 그 때에야 비로소 왕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재림교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1888년 기별의 거절과 그 이후 계속적인 호소에도
거절로 일관할 때 비로소 1895년에 교회의 촛대는 옮겨졌다고 선고하신 것이다.
물론 왕권이 떠나버린 사울이 왕으로서 건재했던 것처럼 역시 교회의 촛대는 옮겨진바 되었으나
교회는 여전히 건재하였고 화잇 선지자도 교회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사울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다윗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1888년 기별을 거절한 교회는 점점 힘을 잃고 마침내 세계 제1차 대전에서 악의 세력에 의하여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를 고수하는 일에 실패하였으며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총 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소수(2%)의 충실한 남은 무리가 있었고
이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의 촛대는 보존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이들을 교회에서 출교시키는 슬픈 역사를 기록하고 말았다.
마치 유대교회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를 믿고 추종하는 제자들과 백성들을 출교하였던 같은 역사를 재연한 것이다.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요 9:22)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요 16:2-4)

그리하여 마지막 라오디게아시대의 남은 무리가 탄생하게 되었고
비로소 새롭고 완전한 재조직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역사와 기원을 참조하라)
사울 왕이 전쟁을 통하여 왕권을 실제적으로 상실하고 잃어버린 것처럼 재림교회도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의 총칼 앞에 굴복하므로 교회로서의 사명과 특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세계1차대전 당시 교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쫓겨난 수천 명의 남은 무리들에 의하여
진리의 촛대는 오늘날도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