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유대민족은 하나의 거대한 교회였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유대교회 이외에는 이 지상에 교회가 없었다.

예수살렘 성전은 유대교회의 총 본부였으며 하나님의 임재가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성전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는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너와 및 그 가운에 있는 자식들을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라 하시니라" (눅 19:42-44).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는 조화되지 않는 말씀을 하셨다. 이시야4장2절에 선지자는 말씀하시기를
'시온에 남아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대인의 믿음이었고
예루살렘에 끝까지 머물러 있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그들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실제적 역사는 어떠하였는가? 주후 70년경 로마의 명장 타이터스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불태워졌고 돌 하나도 돌 위에 첩놓이지 않고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때 예루살렘 성전이야말로 이 지상에 유일한 도피성이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라 믿었던 유대민족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최후의 안전한 곳이라고 믿고 있던 성전 안에서 그 성과 함께 멸망당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비참한 결과를 미리보시고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시면서 "너희가 평화에 대하여 알았더면 좋았으련만!"이라고 하신 것이다.
평화의 왕을 거절하면서도 평화를 원하는 백성, 순종하기를 거절하면서도 특권과 약속만을 믿는 어리석은 백성들, 그들은 진정 평화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율례를 사랑하며 순종하였더라면
오늘날도 평화의 비둘기는 예루살렘에서 온 세계를 향하여 날아갈 것이며 어떤 강력한 군대가
그 성을 침략할 지라도 그곳은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도피성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은 성취되었을 것이요, 그곳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세상의 유일한 하나님의 택하신 교회로서 지금까지 특권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망하였다. 이와 같은 예루살렘의 멸망은
말세를 살아가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의 거울이기도하다.

“사단은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경험 가운데 유대 민족의 역사가 반복되도록 활동하고 있다.”
-2기별, 111.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하여 다른 많은 선지자들이 유대민족과 예루살렘에 대하여 축복하신
예언의 말씀들은 무엇인가?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로 영원히 주의 백성을 삼으셨사오니” (대상 17:22)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 (대하 13:5)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욜 3:20)

“다윗의 위에 앉은 왕들과 방백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이며”(렘 17:25)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대하 7:16)

이와 같은 말씀들은 얼마나 믿을만하고 확실한 약속들인가?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말씀들을 주장하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은 다음과 같은 조건적인 상황아래 성취될 예언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면…”
(신 26:16, 28:1).

이스라엘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선민사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는 결과로 성취 될 약속이었다.
그러나 조건과 의무는 이행치 않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상황에 관하여 기록된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며" (왕상 9:6, 7).

계속되는 반역과 배도의 역사 속에서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가 이르러온 것이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리스도를 거절하므로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와 축복들은
최종적으로 거두어진바 되었다.

유대교회의 특권과 선민의 자격은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그의 제자를 핍박하며 출교하기로
산헤드린 회의에서 결의함과 동시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을 자행하므로 영원히 끝나 버렸다.

“한 이레 즉 7년은 서기 34년에 끝났는데 그 때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돌로 침으로
복음에 대한 그들의 거부를 최종적으로 인쳤으며”(소망, 233)

“그 때에 유대의 산헤드린이 취한 태도, 곧 스데반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함으로
복음을 거절한 것은 국가로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 되었다. ”(쟁투, 328)

그러면 옛날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 이스라엘백성 중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유의하고 있었던 남은 무리들은 어떻게 하였는가?
그들은 운명지어진 예루살렘성을 떠나 요단강 건너편 베뢰아 땅에 있는 작은 벨라성으로 피신하였다.

미처 피신하지 못하였던 남은 무리들과 예수님의 말씀에 반신반의 하던 무리들은 예루살렘성에
가증한 로마의 깃발이 세워지는 것을 보았을 때 지체없이 도망하므로 구원을 얻었다. 이것이 역사의 거울이다.

“그리스도인은 예루살렘의 멸망 때 한 사람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미리 경고하셨으므로 그분의 말씀을 믿은 모든 사람은 그 약속의 징조에 유의했다. …
그 성이 포위된 당시에 유대인들은 장막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으므로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방해받지 않고 도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안전한 곳, 즉 요단강 건너편 베뢰아 땅에 있는 벨라성으로 피난하였다.”(쟁투,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