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하여 알았더면 좋을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눅 19:42-4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감람산 꼭대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평화에 관한 일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특권과 축복만을 생각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장래를 예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반역과 범죄의 역사 가운데서 마지막 하나님의 자비로 보내신 약속의 아들을 거절하면서도
선민사상에 굳게 잠겨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예언과 하나님의 택한 민족으로서의 촛대가 옮겨짐을 느끼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희망인 메사아를 거절하므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은 이제 예루살렘에 부어지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일찍이 그들에게 약속하셨던 축복의 말씀만을 기억하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씀으로 일축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자손 됨을 너무도 확신한 나머지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과 같은 품성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특권과 정통성은 굳게 믿고 고수하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마 3:8-10)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요 8:39)이라고 말씀하셨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롬 2:28, 29).

성경상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품성을 가진 백성이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일컬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의 가치는 이름이 아니라 열매로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직계 혈통으로서 아브라함의 자손됨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 됨을 부인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마귀)의 행사를 하는도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요 8:41,42).

“아브라함의 자손 됨은 이름이나 혈통으로서가 아니요 성품의 같음으로서만 된다.
그러므로 사도직의 계승은 교권의 전달에 의존되는 것이 아니요 영적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도들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생애, 사도들이 가르친 진리를 믿고 가르치는 이것이 사도직을 계승한 것이다”
(시대의 소망 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