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있었던 한 슬픈 역사를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곧 가데스 반역의 사건이다.
이와 같은 슬픈 이스라엘의 역사의 결말이 어떠하였는지는 현대 이스라엘백성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이스라엘백성들의 가데스반역의 역사와 현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1888년 계시록18장 천사의 기별을 거절한 역사와 그 사건을 주목하면서 증언들을 모아보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해야 할 특별한 기별을 위탁하신 사람들에 대해 증오심을 키우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사단적 사업을 미네아폴리스에서 시작했다.
후에 그들은 그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르러 왔다는 것을 증거 하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해 보고 느꼈을 때,
그것을 더욱 미워하였는데, 이는 그것이 그들을 거스리는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을 겸비하게 가져 회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옳은 것을 옹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였고, 유대인들처럼 미움과 질투, 그리고 악한 추측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의 원수를 향해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이 책임 있는 지위들을 차지해 왔으며,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모습을 좇아 사업을 꼴 지어 왔다 ….”(목사, 79-80)

“나는 죤스와 와그너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처지에 있음을 보았다. 이스라엘자손들이 기록된 말씀대로
그 정탐꾼들에게 돌질하였던 것처럼 그대들은 비꼼과 조롱의 돌로 이들 형제들에게 돌을 던졌다.
나는 그대들이 그대들은 알고 있다는 진리를 계획적으로 거절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그대들의 존엄성에 너무 굴욕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그대들의 장막속에서 이 두 형제들을 조롱하며
모든 방법으로 놀려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또한 만일 그대들이 이 기별을 받아들였더라면
2년 후에는 하늘 왕국에 있었을 것임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광야로 돌아가 40년 동안 거해야만 한다.”
대총회 회보 1892년 5월9일(호주 멜본) (*확인 할 수 없는 원고. 편집자 주)

“선입 관념을 굽히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마음은 주로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E. J. 와그너]와[ A. T. 죤스] 두 형제를 통하여 주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반대한 정신에 다분히 그 근거를 두고 있다. ”(1기별, 234)

“나는 목요일 아침 집회 때에 참석하여(캔사스 주 오타와에서) 미네아폴리스 총회에 관련하여 말하게 되었다. …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줄 수 있는 때에 적합한 하늘 양식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주어지기를 원했던 그런 방법과 모습으로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거절하였다.

존스와 와그너 장로들은 그 백성들에게 귀중한 빛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신입견과 불신과 질투와 악한 추측이 그들의 마음의 문을 가로막아
이런 양식 중 아무것도 그들 마음에 들어 올 수 없었다. …

이와 같이 그것은 예수의 배반당하심과 수난과 십자가에 죽으심 가운데 있었던 이 모든 것은
내 앞에 조목조목 지나갔으며, 사단의 영은 지배권을 가지고 그 사람들의 마음을 능력으로 움직였으며,
그들은 의심과 비난과 분노와 증오심에 대해 마음을 열었었다.
이 모든 것들은 미네아폴리스 집회 시에 지배하는 힘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우리 형제들이 저희 가정으로 꾸민 집으로 안내되었으며 거기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많은 감정상 흥분과 얼마간 고통스러움도 맛보았다. 그들은 예리하고도 위트 있는 비평들도 하고 있었다.
주님이 보내신 종들은 풍자적으로 묘사도 되고, 조롱을 받고 비웃는 가운데 처하였다.
단평이 내게 대하여 주어졌고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셨던 사업은 아첨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화잇이란 이름이 자유로 저희 입술에서 오르내렸다. 그는 조롱과 비난을 받았고
또한 존스와 와그너 장로들의 이름들도 마찬가지로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편지 14, 1889년)

“내가 듣고 더욱 놀랐던 음성들이 이 반역에 가담되었다. …
그래서 (화잇자매)를 비난하는 일에 더욱 심하고 담대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더욱 자유롭고도 잔인한 방법으로 하였으며,
어떤 사람도 내게 오는 자가 하나도 없었으며 이들의 보고들과 추측들이 사실인지 묻지도 않았다. …

들은 후에 내가 할 일은 내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나는 결코 친구라고 하는 자들에게 우리의 어떤 의지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았다.
이때에 사단의 영이 그들 마음에 들어올 문호를 찾을 것이다. 나는 장래의 위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나는 잠시 동안 나를 이기게 한 말씀, 곧 ‘장한 형제가 형제를 … 죽는데 내어주며’란 말씀에
결코 어떤 느낌을 개입시킬 수 없는 것을 생각하였다.”(편지 14, 1889년)

“라오디게아인들에게 보내신 기별에 주의하기 위하여 대총회에 모이게 될 우리 형제들에게 나는 탄원하고 싶다.
그들의 소경 상태가 얼마나 심한지! 이 주제(1888기별)는 거듭거듭 그대들의 주목을 이끌어 왔다.
그렇지만 그대들의 영적 상태에 대한 자신들의 불만은 개혁을 단행하기에는
넉넉할 만큼 깊지도 고통스럽지도 아니하였다. …

자기기만의 죄는 우리 교회들 위에 편안하다. 수많은 사람의 신앙 생애는 거짓에 기초하고 있다. …
나는 존스나 혹은 와그너 장로의 한마디 말이나 행동이 얼마나 쉽게 비난을 받아왔는지 보았을 때,
마음이 아주 슬프다. … 그대들은 두 형제에게 의심을 품고 보는 일을 중지하라. …
하나님을 위하거나 동료 형제들을 위한 사랑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목회를 하고 있다. 그들은 잠자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잠자고 있는 반면, 사단은 자기의 가라지를 뿌리고 있다“ (편지 19, 1892년).

가데스 반역의 역사를 1888년 역사에서 만나게 된다.
가데스 반역의 역사와 1888년 역사는 동일한 형태와 결과를 가지고 왔다.

가데스 반역의 사건은 한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을 불신하고 보내신 기별자들과 기별을 거절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정탐꾼들이 가져온 하늘의 기별을 두 기별자들과 함께
그 기별을 거절하고 말았다. 1888년의 역사도 동일한 역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와그너와 죤스 두 기별 자들을 통하여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당신의 백성에게 보내셨으나 영적 이스라엘백성들도 기별자들을 거절함으로 기별을 거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