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10월 22일을 기다리는 진실된 백성들의 생애는 세상의 사물을 완전히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경험하였다.

젊은이들은 둘씩 둘씩 손을 잡고 숲 속이나 한적한 곳을 찾았고,
잠시 후 그들이 눈물 젖은 눈으로 새 친구가 되어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는 나쁜 감정을 그리스도의 재림의 아침까지 갖고 가기를 원치 않았던 것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자녀들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죽는 일도, 젊은이들이 폐결핵으로 쓰러지는
안타까운 일도, 이별도, 슬픔도, 고통도, 이제 3개월 후가 되면 모두가 끝이 날 것이었다.
무서운 혹한 추위의 겨울이 오기 전에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날 것이었다.

1844년 10월 14일 재림기별을 전하던 찰스 핏취(초기문집 18; 화잇 부인의 계시 속에 만난 인물임)는
과로로 인하여 숨졌으나 유족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주일후면 다시 만날 것이 확실하였기 때문이었다.

상인들은 조용히 상점의 문을 닫았고 3개월 후면 만나 뵈올 만왕의 왕을 뵈옵기 위하여 사업을 그만둔다는
안내문을 써 붙였다. 기술자들은 주인과 상사들을 찾아가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빚진 자들은 빚을 갚기 위해 재산들을 정리하였고 채권자들과 부자들은 형제들의 빚들을 탕감해주었으며
빚을 갚을 수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는 형제들의 빚을 대신 갚아 주었다.

농부들은 감자를 추수하는 일을 포기하였고 오히려 토지를 팔아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인쇄물을 제작하고 주의 오심을 광고하는 자금으로 헌신하였다.
급기야는 더 이상 돈이 필요 없으니 가지고 오지 말라는 광고가 나왔으며 뒤늦게 돈을 가지고 왔던
어떤 형제들은 하늘 창고에 보물을 저축할 수 없어 안타까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1844년 10월 22일, 주님의 오심을 알리는 전도지들은 낙엽과 같이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고
인쇄기들은 밤낮을 쉬지 않고 돌아갔다.

재림을 알리는 신문에는 ‘나에게 피해를 입은 자는 저를 찾아 달라’는 기사들이 실렸고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신을 정결케 하는 일을 하였다.

드디어 1844년 10월 19일 주님이 오시는 날 3일전이 되었을 때 숨쉴 여유도 없이 밤낮으로 돌아가던
인쇄기계는 멈추어졌고 수많은 청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세워졌던 천막도 거두어졌으며
기별자와 청중들은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 정돈 한 후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헤어졌다.
3일 후에 하늘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모두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기별은 전하여 졌고 모든 준비는 끝이 난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선고가 이제는 내린 것이었다.

이것은 1844년 10월 22일 재림을 기다리던 성도들의 경험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재림성도들의 경험들은 어떤가? 오늘날 재림성도들은 참으로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도 둘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다.

과거의 재림성도들보다 못한 경험을 가지고도 하늘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하는 믿음은 기만이다.

혹시 형제들 사이에 나쁜 감정들이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에 남아 있지는 않는지?
세상에 대한 애정과 야심을 버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일을 미루고 있지는 않는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재물을 사랑하여 부당한 방법으로 양심을 잠재우는 일은 없는지? 그렇다면 아직도 우리들은 둘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재물은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져 있어야 하며
언제 어느 때이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주저 없이 바칠 수 있는 믿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안식일에도 어린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한번의 저항도 해보지 않은 채
굴복해 버리는 젊은이들, 이와 같은 사실을 보고도 한마디의 경고도 하지 못하는 교회의 지도자들,
이 모든 현실은 둘째 천사의 경험과는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