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3월 22일 정한 때가 지나가자 첫째 천사의 기별을 진실로 받아들인 무리들은 오히려 큰 실망을 당하였고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였다. 그들은 실망 중에서도 다시금 말씀을 연구하였고 다니엘서에 나타난 2,300주야의 예언을 다시금 검토한 결과 2,300주야의 계산에는 조금도 잘못이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2,300주야의 기산점이 되는 예루살렘의 중건령이 봄철이 아닌 가을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예루살렘성의 중건령을 내린 아닥사스다왕의 조서가 봄이 아닌 가을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고 그 해 유대민족의 대속죄일이 10월 22일 가을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과오가 거기에 있었음을 깨달은 신실한 무리들은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되었고
1844년 10월 22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의 오심이 봄이 아니라 가을로 변경된 것이다.
그들은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몇 개월을 성경과 기도의 씨름을 하였으며
드디어 자신들의 과오를 알게 되었고 실망은 더 큰 확신으로 변화되어 기쁨이 충만함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이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와 있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첫째 천사의 기별을 전할 때와는 다른 엄숙한 두려움과 의무감으로 압도되었다.
그들의 심령은 환희와 열광적인 기쁨에 도취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들처럼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그저 기뻐하고 찬미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었고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 얻기 때문에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라 구원은 믿는 자들의 것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외치는 그런 복음이 아니었다. 당시의 신실한 백성들의 경험을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는 열광적인 기쁨은 별로 없고, 오히려 마음을 깊이 살피고, 죄를 고백하고, 세상을 버리는 일들이 있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는 그들의 번민하는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부담이었다.
그들은 끈기 있는 기도와 확고한 헌신을 주께 드렸다.” (쟁투, 400-401).

“열광적인 환희는 없었다. 그런 일은 미래에 속한 것으로 하늘과 땅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충만하여질
그 때를 위하여 남겨 두었다. 또한 즐거운 환호성(歡呼聲)도 없었다. 그것 역시 하늘에서 환호성을 올릴 때를 위하여 남겨 두었기 때문이었다. 노래하는 사람들도 잠잠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찬양대, 곧 천사들의 무리와 연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의견의 충돌이 없었고,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뭉쳐있었다.” (쟁투, 401).

오늘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어떤 사람들처럼 가벼운 대화와 경솔한 행동, 경박한 웃음과 세상을 사랑하는 옷차림, 마음을 찢는 회개와 자복이 없는 거듭남, 죄에 대한 혐오가 없이 기쁨과 평안만을 추구하는 복음,
경건한 두려움과 전심을 바치는 헌신과 굴복이 없는 생애와는 전혀 다른 경험들이었다.

선지자께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그 운동은 각 곳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깊이 살피는 일과 심령을 겸비하게 하는 일을 일으켰다.
그 운동은 세속적 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게 하였고, 다툼과 원한을 화해하고, 모든 잘못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용서와 가납하심을 얻기 위하여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탄원하게 하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겸비와 완전한 순종을 하게 하였다.” (쟁투, 401).

사랑하는 재림 성도들이여 아직도 세상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고 형제들 간에 다툼과 원망이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자비와 용서를 얻기 위해 완전한 회개와 자복이 없다면, 그리고 주님께 굴복하여 겸비한 마음으로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의 각오가 없다면, 우리들은 아직 둘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