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천사의 기별은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하게 하는 기별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니고데모처럼 참된 거듭남의 경험이 없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

참된 칭의의 경험이 없으면서도 의인들의 흉내를 내면서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아직 죄인 그대로 있으면서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금을 바치며 선한사업에 동참하고 육식을 금하면서
의인들의 흉내만 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원숭이가 사람의 흉내를 잘 내고 사람들처럼 생활한다고 하여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야 사람인 것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을 하고 교회를 다녔다 한들 아직 죄인인 것이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거듭남은 우리 시대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귀한 경험이다. 이것이 교회 안에 어려운 일이 그토록 많은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성화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은 침례를 받았지만 산 채로 장례를 치루었다.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산 생명으로 일어나지 못하였다(원고 148, 1897). ”(화잇주석, 롬 6:1-4)

“침례는 아주 엄숙하게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다. 신앙 고백으로 자아는 죄된 생활에 대하여 죽는다.
물이 수침자를 덮을 때에 온 하늘이 보는 앞에서 쌍방이 언약을 맺는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는 물 무덤으로 내려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새로운 생명으로 무덤에서 일어난다.”
(화잇주석, 롬 6:1-4)

첫째천사의 기별을 경험하지 않고 철저한 회개의 경험과 죗된 생활을 버리지 못하였다면
아직도 거듭난 것이 아니며 죄인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라는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죄와 의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빛과 어두움이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죄의 누룩을 가지고 있으면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은
마른 밀가루가 누룩이 없이 부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재림성도들이시여 첫째천사의 기별을 경험하므로 진정으로 거듭남을 체험하여야 한다.
철저한 회개의 경험이 없이 죄의 누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식일을 지키고 의로운 흉내를 내면서
믿음으로 구원 얻기를 기대하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실로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죄를 덮어주는 가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