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는 진화론을 주제로 하여 말씀 드리고저 한다.
여러분이 주의를 기울여 듣고, 자신이 진화론자인가 혹은 아닌가를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먼저 진화론이란 무엇인가를 보고 그 다음에 이것을 설명하여 가면
여러분이 진화론자인가 혹은 아닌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인용하는 글은 가장 저명한 진화론의 권위자 중의 한 사람의 진화론에 관한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며,
지금까지 내린 진화론의 정의 중에서 가장 완벽한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은 이 우주의 발생 과정을 미 결정체에서 결정체로, 단순한 형태에서 다양한 형태로 점전적인 변화를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우주 자체에 내재하므로 이와같이 변화된다고 가정하는 이론이다." "진화는 이와같이 발전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동의어로서 하등의 세계에서 고등 세계로 보다 나쁜 상태에서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발전은 우리의 감정으로 판단하는 증가되는 존재 가치를 말한다."

이제 이점을 유의하여 보자. 진화론은 우주의 발생과정을 하등 세계에서 고등 세계로, 나쁜 상태에서 더 나은 상태로 점진적인 변화를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이와같은 변화 과정을 일으키는 능력이 우주 자체 안에 있다고 가정한다.
다시 말하면 우주가 스스로 발전하며 그렇게 발전하도록 하는 주체는 우주 자체라는 것이다.
이런 발전은 "우리의 감정이 판된되고 증가되는 존재 가치"로 표현하고 있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우리가 더 나아졌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 나아졌으며 더욱 발전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발전했다는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정이 우리의 위치를 지배한다.
우리의 감정으로 아는 지식이 보다 못한 상태에서 더 나은 상태로 변화된 우리의 발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쁜 상태에서 좋은 상태로 발전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감정이 이것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만일 이것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오늘 오후에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감정에 의하여 자기의 발전과 경험의 가치를 측정한다면 그들은 모두 진화론자들이다.
만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신도들이 된지 40여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관계없이 그들도
역시 진화론자들이다. 그들의 모든 신앙은 한낱 실속없는 공언에 불과했으며 알맹이 없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이와는 다른 방법으로 진화론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글을 읽어 보겠다.
이 글을 읽으면 여러분은 진화론이 불신의 소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진화론자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즉시 여러분이 불신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화론이라는 가설은 만물의 시작 곧 창세에 관한 몇가지 의문을 풀려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것은 곧 "자연을 우리의 시조와 우리의 생명의 근원으로 보는 고대 사상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진화론을 확립하기 위하여 주로 이바지한 과학 중의 하나가 이 지구의 과거 역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랜 역사라는 시간 개념을 설정한 지질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이다. 이런 방대하고 상상을 불허하는 기간은
진화론의 거물급 저자 중의 또 다른 한 사람 곧 바로 이 진화론의 창시자가 말한대로 진화의 과정으로
"인간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될 기초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이루어진 발전은
무수한 시대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전은 그 시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순탄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많은 기복이 있었다. 수차에 걸쳐서 큰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었다가 그 후에 큰 변이,
곧 폭발이 일어나서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곤 했다. 그러면 다시 그 상태에서 진화가 시작되어 발전한다.
아주 여러번 이런 과정이 있었다. 이것이 하등 세계에서 고등 세계로,
나쁜 상태에서 좋은 상태로 변천하는 진화의 과정이다.

그러면 여러분이 나쁜 상태에서 좋은 상태로 발전하는 과정은 어떠했는가? 오르내리는 기복이 많이 있었는가?
여러분이 선을 행하는 - 하나님에게 속한 선한 행위를 하는 능력을 맨 처음 기독교 신앙을 갖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의 기복의 과정을 거쳐서 가지게 되었는가? 어떤 때는 큰 발전이 있는 것같고
선을 행하고 모든 일이 잘되고 즐거운 것 같더니 그 다음에는 일각의 예고도 없이
큰 변화가 이르러와서 모든 것이 일시에 망쳐지는 일이 있지나 않았는가?

그런데 이런 모든 기복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진화를 위해서 시작한다.
이런 과정을 돌이켜 보면서 여러분의 감정의 판단에 의하여 약간의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여러분의 경험인가? 이것이 여러분이 지금까지 발전한 길인가? 다시 말하면 여러분은 진화론자가 아닌가?
변명하지 말고 정직하게 사실대로 시인하도록 하자. 오늘 오후에 여러분을 진화론으로부터 구하여 내기를 원한다.

진화론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므로 오늘 이곳에 진화론자로서 들어온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나갈 수 있다. 진화론자에 대해서 아주 명백하게 설명할 때에
여러분 자신이 지금 설명드린 그대로라는 것을 발견하면 자신이 진화론자라는 것을 시인하라.
그런 다음에 줄곧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처방해 주시고 그 모든 형편에서 구하여 내실 구제책을 따르도록 하라.
그러나 여러분에게 설명드린 것이 여러분의 경험이었고 그것이 여러분의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경험했던
발전이었다면 여러분이 인정하든 혹은 않든지 간에 여러분은 진화론자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두고 싶다.
그렇지만 가장 최선의 길은 그것을 시인하고 다음에 그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진화론의 또 다른 면을 보자. "진화론은 어디까지나 물질을 영원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이런 가정 하에서는 "창조론은 진화론이 적용되는 존재 영역에서 제거된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을만큼 발전을 하도록 보증하는 원리를 찾는다면
만일 그 원리가 여러분 자신 안에 내재하여 있으므로 그것을 올바로 작용하도록 하여 잘 관리를 할 수 있다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발전을 기대하고 바라보고 점검했었다면 여러분은 진화론자들이다.

진화론이 어떠한 것인가를 좀 더 읽어 보겠다. "진화론은 분명히 창조론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
진화의 사상은 이것을 대체로 우주의 형성에 적용할 때에 창조론과는 정반대가 된다."
이것은 진화론을 만든 사람들이 정의한 바와 같이 이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이 자연히 발생하였으며
오늘날의 우주가 존재하도록 만든 이 원리가 이 우주 자체 안에 들어 있으며 이 원리에 의하여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이 완전히 발생된다고 가정하는 이론이다.
진화론은 이러한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진화론은 창조론과 정반대가 된다."

그러나 여러분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이 자연히 발생하였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 문제에 있어서는 진화론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에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 곧 우주와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할 것이다.
진화론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진화론에는 창조론이 있을 자리가 없다.

그러나 한편 창조론과 정반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진화론의 다른 면이 있다.
여러분에게 읽어드린 이 진화론을 만든 사람들은 자신을 결코 불신자,
곧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불신자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믿음이 없으면 그들은 불신자이다.
물론 불신자라는 말이 오늘날보다는 더욱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여러분에게 읽어드린 이 진화론을 만든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렸던 사람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이며 믿음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창조론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알지 못했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들의 믿음은 능력이 없는 믿음의 형식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이 새로 발생한 이론에 매료되었으며
이런 새 과학이 인기를 얻게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실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도를
완전히 버리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과 창조론이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창조자가 있는 진화론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진화론을 유신론적인 진화론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시작점이 어디든 간에 만물의 시작은 하나님이 하셨으니 그후부터는 만물 스스로 진화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시작은 하셨으나 그후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과정을 만물 스스로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변동이며 순간적으로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려는 방편에 불과하다.
이것을 진정한 진화론자들이 창조설에서 진화설로 변천하는 한 단면일 뿐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것은 오직 진화론일 뿐이다. 왜냐하면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는 중간노선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런 종류의 사람이든 혹은 아니든 간에 심지어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신도들 가운데서도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지난날처럼 많지 않은 것을 인해서 주님에게 감사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게 하고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의 길을 올바로 시작한 다음부터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두려워하고 떨지만
어떠한 구원을 이루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계속 역사하시도록 하여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빌 2:13)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3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바위로 만들지 않았으며 인간이 원숭이나 유인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원숭이나 유인원은 올챙이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올챙이는 맨 처음에 원형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코 그렇지 않았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그러면 왜 보이는 것이 나타난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이것들이 만들어진 것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일 따름이다. 그러한 것들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그러한 것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재료를 가지고 있으므로 말씀을 하실 때에 그러한 것이 나타나게 되며 그것들이 만들어지고 구성하는
물질을 존재하게 만든다. 여러분이 이와같은 다른 성경 말씀을 알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6-9)

이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의 질문을 하겠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얼마 후에 그 말씀하신 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는가?
말씀하시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가? (회중: 조금도 지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는가? 6일이라는 긴 기간이 지나지 않았는가? 아니다. 창조주를 인정하는 진화론이라도
그 기간을 무한정한 시대로 생각하거나 혹은 "6일간의 길고 무한정한 시간"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후에
보이는 것들을 형성하는데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화론이고 창조론이 아니다.
진화는 오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창조는 말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셔서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을 때에 그 한 예를 들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빛이 있으라"는 말씀과 빛이 생긴 시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가? 여러분이 이 문제를
똑바로 이해하여 자신들이 진화론자인가? 창조론자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질문을 다시 해보자.

말씀을 하신 시간과 그 말씀이 이루어진 시간 사이에는 6일간의 긴 기간이 있었지 않았는가?
여러분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는가? 아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아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아니다. 일분도 지나지 않았다. 아니다. 일초도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 정말로 그렇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시간과 빛이 존재하는 시간 사이에는 일초도 지나지 않았다.
(회중: 말씀을 하시자 마자 빛이 있었다) 그렇다. 이렇게 해서 빛이 있게 되었다.

내가 지금 더욱 질문해 나갈 때에 지나쳐 버릴까 두려워하여 여러분의 마음에 확실하게 새겨지도록
하나씩 보면서 넘어갈려고 한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때와 빛이 비치는 때 사이에는
일초도 없었는가? (회중: 그렇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일이 나타나는 것 사이에 어떤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진화론자이다. 만일 창조의 시간을 무수한 세월로 계산한다면
하루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심한 진화론자이다. 같은 진화론자이기는 하나 그 이상이다.

다음에 하나님은 "궁창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되었는가?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때부터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 궁창이 있었는가?
즉시 있었는가? 그렇다. 말씀하시고 그 일이 존재하는 것 사이에 무한정하고 매우 긴 기간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진화론자들이다. 말씀하시고 그 일이 존재하는 것 사이에는
하루나 한 시간이나 일분이 지났다고 인정한다면 그 사람은 창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고 말씀하시고 또
"땅은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를 맺는 과목을 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대로 되니라".
그 다음에 하나님은 하늘에 두 큰 광명을 달고 별들도 만드시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대로 되니라".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고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에 항상 그대로 되었다. 이것이 창조이다.

여러분이 보는 바와 같이 진화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지하고 믿지 않는 것 역시
완전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진화 자체가 창조와는 정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진화론이 창조론과 정반대가 되며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므로 진화론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가 된다.

물론 원래의 진화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여지를 주지 않았으며 또 절반 진화론자들,
곧 하나님께서 만물을 시작하였다는 창조와 하나님의 말씀을 도입하는 자들에게도 어떤 여지를 주지 않았다.
진화를 통하여 어떤 일을 이루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과 무한정한 시대가 걸리므로 창조를 폐지한다.

진화론자들이 창조는 즉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나 즉시 있는 행위를 믿지 않으므로 창조를 믿지 않는다.
창조는 즉시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창조가 아니다. 즉시 창조되지 않으면 그것은 진화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있었던 창조를 다시 살펴보면,
그의 말씀 속에는 그 말씀하는 일을 만들 수 있는 창조의 능력이 있다. 이것이 창조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며 살아있고 세세토록 있으며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것이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영생의 말씀이며 그 속성이 영원하고 세세토록 있다.
그것은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이며 영원토록 그 안에 창조의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에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 그 말씀은 영원한 생명이며 영원히 존재한다.
그 안에는 말씀한 일을 만드는 창조의 능력이 있다.

이것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많은 그리스도의 생애의 사건에 나타나 있다.
그 모든 일을 다 인용할 필요는 없고 한두개를 말하면 여러분이 이 원리를 깨달을 수 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 산상 설교 후에 내려오셔서 한 백부장을 만나셨을 때에 이런 말을 들으셨다.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말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예수께서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마 8:5-13)

이스라엘 백성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었으며, 그 말씀을 맡은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랑하였다. 그들은 그 책을 읽고 회당에서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 나의 뜻을 이루며"라고 전파하였다.(사 55:1)
그 말씀을 읽을 때에 이렇게 말하였다. 그 말씀이 옳다. 그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그 필요성을 보고
그것을 행할 것이다. 우리가 그 말씀하신 것을 이룰 것이다. 그런 후에 그들은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오랜 시간, 정말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들은 결코 이루지 못했다. 말씀을 행하는 그들의 행위는
사실은 너무 멀었으므로 그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자라도 이런 외침을 하게 되었다.

"만일 한 사람만이라도 온 율법을 단 하루만이라도 지키고 한 조목에서라도 범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다. 만일 한 사람만이라도 완전한 안식일 준수에 영향을 끼치는 그 율법의 일점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때에
이스라엘의 고난은 끝날 것이고 드디어 메시야는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씀에서 말한 것을 행할려고
시작은 하였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으므로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말씀이) 나의 뜻을 이루며"라고 말했다.(사 55:11) 이와같이 창조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창조력을 인정한다고 말했지만 그들 자신의 생애에서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가 그 뜻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그 말씀과 그들 자신들이 동의하는 점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위하여
그들 자신을 바라본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꺼려하는가?
그들이 진화론자들이었다고 말하기를 두려워말라. 왜냐하면 그들이 그러한 사람들이었으며 여러분 중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선은 창조론과는 정반대였으며 그 노선에는
어떤 창조도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못했다. 그들 안에 새 생명이 창조되지 않았다.
그런 변화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들의 자아로 이루어져 있었다.
창조를 믿는데서 아주 멀었으므로 그들은 창조자를 거절했으며 세상에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이것이 진화론이 항상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창조론과 정반대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이제 이런 사람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바라본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시한 유대인들이라는 사람들 가운데서 자라난 한 로마인이 있었다.
그 백부장은 예수님이 계신 곳 주위에 있으면서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그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 말씀의 결과를 보고 드디어는 그 자신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말씀한 것은 무엇이나 그러하다. 어떤 것을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제 그 말씀의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에게 가서 성경에 기록된 바 대로 말하였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래 좋다 내가 가서 너의 하인을 치료해 주겠다고 대답하셨다. 오, 아니요 주여 당신이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람은 말씀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하여 이 일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말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리라." 이 말씀이 나갔을 때에 얼마나 시간이 지나서 그 사람이 나았는가? 20년이 지났는가? 아니다. 그가 완전히 낫기 전에 많은 기복이 있어야 할 필요가있었는가?
이제 정직하게 말해보자. 아니다. 결코 아니다. 말씀이 나갔을 때에 말씀은 그 말씀한 일을 이루었다.
말씀이 그 즉시 이루어졌다.

또 하루는 예수께서 길을 가고 계셨을 때에 한 문둥병자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알아봤다.
그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력이 있다는 복된 진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에게 와서 말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발걸음을 멈추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막 1:41,42). 말씀하시는 시간과
그 일이 이루어지는 시간 사이에 일순간의 시간도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즉시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았다.

이제 여러분은 태초에 창조하실 때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 말씀한 일을 이루는 창조의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을 때에
여기 저기서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는 언제나 그같은 창조의 능력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재삼재사 강력하게 나타내셨고 그러므로 말씀을 하실 때에 창조의 능력이 거기에 있어서 그 일을 이루셨던 것이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진화론자인가 혹은 창조론자인가? 그 말씀을 읽었고 또 믿는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창조를 믿고 진화론자들을 불신한다. 이제 창조를 믿고 여러분 자신을 불신하는가?
오늘 여러분과 말씀의 창조력 사이에 어떤 것, 곧 어떤 시간의 개입을 허용하는 허위에 설 것인가?

예수께서 어떤 사람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죄의 용서를 받기까지 얼마나 걸렸는가?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과 사함을 받는 일 사이에 조금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같은 말씀을 오늘 여러분에게 하신다.
왜 여러분에게 하신 이 말씀과 이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어떤 시간이 지나게 하려고 하는가?

얼마 전에 누군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일이 이루어지는 사이에 일분이나 일초라도 지나게 하는 자는
진화론자라고 여러분은 말했다. 매우 좋은 일이다. 그 말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는다. 왜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죄사함을 말씀하실 때에 죄사함이 여러분에게 이르러 와서
여러분이 실제로 그 사함을 받기까지 전 생애를 소비하려 하는가? 그런 사람은 진화론자들이라고 여러분은 말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다. 여러분은 진화론자가 되는 것을 그만두고 창조론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가?

오늘은 여기에 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의미있는 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결정하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진화론자로 이 집을 나선다면 위험 천만한 일이다. 바로 지금 생사의 문제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여러분이 진화는 불신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진화론자로서 이 집을 나선다면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려는가?

만일 죄의 용서를 받지 않고 이 집을 나선다면 여러분은 진화론자이다. 왜냐하면 말씀하시는 것과
그 일의 성취 사이에 시간이 지나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읽어드린 것으로부터
그 하신 말씀과 이루어지는 일 사이에 어떤 시간이 지나도록 하는 자들은 누구나 진화론자라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형제들이여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자매들이여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콜린스 장노: 네 죄사함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현재 시제를 강조하면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을 인해서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왜냐하면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그 말씀에 창조의 능력이 있어서
모든 죄를 다 가져가시고 그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창조를 믿는다. 여러분은 믿는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 속에 있는
창조의 능력을 믿는가?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진화론자가 되어 내가 아주 악하기 때문에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를 알 수 없다고 말하려는가? 내가 옳게 행하려고 노력했었지만 많은 실패를 했었다.
많이 오르락 내리락 했으며 오히려 올라가는 것보다는 내려가는 일을 휠씬 더 많이 했다.
만일 여러분이 하는 말이 이렇다면 여러분은 진화론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화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마음을 갈망하고 열망하여 왔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죄의 용서와 그외 모든 것을 믿는다. 만일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아주 많은 악과 정복해야 할 아주 많은 죄들이 있다. 그것 때문에 어떤 확신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라는 말씀이 있다.(시 51:10)
깨끗한 마음은 창조에 의해서 오며, 다른 길이 없으며 그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라고 말씀하신다.(겔 36:26)
여러분은 이제 창조론자인가? 혹은 진화론자인가? 이 집을 나설 때에 악한 마음을 가지고 갈 것인가?
혹은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나갈 것인가? 깨끗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창조되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새마음을 창조할 창조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의 하신 말씀과
새 마음의 창조 사이에 일순간의 시간이라도 지나도록 허용한다면 여러분은 진화론자들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여러분의 생애에 이 말씀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변화 사이에
어떤 시간이 지나기를 허용할 때에 여러분은 진화론자들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다.
'그래 나는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될 거야. 나는 말씀이 그 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들은 다음 집회 때까지 미루었다.
이렇게 수년간을 그럭 저럭 미루다가 바로 이런 진화론자들로 남는 것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경건에 속한 비밀의 주위를 맴돌고 있을 때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나의 분복인 것을 안다고 선포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창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말씀 안에 있는
창조의 능력이 그 말씀하시는 일을 창조하신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믿음과 경건의 비밀에 속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영원한 분복이라고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이런 죄있는 육신에 이렇게 나타나실 수 있는가는 하나의 비밀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밀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고 이와같은 창조의 일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러분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할 수 있는 창조자와 같은 이런 존재가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이 단순히 진화로 되는가?

바로 지금 그리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신도들에게 지금부터 세상 끝까지 해야할 질문은
' 여러분은 창조주를 진심으로 믿는가? 여러분이 창조주를 믿을 때에 그가 어떻게 창조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창조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그 말씀하신 일들을 여러분에게 창조해 주셨는가? 여러분은 다른 진화론자들에게는 창조론자가 되고
다른 창조론자들에게는 진화론자가 되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또 다른 일을 보자. 말씀에는 "깨끗함을 받으라"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고 말씀한다.
그는 문둥병자에게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고 즉시 깨끗함을 받았다. 그는 지금 여러분에게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되는가? 여러분 모두는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가? (회중: 그대로 되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혼을 위하여 그 창조의 말씀을 신뢰하라.

성경에서 여러분에게 이르러 오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창조의 능력을 인정하라.
성경에 있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주 공간에 말씀하시어 하늘의 모든 세계를 창조하시고
어두움에서 빛을 내시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셨을 때와 같은 말씀을 오늘날에도 여러분에게 하시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에게 하신 말씀을 만일 받아들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새로 창조하신다.
여러분의 마음의 흑암과 혼돈과 공허 속에 말씀하신 그 말씀이 만일 그 말씀을 받아 들인다면
거기에 하나님의 빛을 창조하며 오늘 죄의 문둥병으로 고통당하는 여러분에게 하신 그 말씀은
만일 받아들이면 즉시 여러분을 깨끗하게 한다. 이렇게 되도록 하자.
내가 어떻게 깨끗하게 될까? "깨끗함을 받으라"는 그 말씀의 창조의 능력에 의하여 깨끗하게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요 15:3)
여러분은 깨끗하여졌는가? 이 순간부터 창조론자가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진화론자로 있을 것인가?

이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보라. 말씀을 읽고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생각할 때에 그 말씀은 여러분에게
항상 무엇이 되는가? 오! 그 말씀은 창조이다. 창조의 능력이 그 말씀에서 말하는 일을 여러분 안에 창조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바로 그 창조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 창조는 여러분의 생애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의와 거룩함과 진리와 충성 모든 선하고 은혜스러운 일을 창조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만일 이렇게 될 때에 안식일 준수는 우리를 어떤 무엇에 이르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 곧 안식일을 지키는 자는 창조주를 알고 창조의 과정을 알게 되는 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화론자인 한, 안식일 준수는 하나의 속임이 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여러분의 생애에서 하나의 창조의 능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안식일 준수는 하나의 속임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 곧 만물의 창조주로 알게 하려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8-10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을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자신으로부터는 어떤 선한 행실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선한 행실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진화론자는 노력하고 항상 노력할 것이지만 그것을 이루지는 못한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오직 선한 행실을 하려고 맴돌고 있는가? 들으라.
창조자 자신에 의하여 그 안에 창조의 능력이 있는 그의 말씀에 의하여 창조되지 않으면
지금부터 세상 끝까지 여러분 안에는 어떤 종류의 선한 것이 결코 없을 것이다.
이곳을 나갈 때에 선행을 하고 싶은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행실을 위하여 창조함을 받을 때에만
선한 행실을 할 수 있다. 선한 행실을 하려는 노력을 멈추라. 창조주를 바라보고 그의 창조의 말씀을 받으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라.(골3:16) 그러면 그 선한 행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창조주와 함께 살고 창조의 능력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만 있는 그 즐겁고 고요한 평강과 참된 힘과 성장이 있을 것이다.

그가 여러분에게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실 때에 창조주를 인정하라.
오직 여러분 안에 창조된 선한 일만을 인정하고 창조되지 않은 어떤 선한 일에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
왜냐하면 주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면 선한 것은 전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었다. 주님이 그렇다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에 주님에게 감사하라. 이 구절에서도 진화론자가 될 것인가?
이 구절의 시제가 현재형이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말씀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말씀은 창조하는 말씀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분이 새로 지음을 받는 것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용할 것인가?
태초의 창조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과 그 이루어진 일 사이에 단 일분이라도 허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진화론자라고 말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선한 일을 위하여 창조하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여기에서도 진화론자가 될 것인가? 자, 우리는 모두 창조론자가 되도록 하자.

이런 방법으로 하면 주님을 영광 중에 만날 준비를 하는데에 길고 지루함이 없을 것이며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날 준비를 완전히 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여러분이 진화를 통하여 준비한다면 결코 준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창조할 때에 분명하고도 신속하게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말씀은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경건의 비밀의 주위를 맴돌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나의 분복이라는 것을 널리 선포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어느 정도나 진화론자였는가를 아는가? 우리는 포기할 것인가? 자, 이제 창조론자들이 되고 그 일을 끝내자. 진정으로 안식일을 준수하는 자들이 되자. 주님을 믿자. 주님께서는 용서를 말씀하시고 깨끗한 마음을 말씀하시고 거룩함을 말씀하시고 그것을 창조하신다.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 창조하시도록 하자.
진화론자가 되는 것을 그만두고 그 창조하는 말씀이 여러분을 위하여 역사하게 하고 그 창조하는 능력이
그 말씀에서 말하는 바를 여러분 안에 이루도록 하자. 그러면 이곳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만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준비시키실 수 있다. 정말 바로 그 일에서 그를 만난다.

이와같이 그를 만나고 이와같이 매일 그를 만날 때에 그를 만날 준비가 되지 않겠는가? 여러분은 그것을 믿는가?
그가 말씀하셨을 때에 모든 세계를 만드셨으며 그가 말씀하셨을 때에 그의 말씀에 의해서 빛이 나왔으며
그가 말씀하셨을 때에 문둥병자가 즉시 깨끗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들의 경우에는 말씀하신 시간과
그 사실이 이루어진 시간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 왜 진화론자가 되려고 하는가? 창조, 창조 바로 이것뿐이다.

여러분과 나는 사람들을 잔치에 초청하여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청해야 할 것이다.(눅 14:17)
내 자신이 준비가 안되었을 때에 이렇게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처음부터 거짓말이다. 나의 말은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을 것이며 단지 허공을 치는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 초청에 우리를 준비시켰고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씻고,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고
태양이 하나님이 표시해 놓은 노선에 붙들려 있듯 우리를 붙드시는 말씀의 창조력이 있을 때에
그때에 우리가 나가서 악한 세상에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말할 때에 그들은 들을 것이다.
그들을 그 초청에서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에게 나아와서 그의 창조의 능력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그들이 초청받은 잔치를 위한 준비를 즐거워 할 것이다.

지금은 이 세상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때이다. 하나님의 표가 사람들 이마 위에 쳐지고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하나님은 모든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되지 않은 자위에 그의 인을 치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하지 않고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의 인을 치시지 않을 것이다.
전혀 불의가 되는 의에 그의 인을 치시도록 하려고 하는가? 여러분은 뻔뻔스럽게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너무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깨끗하게 씻으시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하신 일에 그의 인을 치실 수 있다. 여러분의 일에는 그의 인을 치실 수 없다.
그 자신이 승인한 문서에만 그의 인을 치신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그의 품성을 새기도록 하자.
그러면 거기에 그의 인을 치실 수 있다.

오직 그의 창조하시는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그 뜻을 이루셨을 때에만
여러분의 마음에 그의 승인하는 인을 치실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수 있다.
이와같은 주제를 완전히 끝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 것을 조금이나마 여러분이 알 수 있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우리가 마칠 때에 창조에서 멈추도록 하자. 더 이상 진화론자가 되지 말자.
여러분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분 안에 성취된 일 사이에 일순간이라도 경과되지 않도록 하자.
이와같이 창조 속에서 살고 창조주와 동행하고 창조의 능력으로 붙잡혀 있고, 창조의 능력을 받은
이러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잠시 후에 전 세계를 움직이실 수 있다.

만일 처음에는 오늘(기도 주일을 마치는 예배였음)과 같은 시간에는 맞지 않는 이상한 문제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지금은 이 문제가 완전히 현대진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앞에는 오직 두 길밖에 없다.
중간 길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세계의 사람들은 창조론자나 진화론자 중의 하나이어야 한다.
진화론자들은 불신이며 그것은 사망이다. 창조론은 기독교 신앙이며 그것은 생명이다. 여러분이 살기 위해서는
창조와 기독교 신앙과 생명을 택하라. 오직 창조론자가 되고 영원히 창조론자가 되도록 하자.
모든 사람이 "아멘"하기를 바란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2월21,28일, 3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