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우리는 육신의 일의 근본적인 악함과 거짓됨에 대해서 약간 보았었다.
그러나 주님에게 감사하자. 여기에 더 좋은 일이 있다.

각 사람에게 값없이 충만하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영이육체의 소욕을 제어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자에게는 육신이 그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의 영이 다스리며, '육체의 일'대신에 '성령의 열매'가 그들의 생애에 나타나도록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육신의 일을 열거하면서 설명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모든 사람이 육신의 모든 정욕과
욕심과 성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주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싸움을 싸우시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다. 그는 육신 그 자체가 되셨다.

다시 말하면, 그가 구속하러 오신 자들과 똑같은 혈과 육을 쓰시고 오셨던 것이다.
모든 점에서 인간과 똑같이 되셨으며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었다.
만일 어느 한 점에서라도 우리와 같으시지 않았다면, 바로 그 점에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을 수 없으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셨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을 때에,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느끼는 것과 똑같이 육신의 욕망과 성향을 느끼셨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받는 것은 자기 욕심(자기 자신의 육신의 욕심과 성향)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이다(약 1 : 14).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면서도 이 모든 일을 경험하셨다. 왜냐하면 시험을 받는 것은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욕심이 잉태'하고 야심을 품고, 죄의 성향을 인정할 때에, 비로소 '죄를 낳'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의 생각에서까지도 육신의 욕망을 품거나 그 뜻을 행하도록 시인하신 일이 없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으로 오셔서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하나의 죄라도 범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이와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받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육신을 쓰시고서도 그 육신의 모든 욕망의 불을 완전히 끄시고,
모든 육신의 욕망을 그 뿌리에서부터 효과적으로 죽이시고, 이렇게 하여 '육신에 죄를 정하'셨다.
그러므로 이와같이 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을 뿐만 아니라,
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주시고 그 승리를 계속 이끌어 나가도록 하셨다.
예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신 것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 : 4).

이러한 완전한 승리는 누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얻을수 있다. 이 승리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받을 수 있다.
이승리는 완전하게 이루셔서 그를 믿는 모든 신자들에게 주신 '예수 믿음'에 의하여 거두고 계속 거두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이다(요일5 : 4).

그는 인류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한 "원수된 것 ‥‥을 자기 육체로 페하셨"다(엡 2 : 15).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육신을 쓰셨고 또 그 원수된 것이 존재하는 육신을 쓰지 않으면 안되셨다.
그러므로 "원수된 것 ‥‥ 을 자기 육체로 폐하"신 것은
"이 둘(하나님과 떨어진 인간)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가 "원수된 것 ‥‥ 을 자기 육체로 폐하"신 것은
"십자가로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 곧 원수가 되어 있는 모든 인류)을 한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엡 2 : 16). '원수된 것'이 '자기의 안'에 다시말하면 '자기 육체'안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육체'로 그'원수된 것'을 죽이고 폐하셨다.
그가 이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것이 그의 육체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같이 하여 예수님은 인류 위에 있는 모든 저주를 짊어지셨다.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다(갈 3 : 15).
그러나 "까닭없는 저주는 ‥‥ 이르지 아니하"하며, 또 결코 이르지 않았다(잠 26 : 2)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다.
그리고 우리 위에 저주를 정복하기 위하여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정복하시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하기 위해서였다(고후 5:21).

이와같이 하여 온 인류와 같이 완전히 불리한 처지에 자신을두시고,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으며,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육신의 뜻이나 성향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으셨으며
생각에서조차 허용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이 모든 육신의 뜻과 성향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뿌리에서부터 죽이고 하나님의 믿음을 통하여 인류에게 이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 다 주셨다

이와같이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2 : 14-18).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으로 이룩하신 이 승리는 성령에 의하여
오늘 예수를 믿는 인간의 육신을 쓴 모든 사람들에게 옮기어지고, 그들을 구원한다.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직접 오셔서, 그들 안에 임재하신다.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소원은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 :16-19).

이와같이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들로 하여금 모든 죄와 권세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그들의 죄있는 육신의 모든 정과 욕심과 성향에 계속 승리하도록 하는 구원은
과거 1870여년 전에 인간의 죄있는 육신을 쓰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던 것같이
오늘날에도 모든 신자들의 육신 안에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임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같으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언제나 같으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복음은 1870년 전의 복음과 같다. 그때에도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고,
오늘날에도 인간의 성정이 같은 것같이 죄인들의 육신, 인간의 육신과 똑같은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이 복음은 '영광의 소망'이신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다시 말하면 죄와 죄의 성정 등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와 죄의 성정을 위하여 그 자신을 주셨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셨으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 주셨다.
우리를 죄인 그대로 받으셔서, 복음 곧 '영광의 소망'이신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 아래로 데려 가시고,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받도록 하였으며,
'성령의 열매'가 '육체의 일'을 대신하여 너희안에 나타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보도록 하자.

이 사랑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미움이나 이러한 죄가 생각에서까지도 나타나는 것 대신에,
오직 사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일을 전혀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사랑은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어제나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며,
또 보상을.받기 위하여 사랑하지 않고 단순히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하며,
또 오로지사랑할 뿐이기 때문에, 사랑 외에는 다른 어떤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희락(기쁨)은 "현재나 또는 장래에 기대되는 선으로부터 일어나는 불타는 행복"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또는'이라는 말이 없어야 된다. 왜냐하면 이 기쁨은
현재와 장래에 기대되는 선에서 일어나는 불타는 행복이며 그 기쁨의 원인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쁨은 영원한 현재이며 영원히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환희에 찬 만족'이다.

화평 - 이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완전한 화평이며, "모든 지각에뛰어"나고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하나님의 평강이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믿음) - 이 믿음은 헬라어로 '피스티스'인데 그 의미는
'확고한 신념, 지식에 기초하지 않고 신뢰에 기초한 확신(머리의 믿음이 아니고 마음의 믿음이며
신조의 믿음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믿음), 신념에 의하여 마음에 품고 반대되는 모순을 완전히 부인하는 확신'이다.

온유와 절제- 절제는 자기 관리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영은 사람을 그의 욕심과 정욕과 습관의 노예 생활로부터
구원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자유인으로 만든다.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하나님의 법은 죄에는 아무것도 금하지 않는다.
인간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영의 열매가 아닌 모든 것을 금지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것이 죄 니라"는영원한 진리를 말하고 있을뿐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우리가 성령으로 살고
성령 안에서 행하고 있기 때문에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그렇다. 이런 일을 해서도 안될 것이며, 또한 전혀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1900년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