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다.
왜냐하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곧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이다(갈 5'18 : 롬14).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령의 마음,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 섬기"는 자들이 되었다(롬 7 25).
따라서 누구든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 율법을 이룬다.

왜냐하면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므로,
그 사랑을 가진 자들 안에서 율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누구든지 육신의 인도함을 받고 육신의 마음을 가지면, 육신의 일을 하며 따라서 그들은 죄의 법을 섬긴다

그러므로 두 개의 길, 곧 영의 길과 육신의 길이 언제나 모든 사람 앞에 놓여 있다.
육신이 있는 곳에서는 틀림없이 그 것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이 계시는 곳에서는, 틀림없이 '육체를 거스'린다.
그러므로 육신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모두 그들이 원하는 선한 일을 행할 수 없다.
그들은 죄의 법을 섬기고, 모두 율법 아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결코 율법아래 있지 않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성령의 길과 육신의 길 중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는 것은 항상 자유이다.
"만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지금 보고 있는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다른 로마서나 골로새서의 구절에서,
육신이 여전히 그 육신의 성격과 죄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는 우리와 함께 있으며,
더 나아가서 이 육신이 성령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을 유의하라.

다시 설명하면, 우리가 개심하여 하나님의 영의 권세아래 들어갈 때에 육신으로부터 떨어지고
그 육신의 정과 욕심이 없어져서 더 이상 시험을 받지 않거나 갈등과 투쟁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전과 똑같이, 타락하고 죄있는 육신이 그 더이상 이러한 육신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그 정과 욕심을 지닌 육신의 지배 아래서 벗어나서, 이제는 성령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극악무도하고 정과 욕심을 가진 육신을 정복하고 십자가에 못박고, 제압하는 권세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한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롬 8 : 13 : 골:5)
이 모든 죄악이 육신 안에 있으므로, 만일 육신이 군림한다면, 이 모든 것들이 살아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육신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의 지배 아래 들어갔으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악한 일들이 근절되었으며 이와같이 하여 이제는 다시 생애에 나타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육신의 지배와 성령의 지배의 차이점을 로마서 7장14-24절과 고린도 전서 9장 26,27절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로마서 7장에서는 육신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사람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으므로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또 선을 행하려고 하나,
육신의 권세 아래 있으므로 그의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 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이 말씀은 육신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 그의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을 섬기'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육신의 권세를 깨뜨리고 선을 행하려고 할 때에, 그 세력이 여전히 그를 사로잡아서
육신의 지배, 곧 그의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붙들어 맨다.

그러나 그 육신의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외칠 때에
즉시 그 응답이 주어진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여기 에 구원의 길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홀로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이 사람이 이렇게 구원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 육신과 싸우는 투쟁에서는 구원을 받지 못했다.
육신과의 싸움이 없는 상황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직도 싸워야 할 싸움이있다.
그것은 싸우는 체 하는 거짓 싸움이 아니며 도깨비 장난같은 싸움도 아니다.
여기 고린도 전서 9장 26절 27절에서 말하는 싸움이다.
"그러므로 내 가 ‥‥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것 같이 아니"한다고 했다.
무엇과 싸우는 싸움인가? 무엇을 치고 박고 하는가? 계속해서 읽어보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이 싸우는 싸움터는 자신의 몸이며,정과 욕심을 지닌 육신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육체는 지난 날 육신의 권세와 죄의 법에서 구원을 받을 때에 굴복했던 새로운 권세,
곧 하나님의 영의 지배아래 들어갔으며, 현재 그 지배를 받고 있다

이것은 고린도 전서 9장 27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이라는 말씀에서
'쳐 복종하게 함은'으로 번역한 헬라어보다 완전하게 번역을 하면 휠씬 더 의미가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보면, "눈 앞에서 때리고, 얼굴 시퍼렇게 멍들도록 치고 팬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코니베와 하우슨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싸우기를 허공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몸을 상처가 나도록 쳐서 강제로 복종"시킨다.

이와같이 로마서 7장은 육신의 권세와 지체 안에 있는 죄의법의 지배를 받으면서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을 보여주고, 고린도 전서 9장은 하나님의 영의 새로운 권세를 통하여 사람의 지배를 받는 육신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서 7장에서는 육신이 지배하고 사람이 그 지배 아래 놓여 있지만,
고린도 전서 9장에서는 사람이 지배하고 육신이 그 지배 아래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복스러운 역(逆) 현상이 개심할 때에 일어난다.

개심할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의 소유가 되며, 하나님 영의 지배 아래 들어간다.
그러므로 그 능력으로 육신과 그 모든 정과 욕심을 지배하며, 성경을 통하여 육신을 그 정과 욕심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육신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육신의 모든 악한 성정과 욕심을
정복하고 다스릴 능력을 받는 구원을 받았다. 우리가 시험이 없는 영역으로 구원을 받아 들어가서
품성을 계발하는 것이 아니고(사실은 그런 곳에서는 품성의 계발이 전혀 불가능함),
시험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모든시험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받으면서 품성이 계발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지금의 육신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구태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으셨다. 만일 우리가 모든 시험에서 벗어나서,
시험이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 오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와같은 구원으로는 결코 품성을 계발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육신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구원을 주시려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있는 바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쓰시고, 그 모든 성정과 욕심을 지닌 바로 그 육신과 만나 정복하셨으며
믿음으로 가져오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육신에죄를 정하'셨다.
이렇게 하여 온 인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믿음을 주시고,
육신의 권세와 죄의 법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육신을 지배하도록 하는 능력을 주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시험이 없는 곳에 두어 연약하고 특성이 없는 방법으로 구원하시려고 하지 않고
인간에게 내려오셔서 인간이 있는 바로 그곳에 계시고 인간의 모든 시험 가운데 처하셨다.
예수께선 인간이 가진 육신을 쓰고 오셔서, 그 육신이 당한 모든 시험에 마주치면서, 그 모든 시험을 정복하셨다.
그와같이 정복하심으로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셨다.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자.

그러므로 누구나 '예수의 믿음'을 받고 지키는 사람은 완전히 그 승리를 자기의 것으로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1900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