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볼 때에, 두 율법을 구별하여 지금 보는 이 문제에서
하나님의 법을 제외시키고, "의무를 가진 자"라는 말에 의무감 만을 허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모든 인간의 본분이며
이것을 부인하는 다른 어떤 성경 말씀이 있을 수 없고,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할례를 받든지 아니 받든지 간에,
하나님의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만일 할례를 받으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다는 것,
곧 의무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여기서 하나님의 법이 제외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만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법은 행할 의무가 조금도 없는 법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율법 전체'라는 말은
오직 희생제물과 제사를 드리는 의문의 율법 전체만을 의미하여야 한다 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반면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의무가 전혀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성경 구절이 그들의 불순종과 반대를 됫받침해 준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할례를 받은 자들 만이 하나님의 법을 지킬 의무가 있으므로 할례를 받을 때에만 이 의무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할례를 받을 의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같이 말하면서 십계명을 지킬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령게 주장하는 양쪽이 다 잘못되었다. 그들은 모두 이 성경 구절에 들어있는 사상을 깨닫지 못했다.
이렇게 깨닫지 못하는 원인은 '의무를 가진 자'라는 말을 단지 '의무'라는 의미에만 국한 시키는데서 오고 있다.
이 말이 '의무'를 의미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인 의무와 관련된 모든 구절에서, 이 말은 단순히 의무 이상의 더 넓고 깊은 의미가 있으므로,
단순히 의무를 의미 하는 것은 사실은 이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갈라디아서 5장 3절의 '의무를 가진 자'라는 말은 빚을 지고 있어서 지불할 의무가 있는 사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 이 상으로 완전히 빚구덩이에 빠져서 전혀 지불할 돈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천만원 의 빚을 져서 갚아야 하는데, 그 이상으로 돈을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천만원은 갚을 능력이 있다면 빚 갚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나 큰 빚을 져서 12억원을 갚아야 하나, 한푼도 갚을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감옥에 갇혀 있어서 이 빚을 갚을 돈을 전혀 벌 수가 없다면,
그 사람에게는 '의무를 가진 자'라는 말은 단순히 갚을 의무를 가진 것 이상의 횔씬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경우도 분명히 이와같은 경우이다. 이것이 바로 이 구절에서 말하는 사상이다.
이것이 여기 '의무를 가진 자'라는 말에서 담고 있는 '의무'이다.
이렇기 때문에 '의무를 가진 자'라는 말은 도덕과 관련하여 사용할 때에,
오직 죄를 의미 하고 또 의미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그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5장 3절의 '의무를 가진 자'라는 이말은 누가복음 13장 4절에서 사용하는 말과 같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텁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이 절에서 '죄'라는 말씀의 난외주석에 빚진 것'이라는 말씀에 유의하기 바란다.
이 말은 마태복음 6장 12절의 기도에서도 사용되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누가복음의 주님의 기도에서 이 죄의 사상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난외주석)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눅 11 : 4)

이 말은 역시 우리 구주께서 누가복음 7장 41,42절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가라사대 빚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같은 말을 마태복음 18장 23-35 절의 비유에서 사용하고 있다.

물론 누가복음 13장 4절에서 '죄'라는 말이 본 구절에서 쓰여지고,
'빚진 것'이라는 말이 난외주석에서 쓰여졌으며, 관주에서는 마태복음 18장의 비유와 직접 연결시키고 있다.
이 비유에서는 한 왕이 그 종들과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약 12억원 정도) 빚진자 하나를 데려" 왔으나
갚을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 종이 그에게 약 일만 이천원 정도 빚진 같은 종 하나를 만났을 때에
빚을 탕감 하여 주려하지 않고 일만 이천원을 갚을 때까지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므로 왕이 그 종을 불러다가 "그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 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 와 같이 하시리라"(마18 : 23-35).

빚진 종을 옥졸에게 넘겨 주인에게 빚진 모든 것을 다 갚도록 한다는 사상은 '빚진 자'라는 말과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이 말의 사용은 빚진 자는 그의 죄를 속죄하지 않으면 안되는자라는 사상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죄는 벌을 받거나 혹은 변상으로 속죄하여 빚과 같이 갚아야 하기 때문에
헬라어에서는 오페이레마, 곧 빚이라는 말로 불리어지고 있다'

위에서 본 성경 구절에서 알수 있는 것은 갈라디아서 5장33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는 자라"는 말씀에는 단순히 율법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의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의 구속력을 인정할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율법의 모든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않되는 빚진 자 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더욱 알수있는 것은 그 자신으로는 영원히 빚진 자의 운명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혀 갚을 것이 없고 그 자신의 능력으로는 갚을 것을 벌만한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이 빚은 지금부터 율법을 행하여 야 하는 의무가 되는 것 뿐만 아니라 또한 과거에도 빚진 모든 것,
다시 말하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쌓인 모든 빚을 갚아야할 의무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갈라디아서 5장 3절과 위에서 인용한 이와 비슷한 내용의 성경 구절에서 의미하는
모든 말씀을 볼 때에 모든 사람은 영원히 빚진 자들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 구원받기 위하여 할례를 받고 또 이와같이 자기의 의(義)의 행위로 구원받을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그들의 생애가시작한 때부터 마치는 때까지의 모든 빚을 하나님의 율법에 갚아야 할 책임을 맡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점에서 볼 때에 그들의 범죄에 따르고,
그 범죄로 축적된 모든 죄를 속죄해야할 의무를 떠맡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이것이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는 말씀에서
의미하는 내용이다.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 일 뿐만 아니라,
그 거래에서 그의 빚에 관련된 모든 혐의를 벗기 위하여 스스로 자원하여 그 책임을 떠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 빚을 진 자들인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자신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하고, 심지어는 계명을 행하고
그 외에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을 행하여 의를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나 그 행위로 말미암아
그 빚에 관련된 일체의 것을 갚아야 할 책임을 떠맡고 그것으로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능력이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완전히 망하여 생명이 없는 자들이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감사하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가지면,
오직 주 예수와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의존하는 사람은
그 스스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빚진 자이기는 하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빚을 빚넉넉히 갚을 수 있을 만큼 풍족하게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형벌을 받고 변상을 하여, 각 사람의 모든 죄를 속죄하시고 그가 가져오신 하나님의 의로
율법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생애에 요구하는 모든 빚을 갚을 충분한 의를 공급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선물과 부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자.
오! 이것들을 믿고 받아 들이자. 가난하고 가련하고 생명없는 빚진 자들인 우리는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으라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사"도록 하자.(계 3 : 18 ; 사 55 :1) (리뷰 앤드 헤랄드 1900년 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