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율법의 저주, 곧 일찌기 있었으며 또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저주는 단순히 죄때문에 생긴것이다.
이것은 스가랴5장 1-4절에서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선지자가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았다.
"그 장이 20규빗이요 광이 10규빗" 이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다시 말하면, 이 두루마리는 온 지면에 있는 저주를 말하고 있다.
그러면 온 지면에 있는 이 저주의 원인은 무엇인가? 여기에 그 답이 있다.

"무룻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룻 맹세 하는 자는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다시 말하면,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율법이며, 두 돌비에서 각각 한 계명씩 인용하여
두 돌비의 율법이 두루마리에 들어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도적질하는 모든 사람, 곧 둘째 돌비에 있는 율법을 범하는 모든 사람은 이편의 율법을 따라 끊어질 것이며,
맹세하는 모든 사람, 곧 첫째 돌비에 있는 율법을 범하는 모든 사람은 저편의 율법을 따라 끊어질 것이다.

이와같이 하늘의 기록자들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일일이 다 기록할 필요가 없고,
범죄할 때마다 해당하는 계명을 그 사람 에게 해당하는 두루마리에 표시만 하면 된다.
이러한 율법의 두루마리는 모든 사람에게 어디를 가든지 혹은 집 안에 있을 때에라도 따라 다닌다는 것을
다음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설명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들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 율법의 두루마리는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저주로 그 사람과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저주가 땅의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을 그 큰 날 땅을 삼킬 때까지 머물러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죄의 권능'과 저주는 '율법'이기 때문이다(고전 15'56).

그러나 하나님에게 감사하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모든 저주가 그리스도에게 내려졌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기 때문이다(사 53 : 6).
그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바 되었다(고후 5 :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면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모든 죄에서 자유롭게 되기 때문에, 저주에서 자유롭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저주를 다 짊어지셨으므로,
사람이 범죄하였을 때에 저주가 땅에 내려서 가시와 찔레가 나왔지만,
예수께서 만물을 저주에서 구속하실 때에, 가시관까지 쓰시면서, 인간과 땅을 저주에서 구속하셨다.
그의 이름을 찬양하자 구속의 사업이 이루어졌다. 주님에게 감사하자.
그가 나무에 달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두 이미 완성하신 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지상의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저주에서 구속하신 이 값없는 선물을 받을 때에,
그 두루마리는 여전히 우리를 따라다니기는 하나, 더 이상 저주가 되지 않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를 증거해 준다(롬 3 : 22).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저주에서 구속하시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복은 이미 연구해서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의이며, 이 의는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율법 챙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으나, "그리스도께서‥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에서도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행위(일)를 주셨다.
율법의 행위는 우리 자신의 행위에 불과하고 죄에 지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행위는 믿음의 행위이며 하나님의 선물로서 오직 의 뿐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챙위)이니라"(요 6 . 29).
이것이 참된 안식 곧 하늘의 안식이며 하나님의 안식이다.
그러므로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 4 . 10).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 ‥‥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며, 우리 자신의 행위의 저주에서 속량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와 행위인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인에게 미치게"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든 것은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 : 1-4) .

하나님에게 감사하자. 우리의 죄 대신에 하나님 자신의 의를 주시고,
우리의 율법의 행위 대신에 그 자신의 믿음의 행위를 말로 표천할 수 없는 선물로 주셨으며,
그리스도 예수안에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