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까지도 영원히 근절되어야 할
똑같은 죽은 형식주의가 득세하여 어디를 가나 기독교 신앙의 독버섯이 되어 왔다.
얼마되지 않아서 개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에 살며시 들어와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들을 높혔다.
그들은 살아있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는 임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후 줄곧 그리스도가 없는 마음을 기독교의 신앙의 형식으로 채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의 임재만이 이러한 형식에 의미와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타락한 교회에서는 한낱 침례 의식이나 심지어는 물 몇 방울을 뿌리는 세례 의식이 거듭남이 되고
성만찬 예식이 그리스도의 실제 임재가 되고 한 교회와 가지는 연결이 구원의 소망이 되고 있다.
교회의 모든 의식이 다 이렇게 되고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기독교 신앙의 의식을 변질시키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은 그 위에 그들 자신이 창안한 일만 가지의 의식을 더하였다.
그 예를 들면 참회, 순례 여행, 유전과 까다로운 의식들이 있다.
그러므로 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형식주의자들의 생애는 끊임없이 육신의 일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 예를 들면 투쟁과 경쟁, 위선과 죄악, 핍박, 정탐, 배반 및 모든 악한 행위이다. 이것이 곧 교황권이다.

그러나 이 악한 형식주의의 정신은 기성 교황권의 울타리를 멀리 벗어나서
널리 퍼져 있으며 오늘날은 어디에서나 기독교 신앙의 해독이 되고 있다.
심지어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곳에서까지도 이러한 형식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까지
전 세계에 만연한 마지막 시대의 큰 악이 될 것이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이 온 세상에 편만해 있는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능력을 부인하기까지 하는 경건의 모양은
곧 죽은 형식주의인 것이며 이것을 대항하여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로 온 세상에 가져다 주는 산 믿음은 전 세계적으로 휩쓰는 죽은 형식주의의 와중에서
우리를 구원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각 사람은 어떠한가? 우리는 죽은 형식주의자들인가?
그렇지 않으면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자들인가? 우리는 능력없는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있는 자들인가?
그렇지 않으면 살아있는 믿음으로 마음에 살아계신 구세주의 실제 임재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모든 예배 의식과 봉사에 하늘의 의미와 생명과 기쁨을 부여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며 모든 생활에서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구세주로 발견하지 못하고 그를 믿는 산 믿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말씀 자체까지도 그가 세상에 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죽은 형식주의가 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때에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그들은 그리스도가 없어도 그들 자신의 행위로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우리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에 성경은 더 이상 그리스도가 없는 성경책이 아니다.
성경은 곧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이다. 이것이 성경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참된 경건은 사상과 행위를 고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외적인 종교 의식은 기독교의 내적인 순결과 일치하며
하나님을 섬기는데에 필요한 이러한 의식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의 의식과 같이 의미없는 의식이 아니다."
(예언의 신 2권 219)(바이블 엑호 1895년 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