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하늘 아버지께서 치루신
큰 희생을 알지 못하고 제물 자체와 그 제물을 드리는 공로에 의하여 의를 얻으려고 하였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살아있는 믿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제정해 놓으신 모든 예배 의식과 제도가 변질되었다.
그들의 생애에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이 없으면 이런 모든 의식과 제도는 어떤 의미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런 의식을 통하여 얻은 의에서 평강과 만족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다른 목적으로 제정해 놓으신 이런 의식과 제도를 그들 자신의 생각과 고안에 맞도록 변질시켜 놓고
그 위에 그들 자신이 창안해 낸 일만 가지의 유전과 부당한 법과 까다로운 규정을 더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헛되이 의에 이르고저 하는 소망에 지나지 않았다.
랍비들은 소망이 없는 종교가 실제로 어떤 것이라는 것을 이렇게 가르쳤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온 율법을 지키고 한 조목에서라도 범하지 않을 수 있고,
안식일의 완전한 준수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면
이스라엘의 재난은 끝이나고 마침내는 메시야는 강림하시게 될 것이다." (성 바울의 생애, 파라 지음 37)

이 글보다 생명없는 형식주의를 더욱 생생하게 묘사해 놓은 글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와같이 그들 자신의 생애의 부족을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휠씬 더 선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공로가 있다고 생각하며 모든 다른 사람들을 개나 돼지같이 여기고 있다.

그러나 살아있는 믿음을 행사하여 주님으로부터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은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 의롭다 하실 때에 그 사람은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며
바로 이 의롭다함을 받는 사실에 의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분리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어떤 탁월성이나 그가 행한 어떤 일의 공로 때문이 아니고
오직 주님의 탁월성과 주님이 행하신 일의 공로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의를 받은 사람은
자신 안에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그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의의 견지에서 참된 믿음과 겸손으로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기를 좋아한다.(빌 2:3)

이와같이 그들 자신들이 행한 일을 곧 자랑으로 생각하고 그들이 행한 일의 공로를 기초로 하여 그들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낫게 생각할 때에 이것은 곧 바리새주의의 자기 의에 완전히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보다 휠씬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떤 비교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는 하나님의 진리를 그들에게 전하며
이것은 그들에게 완전히 파멸을 가져오는 폭탄 선언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실제 생애는 어떠한가?
오! 그들의 생애는 불공평과 압제, 악의와 시기, 불화와 다툼, 험담과 소문을 퍼뜨리고
위선과 미천한 생애일 뿐이며, 법을 대단히 자랑하나 율법을 범하여 하나님에게 욕을 돌리며,
그들의 마음은 살인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들의 혀는 그들 한 형제의 피를 흘릴려고 아우성 치는 한편,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려고 로마 법정 문턱을 넘어갈 수가 없었다.(요 18:28)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든 태도에 대해서 과거와 현재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현재 우리를 위하여 매우 간단한 두 성경절에서 아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의 열지파에게 하신 말씀인데 이때만 해도 아직 그들에게 은혜의 날이 있을 때였었다.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여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암 5:21-24)

이와 같은 시기에 유다 백성에게도 같은 말씀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미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사 1:10-15)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6-18)

주님 자신이 이러한 절기와 성회, 이러한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를 정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것들을 싫어하시고 가납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아주 훌륭한 찬양대가 악기의 반주와 함께 웅장하고 호화찬란하게 부르는 아름다운 합창과
이 모든 아름답고 놀라운 노래를 하나님은 단지 소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들으시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 이런 절기나 성회나 희생이나 제물이나 노래를 제정하셨을 때에
이런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정하시지는 않으셨다. 이 모든 것을 주님 자신이 마음에 거하시고
생애에서 의를 행하는 살아있는 믿음을 나타내도록 하는 예배의 수단으로 제정하셨으며 의로 고아를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고, 공의가 물같이 흐르고 의가 하수같이 흘러 내리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주셨다.

화려하고 격식을 갖추었지만 헛된 과시만 하려는 목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한낱 소리에 불과할 뿐이나
진실하고 살아있는 믿음의 능력이 닿은 마음과 진실한 입에서 흘러나오는 "우리 아버지여"라는 단순한 말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기울이시는 귀에 상달되며,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이 임하는 노래가 되는 것이다.
오직 이것만이 주님께서 이 모든 의식과 제도를 제정하신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생명없는 형식주의의 얄퍅한 겉치레를 위하여 사용할 수 없으며
의를 육적인 마음의 죄악을 가리우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로 죄를 씻어 버리고 살아있는 믿음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씻는 것,
오직 이것만이 이런 의식과 제도를 제정하신 주님의 가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바이블 엑호 1895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