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1-23)

하나님의 의는 모든 사람이 맨 먼저 구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므로 의의 길에는 생명이 있다.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의를 분리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이제는 지금 바로 이 순간, 바로 우리가 읽는 이 시간을 말한다.
바로 이 순간에 하나님의 의가 "모든 믿는 자에게" 나타났다. 지금 이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정말로 믿는가? 만일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러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나타나게 된다.
이것을 믿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말하는가? 만일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면 말씀을 믿는 것인가?
주님은 그의 의가 지금 우리에게 나타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주님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가지 일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시는데 그 일이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진정으로 그를 믿는 것일까?

주님께서는 그가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에 그렇다고 말하기를 원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요일 2:8)
주님께서 한 가지 일을 말씀하시면 이 세상의 사람들이 믿지 않을지라도 그 말씀은 참되다.
주님께서는 참되고 그들에게는 참되지 않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 말씀이 참되기를 원하신다.

그가 말씀하신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우리에게 참된 것이라고 인정할 때에 그
일은 그에게와 우리에게 참된 것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5:7)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렇다고 쉽게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용인하려고는 하나 지금 현재 그들 자신에게 그렇다고는 용인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롬 14:12)

만일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전혀 믿음이 없는 것이다.
만일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지금 참된 것을 믿지 않으면 전혀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제나 또는 내일 사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곧 지금 믿지 않으면 전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 받아들이는 때이며 지금 구원의 때이다.

"이제는 …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가? 한 순간에 그 대답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주님께서 그의 의를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을 감사하자.
주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하시며 율법과 선지자들도 이것을 증거한다.

우리가 범한 그 율법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 율법, 바로 그 율법이 이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이 의를 주장할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하여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을 증거한다. 선지자들도 마찬가지로 이 복스러운 사실을 증거한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그는 정죄를 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의는 그의 의가 되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은 그의 순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이제는 … 하나님의 의가"
지금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나타났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되지 않았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그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4,25)

우리는 지금 죄를 짓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자 하는가?
하나님이 지금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받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이 의를 우리에게 주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으므로 지금 이 순간에 이 의를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다.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되었느니라"는 말은 현재형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나 주님은 아직도 이 문제를 빠뜨리지 않으신다. 이 무한한 사실을 현재의 능력과 축복으로 강조하신다.
"자기의 의로우심을 (지금)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먼저 하나님의 의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이제"라고 말씀하시고 다음에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이 모든 말씀을 강조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기의 의로우심을 (이때에) 나타내려 하심이니"

오! 가련하게 떨고 의심하는 영혼들이여, 이 말씀으로도 하나님의 의가
지금 이 순간에 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보증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보증하지 않는가?
지금 이때에 지난 날에 지은 죄를 도말하시고 자기의 의를 우리에게 나타내셨다는 것을
충분히 보증하시고 있지 않는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이것으로 주님을 만족스럽게 해 드리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롬 3:26)

이것으로 주님을 만족스럽게 해 드리기에 충분한데 우리를 만족스럽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는가?
우리는 지금 이 충분하고 복스러운 의의 선물을 받지 않겠는가? 이 의의 선물은 생명인 것이다.
우리가 이 선물을 받으면 주님은 다시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다.(사 53:11)
또 우리가 기뻐할 때에 이중으로 만족히 여기실 것이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전부이다.
왜냐하면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기 때문이다.(롬 4:5)

지금 이 시간에 우리를 위하여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 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있다.
지금 이 말씀으로 의롭게 되지 않겠는가? 지금 이 말씀으로 살지 않겠는가?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롭다 함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간단한 일이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참되느냐,
또는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뿐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5,6)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이제","이때에" 이것은 참되고 그분에게 참된 것이다.
이제, 이때에 우리에게도 참된 것이 되도록 하자. (리뷰 앤드 헤랄드 1896년 11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