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자들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렇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누구나 충분히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곧 은혜는 죄를 짓지 않게 할 목적으로 주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은혜가 없다면
그것은 은혜를 충만히 주시지 아니하기 때문이 아니고 주신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각 사람 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엡 4:7)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은 온전히 그 자신이며 그리고 그것은 "육체로 거하신 신성의 모든 충만"한 분량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은혜의 유일한 분량이다.
무한정한 신성의 충만한 분량은 이 세상에 사는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유일한 은혜의 분량이다.
왜냐하면 "죄가 더한 곳에은혜가 더욱 넘쳤"기 때문이다.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하고 이제 우리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은혜를 주신 것은 또한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이다.
은혜의 목적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표준에 온전히 이르고 완전하게 되는데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하기 위하여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성장의 분량에 비추어 온전하게 되기까지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
또 죄가 많은 모든 사람에게 이 은혜를 주시고 이 은혜는 이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 준다.

이 은혜 자체가 구원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구원의 분량은
오직 그 은혜 자체의 충만한 분량 곧 신성의 충만한 분량인 것이다.
각 사람에게 무한한 은혜를 주셔서 그 은혜 자체의 충만한 정도까지 구원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만일 어떤 사람에게 무한한 구원이 없다면 그것은 왜 그러는가?
그것은 분명히 이미 주신 은혜를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각 사람에게 무한한 은혜를 주시는 것은 전에 죄가 지배한 것처럼 은혜가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여
모든 죄의 권세를 물리치고 죄가 더 이상 주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만일 죄가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지금까지 주관하고 있다면 어디에 잘못이 있는가?
그 잘못은 분명히 여기에 있다.

은혜가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 안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신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소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은혜를 헛되게 받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고 공언을 한다.
그러나 만일 신자들 생애에서 이 은혜가 죄 대신에 왕노릇하지 못하고 주관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있다.

만일 은혜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온전한 사람을 이루도록 성장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

하나님의 은혜는 역사하도록 허용하기만 한다면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우리는 은혜가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그 은혜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임을 보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은 그 능력으로 이루도록 주신 모든 것, 곧 영혼의 구원, 죄와 그 권세로부터의 구원,
생애에 의의 지배, 그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신자의 완성을 이루기 위하여
마음과 생애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능력이 역사하도록 할 수만 있다면 넉넉하게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도록 주신 것이다. 그러나 불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죄에서 구원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또 믿지마는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고 과거의 죄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은혜에 바쳤던 마음의 자리를 주어
그들의 영혼을 다스리고 사단의 권세를 대항하도록 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다른 형태의 불신이다.
사실 그들의 생애에 그리스도의 형상의 완성이라는 은혜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이 직책에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고후 6:1-3)

여기에 "직책"이라는 말은 단순히 교회의 목사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이 봉사하는 직책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벧전 4:10)

그러므로 하나님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를 바라신다.
왜냐하면 그 은혜와 복스러운 역사가 세상에 잘못 전해지지 않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사람들이 그 은혜에 복종하는 데에 훼방을 받지 않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의 은혜를 헛되이 받아들이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은혜를 헛되이 받을 때에
많은 일에 거리낌없이 있게 되고 은혜의 직책 자체가 훼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은혜에 마음의 자리를 허용할 때에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되고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은혜가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자들의 생애에서 얼마나 완전하고 충만하게 지배할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포함하여 다음의 일들을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에게 자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유의하여 읽어보기 바란다.

"모든 일에 …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4-10)

여기에 열거한 일은 이 세상에 사는 신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모든 일과 경험이다.
여기에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으면 그 은혜가 그 사람의 생애를 점유하고 지배할 것이며
생애에 일어나는 모든 경험은 은혜로 받아들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인정을 받도록 해주고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충만하게 되도록 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리뷰 앤드 헤랄드 1896년 9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