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지배 아래서 죄를 짓는 것이 쉬운 것처럼
은혜의 지배 아래서 의를 행하는 것이 쉽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만일 은혜가 죄보다 능력이 없다면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로부터 받는 구원이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이것을 부인할 수 없다.
죄로부터 받는 구원은 분명히 죄보다 은혜에 더 많은 능력이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죄보다 은혜에 더 많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은혜가 지배하는 모든 곳에서는
은혜없이 죄를 행하는 것이 쉬운만큼 의를 행하는 것이 쉬울 것은 극히 지당한 일이다.

아직까지 본성적으로 죄를 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최대의 난 문제는 언제나 의를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인간이 하나의 세력 곧 죄의 권세하에 예속되어 그 완전한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한, 인간이 알고 또 원하는 선을 행하기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죄의 세력보다 더 강한 세력이 지배하도록 하면 죄의 세력이 지배할 때에 그 세력의 뜻을 따르는 것이
쉬운 것처럼 더 강한 세력의 뜻을 따르는 것이 쉬우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단순히 은혜가 죄보다 능력이 더 많은 정도는 아니다.
사실 이것이 전부라 할지라도 그 정도에서라도 세상의 모든 죄인들에게는 충만한 소망과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좋기는 하나 전부가 아니며 결코 전부가 될 수 없다.
능력은 죄보다 은혜에 휠씬 더 많다. 왜냐하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기 때문이다.(롬5:21)
그러므로 죄보다 은혜에 능력이 더 넘치는 것처럼 그만큼 더 세상의 모든 죄인들에게 소망과 위로가 넘치는 것이다.
그러면 죄보다 은혜에 능력이 얼마나 더 많은가? 잠깐동안 생각을 해보자.
스스로 한 두가지 질문을 해 보자. 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 1:7)

그러면 죄는 어디에서 오는가? 물론 마귀로부터 온다. 죄는 마귀에게 속한다.
왜냐하면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은혜에는 죄보다 얼마나 더 많은 능력이 있는가?
이는 마귀보다 하나님이 더 능력있는 것처럼 죄보다 은혜에 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초보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은혜의 지배는 하나님의 지배이며 죄의 지배는 사단의 지배라는 것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단의 능력으로 사단을 섬기는 것만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쉽다는 것은 잘 알 수가 없다는 말인가?
이러한데도 어려움이 생길 때에 아주 많은 사람이 사단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마 12:33)

가시 나무에서 포도를, 찔레에서 무화과를 결코 거둘 수는 없다.
먼저 나무의 뿌리와 가지가 좋고 새롭게 되어야 한다.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요 3:7; 갈 5:6)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지금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것으로,
또는 육신에 죄를 정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아 영생을 얻도록 하는
더욱 풍성한 은혜가 아닌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지 말자.
그렇게 되면 "새 생명" 가운데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며,
정말로 멍에가 쉽고 짐은 가벼움을 발견할 것이며 참으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벧전 1:8)

예수께서도 의를 행하기가 어려우신 적이 있었던가? 누구나 즉시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왜 그렇게 될 수 있으셨는가?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다.
우리와 같은 혈육을 가지셨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가지셨던 육신의 종류는 분명히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똑같았었다.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였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되셨었다.
이것은 하나를 빼놓은 모든 일이 아니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되셨다. 그분 스스로는 우리와 같이 연약하셨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5:30)
그러면 왜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으셨는데도 예수님은 항상 의를 행하는 것이 쉬우셨는가?
왜냐하면 자신을 결코 신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의지하셨다.
항상 하나님을 섬기고저 하셨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존하셨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의를 행하기가 항상 쉬우셨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마찬가지이다.

우리로 하여금 그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우리에게 본을 남기셨다.
그리스도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천지의 모든 권세를 그에게 주셨으므로
그는 우리가 그의 영광스러운 권세를 따라 모든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신다.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신성에 참여하셨으므로
만일 우리가 약속의 자녀이며 육신에 속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신성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그분에게 주시고 또 그가 가지신 것은 모두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고 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며
그리하여 그후부터는 더 이상 죄를 섬기지 않고 다만 의의 종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어 더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고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과 같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하는 바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6년 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