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은 성경에서 가장 귀중한 글 중의 하나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는 글이다.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모본이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약속된
놀라운 유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 약속은 제한이 없다.
아브라함의 축복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받는다.
이 축복을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없을만큼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시기 때문이다(롬 4:16). 특별히 17절의 하단은 주목할만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비결이 들어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며 이 능력은 창조의 능력을 말한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실 수 있다. 만일 사람이 그런 일을 한다면 아마 거짓말이라고 말할 것이다.
만일 사람이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신다면 그것은 분명히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그것들이 생긴다.

우리는 신뢰에 대한 한 실례로 "엄마가 말하면 그렇지 않는 일도 그렇게 돼"라고 하는 어린 소녀의 말을 들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도 꼭 그렇다.

"태초"에라는 때를 말하기 전에는 땅은 전혀 아무것도 없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즉시 세상이 생겨났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6-9)
이것이 로마서 4장 7절에서 보여주는 능력이다.

자, 계속 읽어 가면서 이와 관련하여 이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도록 하자.
사도 바울은 더욱 아브라함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8-22)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행사하여
그분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실 수 있었던 것처럼 의가 없는 인간에게 의를 창조하실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련을 단순히 이삭의 출생과 관련하여 보고
거기서 끝나는 자들은 이 성경 기록의 모든 의미와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이삭은 한낱 그의 씨라고 칭하는 자에 불과하지만 그 씨는 사실 바로 그리스도인 것이다.(갈 3:16)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로 말미암아 모든 열국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셨다.(갈 3:8)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로 그리스도를 죄인들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었다.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기셨던 믿음이었다. 그러면 그 믿음의 능력을 보자.
그 자신의 몸은 이미 늙어 자녀를 생산할 수 없었고 사라도 같은 상태였었다.
이런 부부로부터 이삭이 출생한 것은 죽은 자로부터 생명을 취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것은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자들을 신령한 생명으로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였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인간적으로 볼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었고 모든 것이 불가능하였으나
그의 믿음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만물을 창조하고 살리는 그분의 능력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이제 이 모든 말씀의 목적을 보자.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와 같은 믿음이었으며 우리와 같은 하나님을 믿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받은 같은 의를 우리도 받는다는 사실은
아브라함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은 물론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이다.
참으로 이 모든 약속이 특별히 우리를 위해서 있다는 것을 다른 곳에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3,17,18)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맹세에 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약속은 맹세로 확증을 받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좀더 개인적으로 적용하여 살펴보고 끝마치도록 하자.
죄로 떨고 있는 영혼들이여, 우리의 죄가 너무 많고 우리가 너무 연약하여 소망이 없다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으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신다.(고후 12:9)
그러므로 성경은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는 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히 11:34)
이 말은 하나님이 그들의 연약함을 취하여 그것을 강하게 만드신 것을 뜻한다.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크게 나타내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하나님이 …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아브라함의 단순한 믿음을 가지라.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여 의에 이르렀는가?
그 자신의 몸이 죽은 것같음과 무능력함을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없는 것에서 창조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자신의 몸의 연약성을 생각하지 말고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생각하며 우주를 창조하시
고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의 말씀, 곧 이 말씀이 역시 우리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있는 자들이 되도록 만드실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영문시조 1890년 10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