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는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 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 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6-9)

이 말씀을 특히 마지막 절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만일 그대로 받아들이면 위험하지 않을까?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상으로 구원에 필요한 어떤 무엇이 더 있지 않은가?

첫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하지만 마지막 두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성경절들을 말한다. 너무나 분명한 말씀이므로 문자 그대로 사실이 아닐 수 없으며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죄인이 의지할 수 있는 말씀이다.

그 한 예로서 빌립보의 간수의 경우를 들어보자.
바울과 실라가 무자비하게 매를 맞은 후에 이 간수가 그들을 맡아서 지키게 되었다.
그들은 등이 찢기고 발에는 쇠고랑을 찼었지만 밤중에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찬송을 드리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은 뒤흔들리고 모든 감옥문이 다 열렸다.
만일 그가 지키고 있는 죄수들이 모두 도망을 친다 하더라도 그 간수가 두려워 떨었던 것은
발아래 땅이 흔들리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에 대한 공포나 무서운 로마의 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지진을 바울이 전파한 큰 심판의 예고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말했다. 바울이 그에게 한 대답에 유의하기 바란다.
이 사람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심정에 눌려 있었기 때문에 그를 만족스럽게 했던 바울의 대답은
모든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구원을 주는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간수의 찢어질 것같이 우러나오는 호소에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대답을 했다. (행 16:31)
이 말씀은 우리가 바울의 로마서에서 인용한 말씀과 너무나 일치한다.

한번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라고 물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대답에 유의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8,29)

이 말씀을 금으로 써서 모든 심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눈앞에 두고 계속 보도록 했으면 좋겠다.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던 모든 문제가 깨끗이 해결될 것이다. 행위가 있어야 하지만 믿음으로 다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믿음은 행위를 이루기 때문이다. 믿음은 모든 것을 담고 있으므로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사람들이 대개 믿음에 대해서 그릇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믿음은 단순한 동의이며 수동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능동적인 행위가 부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은 능동적인 것으로서 가장 실질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현실적인 기초인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사 51:67)이며 우리에게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지만 (마 6:33),
믿음이 없이는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심판대에 설 유일한 의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기 때문이다. (빌 3:9)

로마서 3장의 귀절에서 바울이 한 말씀을 읽어 보자.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율법이 폐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보좌만큼 견고하고 변함이 없다.
사람들이 율법에 대해서 무슨 악한 말을 하고 유린하며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율법은 영원토록 동일할 뿐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불순종하여 그들의 마음에 율법의 효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이와같이 민수기 30장 15절에서 "지키지 않은 서원은 폐하여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에 믿음과 불순종은
양립할 수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아무리 범법자가 믿음을 공언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범법자라는 사실은 그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소유는 마음에 율법을 굳게 세워서 하나님에게 범죄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믿음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 않도록 하자.
그러나 사도 야곱은 믿음 하나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잠깐 동안 말씀을 보도록 하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정직한 마음으로 이 말씀을 죽은 율법주의로 바꾸어왔다.
그는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기록한 말씀과 거의 하나같이 일치한다.

행위가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면 행위가 없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죽은 것은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믿음을 가졌다면 행위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며
그렇게 된다고 해서 믿음이나 행위을 자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자랑을 배제하기 때문이다.(롬 3:27)
자랑은 오직 죽은 행실을 전적으로 신뢰하거나 믿음의 공언을 허울좋은 흉내로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야고보 2장 14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뇨"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그러는가? 왜냐하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나 그의 악한 행위로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면 그것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단순히 믿음이 거짓 공언하는 자들에게 어떤 행위를 이루지 않기 때문에 믿음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야 하는가?

바울은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나 행위로서 말하고 있다.(딛 1:16)
야고보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성령의 열매인 선한 행실이 없다는 사실은 그가 크게 공언하기는 하나 믿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은 그를 구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을 구원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바이블 엑호 1890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