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스마엘을 낳게 하였던 모든 불신의 계획을 완전히 청산하고
오직 믿음 위에 서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했을 때에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낳았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노선과 참된 믿음에서 벗어났었지만
이제 오직 말씀과 참된 믿음으로 돌아왔었기 때문에 하나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실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을 신뢰하여 이스마엘 대신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아이 이삭을 얻었다.
그러나 아제 이삭을 얻었으나 이삭까지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결정해야만 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아브라함은 오직 말씀만을 신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받았다.
이삭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자손이었다. 이삭이 태어난 후에 하나님은
그 말씀을 확증하시면서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다(창 21:12).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이르러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할 것이며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지금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다.(창 26:4)

그러나 만일 이삭을 번제로 드려 불사른다면 그를 통해서 모든 민족을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이 어떻게 될 것인가?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하게 많을 것이라는 약속이 어떻게 될것인가?
그렇지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전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고 이스마엘을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정도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고 이삭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면서 이삭을 드렸다.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되리라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고 칭하리라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말씀들을 조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 말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그가 아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이것을 알았을 때에 그 말씀을 믿었고 그 말씀을 따랐으며 이런 말씀의 조화나
설명이 꼭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겠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또는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전에 내가 하나님의 약속에 간여하여 방해가 되었지만내가
행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말씀으로만 돌아갔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약속의 자손 이삭을 주셨다.
그런데 이제 약속의 자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겠다.

하나님이 처음에 기적으로 이삭을 주셨으므로 기적으로 그를 다시 살려주실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를 번제로 바칠 때에 그는 죽을 것이다.
그때에 그를 다시 돌려 주실 수 있는 기적은 오직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는 기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하실 수 있으시므로 그렇게 행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할 것이며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자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삭을 다시 살리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행하신 일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나의 몸과 사라의 몸이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삭을 낳을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수 있으시므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제 그의 마음은 정하였다. 아브라함은 일어나서 종들과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을 향하여 사흘 길을 갔다. 사흘째 되던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4,5) 누가 갈 것인가?
"내가 아이와 함께 … 가서" 그러면 누가 다시 돌아올 것인가? "내가 아이와 함게… 가서…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간 것처럼 꼭 그와 함께 돌아올 것을 기대하였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 그 다음에 이삭이 잿더미에서 살아나 함께 돌아갈 것을 기대하였다.
왜냐하면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자손이라 칭하리라 또는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고저 했다.(히 11:17-19)

이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약 2:23). 그러나 더 나아가서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다.(롬 4:23-25)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가져다 주는 믿음이다. 이것이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그 의미하는 바"이다.
그리고 "믿음을 행사하는 법을 깨닫는 것" 이것이 복음의 과학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과학은 과학 중의 과학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1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