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때
그 의미하는 바를 아는 것은 다른 어떤 지식을 얻는 것보다 휠씬 더 중요하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하시는 일을 이루도록 기대하는 것이며 그 말씀하시는 일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오직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조상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 대하여 기록한 것은
믿음, 곧 믿음이 무엇이며 믿음은 그 믿음을 가진 자에게 무엇을 행하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믿음의 일에 있어서 우리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은 무엇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아브라함은 80살이 넘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늙었으나 아이가 없을 때에 하나님은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5:5).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 말씀하신 일을 기대하였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러나 사라는 그의 기대를 하나님의 말씀에만
두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위하여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창 16:2) 그순간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신뢰하는 믿음에서 벗어져 나갔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끝까지 바라고 의존하는 대신 "사라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아이가 태어나기는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사라에게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서 생긴
일을 거절하였다. 하나님께서도 이 일을 거절하시고 한 아이가 태어난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여 버리셨다.

그런 후에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시고 약속하신 후손을 통하여 그를 "열국의 아비"가 되도록 할 것이며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후손과 언약을 세우는 일에 관하여 계속 말씀하셨다. 또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꾸셨다.
왜냐하면 사래도 약속하신 후손을 통하여 "열국의 어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미 태어난 그 아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알고
이 문제에 주님의 관심을 끌려고 하면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영케 할찌라 그가 열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 (창 17:15-21)

이 모든 일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사라는 약속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데에 있어서
오직 그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사라는 그의 계략은 단지 불화와 고통만을 가져오고 약속의 성취를 지연시킬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하게 붙잡지 못했으며
그러므로 이제 그 모든 계략을 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 아브라함이 아흔 아홉살이 되었다. 그러므로 어쨌든 이것은 말씀의 성취가 어느 때보다도
더 요원한 것같이 보였으나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고 보다 큰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그대로 믿는 것외에는 다른 무엇을 의존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그 말씀하신 바를 이루시도록 완전히 그 말씀에 매달렸었다.
그들 자신들의 모든 행위와 책략과 계획과 노력을 버리고 그 말씀하신 일을 이루시도록 하기 위하여
오직 믿음에 의지하고 오직 말씀에 매달리고 완전히 그 말씀에만 의존하였다.

이제 오직 말씀만이 역사할 길이 밝히 열렸으므로 그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여 약속하신 "자손"이 태어났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다시 말하면 인간은 무력하지만 말씀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히 11:11)
"그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2)

이와같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수 있나 보라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그에게 하신 말씀이 성취가 되었다. 이것은 믿음을 가르친 성경의 교훈이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믿음을 기르는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 의미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아브라함에게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로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으니라."(갈 3:9)
자신들의 모든 행위와 책략과 계획과 노력을 거부하고 인간적으로 완전히 무력한 가운데서
그 말씀하신 일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자들은 모두 믿음에 속한 자들이며
믿음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의로 복을 받을 자들이다.
오, "믿음을 행사하는 법을 아는 것 이것이 복음의 과학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의 과학은 과학 중의 과학이다.
누가 이것을 깨달으려고 모든 힘을 기울이려고 하지 않겠는가! (리뷰 앤드 헤랄드 1899년 1월 24일)